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역사적 배경과 전개과정
1855년 2월 7일(러시아 구력 1월 26일) 시모다(Shimoda) 조약92) 체 결로 러시아와 일본 간 국경이 이투루프와 우루프 사이에 최초로 설정되 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러시아는 ‘남쿠릴 열도(South Kuril Islands)’, 일본은 ‘북방영토’(北方領土)로 통칭하는 이투루프(에토로후), 쿠나시르 (쿠나시리),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 전체가 일본에 귀속되었다.93) 이때 사할린 섬은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20년 후인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94) 체결로 양국 국경은 변경되었다. 러 시아가 사할린 섬과 그 부속도서들을 차지하는 대신, 일본은 홋카이도에 서 캄차카 반도까지 늘어서있는 쿠릴 열도 전체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양국의 국경이 사실상 캄차카 반도의 로파트카 곶(Cape Lopatka)과 슘 슈(Shumshu) 섬 사이에 위치한 제1쿠릴 해협, 그리고 사할린 섬과 홋카 이도 사이에 위치한 라페루즈 해협(La Pérouse Strait)으로 재설정된 것 이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러일전쟁 이후 1905년 체결 된 포츠머스 평화조약에 의해 러시아는 사할린 섬 남부와 그 부속도서들 을 일본에 넘겨주어야만 했다. 이어서 40년 후 국경은 다시 한 번 변경되 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소련은 얄타 협정을 근거로 포츠머스 평화조약에 의해 일본에 넘겨준 사할린 남부와 그 부속도서는 물론, 쿠릴열도 전체를 점령했다.
92)
Трактат о торговле и границах между Россией и Японией от
26января
(7февраля
) 1855г
, <http://www.ru.emb-japan.go.jp/itpr_ru/1855.html#7> (검색일: 2017.09.14.).
93)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 글에서는 편의상 러시아식 표현인 ‘남쿠릴 열도’, ‘이투루프’, ‘쿠 나시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다.
94)
Трактат между Россией и Японией от
25апреля
(7мая
) 1875г
,<http://www.ru.emb-japan.go.jp/itpr_ru/1905.html#1> (검색일: 2017.09.
14.).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서명하면서 일본은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하지만 해당 조약에 서 쿠릴 열도의 지리적 범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고, 쿠릴 열도 전체 에 대한 소련의 영유권도 명확히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은 결국 서명을 거부했다. 당시 소련의 서명 거부로 인해 현재 러시아와 일본의 국경은 사실상 남쿠릴 열도와 홋카이도 사이로 간주되고 있지만, 양국 간에는 아직 2차 세계대전을 종결하는 평화조약도, 법적으로 합의된 국 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재 일본은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 탄, 하보마이 군도가 쿠릴 열도의 일부가 아닌 홋카이도의 부속도서이 며, 소련/러시아가 해당 도서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북방영토’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그림 Ⅱ-11 러시아-일본 국경 변화
출처: Russia’s Pacific Future: Solving the South Kuril Islands Dispute,
<http://carnegie.ru/2012/12/11/russia-s-pacific-future-solving-south- kuril-islands-dispute-pub-50325> (검색일: 2017.09.14.).
평화조약 체결이 무산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10년이 넘도록 소련과 일본은 영토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외교관계도 정상화하지 못 하고 있었다. 1956년 10월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총리와 흐루쇼프 1서기가 소·일 공동선언95)에 서명하면서 비로소 영토문제 해결의 실마
리를 찾게 되었다. 해당 문서에서 소련은 평화조약 체결 이후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을 일본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이 공동선언은 지금 까지 영토문제와 관련하여 두 나라 의회의 비준을 받은 유일한 공식문서 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일본 간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은 1960년 미·일 신안보조약 체결로 일본 영토에 미군의 영구주둔이 가능하게 되면서 중 단되었다. 소련은 일본에 외교문서를 보내 “새로운 군사조약 체결은 극 동의 평화를 위한 기반을 침식하고 소·일 관계 발전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의 양도 약속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일본 영토에서 모든 외국군 철 수”라는 새로운 조건도 제시했다. 일본이 이를 거부하자 협상은 중단되 었고, 1991년 새로운 소·일 공동성명이 서명될 때까지 영토문제에 대한 더 이상의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소련은 ‘일본과 영토문제 는 없다’는 공식입장을 고수했다.
95)
Совместная декларация СССР и Японии от
19октября
1956г
,<http://www.ru.emb-japan.go.jp/itpr_ru/normal.html#3> (검색일: 2017.09.
14.).
그림 Ⅱ-12 남쿠릴 열도와 일본이 주장하는 국경
출처: Kuril Islands, <http://asiapacific.anu.edu.au/mapsonline/base-maps/kuril -islands> (검색일: 2017.09.14.).
1991년 4월 18일 서명된 소·일 공동성명96)은 영토문제의 존재를 인 정하고 그 대상으로서 남쿠릴 열도 4개 섬을 적시한 것은 물론, ‘귀속’과
‘영토 경계설정 문제’라는 용어까지 사용했기 때문에 소련의 공식입장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소련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사고(New Thinking)’ 노선에 따라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
96)
Совместное советско-японского заявление от
18апреля
1991г
,<http://www.ru.emb-japan.go.jp/itpr_ru/1991.html#1> (검색일: 2017.09.14.).
고 있었으며, 특히 침체된 소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영토문제를 매개로 일본과 경제협력 확대를 논의하고자 했다.
