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여성의 우울증을 내면화하는 남성과 전쟁의 부정

Dalam dokumen 비영리-변경금지 2.0 - S-Space (Halaman 156-166)

이 절에서는 손소희의 「결심」(『적화삼삭구인집』, 1951.4), 「바다 위에서」(『신조』, 1951.6), 「그날에 있은 일」(『협동』, 1951.11), 「거 리」(『전선문학』, 1953.5)를 대상으로 전쟁의 젠더위계가 우울의 정조 를 통해 고발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손소희는 1946년 10월 『백민』에 「맥(貌)에의 몌별袂別294)을 발표 하며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한다.295) 이후 「도피」(『신문학』, 1946.11), 「탁류기」(『민성』, 1947.1), 「가두에 서는 날」(『부인』

1947.1), 「그 전날」(『문학비평』, 1947.6), 「이라기梨羅記」 (『신천 지』, 1948.4.5), 「현해탄」(『백민』, 1948.10), 「투전」(『문예』, 1950.4)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손소희 문 학연구의 대부분은 전후시대 이후에 맞춰져 있다.296)

손소희의 초기작품은 여성 주인공이 연인과의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밖 에 없는 해방의 혼란한 현실을 드러내는 계열(「맥에의 몌별」, 「이라 기」, 「탁류기」)과 남성 주인공이 해방의 정치사회적 혼란에서 배태되 는 상황을 직시하거나 극복하는 계열(「도피」, 「가두에 서는 날」,

「현해탄」), 이밖에도 식민지에서 대일협력을 속죄하고 자살하는 남성 주인공(「그 전날」), 식민지시기 낭비와 투전을 하며 일제자본주의를 조 롱하는 여주인공(「투전」) 등 다양한 계열의 작품에서 남/여 주인공을

294) 「맥에의 몌별」의 표기는 논자에 따라 「貘에의 訣別」로 표기하고 있으 나, 이 글에서는 발표 당시 『백민』에 실린 것을 따랐다.

295) 정영자에 의하면 손소희는 1939-1943년 만주에서 「고독」, 「북극의 겨 울」, 「실제」 등을 발표하고 시인 김조규가 편집한 『재만조선시인집』

(1942)에 시를 게재하였다. 정영자, 「손소희 소설연구」, 『수련어문논집 』 16, 1989.

296) 손소희에 대한 단독 학위 논문은 석사논문 두 편이다. 이들 논문에서도 전 후 이후의 소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초기 소설은 「이라기」 정도만 언 급되고 있다. 이지영, 「손소희 소설의 결말구조 연구」, 이화여대 국어국문 석사논문, 2004. 김희림, 「손소희 소설의 여성의식과 서술전략 연구」, 고려 대 국어국문과 석사논문, 2013. ; 손소희의 초기소설 연구로는 조미숙, 「손 소희 초기소설 연구」,『한국문예비평연구』26, 2008이 있다.

세우며 해방 후의 역사를 포착한다. 이 시기 손소희 소설의 특징은 여성 작가의 특유의 내적 감정선을 드러내기보다는 해방이라는 현실의 혼란한 정치사회를 그려내면서 작가로서의 자기정체성을 구성한다. 김양선은 손 소희 문학이 초기에는 현실과 밀착된 현실직시의 소재를 다루다가 후반 기부터 정념情念의 문학으로서의 면모를 보인다고 말한다.297)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손소희의 작품이 바로 1950-1953년 사이에 쓰인 소설이 다. 손소희의 작품은 전쟁을 겪으면서 “정념의 문학으로서의” 자기정 체성을 구성한다. 잔류파인 손소희에게 한국전쟁은 상흔으로 기억되고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서 자기세계를 구축하는 주요한 계기가 된다. 요컨 대 전쟁 이전의 손소희의 작품은 해방 후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주시하고 있다면 전쟁기에는 그 혼란한 사회상을 내면화하는 남/여 주인공이 등장 한다.

전쟁 이전 손소회의 소설에서 젠더적 특징은 남/여 주인공의 포지션이 비교적 명확하다는 것이다. 남성주인공을 내세우는 경우는 주로 해방 후 정치적 포지션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298) 이때 여성은 해방의 대의에 참여하는 남성의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는 주변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한 편,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울 때는 사회적 혼란으로 인하여 안정된 가정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여성의 갈등과 생활난에 주목한다. 그런데 전 쟁을 겪으면서 손소희의 여성과 남성 인물의 관계가 변모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여성은 남성의 정치적 동기를 촉발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적 균열과 이데올로기의 환상을 우울증적 감정으로 포착한다.299)

297) 김양선, 「손소희론: 대륙의 정념과 현실직시」, 『한국예술총집: 문학편』, 대한민국예술원 편, 대한민국예술원, 1991, p.665.

298) 이민영은 손소희의 「도피」에서 여성서술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남성을 주 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국가 건설 담론에 호응하고 “국민 되기의 과정”을 서사화 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민영, 「발화하는 여성들과 국민되기의 서 사: 지하련의 「도정」과 손소희의 「도피」를 중심으로」, 『근대문학연 구』, 2016.4.

