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하반기 미국에서 발생한 국제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강타했 던 주요한 글로벌 이슈였다. 비록 다소간의 정도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탈소비에트 국가들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상당히 큰 경제적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이에 더해, 연이어 유럽에 서 촉발된 경제위기는 세계경제의 침체와 불확실성을 더더욱 증폭시 켜버렸다. 이와 같은 세계경제 환경의 구조적 변화와 지속적인 악화 는 탈소비에트 국가에게 경제성장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도 록 상당한 자극을 주었다. 그런 이유로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 다자 주의 협력의 중요성이 재평가될 수 있었다. 상호협력과 경제회복이라 는 대의명분 아래 역내 공동시장 형성의 필요성이 다시금 공감대를 얻 게 되었다.
이러한 대외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러시아 지도부도 포스트소비에 트 공간을 둘러싼 새로운 형태의 다자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 다. 이는 원칙적으로 EU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이와 매우 유사한 형 태의 역내 경제협력체를 형성함과 동시에, 이 조직을 체계적으로 발전 시켜 나가는데 다자주의 협력의 특별한 강조점을 두고 있었다. 결과적 으로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는 이전보다 한층 전문화되고 구체화된 형태의 새로운 다자주의 협력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2010년 러시아 의 주도로 친러시아 성향의 2개국(카자흐스탄, 벨라루스)이 관세동맹 을 형성하여 상호 간의 무역장벽을 단계적으로 제거해 나가기로 합의 했다. 2012년 관세동맹은 회원국 간 경제통합의 정도를 한층 강화한 형태인 단일경제공간(Single Economic Space)으로 변형되었다. 게다 가, 2015년 러시아판 EU의 창설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했던 EEU가 마 침내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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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Ⅳ-1 EEU 회원국 개황
인구 (명)
영토면적 (㎢)
GDP (2014년/
백만 달러)
회원가입일
러시아 146,267,288 17,155,407 1,860,598 2015년 1월 1일 카자흐스탄 17,563,000 2,724,900 216,036 2015년 1월 1일 벨라루스 9,481,000 207,595 76,139 2015년 1월 1일 아르메니아 2,974,693 29,742 11,644 2015년 1월 2일 키르기스스탄 5,895,100 199,951 7,402 2015년 8월 12일 출처: Wikipedia와 IMF 자료를 토대로 저자 작성.
2015년 1월 1일 러시아 주도의 EEU는 국제사회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표 Ⅳ-1>에서 정리되어 있듯이, EEU는 5개 국가들(러시 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로 구성되어 있 다. EEU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토와 풍부한 에너지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조직체이며, 인구는 대략 1억 8천만 명에 달하는 유라시아 대륙 의 새로운 시장이다. 현재 타지키스탄이 EEU의 회원국 가입을 검토하 고 있으며, 2015년 5월 29일 베트남과는 FTA를 체결한 상태이다. 또 한, 유라시아 지역의 여러 국가들(중국, 이집트, 인도, 이란, 터키, 몽골, 시리아, 파키스탄, 요르단, 알바니아 등)도 EEU와 FTA 체결을 고려 하고 있다.
푸틴 정부는 EEU의 참여국 규모를 확대해서 장기적으로 EU에 필 적할만한 유라시아 경제협력체를 만드는데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푸틴이 언론을 통해 EEU에 대해 언급한 공식적인 견해를 종합 해 본다면, EEU 창설의 기본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 다.67 첫째, EEU의 지향성이다. 이 조직은 변화하는 세계경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의 새로운 경제협력체이 다. 따라서 러시아 주도의 EEU는 소연방의 재현을 목표로 하는 패권 주의 조직이 결코 아니며,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는 다자주의 경제협력 을 지향하고 있다. 둘째, EEU의 확장성이다. 이것은 탈소비에트 국가 간의 공동 번영과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조직체이다. EEU는 회원 국 간 개방성과 자발성의 원칙에 따라 운영될 것이며, 다른 경제권과 의 협력 관계 구축에도 많은 노력을 집중해 나갈 것이다. 현시점에서 볼 때, EEU는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을 대표하는 다자주의 협력조직으 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향후 이 다자 조직은 유라시아 지역과 국가들 을 상대로 경제활동의 폭과 지평, 그리고 영향력을 계속 넓혀갈 가능 성이 크다고 전망해 볼 수 있다.
EEU의 형성과 발전은 푸틴 집권 3기 대외정책의 핵심적인 국정과 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EEU는 대의적으로 다자주의 협력을 통해 참 여국들 간 동반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푸틴 정부가
EEU를 창설한 더욱 중요한 동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는 정치‧안보
적 측면의 요인들과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정치적 관점에서 EEU의 건설은 본질상 러시아의 고유한 세력권으로 간주되 는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 대한 방어전략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이는 EU의 대러시아 견제전략 중 하나인 동방 동반자(Eastern
Partnership: EaP) 정책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기 때문
이다.68 EU는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무력 침공 이후 러시아의 일
67_“Новый интеграционный проект для Евразии — будущее, которое рож дается сегодня,” Известия, 2011.10.3., <http://izvestia.ru/news/502761>. (검색일: 2015.6.30.).
