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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색

4. 인생 성찰 및 윤리적 공동체에 대한 전망

4.1.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색

한동안 「오발탄」같은 사회의 불합리를 비판하는 작품을 써 가다가 중단한 이유는, 사회상에 대해 너무 흥분할 것이 아니라 자세를 조용히 가지고 인간 본연의 문제를 관조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눈을 돌린 데 있읍니다. 사회상은 좋든 그르든 그것대로 흘러가고 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문제 는 언제나 공통의 것으로 남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룬 작품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공감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145)

위 인용문은 모 대담에서 이범선이 작품의 형식에 관련한 질문에 답한 대목이 다. “자세를 조용히 가지고 인간 본연의 문제를 ‘관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

145) 이범선, 위의 글, 219쪽.

였다는 대목에서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찾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사회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좋거 나 또는 나쁘게 변해갈 수도 있지만 인간과 관련된 문제는 결코 변하지 않으며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류 사회의 공통의 문제로 남기 때문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다룬 「벌레」라는 작품은 이범선이 인간의 내면세계에 다가가기를 시도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백장이었던 남편이 의외의 사고로

성(性)불구자가 되자 아내는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남편의 조수인 철규에게

성적욕구를 풀고자 한다. 인간의 욕망은 결국 결핍에서 온다는 라캉의 정신분석 학의 논리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한테서 해소하지 못한 성적 욕망을 철규에게서 해소고자 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내와 철규의 행위는 엄연한 ‘불륜’임에 틀 림없다. 아내의 행위는 남편한테서 충족하지 못하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욕망을 철규라는 대타자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하 였는데 이는 도덕적으로 결코 허용치 못하는 행위를 대하는 작가의 윤리관이 개 입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환원」이라는 작품 역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관련 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사회를 이탈한 원시적인 삶으로 돌 아갔다는 데서 주목을 요한다.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외딴 산의 원시림에 떨어지 게 된 통역장교 김소위는 어떤 여인과 노인에 의해 구조된다. 그 원시림은 완전 히 폐쇄된 공간이었고 거기에는 그 여인과 노인 그리고 젖먹이 애기, 개 한 마리 밖에 없었다. 그 여인 또한 원시인 그대로의 차림이었고 언어표현 장애가 있었 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여인의 아버지와 젖먹이 애기의 아버지는 동 일인물 즉 그 노인이었고 고아였던 노인과 그의 아내 역시 동복형제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근친상간’이라는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데 프로이트에 의하면 오이 디푸스의 본질은 근친상간적 성 본능에 대한 억압을 통해 성적 충동을 사회적으 로 용인되는 방식으로 발산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146) 하지만 그들이 생활하 고 있는 곳이 아예 봉폐된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여인은 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김소위가 나타나기 전까지 노인과 여 인은 서로가 성적 충동을 발산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소위가 나타난 뒤

146) 김석, 󰡔프로이트&라캉 — 무의식의 초대󰡕, 김영사, 2018, 69쪽.

여인은 그 욕망을 김소위에게로 전환하였고 이를 알아챈 노인은 크게 분노한다. 소설의 결말은 여인이 산을 탈출하고자 시도하는 김소위를 따라 가던 중 들려 오는 총소리에 놀라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미 시체가 되어 있는 자신의 아이를 목 격하는 것으로 끝난다. 결국 비극으로 이어진 이 소설은 궁극적으로 ‘근친상간’ 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불륜’ 또는 ‘근친상 간’은 모두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는 어 찌 보면 당시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해진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그와는 상반 되는 탈집단 또는 탈사회적인 세상을 상상했던 작가의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파국으로 이어지는 결말이 시사하는 바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결코 사 회를 떠나 존재할 수 없고 개개인은 어디까지나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그것에 적 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원」이 큰 틀에서 ‘사회를 이탈’한 인간들의 원초적인 욕망 내지 그러한 환 경에서 생존가능성 여부를 다루고 있다면 「고장 난 문」과 「미친 녀석」은 ‘사회라 는 집단 속’에서 살아가며 그 사회와 부조화를 겪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억압하거 나 또는 외적요소에 의해 억압당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인간 들은 종종 주변사람들로부터 정신이상자 취급을 당하는데 우선 「고장난 문」은 거의 그림에만 미쳐 사는 유명한 화가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룬 소설이다. 이야기 는 만덕이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만덕이는 화가네 집에서 일을 돕고 있는 18살 소년인데 화가의 죽음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으로서 취조 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사건은 전날 아침 화가가 있는 화실의 문이 안팎으 로 모두 열리지 않아 화가가 만덕이한테 몇 번이고 다짜고짜 화를 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바보 같은 녀석, 사람을 죄수처럼 철창 안에 가두어 놓고 태평으로 딴 짓만

하고 있어!”

……

“헤 참, 선생님도 급하시긴. 전에는 며칠씩도 문밖에 안 나오시곤 했으면서

뭘 그러셔요.”

