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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 북한의 대남정책 기조는 ‘6·15 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

‘민족공조’ 강화 및 ‘한·미 공조’ 약화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기조

는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북한은 “모든 것

을 민족의 이익에 복종시키며 사대와 외세의존을 배격하고 민족공조 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주적론 포기, 국가보안법 폐지, 외세 와의 공조 포기, 공동선언 말살 시도 배격 등을 촉구했다.

이 기조 하에 북한 언론들은 ‘민족자주의 원칙,’ ‘연방제통일방도,’

‘민족공동의 이익에 의한 단결’ 등을 주장(평방, 1.7)하는 한편, 외교

통상부 장관의 한·미·일 공조체제 유지발언 및 국방부의 지대지미사일 도입계획을 비난(평방, 중방, 1.5, 1.7, 1.11)하는 것으로 2002년을 시작하였다.

북한은 ‘인민문화궁전’에서 ‘정부·정당·단체 합동회의’를 개최(1.22)

하고, ‘3대호소와 3대제의’ 및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가는 운동기 간’의 설정을 제의하였다. 3대 호소는 ① 6.15 공동선언의 철저한 고 수 및 이행, ② 남북관계의 전진 및 통일운동의 활성화, ③ 평화 위협 및 통일 장애 요인 제거이고, 3대 제의는 ① 금년을 ‘우리 민족끼리 단합과 통일을 촉진하는 해’, ② 6월 15일을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날’, ③ 5월~8월 사이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가는 운동기간’으로 설정하자는 것이다.

북한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해 ‘6·29 서해교전’에도 불구

하고 이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후 제7차 장관급회담에 임하였다. 그 동안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통일의 이정표’로 삼고, ‘7·4 남북공

동선언’에 버금갈 정도로 높이 평가하여 왔다. 북한이 우선적으로 실

천한 분야는 당국간 대화였다. 당국간 대화는 제7·8차 장관급회담

(8.12~14, 서울; 10.19~23, 평양), 제2·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 원회(8.27~30, 서울; 11.6~9, 평양), 임동원 특사 방북(4.3~6),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2차 당국회담(9.10~12), 제6·7차 남북 군사실무회담(9.14, 9.17, 판문점),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9.18), 북한경제시찰단 방문(10.26~11.3), 개성공단건설

실무협의회 제1·2차 회의(10.30~11.2, 12.6~8), 제1·2·3차 남북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9.13~17, 11.18~20, 12.15~17) 등이 열렸다.

아울러 준당국간 및 비당국간 대화도 지속되었다. 준당국간 대화는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9.6~8), 제4·5차 이산가족상봉(4.28~5.3,

9.13~18, 금강산), 제14회 부산 아시안경기대회 북측 참가(9.29~

10.14) 등이 있었고, 비당국간 대화는 각계 단체들의 ‘남북단체 공동

성명’ 채택(4.12), 제주도민 2회 방북(5.10~15, 11.25~12.2),

‘6·15공동선언’ 발표 2돌 기념 통일대축전 개최(6.14~15), 8·15 민

족통일행사 개최(8.14~17) 등이다. 2002년도에 북한이 보여준 주 목할 만한 사건들은 6월 월드컵대회 기간 중 남한의 경기 중계방송, 아시안게임(9.29~10.14) 참가, 윤도현밴드 공연 생중계(9.29) 등 이다. ‘자본주의황색바람’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는 북한이 남한의 사 정, 특히 생소한 음악인 ‘록’을 주민들에게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것은

‘6·15 공동선언’ 이후 생성된 남한에 대한 믿음 때문인 것으로 보인

다.

그러나 북한의 전통적 대남정책인 ‘남북공조’ 및 통일전선 차원의 대남 선동도 빠지지 않았다. 신년 공동사설에서 시작된 ‘민족공조’에 대한 강조는 북·미관계가 나빠질수록 그 정도를 더해 갔다. 1월 29일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한편, 3월에는 ‘핵태세검토보고 서(NPR)’를 통해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보였고, ‘6·29 서해교전’

을 거쳐 10월 3일 켈리 미국특사 방북 후 ‘핵개발시인’ 문제가 북·미 간 최대의 현안으로 등장(10.17)하면서 북한의 ‘민족공조’ 강조는 극 에 달했다.

「평양방송」은 10월 1일 통일문제와 관련, 외세와의 공조 대신 민 족과의 공조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10월 17일 이후

‘조평통’ 대변인 담화(10.28), 「로동신문」 보도(10.29)로 이어졌다.

「로동신문」은 “민족공조로 조-미 불가침 조약 체결을 위한 운동과 투 쟁을 벌이는 것이 미국의 핵전쟁 위험을 막고 나라의 평화를 지키게 된다”라고 밝혔다. 「로동신문」은 10월 30일에도 같은 주장을 하였다.