68_“EU and Russia: Eastern Partnership vs Eurasian Union,” Clingendael, 2014.2.11.,
<http://www.clingendael.nl/publication/eu-and-russia-eastern-partnership-vs-eurasian -union>. (검색일: 20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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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적 패권주의와 세력권 확장정책을 단순히 방관하고만 있을 수 없었 다. 서방은 러시아의 강대국 건설전략을 견제하고자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 대한 치밀한 접근전략을 마련했다. 그러한 정책방향의 일환으 로 EU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했으며, 유럽 영토에 인접한 탈소비에
트 6개 국가(조지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벨라루스)를 대상으로 친유럽 포섭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EU는 이들 국가와 가입협정(Association Agreement: AA) 및 포괄 적 형태의 자유무역협정(Deep and Comprehensive Free Trade Agreement: DCFTA)을 체결하여 탈러시아 및 유럽통합 과정에의 참여를 유도하려 했다. 상기 두 가지 협약은 탈소비에트 국가들이 유 럽으로의 길을 가기 위한 대전제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탈소비에트 국가들은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자신들의 국가발전노선을 둘러싸 고 전략적 고민을 해야만 했다. 주지하듯이, 2013년 유라시아 국제관 계의 지정학적 대변동을 불러왔던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도 바로 EU와 러시아 간의 경쟁적 러브콜이었다.
집권 3기 푸틴 정부는 강대국 러시아 건설과 다극체제 구축이라는
대외정책의 핵심 기조를 변함없이 추구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대외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은 EEU를 자국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푸틴은 EEU를 토대로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 러시아의 정치적·경제적 장악력을 굳 건하게 확립하는데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했다. 러시아 지도부의 입장에서 볼 때, 푸틴 집권 3기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러시아의 국익을 침해할 개연성이 있는 중대한 위협 요인들이 대두되고 있었다.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의 서부지역에서는 EU 변수가 상존하고 있었을 뿐 아니 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 요인이 새롭게 작동하고 있었다.69 포
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 EU의 동방정책과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산 은 러시아에 큰 정치적 부담이자, 강대국 건설과정의 제약요인으로 여 겨질 수밖에 없는 중대 사안이었다. 그런 이유로 푸틴 정부는 가용자원 을 총동원해서 탈러시아 경향의 국가들에 대해 공세적인 조치를 취했 던 것이다. 서방 국가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의 무기화와 경제제재 조치뿐 아니라, 심지어 군사적인 침공과 영 토 병합까지 독단적으로 감행해버렸다. 이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사 태의 전개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결국 러시아 지도부는 EEU의 창설을 토대로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 대한 재편전략을 추구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3. 러시아의 유라시아 전략의 정책적 함의와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대한 시사점
가. 러시아의 유라시아 전략의 정책적 함의
상술했듯이, 소연방의 해체는 세계질서와 유라시아 국제관계 전반에 걸쳐 중대한 변동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러시아가 소련의 계승국가를 자임하고 나섰지만, 종합적인 국력의 규모(경제적, 군사력, 인구수, 영 토 등)면에서는 상당히 세력이 축소된 상태였다. 게다가, 독립 초기에 발생한 사회 경제적 혼란 상황은 러시아의 미래와 존재가치를 유명무 실하게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탈냉전 시기 세계화와 지역화 정책을 전 면에 내세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구축되어감에 따라, 유라시아 국
69_“China and Russia’s Great Game in Central Asia,” The National Interest, 2014.10.1.,
<http://nationalinterest.org/blog/the-buzz/china-russias-great-game-central-asia-11385>.
(검색일: 201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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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관계에서 러시아의 위상 정립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러시아 사회 내부에서 촉발되었다.
러시아 지도부는 유라시아 국가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해 오고 있다.
러시아의 유라시아 국가전략은 국제사회에서 강대국 위상정립과 정치 적 영향력 증대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러시아 정부는 지난 20여 년 동안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을 중심으 로 한 다자협력 작업을 진행해왔던 것이다. 이 지역은 러시아에 매우 특별한 전략 공간이었다.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은 강대국 러시아 건설 을 위한 전초기지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렇다. 이곳은 과거에 소련의 영 토였음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다면적(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연관 성을 지닌 핵심 거점 지역이었다. 그런 이유로 러시아 정부는 포스트소 비에트 공간에서 자국의 영향력 복원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1990년대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 협력, 즉 CIS 체제를 중심으로 하
는 다자주의 활동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채로 운영되고 말았다. 1990년 대 동안 러시아는 국가건설과 체제이행 과정에서 초래된 경제 위기에 처해 있었으며, 다자주의 협력의 제도화를 위한 제반 역량과 경험 역 시 크게 부족한 상태였다. 아울러 탈소비에트 국가들도 CIS 체제의 활 용방안에 대해 상이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국가마다 국익 계산법 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2000년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 다자주의 협력은 이 전 시기에 비해 강력한 추진 동력을 얻게 되었다. 이는 러시아의 비약 적인 경제성장과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 대한 푸틴 정부의 전략적 관 심 덕분에 가능했다. 푸틴 정부는 국내외적 제반 변수들을 면밀하게 고려하면서 러시아 주도의 다자주의 협력을 모색해 나갔다. 2000년대 러시아의 다자주의는 보다 전문화 및 세분화된 형태로 진행되었다.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