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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환관의 활동에 대한 재해석

Dalam dokumen 唐代 宦官 문제의 재인식 (Halaman 36-40)

황권의 발휘라는 측면에서 당대 환관의 활동을 이해할 경우, 환관의 활동에 대한 기존의 평가, 즉 황권을 탈취, 남용했다는 지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176) ‘內使’라는 명칭은 사용빈도가 떨어졌지만 의미상으로는 中使와 일치한다.資治通鑑권253, 廣明元年六月條, p.8228 참조.

177) 환관은 宮內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황제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 이었다는 전통적인 인식 또한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周良霄,皇帝與皇權 (增訂本),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6, p.161 참조).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 인으로 환관의 이중적 성격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현존 사서에 기록된 당대 환관의 패륜적, 병폐적 상황들은 부 정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들이 常態的인 모 습인가에 대해서는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환관 문제에 대한 기존의 평가가 극단적인 사건에 기초한 과도한 평가는 아니었는지 재고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178) 또한 외조 사부들의 시각에 의존한 기록이 갖 는 한계는 없었는가를 고려해보아야 한다. 극단적 사건이 조성해낸 이 미지와 실제 그것이 반영하는 내재적 상황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환관의 활동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을 인식 하고 常態的인 형태가 내포한 의미를 적극적으로 포착해낼 수 있다면, 당대 환관의 활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된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적 사건이 갖는 의미를 확대하기 보다는 환관의 활동이 갖는 시스템적 유의미성을 구성해야 한다. 한두 번으로 한정되 지 않는 환관의 활동 상황을 개별 사건의 극단적인 표출형태에 집중해 분석하는 것은 과대한 이미지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 유 지될 수 있었던 구조와 효용을 고려할 수 있어야 당대 환관의 활동이 갖는 근원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환관 사직들이 시스템화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 초기 中使들의 산발적인 활동에서 점차 직무 내용 을 중심으로 조직화되는 환관 사직들179)은 추밀사와 선휘사를 정점으

178) 당대 환관의 權力專橫과 悖倫行爲의 대표적인 사례로 憲宗과 敬宗의 弑害 사건이 자주 거론된다. 그런데 직접 시해를 주도했던 환관들, 헌종시기의 陳弘 志, 경종시기의 劉克明이 사건 이후 지방감군으로 전출되거나 또 다른 환관에 의해 살해되는 등 환관세력의 중심에 서거나 중앙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 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은 환관에 의한 황제 시해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치밀 하게 조직된 행위라기 보단 불합리한 처사 및 일부 환관들의 신분 위협에서 비롯된 우발적 사건으로 분석될 여지가 있다. 향후 좀더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 다.

179) 趙雨樂,唐宋變革期之軍政制度(臺北: 文史哲出版社, 1994), pp.49-78 참조.

이러한 확대가 中使에서 內諸司使로의 代替的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中使의 활동이 확대됨에 따라 내제사사 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후 중사

로 하는 내부체계를 구성하고, 이른바 ‘四貴’로 지칭되는 추밀사와 호 군중위 사이에 연대적 관계180)를 형성했다. 이와 같은 체계화된 조직 의 출현목적을 단순히 환관들의 弄權으로 설명하거나 환관에 의한 불 법적 제도 운영의 결과로 간주하기에는 불충분한 면이 있다. 이들이 三省六部와 九卿에 대응되는 것으로 이해될 정도로 국가 통치제도에서 수행한 실무적 역할이 상당했기 때문이다.181)

물론 이에 대해 환관세력의 자기완결성을 목적으로 관련제도가 완 비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환관세력의 권력 담보를 위 해 제도적 발전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분명 환관집단 의 자기 정체성 확립과 공유를 통해서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당 대 환관들의 활동 모습은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구현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환관세력의 내부 갈등은 상존했고,182) 집단의 일체화를 통한 외부세력에 대한 자기 정체성의 확립에 약점을 드러냈으며,183) 이는 현종이래로 常見된다. 결국 환관제도와 조직이 체계화되어 장기간 유 지되는 데에는 환관 자신들의 사익추구, 弄權 이외에 별도의 근본적인 기능과 효용이 있었음이 상정된다.

