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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국가론의 제3세계적 변용과 ‘세계혁명’의 이념

우선 함석헌이 어떤맥락에서 웰스의 논의를 빌려오고 있었는지부터 살펴보자

.

함석헌은 세계가

하나됨을 향해 달리

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

이 대세는

우연히 된 것이 아니요

,

과학의 발달과 그를 이용한 교통

통 신의 발달

이라는 물적 조건에서 결정되고 있으므로

이제는 과학 자체 가 세계의 통일성을 주장

하는 것이라 한다

.

87그러므로 과학은

2∼ 3

천 년 전부터 이미

인류에게 모든 당파심을 버려야 한다

고 가르쳐온

종 교의 위대한 교사들

의 주장과 똑같은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고

, “

역사는 그들의 가르침을 실증해주는 단계에 왔다

는 것이다

.

88세계주의의 맥락 에서 종교와 과학의 동일성을 선취하는 함석헌의 논법은 웰스의 그것과 일치한다

.

89

정치

경제

과학 등 현실의 실리적인 면

은 세계가 하 나 됨에 발맞추어 진보한 반면

,

현대인의

정신문화

만은 여전히 국가주

87 함석헌, 「한 나라의 갈 길」(1961), 저작집 12, 85․89쪽.

88 함석헌, 「평화적 공존은 가능한가」(1959), 위의 , 28쪽.

89 특히 다음과 같은 웰스의 언급이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과학과 종교의 대에 관한 어리 석은 글들이 지만, 제로 그런. 세계적 종교가 관과 통을 통해 선언하는 것은, 역사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과학의 위가 리적이고 가능한 사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이 작은 행성 속에서 공통의 기원으로부터 출발한 인 가 종국 그 원래의 공통적 운명으로 다시합류할 것이, 하나의 보적 형제 형성한다는 것이다.”(H. G. Wells(1920a), op. cit., p.584)

의 시대에 묶여 있는 데서 세계의 고민이 있다고 한다

.

90그러니 세계가 하나 됨에 따라 수반되는 전통과 도덕상의 변화에 고통스럽더라도 적응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91사실상 여기서는 국민국가 시대 근대인들의

정신적 부적응

이라는

세계문화사대계 의 서술

코드를 그대로 차용하 고 있다

.

그 외에도

모든 종교는 하나요

,

그 하나가 가지가지의 나타남 에 지나지 않는다는 세계종교가 되고야 말 것

이라는 예언

,

92세계평화가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역사적 관념을 통해서만 가능해진 다는

으로 본 한국역사

의 한 구절

93에서도 함석헌 속에 녹아든 웰스 의 영향이 간취된다

.

그런데 이러한 인용의 사례들은 대체로

1960

년을 전후한 시점에 집중 되어 있다

.

함석헌이 웰스를 언급하고 또 실제 텍스트 내용에서 그 영향 이 확인되기 시작하는 것은

1960

년을 전후한 시점부터다

.

그리고

1970

년대로 넘어가면서 차츰 그의 평화주의는 독자성을 더해간다

.

이는 함석 헌이 웰스를 그저 받아쓰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현실 인식 속 에서

비판적으로 자기화

한 시간의 궤적이었다고 할 것이다

. 세계문화

사대계

를 읽은 것은 오산 시절이지만 ,

웰스의 세계국가론은 식민지 시 기 동안 함석헌에게 당장 자기 실존을 자극하는 사상의 원천이 되지는 않았다

.

94

90 함석헌, 「새 삶의 길」(1959), 저작집 2, 215∼218.

91 함석헌, 「평화적 공존은 가능한가」(1959), 저작집 12, 22.

92 함석헌, 「한 나라의 갈 길」(1961), 위의 , 85.

93 함석헌, 저작집 30-뜻으로 본 한국역사, 36∼37.

94 조선의 다른 지식인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세계문화사대계는 식민지 조선에 서도 세계사 교서적처럼리 읽혔지만(김미연, 앞의 논문 참조), 웰스의 세계국가론 이 적적인 사상화의 자원일 수는 었다. 이를면 저다가 국적 관념을 그만두어 야 한다거나 전한 독립이라는 생각려야 한다는 웰스의 발화는(웰스, 미상 , 「세계개조(2)」, 동명1923.4.29) 근본적으로 강대국 국민들을 자로 둔 발화 였다. 단적으로 이 세계개조이라는 번역 기사는 웰스가 방미를 계획할 시 미국인 들을 세계국가 운동에 동참시키고자 작성한 강연 원고였다. 이것이 식민지민으로서는

당시 함석헌은 식민화된 민족의 현실에 기독교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 「

조선에 기독교는 필요하냐

(1928)에서 그는 조선 인을

사망의 단애

앞에 세운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

그러나 그 구체적 인 폭력의 주체는 말해질 수 없었고

,

식민지 조선이 겪는 이 특수한 비참 함은

아담의 계통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짊어질원죄에서 비롯한 것으 로 환원됐다

.

95

를 이길 것은 믿음뿐이므로 조선에 기독교가 필요하 다는 결론은

,

구체적인 질문을 일반론의 차원에서 해소한 셈이었다

.

다 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 민족이 왜 바로 그러한 고난을 감내해야만 했 는지를 기독교 사관을 통해 해명하고자 고심한 결과가

서적 입장에 서 본 조선역사

(1934∼1935, 이하 뺷조선역사)였다

.

제국의 가치체계

,

즉힘 과 문명의 논리를 적용할 때 조선 역사에서 아무런 위대함도 발견할 수 없다면

,

수난과 비참함이 그 자체로 어떤 전복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어 야 했다

.