「평양방송」은 11월 3일 “조선사람이라면 신앙과 정견, 주의와 주장을 초월해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위험을 막고 민족의 운명과 이익을 지키 기 위한 투쟁에 한 사람같이 떨쳐 나서야 한다”라고 하면서 ‘민족봉기’ 를 선동하였다. 동 방송은 11월 15일 “민족공조는 민족의 생존과 관 련되는 사활적인 문제”라고 강조했고, 「조선중앙통신」도 12월 5일 비 슷한 보도를 하였다.

남한의 선거를 의식한 북한의 대남 공세도 지속되었다. 북한은 연 초부터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비난을 지속하였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연두회견(1.17) 비난(1.21, 중·평방)을 필두로 “정계에서 제 거, 민족 내에서 매장시킬 것”을 주장(3.4, 평방)하였다. 한나라당 대 선후보의 ‘평화정책(8.21)’에 대해 미국에 추종하여 한반도 근본문제 를 배제시킨 ‘집권만을 위한 술수’라고 비난함으로써 동 후보에 대한 남한내 반대분위기 고취를 기대하였다.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지면서

’97년 ‘총풍사건’을 동 후보가 요청해 왔다고 보도함으로써 대선과정

에서 동 문제가 재차 쟁점화되기를 기대하였다. 대통령선거 후인 21 일 오후 북한 방송들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짤막하게 보도하면서 “이것은 온 민족의 염원이 반영된 6.15공동선언

을 반대하고 반공화국 대결을 고취하는 세력은 참패를 면치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한·미 이간책’은 매우 집요하게 지속되었다. 부시대통령의 방

한에 대한 거부입장을 남한의 일부 단체들의 부시 대통령 방한 반대 투쟁을 소개(2.15)하는 식으로 전했다. ‘새해맞이 남북공동모임’ 북측 대표단은 “미국 및 보수세력의 책동에 따른 남측의 집단적인 방북 불 허조치로 인해 행사가 무산되었다”라고 보도, 모임의 무산을 미국책임 으로 돌렸다(2.27). 또한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맹렬히 비난

하였다. ‘조평통’ 대변인 성명(3.14), 외무성 대변인 담화(3.18) 발

표, ‘직총’(3.15), ‘청년동맹’(3.16), ‘농근맹’(3.17) 등 각종 사회단 체 명의의 성명이 발표되었고, 「로동신문」 논평 등 각종 보도매체를 통해서도 동 훈련을 맹비난하였다. ‘을지포커스렌즈 훈련’(8.19~31) 에 대해서도 외무성 대변인 기자회견과 ‘조평통’ 서기국 보도 등을 통 해 연일 비난을 지속하였고, 동 훈련이 남북장관급 회담 합의 이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김일성의 통일관련 노작

발표 10주년 기념보고회에서도 동 훈련 실시를 비난하면서 우리측의

외세공조 파기를 촉구하였다. 미국의 핵포기 요구와 관련 미국을 비

난하고, ‘선군정치’로 인해 한반도 평화보장과 함께 남한동포들도 편히

지낼 수 있다고 강변하면서 민족공조를 촉구(10.28, ‘조평통’ 대변인 담화)하였다. 핵문제는 ‘조선민족’ 대 ‘미국’의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민 족공조를 강조하였다. 남한내에서 여중생사망 사건에 대한 시위가 지

속되자 ‘교육성’과 ‘조선학생위원회’ 및 ‘조선민주법률가협회’ 명의의 대

미규탄 성명·담화 발표와 김책공대 집회 등을 통해 전민족적인 반미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였다. 여중생 압사사고 무죄평결과 관련, 우리 내부의 반미집회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교육성’을 비롯한 각종 단 체의 성명 등을 통해 대대적인 반미투쟁 선전을 전개하였다. ‘범민련

북측본부’ 특별총회를 진행(12.4), 전민족적인 반미투쟁을 촉구함으 로써 최근 남한내 반미분위기에 편승하여 남북 공동의 대미투쟁연대 를 시도하였다. 남북왕래 인원의 군사분계선 통과절차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남북교류협력사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대미비난을 전개하였다.

2003년도 북한의 대남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수용한 노 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기존의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남북장관급회담 북측대표인 최성익은 12월 24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올해는 6.15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가 는데서 획기적인 전진을 이룩한 역사적인 해”라고 평가하며 내년 남북 관계를 낙관했다. 북한은 ‘민족공조’ 강화를 위해 남북장관급 회담을 비롯한 각종 당국간 회담을 지속하고 비당국간 대화도 활성화할 것으 로 보인다. 남한으로부터의 대북 지원 극대화를 위한 북한의 노력으 로 인해 경의선 복원을 통한 남한기업의 개성공단 진출 활성화, 동해 선 복원을 통한 금강산 관광 활성화 등이 예견된다. 다만 북·미간에 북한 핵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북한의 대남정책은 ‘한·미 이 간’을 위한 반미선동에 역점이 두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만일 남한이 핵문제와 관련 한·미 공조에 치우칠 경우 북한은 ‘6·15 공동선언’ 정 신 훼손을 이유로 남북대화 전면중단을 선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3년은 남북관계 중단을 방지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요구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현준(북한연구실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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