4월 북한의 모든 정치행사는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수립해 놓은 대내외 정책 을 그대로 따르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김정일 위원장 사후 지금까지 후계자의 권 력구조 구축과 그에 따른 인사 문제까지 모두는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 통치’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북한은 미사일과 핵 카드 활용으로 체제보장과 함께, 국제제재를 풀고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유훈에 충실히 따른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유훈은 여기까지다. 대내외전략에 대한 유훈의 매뉴얼에 따랐지만 안타깝게도 장거리 미사일 실패 상황에 대한 대비책 매뉴얼은 없다. 미사일 발사가 성공했다면 당연히 다음 단계의 핵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발사 실패는 조금도 예상치 못한 문제였고, 그 결과 다음 단계의 수순은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미사일 재발사 또는 3차 핵실험 감행할까?
북한은 지금까지 ‘장거리 미사일 발사 후 핵실험 단행’의 패턴을 보여 왔다. 그
79 북한 ‘핵·미사일 정치’의 향방
렇다면 금번 실패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단행하는 패턴이 재현될 수 있을까? 지 금 이에 대한 단정을 내리기는 무척 힘들다. 무엇보다 우선 미사일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금번 발사 실험에서 보듯 북한의 기술적인 진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긴 셈이다. 기술 개 량의 한계는 과거 주로 일본으로부터 불법적으로 도입해왔던 미사일 부품과 장비 를 장기간의 제재 상황에서 더 이상 확보하기 어려운 사정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북한은 추가 발사를 감행할 수 있겠으나 성공 보장 문제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여 기에다 핵실험 감행도 딜레마적 상황이다. 핵실험으로 충분한 전략적 효과를 얻지 못한 채 자칫 핵분열 물질만 소모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핵탄두를 탑재한 장 거리 로켓 능력의 과시 없이 미국의 전략적 양보를 끌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확산, 즉 핵물질의 유출 문제는 매우 우려되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2·29 합의’가 깨짐으로써 북한이 약속한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 변 우라늄농축활동 임시중단 조치는 당연히 해제된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우라늄 농축활동을 풀가동하여 미국의 핵 비확산 원칙에 강력히 도전하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른 한편 북한은 미사일 실패로 ‘공화국의 존엄’과 위상이 크게 훼손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남 도발을 획책하여 한반도 긴장을 조성할 필요성도 한층 높아 졌다. 북한 지도부가 상황 오판 속에서 자제력을 잃고 무모한 행동을 선택하는 우 를 범할지도 모른다. 물론 북한의 도발에는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 러나 한국과 미국은 신중하고 절제된 언행을 통해 북한이 과도한 위기의식을 느 끼지 않고 스스로 자기점검의 시간을 갖도록 한반도 주변 분위기를 안정시켜 나 가야 한다.
김정은정권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금번에 예상치 못한 장거리 로켓 실패로 강성국가 진입은 좌절되고 말았다. 이 런 상황에 북한의 새로 출범한 김정은정권 앞에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북한이 ‘선군노선’의 기치아래 또다시 ‘미사일·핵 정치’를 추구하여 국제사회의 압 박과 제재 속에 ‘기회의 창’을 외면하는 길로서,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 다. 그러나 분명 그와 다른 길도 있다. 북한 새 정권이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에 결정적인 전환을 일으키는” 노선을 택한다면 북한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
다. 북한은 핵·미사일 카드로 파국적 상황을 초래하느냐, 그렇잖으면 새 정권이 새 시대의 전환점을 마련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섰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택해 야 하는 길은 분명하다. ‘영원한 국방위원장’ 유훈의 지침과 정책 방향은 금번 4월 정치행사까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이제부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이자 국방위원 회 제1위원장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해야 한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단순히 김일성 주석의 ‘아우라’(Aura)에만 의존해 서는 안 된다.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이 풀어주지 못했던 조선 인민의 “이밥에 고 깃국” 소원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 길이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81
김정은정권의 출범과 북한의 선택
…