그리하여 함석헌은 인류의 모든죄악을 짊어지고 수난받은 구 원자 예수의 형상에 조선의 모습을 겹쳐놓는다

. “

세계사의 하수구

처럼 약육강식의 질서가 빚어낸온갖 폭력을 감내해온 조선이

,

인류를 구원하 는 고난의 메시아로서 그 세계사적 존재의미를 지닌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

그러므로

조선역사 는 “

보편적 세계이상

의 필요를 논한들 민족주의 에 단단히 묶여 있다

.

96저술의 목적 자체가 조선 민족의 존재 의미를 발

자기 현실과의 연, 의미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공허한 언어로 다가지 않 았을까 .

95 함석헌, 「조선에 기교는 필요」(1928), 저작집 18, 62.

96 함석헌, 성서적 장에서 본 한국역사, 신생관, 1950, 5. 성서적 장에서 본 조선역 는 성서조선지에서 1934년 2월부터 1935년 12월까지 23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1950년에 성서적 장에서 본 한국역사는 연재 열로 인해 진왜을 다

장과 두 장(「고난의 의미」, 「역사가 지시하는 우리 사명」)삭제된 것을 복원하

「해방」이라는 장을 덧댄 것 이 개작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글에서 성서 장에서 본 조선역사에 대한 인용은 1950년에 출간된 성서적 장에서 본 한국역 에 바탕을 두었다.

견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

여기에는

한국 사람이 만일 그 생존권을 주 장하고 그 자유를 요구한다면 그는 세계사의 무대에서 할 일이 있어서 하는 것이라야 한다

.

그렇지 않고 그저 살고 싶으니 살겠다고만 요구하 면 세계는 그러한 무용의 존재를 허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절멸의 공포 마저 뒤섞여 있다

.

97다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조선 민족만의 세계 사적 사명을 논하려면 민족본질론의 틀이 고수되어야 한다

.

전 인류의 구원이라는 세계주의의 발상과

,

민족을 사과 품종에 비유하는 극단적인 민족본질론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공존한다

.

이 저술은 훗날

으로 본

한국역사

(1962/1966, 이하 뺷한국역사)로 개작되지만

,

조선 민족이

역사적

메시아

라는 관점을 고수하는 한 세계주의와 민족주의의 모순적 공존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

그런데 이 개작의 과정에서 발생한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

함석헌이 말한

보편적 세계이상

이라는 것에 상당히 세속적인 의미가 부과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 조선역사 에서 “

보편적 세계이상

이란 하나님에 의한 인류 구원이라는 믿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

기독교적 종말관을 전제하는

조선역사 에서 , ‘

구원

이란 세속적인 역사 시간의 종언을 의 미한다

.

역사 시간의 흐름 위에 신이 수직적으로 개입하고

,

심판의 날이 도래하여 역사는 그 자리에서 끝을 고한다

.

98

역사 총결산

의 날에 온 인류는

하나님안에 하나

가 되며

이 세상 나라

를 떠나

영의 나라

에 드는데

,

함석헌은 이것을

사해동포주의라든가 세계국가사상

과 같은 세속적인 개념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

99 이런 맥락에서

조선역사 는

역사의 시작과 끝이 없다는 진화론을 유물사관과 함께묶어 배제했던 것 이다

.

100

97 위의 , 213.

98 위의 , 18.

99 함석헌, 「민족 위에 나타난 신의 」(1929), 저작집 18, 102∼103; 함석헌, 「예수 출현의 우주사적 의미」(1930), 위의 , 172∼173.

반면 개정된

한국역사 에서 함석헌은 종말관을 사실이

아닌 비유로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

현상계는 무한히 변천(진화)해갈 것이며 종말이 있을 리 없지만

, ‘

역사의 뜻이 이루어지는

어떤 시간은 반드시 도래한다 는 것이다

.

101 그렇다면 구원은

역사의 종언

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의 의미

를 지니게 되고

,

신의 섭리를 역사의 시간 속에 현실화하기 위한 인 간의 실천이 문제가 된다

.

함석헌은 지난날 자신이

보편적 세계이상

이 라고 말했던 것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댄다

.

세계가 하나되는 시대

이것이 역사의 새 장의 제목이다. 이제는 모든 인류의 아들들을 지금까지 서로 원수인 듯 서로서로 다투고 죽이던 모든 민족, 나라, 인종, 교도, 주의자 를 총동원하여 한 전선에 내세워서 모든 모순, 모든 허비, 모든 오해를 다 내버 리고 새로운 건설적인 하나로 향하게 하여야 한다. (…중략…)이 전일화(全一 )하는 인류적 동원령은 절대로 시급하다.102

그 전일화의 구체적인 사례란 이를테면

비폭력주의

평화주의

세 계국가주의

등을 가리킬 터이다

.

103여전히 의미 한정이 어려운커다란 말들이지만

,

함석헌의 평화 개념이 확실히 세속적인 의미를 획득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

이는 신 안에서의 하나 됨을 뜻하는 기독교 신학의 초월적 평화 개념(pax)이 사회

정치적 의미의 평화 개념(friede)과 만나면 서

세계 내적

인 의미를 띠어 갔던

평화

의 개념사적 변천 과정에 상응 하는 것이기도 하다

.

104함석헌의 입장에서 보면

,

인간이 한 데(하나님)

100 함석헌(1950), 앞의 , 18∼19; 함석헌, 「먼저 그 의를 구하라」(1927), 저작집 18, 23.

101 함석헌, 저작집 30-뜻으로 본 한국역사, 59.

102 위의 , 36∼37.

103 위의 , 422.

104 빌헬얀센, 한상,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5: 평화, 푸른역사, 20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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