서명의 당사자인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사임하고 서명국인 소련이 해 체되자, 일본은 러시아와 영토문제 논의를 이어가고자 했다. 1993년 10 월 ‘러·일 관계에 대한 도쿄 선언’97)을 통해 양국은 영토문제의 대상이 남쿠릴 열도 4개 섬 전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2000년까지 평 화조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옐친 정부 역시 일본과 경제협력을 확대 하기 위해 영토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지만, 러시아에서는 쿠릴 열도 전체를 관할하고 있는 사할린 주(州)를 중심으로 ‘영토양보 반대’ 여론이 거세게 확산되었다. 일본은 2000년까지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먼저 최 소한 2개 섬을 ‘반환’ 받고 나머지 2개 섬에 대한 추가협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1999년 12월 31일 옐친 대통령이 사임할 때까 지 결국 평화조약은 체결되지 못했다.
‘북방영토 반환’에 대한 일본의 기대가 고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출범한 푸틴 정부는 이른바 ‘1956년 모델’에 의한 영토문제 해 결을 공식화했다. 다시 말해,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서 합의된 ‘평화 조약 체결 후 2도 양도’가 최대한의 양보라는 입장이었다. 2004년 11월 라브로프(Sergey V. Lavrov) 외무장관 역시 소련 최고회의에 의해 비준 된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 “일본에 남쪽 2개 섬을 양도하고 마침표를 찍는다”라고 명시되어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 “경계를 획정하고 평화조 약을 체결”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이라고 주장했다.98) 러시아는 지금까지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일본은 다양한 방식의 해결방안
97)
Токийская декларация о российско-японских отношениях
,<http://www.ru.emb-japan.go.jp/itpr_ru/docs_new.html#1> (검색일: 2017.
09.14.).
98)
Россия может передать Японии два острова
, <http://news.bbc.co.uk/hi/russian/news/newsid_4011000/4011981.stm> (검색일: 2017.09.14.).
을 제시하면서도 여전히 ‘4개 섬 전체 반환’ 또는 ‘이를 전제로 하는 단계 적 반환’이라는 원칙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2년 5월 3일 3기 푸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러시아의 통신사
‘리아 노보스티’(RIA Novosti)는 메드베데프 정부에서 대외정책을 담 당했던 한 고위관료와의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영토문제에 대한 러시아 의 입장은 항상 변함이 없었고, “향후 영토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99) 실제로 러시아는 다양한 외교적 수 사를 사용하여 영토문제 해결에 대한 일본의 기대를 키우지만, 항상 모호 한 화법을 사용하면서 단서를 달거나 다시 ‘1956년 모델’에 의한 해결방 안을 강조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2012년 3월 푸틴 당시 대선후보는 외신 편집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일본과의 영토문제를 “양국과 양국 국민 에게 용인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종적으로 마무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 했지만, 양국의 경제관계가 발전하여 “단순한 이웃이 아닌 진정한 친구”
가 되어야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100) 또한, 2013년 4월 러·일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양측이 용인할 수 있는 조 건에서 영토문제 해결”을 진정으로 희망한다고 언급했지만, 이를 해결 하기 위해서는 “호의적인 상호관계와 신뢰의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101) 이러한 모호한 화법이 이어지는 가운데 2008~12년 대통 령을 역임하고 2012년부터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메드베데프 (Dmitry A. Medvedev)는 일본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0년
99)
Медведев расширил инструментарий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о ссии
-источник
, <https://ria.ru/interview/20120503/639962719.html>(검색일: 2017.09.14.).
100)
Путин считает возможным решить территориальную пробл ему с Японией
, <https://ria.ru/vybor2012_putin/20120302/583726908.html> (검색일: 2017.09.14.).
101)
Путин
:на жесткие вопросы о спорных островах будут такие же ответы
, <https://ria.ru/world/20130429/935240154.html> (검색일:2017.09.14.).
11월과 2012년 7월에는 쿠나시르, 2015년 8월에는 이투루프를 방문했 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2015년 8월 이투루프를 방문한 후 기자들에게 이웃국가인 일본과 우호관계를 원하지만, “쿠릴 열도는 러시아의 연방 구성주체인 사할린 주에 속하는 러시아의 일부”이기 때문에 방문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102) 기대를 모았던 2016년 12월 푸틴 대통령 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남쿠릴 열도에서 공동경제활동 추진이 합 의되었으나, 평화조약 체결이나 영토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어떠한 구체 적 합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은 다시 한 번 ’1956년 모델‘에 의한 영토문제 해결을 강조했다.103)
현재 러시아는 ‘평화조약 체결 후 2도 양도’가 유일한 해결방안이라는 입장이며, 일본은 어떤 방식이라도 ‘4도 전체 반환’을 전제로 하지 않는 다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1956년 모델’에 의한 해결을 주장하는 것일까? 사실 러시아의 태도만 보면 ‘2도 양도’마저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956년 소·
일 공동선언의 법적 유효성 때문에 적어도 이를 공식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1956년 소·일 공동선언은 양국이 서명한 수많은 공식문서 중 영토 문제 해결방식에 대한 구체적 합의를 담고 있고 의회의 비준까지 받은 유일한 문서이다. 따라서 소련의 국제법적 계승자로서 권리와 의무를 이 어받은 러시아에게 ‘평화조약 체결 후 2도 양도’라는 의무는 결코 회피할 수 없으며, 동시에 러시아의 최대한의 양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이 ‘1956년 모델’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양국의 국경문제는 해결되기 어 려울 것으로 보인다.
102)
Медведев призвал не связывать желание дружить с Япони ей с вопросом о Курилах
, <http://www.interfax.ru/russia/461929> (검 색일: 2017.09.14.).103)
Заявления для прессы и ответы на вопросы журналистов по итогам российско-японских переговоров
, <http://kremlin.ru/events/president/transcripts/53474> (검색일: 201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