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이전시기에 있어서 북한지도부의 경직되었던 경제관과 경제이 론 틀에 비추어 볼 때,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경제노선의 변화 는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전환론적 입장에 서 본다면 북한의 변화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 본 연 구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북한의 변화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우선 본 장의 앞부분에서 제시한 북한 개혁‧개방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준거를 통해서 평가해본 다음, 중국의 사례와 비교해 봄으로써 북한 이 직면하고 있는 한계성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도에 관측할 수 있었던 북한의 변화는 계획기구의 축소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 어느정도 국가계획 대상 물자의 품목 및 비중 이 감소하였고, 실험적이기는 하나, 생산단위의 생산액 중 직접판매 비중이 증가했으며, 구매‧생산‧판매‧가격에 대한 생산단위의 의사결 정권도 제한된 범위내에서 확대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배급제가 축소됨으로써 소비자의 소비재 구입 선택권(주민 월 소득 중 자유구 매를 위한 지출 비중)도 확대되었으며, 지방재정의 비중도 증가함으 로써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계획경제의 축소를 대체할 시장기구가 정착되고 있다 고 볼 수는 없다. 시장화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가격자유화라 고 할 수 있는데, 북한의 경우, 아직 가격자유화 조치는 취해지지 않 고 있으며, 단지 지방경제와 기업소에게 일부 가격의 결정권을 부여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즉 북한의 가격체계는 상대가격구조의 조 정과 약간의 유연성 부여 정도에 머물고 있어서 아직 시장기구의 본 격적인 도입시기에 들어서지는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북한 경제의 공급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암시장에서의 물가상
승압력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가격자유화를 위한 여 건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북한경제의 변화 내용 중에서 비록 사회협동단체의 소유범위 나 개인의 ‘부업경리’ 범위가 다소 확대되었다고는 하나, 토지를 포함 한 생산수단의 소유권 영역은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또한 아직은 독자적인 외자기업이 일부 경제특구 이 외에는 설립되기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대외개방이 이루어지 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신의주 특별행정구와 개성공업지구 및 금강산 관광지구 등이 연속적으로 제정된 것은 북한이 대외경제 부문에 있어서도 확실한 변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2002년 하반기에 관측할 수 있었던 북한의 변화는 가격-임금 수준 인상, 상대가격구조 조정, 인센티브제도의 개선 등 긍정적 내용을 포 함하고 있으나, 중국 경제개혁 초기와 비교해 볼 때, 그 범위와 심도 의 한계성 또한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북한경제의 변화중 중 국의 개혁초기 정책과 유사한 점으로는 ① 상대가격구조의 조정, ② 지방 및 기업의 자율적 관리권한 확대, ③ 환율의 현실화, ④ 실험적 가족영농 범위의 확대 등을 들 수 있으나, 그 범위 및 개혁적 의미에 있어서는 중국에 비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이번 조치들은 분명히 중국이 개혁초기에 시도했던 많은 정 책중의 일부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시장화’
또는 ‘자유화’의 핵심적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개혁의 전체적인 흐
름을 가지고 있었던 데 비해, 북한의 경우 아직 경제의 시장화를 위 한 근본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중국의 개혁 초기 정책과 북한의 경제관리 개혁 조치간의 중요한 유사점과 상이점은 다음과 같 이 정리‧평가해 볼 수 있다.
(1) 북한의 임금-가격 인상 및 상대가격구조 조정의 폭은 개혁초기 중국의 조치(중국은 개혁초기 농산물 수매가격을 평균 20~30%인 상)보다 과감하며, 환율의 평가 절하폭(환율 인상폭) 역시 이중환율 제→점진적 평가절하의 단계적 과정을 채택했던 중국보다 급격한 변 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북한의 변화는 초기여건으로 서 북한 거시경제의 불균형과 심각한 물자난을 반영한 것으로서 「가 격자유화」를 위한 적극적 개혁의지의 표명으로 보기는 어렵다.
(2) 이번 북한의 움직임과 중국 개혁초기 정책과의 주요 상이점으 로는 ① 공개적인 개혁노선 채택을 천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55) ② 가격은 대폭 인상했으나, 국가가격제정국에서 결정하는 국정가격제도 를 유지하고 있으며(가격자유화 불포함), ③ 국영 상업유통망의 자유 로운 상품 구입권(權) 보장 유무가 불확실하고, ④ 실험적인 가족영 농 역시 집단영농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개혁기 이 전 중국의 「연산도조(聯産到組)」와 유사하며,56) ⑤ 환율의 인상 이 외에는 적극적인 대외개방 정책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 ⑥ 소유제도의 다양화와 관련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시장지향적 개혁의 핵심적 조치는 가격자유화에 있 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이번 변화가 시장지향적 개혁을 위한 여건 조성 차원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으나, 시장경제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55) 중국의 경우, 1978년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의에서 개혁노선을 공 식적으로 채택했다.
56) 「연산도조(聯産到組)」는 집단영농체제 틀내에서의 인센티브 개선을 위 한 정책수단이며, 북한의 경우, 인민공사의 해체와 가족영농제도의 정 착을 의미하는 중국 개혁기의 ‘포간도호(包幹到戶)’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