최진욱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 행사를 마지막으로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숨가 쁘게 달려온 북한의 정치 일정이 일단락되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은 준비된 매뉴 얼에 따라 김정은의 공식승계를 위한 절차를 마무리했다. 김정일 장례식의 상주 역할을 시작으로 최고 권력자로서 현지지도를 통한 김정은의 이미지 구축작업, 2 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을 ‘광명성절’로 제정, 당규약에 3대세습의 명문화, 그리고 김정은정권의 등장을 축하하기 위한 장거리 미사일 ‘은하 3호’ 발사 등이 이루어 졌다.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과 북한의 정치일정에 관한 관심의 핵심은 김정은정 권의 안정성과 정책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중앙군사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인민군 최고사령관 등 당, 정, 군의 최고위 직책을 독점하였고, 북한의 선전매체가 보여주는 김정은의 현지지도 행보는 김정일 못지않은 위상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잘 짜여진 통제체제와 중국의 지원까지 감안하면 김정은정권 의 안정을 의심할 만한 이유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정권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북한체제에 서 최고 지도자가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김정은이 김정일과 같은 절대 권력자 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대체로 이의가 없을 것이다. 김정은의 최단 기 승계 절차나 당대표자회에서 제1비서로의 추대가 ‘김정일 동지의 유훈’임을 강 조한 것은 취약한 권력기반을 반증하는 것이다. 김정일을 ‘영원한 당총비서’와 ‘영 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한 것은 김정은정권의 안정성을 위하여 여전히 김정일 의 도움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권력 장악력 부족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불확실성을 야기할 수 있다. 첫 째, 엘리트들의 충성경쟁이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은 후견인 그룹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앞으로 점차 자신의 권력을 확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엘리트들의 교체 혹은 숙청이 진행될 것이며 이미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김정일 장례 식 때 운구차를 호위했던 8인중 한명이었던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이 실각하고 김영춘 인민무력부장도 1선에서 물러났다. 이들을 대신해 최룡해 총정치국장(중 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해 리명수 인민보안부장, 김원홍 보위부장 등이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였다. 김정은의 후계 지명 이후 리제강, 박 남기, 류경 등 수많은 엘리트들의 의문사와 숙청을 목격한 바 있는 엘리트들이 불 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이 살아 남기위해서 충성경쟁에 내물리게 되고 강경파의 과잉충성이 한반도 정세의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둘째, 취약한 권력 장악력으로 인한 정책조율의 문제점이다. 선군정치를 표방하 는 북한체제는 당-국가체제라는 제도화 된 통치시스템이 절대 권력자의 인적통치 와 직할통치로 대체되었다. 조직지도부, 행정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외 무성, 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부 등 당, 정, 군의 핵심기관들은 콘트롤 타워 의 직접 지시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콘트롤 타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 다. 그러나 김정은이 절대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콘트롤 타워에 집중되 는 다양한 입장들이 매끄럽게 조정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콘트롤 타 워의 부재는 이제 김정은정권이 매뉴얼 없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때 불확실성 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다. 예컨대, 2·29 미·북 합의 이후 ‘은하 3호’ 발사 발표,
‘은하 3호’ 발사를 외신기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가 정작 발사 장면을 공개하지
않은 결정, ‘은하 3호’ 발사의 실패 인정 등과 관련된 결정들이 과연 정교한 계산 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은하 3호’ 발사 실패를 맛보고 ‘강성대국’ 진입 실패를 인정하며 출범한 김정은
정권의 다음 선택은 무엇일까? 그동안 장례식과 정치행사로 잠복되어 있던 평양 시 단장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비롯해 ‘강성대국’을 위한 과도한 비용지출의 후 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일단 김정은정권은 내부결속을 최우선시 할 것이다. 4·15 행사에서 김정은은 인 민생활 향상을 강조하면서 민심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일 사망 이후 이미지 구축 작업을 통해 김정은은 김일성과 같은 부드러운 지도자, 김정일의 유 훈을 계승하는 지도자, 선군정치의 계승자, 군사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 다. 그러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거나 개혁·개방 지도자의 이미지를 찾아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