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대북지원
2·13 합의를 통해 북핵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진정됨으로써
대북지원을 둘러싼 논란도 다소 완화되었다. 특히 남북 간 교류가 확대 되면서 정부 및 민간차원의 지원이 2006년 보다 크게 증대되었다. 2007
년에도 2005년, 2006년과 마찬가지로 유엔인도지원조정국(UNOCHA)
을 통한 통합지원호소(Consolidated Inter-Agency Appeal)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2006년 이후 WFP를 비롯한 평양주재 유엔기구 및 국제 NGO 요원들의 수가 축소되었으나, 지원 사업은 지속되어 왔다.
대북지원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2월 현재, 우리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총 32,434만 달러(정부, 22,736만 달러: 2,159억 원, 민간차원 9,698만 달러: 920억 원)를 지원하였다. 2004년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이 정부차원의 지원을 상회하였으나, 2006년도와 마찬가지로 2007년에도 정부차원의 지원이 민간지원분의 2배 이상에 달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양자 지원뿐만 아니라 국제기구 및 국내민간단체를 통한 지원이 확대되 었기 때문이다.
구분 '95-96 '97 '98 '99 '00 '01 '02 '03 '04 '05 '06 '07.12 누계 일반
구호
23,680 4,329 2,891 565 1,435 6,067 4,174 6,157 10,472 4,346 11,672 14,792 90,580 100% 92% 91% 12% 13% 45% 31% 39% 42% 20% 39% 46% 46%
농업 복구
5 205 254 3,941 8,562 5,476 7,351 7,673 8,695 13,744 14,082 11,926 81,914
0% 4% 8% 84% 75% 40% 54% 49% 35% 65% 47% 37% 41%
보건 의료
189 40 182 1,380 1,996 1,967 1,933 5,624 3,164 4,301 5,716 26,492
4% 1% 4% 12% 15% 15% 12% 23% 15% 14% 17% 13%
계
23,685 4,723 3,185 4,688 11,377 13,539 13,492 15,763 24,791 21,254 30,055 32,434 198,986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표 Ⅲ-4> 분야별 대북지원 개요
(단위: 만 불)
※ 식량차관 제외
자료: 통일부 사회문화교류본부(2007년 12월 현재)
1999년부터 시작된 대북비료지원은 2007년도에는 2006년도(35만 톤)
에 비해 다소 감소된 규모인 30만 톤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2000년 이래 지속되던 50만 톤 대북식량차관이 2006년에는 북한의 지원요청에도 불 구하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및 핵실험 등으로 중단되었으나, 2007 년에는 재개되어 국내산 쌀 40만 톤이 지원되었다. 2006년에 이어 2007 년에도 북한지역에 심각한 수해가 발생함에 따라 정부와 민간차원의 긴 급구호가 이루어졌다. 또한 북한에 홍역과 성홍열 등 전염병이 확산되었 으며, 정부는 세계보건기구와 직접지원 방식의 긴급구호를 추진하였다.
이 밖에도 북한에서 구제역과 제선충 피해가 확대되자, 이를 위한 방역 물자가 지원되었다.
2007년에도 정부는 장기간의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인도적 위기상황 에 처한 북한영유아들의 균형발달을 돕고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성장동력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2006년에 시작한 북한 영유아 및 여성 의 건강개선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정부는 북한에 상주사무소 를 두고 있는 세계보건기구(99억 원)와 유엔아동기금(29억 원)의 영유 아 사업을 지원하여 왔다. 국내민간단체를 통한 북한영유아사업은 북한 과의 협상과정에서 어려움으로 인해 지연되었으며, 2006년과는 달리 2007년도에는 북한과 국내민간단체간 사업합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북지원사업자의 승인요건이 완화됨에 따라 대북지원사업자가 79개 에 이르게 되었으며,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회원단체의 수가
61개로 급증하였다. 정부는 개별단체사업, 합동사업, 정책사업에 대한
기금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왔다. 2007년에는 못자리용 비닐지원, 산림녹화시범사업, 제약공장 원료지원사업이 정부의 정책사업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 내 인도적 위기상황의 악화가 예상되었으나, 2·13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현실화되지는 않 았다. 그러나 국경통제 강화 및 장마당 통제에 따라 일부지역에서 식량 가격 폭등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수해 등으로 인해 일부 취약계층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아사자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 고 있으나, 실제 북한의 위기상황에 대한 평가는 다소 상이하게 나타나 고 있다.