299) 손소희의 전쟁기 문학연구는 김양선, 「반공주의의 전략적 수용과 여성문 단: 한국전쟁기 여성문학 장을 중심으로」(『어문학』101, 2008.9), 엄미옥,

「한국 전쟁기 여성 종군작가 소설 연구」(『한국근대문학연구』21, 2010)가 있다. 김양선과 엄미옥은 손소희의 전쟁문학은 전쟁의 일상성을 다룬 것으로 노골적인 반공이념을 서사화하지 않은 작가로 평가한다.

잔류파였던 손소희는 1951년 4월 장덕조, 최정희와 함께 『적화삼삭구 인집』에 공산치하의 일을 반성, 고백하는 「결심」을 싣는다. 흥미로운 것은 장덕조와 최정희는 자기체험을 반성하거나 공산주의를 고발하는 수 필을 쓰고 있다면, 손소희는 수필이라기보다 콩트에 가까운 소설을 썼다 는 점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적화삼삭구인집』은 국제보도연맹에서 발행한 것으로 아홉 명의 문인이 ‘적 치하 삼개월’동안의 반공경험을 고발함으로써 이념적 자기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는 글을 모아 둔 것이 다. 이때 수필은 자신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고백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적합한 장르다. 반면 소설은 허구성을 기반으로 한 것으 로 자기진실성을 드러내기 위한 적합한 장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적화삼삭구인집』에 여타의 작가와 달리 그가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에는 반공주의에 관한 그의 내적감정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심」은 1950년 6월 28일 을지로 위로 탱크를 몰고 가는 공산주의 의 행렬에서 시작한다. 피난을 가지 못한 영희는 어쩔 수 없이 조선미술 가동맹에 가입한다. 미맹에 가입하자 그는 당으로부터 스탈린과 김일성 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외부의 압력을 받는다. 예술가로서의 양심과 자존 심을 버려야 했던 것이다. 영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을 것을 결심한 다. 공산주의는 억압을, 반공주의는 자유를 상징하는 것은 이 시기 반공 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척 구도였고 「결심」에서 손소희 역시 이 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영희가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단지 억 압적인 권력구도 때문은 아니다. 영희는“생리적으로 공산주의 싫고 거 슬렸다.” 이러한 발화는 반공이데올로기의 내적원리를 정확히 보여준 다. 한국전쟁 시기의 반공은 국가와 민족의 정치적 헤게모니 창출을 위 한 이데올로기로, 이는 논리적 합리적 사고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조 건 없는 신념과 믿음을 요구한다.300) 그런 점에서 영히의 “생리적”이

300) 지젝은 진리의 메커니즘은 믿음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카프카의

『심판』에서 신부의 말을 의심하는 K에게 신부는 진리는 그것의 합당함이 아니라 ‘그저 필연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오’라는 말은 우리 가 어떤 명제를 믿어야만 하는 이유는 이미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설득력

라는 발언은 당대 반공이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리적”으로 치환되는 반공이데올로기는 반공이데올로기가 실상 어떠 한 이성과 합리성을 지니지 않은 허구적인 논리라는 점을 은연중에 암시 한다. 이는 반공문학에서 공산주의자를 ‘괴물’, ‘악’이라는 적의 이미지로 표상하는 것과 달리, 「결심」에서는 탱크를 몰고 가는 공산주 의의 행렬을 “너무 초라한 행장과 지친 얼굴”이라는 자신과 같은 동질 적인 인간적인 모습으로 포착하는 것에서 확인가능하다. 이처럼 손소희 는 영희라는 인물을 통해 반공이념을 충실히 이행하는 듯한 스토리를 구 사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반공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적 화삼삭구인집』에서 반공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 는 것은 국가로부터의 버림과 다시 국가로부터 자신의 ‘국민됨’을 입 증해야 했던 잔류파로서 겪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의 흔적이 반영된 것이 기도 하다.301) 전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사유는 「결심」 이후에 발표한 「바다위에서」(『신조』, 1951.6), 「그날에 있은 일」(『협동』, 1951.11)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바다위에서」는 삼백 수십 명의 사람들이 피난을 가기 위해 짐짝과 함께 이백오십 톤의 화물선을 타고 남하하던 중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배에 오른 사람들은 특수한 단체소속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 공 숙의 일가도 모 단체의 일원으로 배를 탔다. 사건은 출발한 지 두 시 간 만에 일어난다. 남하하던 배가 갑자기 정거하자 어디선가 선장이

이 있다는 ‘믿음의 악순환’을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당대 반공주의의 원리 도 이와 유사한 구조에 있다. Slavoj Žižek,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이수련 옮김, 인간사랑, p.77.

301) 손소희는 후에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있던 3개월의 기억과 그 후 사상범으로서 조사를 받은 기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우리같은 좀 생이들은 특별한 지위도 계급도 없는데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만 난리를 피할 수 있을지 그저 막연하기만 하였다. 그만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국군이 곧 반격해 올테니까 모든 시민은 서울을 떠나지 말도록 방송은 종용하고 있었고 비도 내리고 있었다. (...중략...) 목을 길게 늘이고 국군입성을 기다려 온 그 3 개월 뒤 (...중략...) 나는 잔류파의 한 사람으로, 엉뚱하게도 박0길에게 검사 X씨와 함께 합동수사 본부의 넓은 널마루 층계를 그날은 두 번째로 걸어내 려왔다.” 손소희, 「짐짝 속에 실려 다닌 1950년」, 『한국문단인간사』, 행 림출판사, 1980, pp.166-167.

Dalam dokumen 비영리-변경금지 2.0 - S-Space (Halaman 156-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