“이 녀석 봐라! 그거야 내가 나가고 싶지 않아서 안 나간 거구 지금은 내가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거 아냐.”147)

자신을 ‘죄수처럼 철창 안에 가두어 놓았다’는 화가의 표현은 타의에 의해 자 신이 갇히게 되었다는 느낌이 다분하다. 하지만 사실 화가는 워낙 평소에도 며칠 씩 문밖에 나가지 않고 화실에서 그림만 그린 적이 많았기에 만덕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웃어넘기려 했던 것이다. 그런 만덕이의 무심함에 화가는 더 화 를 내며 ‘나가지 않는 것과 나가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쐐기를 박는다.

다시 말해 ‘나가지 않은 것’은 자의적 선택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나가지 못하는 것’은 타의에 의한 강압적인 요소가 들어 있으므로 그저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화가의 성화에 못 이겨 만득이가 목수를 데려오려 시도하 였지만 헛방을 치고 돌아오자 화가의 태도는 처음에 단순히 화를 내던 데로부터 이젠 난폭해지기 시작한다.

“야 인마! 가면 어떡해! 어서 목수 못 불러와!”

선생님은 창문으로 달려와 쇠창살을 두 손으로 꽉 쥐고 마구 흔들어 대며 소 리소리 지르지 뭡니까. 그건 언제나 인자하시던 그 선생님이 아니었어요. 무서 웠어요. 난 전엔 그런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본 일이 없었거든요. 아마 창에 쇠창살이 없었더라면 뛰어넘어 나와서 날 박살을 냈을 겁니다. 정말 겁났어요.

이마엔 핏줄이 서고 입은 꽉 다물고. 선생님은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두 손으 로 그 긴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더군요.

“야! 빨리 문 열어!”

갑자기 선생님이 미친 것이나 아닌가 했다니까요.

“예, 목수 아저씨한테 또 갔다 올게요. 선생님!”

……

“인마, 문이 무슨 고장이 나고 말고가 있어…… 열면 되지……문이란 인마, 열

리게 돼 있는 거지, 인마.”

목수 아저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쓱 몸을 돌려 벽을 향해 돌아누워버렸어 요.

“그게 아냐요. 아저씨가 달아준 저의 선생님 화실 문 알잖아요.”

“에이, 시끄럽다! 걷어차라 걷어차! 그럼 제가 열리지 안 열려! 열리지 않는

문이 어디 있어 인마.”148)

147) 김외곤 편집, 󰡔이범선 단편선 — 오발탄󰡕, 앞의 책, 271-272쪽 148) 김외곤 편집, 위의 책, 275-276쪽.

평소에 한없이 ‘인자’하던 화가가 갑자기 ‘미친’ 사람으로 돌변한 모습에 놀라 만덕이는 다시 목수를 찾아갔는데 만취해 있는 목수가 세상 귀찮은 태도로 연신 내뱉는 말이 ‘문은 열리게 돼있고 안 열리면 발로 걷어차서라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열리게 돼있다’는 일종 당위성의 표현으로 언젠가는 열릴 수 있다는 메 시지를 전한다. 또한 그의 표현대로 열리지 않는다면 무력을 이용해서 강제적으 로라도 열어야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회 속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억압하는 요소들은 언젠가는 소거될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강압적으로라도 조치를 취해야함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만득이는 다음날 목수를 찾아와 화실 문을 열었지만 화가는 이미 질식사 한 상태였다. 하지만 수사관은 만득이의 반복되는 해명에도 끝까지 만덕이를 죄 인으로 몰아간다. 이유인즉 사방에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방에서 질식사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는 확실히 현실적으로 이해 불가한 사실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보이지 않 는 요소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할 부분은 목수와 수사관의 태도인데 술에 취한 채 만사 귀찮아하는 목수나 만득이의 해명 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수사관은 모두 진지한 소통을 거부하는 인간들이다. 화 가가 비극적인 죽음을 면치 못했던 데는 결국 사회와의 또는 그 사회 속의 인간 들과 부조화를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억압당하고 해방을 이룩하지 못하였기 때문 이었다.

「고장난 문」이 인간의 정신해방과 관련된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면 「미친 녀 석」은 이범선의 마지막 소설로서 말 그대로 ‘미친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소설의 초점은 그 사람의 ‘미친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 위가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에 있다. 주인공 ‘미친 녀석’은 일 주일에 몇 번씩 화자가 근무하고 있는 서점에 들른다. 그런데 들른다고 해서 안 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창문 앞에 서서 그 안의 책들을 들여다볼 뿐이다. 약간은 신비스럽기도 한 그의 행위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그의 신분에 대해서 ‘재벌의 서자’, ‘목사의 아들’, ‘공부를 하다가 돌아버린 사람’, ‘실연을 하 고 미쳐버린 사람’ 등 온갖 추측을 한다. 정상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특이 한 그의 행색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그는 결코 누구를 해치거나 일부 거지들처럼 사람들한테 치근거리며 구걸하지도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