2·13 합의로 인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재개 되었고, 2007년 남
북정상선언에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의 분야에 대한 북한에 대한 남북협력이 명시되었다. 이러한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실무회담이 이루
어짐에 따라, 2008년에는 분야별 지원이 보다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보건의료, 농업, 환경보호 분야에서의 대북지원은 남북경제협력 차 원에서 북한의 전반적인 체계개선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는 공동행동규범을 확정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국내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 효율화를 위한 노력들 이 보다 체계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국제기구를 통한 영 유아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며, 보건의료분야에서 정부, 국제기 구, 국내민간단체 간의 협력체계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 보건 의료, 환경보호 등 각 분야 협력관련 남북 실무부처 간 협의가 정례적으 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2008년에는 대북 지원민간단체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과정에서 보다 체계적인 기준 및 절차들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 이금순․북한인권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나. 이산가족문제
2007년 이산가족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차례의 남북 적십자회담이 개 최되고 대면상봉 2회, 화상상봉 3회, 금강산 면회사무소 개소식 등이 진 행되었다. 2007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됨에 따라 북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전면 중단되었던 이산가족 상봉·교류가 재개된 것은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2.27∼3.2)을 계기로 해서이다. 이 회담을 통해 남북은 제5차 화상상봉과 제15차 대면상봉, 이산가족 면회 소 건설 추진을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3.9,금강산), 제8차 남북 적 십자회담 개최 등 이산가족문제 관련 합의를 도출해냄으로써 올 한 해
이산가족 상봉·교류 사업을 시작 하였다.
제5차 화상상봉(3.27∼29)은 2006년 8월 개최하기로 되어있었으나 북 측의 상봉 중단 선언으로 무기한 연기되어 제4차 상봉(2006.2.27∼28)
이후 13개월 만에 재개되었다. 이 행사를 통해서 총 120가족(819명)이
상봉하였다. 제5차 화상상봉 후 개최된 제8차 남북 적십자회담(4.10∼
13)에서는 8‧15·추석 계기 남북 각 40가족씩 화상상봉 2차례, 추석 계기
남북 각 100명씩 대면상봉, 남북 각 20가족(기상봉가족)씩 영상편지 시 범교환, 이산가족문제에 포함시켜 국군포로·납북자 생사·주소확인문제 협의·해결 등의 사항에 합의하였다.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합의된 제15차 대면상봉(5.9∼14) 행사를 통해서는 총 198가족(910명)이 만났 으며 한 건의 전후 납북자 가족 상봉과 국군포로 2가족 상봉이 이루어졌 다. 제8차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합의된 제6차 화상상봉(8.13∼14)을 통 해서는 총 80가족(550명)이 만났다. 이산가족 상봉 확대, 영상편지 교환 사업 추진 등에 합의한 2007 남북 정상회담(10.2∼4) 직후 개최된 제16 차 대면상봉(10.17∼22) 행사에서는 총 190가족(831명)이 만났다. 이전 의 행사들에서는 두 세 건의 상봉사례가 있었으나 제16차 상봉행사에서 는 국군포로·납북자 가족 상봉이 한 건도 성사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실태는 당시 북한에 극심한 수해가 발생하여 상봉자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보다도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와 관련한 북측의 해결 의지 가 소극적임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되었다. 2007 남북 정상회담 에서 북측은 국군포로·납북자문제에 대한 논의를 사실상 회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바, 북측은 정상회담 직후 진행된 제16차 대면상봉에서 국군포로·납북자 가족을 제외함으로써 이 문제와 관련한 소극적인 입장 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16차 대면상봉에 이어 진행된 제7차 화상상봉(11.14∼15)에서는 총 78가족(503명)이 만났다. 이로써 지난 한 해 동안 두 차례의 대면상 봉(388가족/1,741명)과 세 차례의 화상상봉(278가족/1,872명)을 통해
총 666가족(3,613명)이 만났으며 9,121명이 생사 확인을 하였다.