만약 환관의 활동을 극단적 개별 사례의 시각에서 탈피해 변화를 바탕으로 지속되는 常態的인 현상의 일부로 인식할 수 있다면, 당대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환관의 활동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새롭게 분석

와 내제사사는 공존하는 형태를 유지한다.

180) 이 둘의 관계가 대립적인 경우도 있었지만(黃潔瓊, 唐代樞密使與神策中尉 之比較硏究 ,福建論壇2005-12, pp.76-80), 기본적으로는 환관의 세력 확대 를 위해 협조 관계를 유지했다(王守棟, 唐代‘權閹四貴’考析 ,求索2007-9, pp.204-206).

181) 陳仲安, 王素,漢唐職官制度硏究(北京: 中華書局, 1993), p.126.

182) 때문에 진인각은 內廷에서의 환관들 사이의 分派를 전제로 외조 관리의 黨 派를 설명했다. 陳寅恪, 앞의 책, pp.236-320.

183) 이는 황제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일정부분 확인이 가능한데 모든 환관이 황 제와 단일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환관 집단 내에 親疎정도의 차이에 따 라 서로 다른 환관 세력 그룹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친밀한 관계를 갖 는 환관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관계 성향이 확인되고 있다. 陸揚, 從墓誌資 料看九世紀唐朝政治中的宦官領袖 (文史93輯, 2010-4), pp.1-54 참조.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환관의 활동이 갖는 최종적 의미를 중심으로 검토해보자.

앞서 황제 권력의 직접적 시행과정에서 환관의 활동이 보여준 수단 적 의미를 지적했다. 비록 그 발생 조건과 실시 목적에는 일정한 차이 가 있지만, 거시적 시각에서 볼 때 환관의 활동을 황제 권력의 외연 확대로 이해하는 기존의 전통적 이해방식은 공감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외연 확대가 권력의 양적 팽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질적인 변화 또한 포함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즉, 황제 권력이 시 행되는 내용의 多少만이 황권의 외연 확대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 황제 권력이 실현되는 양상의 변화 또한 외연 확대의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가령, 전자가 권력을 사용하는 ‘使權’의 문제라고 한다면 후자 는 권력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며 발휘하고자 하는 ‘專權’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황제가 여타 세력의 견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서 권력을 직접적으로 발휘하는 전제성이 강화되는 것을 말한다.184) 이것은 당 중후기 재상 역할의 政務化 현상과도 연관 지어 고려해 볼 수 있는데,185) ‘決策’과 ‘施行’이 일원화된다는 것이 그 중요한 특징이 다. 결국 황제가 ‘專權’을 통한 권력 외연의 질적 확대를 추구하는 과 정에서 환관의 활동은 핵심적 기제로 작용했으며 당 중후기 황제 권력 의 전제성 강화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184) 여기서 언급되는 전제성은 秦始皇의 “天下之事無大小皆決於上”(史記卷6, 秦始皇本紀 , p258)이 내포한 전제성의 부분적 형태로 “無大小”보다 ‘직접’의 의미가 강조된 것이다.

185) 劉后濱은 현종 이후 재상들이 中書門下를 중심으로 ‘政務裁決權’을 강화해 중서문하체제 구성의 핵심이 되었음을 지적했다. 이를 배경으로 ‘坐而論道’를 하던 재상에서 政務化된 역할을 하는 재상으로 변화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을 당 중후기 국가정무 처리과정에서 나타난 황제와 재상의 ‘一體化’로 규 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劉后濱,唐代中書門下體制硏究(濟南:

齊魯書社, 2004), pp.60-62.

Dalam dokumen 唐代 宦官 문제의 재인식 (Halaman 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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