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와 쟁점 분석
6. 북한인권정책 로드맵
북한의 인권 문제가 마치 남의 일처럼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또한 유엔과 국제사회에만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무장을 지난 2~3년간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제사회에만 의존하지 않고 정보기관 모사드를 활용해 다양한 물밑 방해 공작을 하며 독자적인 억제 방법을 강구해 왔기 때문이다. 무엇 보다도 이란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전쟁도 감수하겠다는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의 결연한 자세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도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진정 해결하고 싶으면 이스라엘의 강한 의지를 교훈 삼아야 한다. 이스라엘 수준은 못 미치더라도 최소 선언적 또는 이벤트 차원을 넘는 실행 가능한 대북 인권정책 로드 맵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북한인권정책 로드맵의 첫 단계는 북한인권법에서 비롯될 수 있다. 북한 인권법 제정은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북한주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로서 당연히 인권을 보장 받아야 할 주체이며, 대한민국이 인권의 결핍 상황에 놓인 북한주민을 외면하지 않고 노력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안정적․지속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법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또한 북한인권 개선에 필요한 예산의 마련을 위해서도 북한인권법 제정이 필요하다.
북한인권법 제정에 있어서는 ‘북한주민의 인권신장’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인권 문제는 좌우가 없는 것이며 정치화되어서도 안 된다. 순수하게 보편적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명분을 세우고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을 담당할 주체와 역할, 권한범위 등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 통일부, 법무부, 외교부 등 관련 부처 간의 업무중복, 관할문제와 같은 혼선을 최소화하고, 유기적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효율적인 업무 추진이 가능 할 것이다.
북한인권법 제정이 남북관계 악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 역시 근거가 없다.
북한인권법 없이도 북한은 이미 핵실험, 미사일 발사, 연평도 포격 등의 도발을 일삼아 왔다. 남북관계 발전의 명분으로 국회가 지난 10년간 북한인권법을 제정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북한 당국이 인권 개선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인 것도 아니다. 야권이 주장하는 민생지원은 별도의 법이 필요 없다. 특히 민생지원을 위해 왜 인권법이 필요한지 아무도 명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취약계층 의 식량권․건강권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나 민생지원은 여건만 조성된다면 필요에 따라 언제나 가능하다. 북한인권법에 민생지원을 붙이는 이유는 결국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북한인권정책 로드맵의 2차 단계는 북한인권법 제정과 별개로 북한인권기록 보존소의 우선 설립이다. 동독의 베를린장벽 설치 후 동서독 간 가장 긴 국경선이 있던 서독의 니더작센(Niedersachsen)주 잘츠기터(Salzgitter)에 1961년 11월 중앙기록보존소가 설치되었다. 중앙기록보존소는 동독의 비인도적․반법치국가적 범죄행위에 대해 향후 형사소추가 가능해 졌을 때 공소시효에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해당 자료를 수집․보존하는 기관이었다. 이 중앙기록보존소의 활동은 동독 주민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억제하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고, 동독 지도부의 인권침해 상황을 국제사회에 구체적으로 알려서 동독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가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우리도 하루빨리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해서 북한의 인권침해 억제 효과를 내야한다. 인권 침해자의 처벌뿐만 아니라 형사사건 의 처리를 위한 조사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피해회복 지원을 위한 법적 절차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법무부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일단 설치해서 그 활동을 북한인권법 없이도 개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인권정책 로드맵의 3차 단계는 곧 서울에 설치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정세와 쟁점 분석 북한인권 실태와 인권정책 로드맵_이정훈 | 29
의 북한인권 현장사무소와의 유기적인 관계 구축이다. 이 사무소와의 체계적인 공조는 북한인권 개선에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특히 현장사무소의 권한(mandate) 범위 내에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의 권고 사항을 부분적이나마 이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북한이탈 주민들을 통한 인권 침해 사례를 체계적으로 축적할 수 있게 해서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은 물론, 북한인권에 대한 외부정보가 북한 내부로 확산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본 정부가 이 현장사무소 설치에 큰 관심을 보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이 현장 조직이 장기적 으로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지역 거점 기구로 확대될 수도 있는 가능성 때문에 유치 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그만큼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유엔 북한인권 현장사무소와 의 협력 체계를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인권정책 로드맵의 4차 단계는 우리의 외교 역량에 집중 되어야 한다. 특히 대중 외교가 관건이다. 대중 외교의 핵심은 중국이 북한에 대해 적극적인 제재를 하게 하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상당 수준의 원유와 석유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이 에너지 공급만 일부 끊겨도 북한은 곧바로 위기에 빠질 수 있는데, 북한의 인권 침해를 효율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이 수단을 중국은 안 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민심과 여론이 점차 ‘반북’쪽으로 바뀌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중국의 ‘대북 감싸기’
정책 노선 자체를 전환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인권정책 로드맵의 5차 단계는 대북 심리전 재개이다. 전단 살포, 확성기 설치, 라디오 방송 등을 활용한 대북 심리전이 북한 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 하다. 북한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가장 먼저 대북 심리전을 중단해줄 것을 요청한 것은 체제 와해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남한의 체제 우월성이 알려진 다면 북한 정권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북 심리전 얘기만 나오면 확성기를 조준 격파한다는 등 매우 격한 반응을 보여 왔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2004년 6월부터 정부 차원의 대북 심리전을 중단했다. 2010년 5․24 조치가 발표되면서 대북 심리전이 재개 되는가 했는데 발표 후 제재 항목에서 결국
빠졌다. 북한의 인권침해를 막겠다면서 북한이 두려워하는 대북 심리전을 적극 활용하지 않는 것은 인권 개선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북한사회에 외부 정보를 유입시키기 위한 활동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주민들 사이 에서 인권의식이 싹트는 것이 변화를 가져올 가장 확실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기된 5단계의 북한인권정책 로드맵이 압박 위주의 과다한 조치라고 보는 시각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인권 문제는 적당히 대응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막지 못한다면 유엔이 규정한 반인도 범죄는 앞으로 수십 년간 지속 될 수도 있다. 끔찍한 전망이다. 북한인권 문제는 자연재해와 같은 위기 상황이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하게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