제9차 남북 적십자회담(11.28∼30)에서 남과 북은 상봉 확대, 영상편 지 교환, 국군포로·납북자문제의 계속 해결, 금강산 면회소 쌍방사무소 준공식(12.7) 참가, 금강산 면회소 준공(2008.3.예정) 후 제10차 남북 적 십자회담(금강산) 개최 등에 합의하였다. 상봉 확대와 관련해서는 연간
400명 정도씩 대면상봉(겨울철 제외) 진행, 2008년 6·15를 계기로 이미
화상상봉이 성사된 이산가족들을 대상으로 하여 남북 각 100명씩 이산 가족 특별상봉(금강산) 진행, 분기별로 각 40가족 정도씩 1년에 160가 족 화상상봉 실시, 대면상봉시 거동이 불편한 상봉자에 한해 동반가족
1명 추가 등에 합의하였다. 영상편지 교환과 관련해서는 2008년 새해에
남북 각 20가족씩 영상편지를 시범교환하며 분기마다 남북의 기상봉자 각 30가족씩 영상편지를 교환하기로 하였다. 국군포로·납북자문제와 관 련해서는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이산가족문제의 테두리 안에서 계속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제9차 남북 적십자회담에서는 무엇보다도 연간 상봉 규모 및 분기별 진행에 합의함으로써 이산가족 상봉·교류의 정례화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이미 화상상봉을 한 이산가족들을 대상으로 하여
6·15 특별상봉을 진행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공식적인 이산가족 상봉·교
류가 진행된 이래 처음으로 재상봉의 기회를 마련하였으며 기상봉자의 분기별 영상편지 교환 합의도 재상봉 실현과 관련해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남측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대면상봉을 위해 방북할 때 거동이
불편할 경우, 가족 1명을 동반할 수 있도록 합의한 것도 고령이산가족과 거동이 불편한 이산가족의 편의를 한층 도모한 것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또한 새로운 상봉방식인 영상편지 분기별 교환에 합의함으로써 상 봉 방식의 다양화 및 인원 규모 확대에 있어서도 진전을 이루었다. 올해 추진된 남북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금강산 면회사무소 개소이다.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이 일방적으로 중단했던 금강산 면회소 건설 공사가 지난 3월에 재개되었으며 9개월여 만에 남북 면회사무소가 준공·개소된 것이다. 남북은 면회사무소 개소 에 따라 각 대표단을 상주시켜 면회소 준공과 함께 진행될 면회 운영 등 이산가족 상봉·교류 관련 사안들을 상시적으로 협의할 수 있게 되었 다. 면회사무소 상주 직원들은 금강산 상봉행사 지원, 상봉 확대 및 상시 상봉 등 이산가족 상봉·교류 관련 남북간 협의 업무 담당, 광범위한 인 도주의 협력 분야의 남북간 연락 및 협의 창구로 기능하게 된다.
제9차 적십자회담의 합의사항대로라면 2008년 1/4분기에 금강산 대 면상봉, 화상상봉, 영상편지 교환 등의 상봉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또한
2008년 한 해에 걸쳐 대면상봉(400명), 화상상봉(160가족), 6·15특별상
봉(재상봉/100명), 영상편지 교환(120가족) 등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2008년은 연간 최대 규모의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해로 기록될 것이다. 2008년 초 금강산 면회소가 완공되면 이산가족 상봉·교류의 정 례화 및 제도화와 상봉·교류 인원 규모 확대에 있어서도 보다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적교류로 인한 체제동요를 우려하는 북측의 입 장에서 볼 때 영상편지 교환과 화상상봉은 대면상봉에 비해 상대적으로 북측의 부담을 덜어주는 상봉방식일 수 있으므로 영상편지 교환과 화상 상봉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또한 생사·주소확인도 상봉에 비해 북측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