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 테러의 발전동향
테러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 진행되어 왔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 해 또는 어떠한 목적 달성을 위해 테러는 줄곧 있었다. 이로 인해 인 간은 안심할 수 없는 세상에 살아 왔으며 국제사회는 테러의 예방과 제거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 왔다
.
그러나 테러는 정치적, 이념 적, 사회적,
문화적,
시대적 변화와 함께 발생되어 왔으며 박멸되지 않고 여러 변형을 거치면서 발전되어 왔다.(1)
로마시대~
제2차 세계대전테러는 로마시대 때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 다. BC 44년 줄리어스 시저
(Julius Caesar)의 암살이 단편적인 예
이다. 또 다른 실례로, AD 66년부터77년 사이 ,
팔레스타인 종교집 단들에 의해 형성된 「시카리」(Sicarri) 테러단체는 로마의 통치에 협 력하는 유대인들에 대해 테러공격을 단행하였다.11세기부터 13세기에는 주로 주요 인물 암살을 통해 테러리즘이
나타났다. 페르시아에 이리 저리 흩어져 살던 이슬람 과격 종교단체 들은 종교적 자유 보장과 교리 확산을 위해 암살자를 고용해 기독교 지도자를 살해하였다. 또한 십자군과의 전쟁 당시 이들 단체들은 군 사력으로 무장한 십자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군사령관
,
주요 인사 암 살 등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테러리즘 양상은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 가고 있다.18세기에 들어 테러는 공포정치의 한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 1789
년 프랑스 혁명 당시 테러리즘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이루어졌 고, ‘위로부터의 테러리즘
’(terrorism from the above)의 성격을 띄
면서 진행되었다.
그 당시 혁명정부의 주역이던 공화파들은 집권정부 의 혁명과업 수행을 위하여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통제를 위해‘공포
정치’(reign of terror)를 추진하였으며, 왕권복귀를 추진하던 왕당파 를 잔인하게 암살·고문·처형하는 등 공포정치를 일삼았다.
이러한 공포 정치는 테러리즘의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그것은 곧 정치적 폭력행위 와 다름없었다.남북전쟁(1861~65) 이후 미국에는
KKK(Ku Klux Klan)
테러 집단이 테러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일부 극우파 남부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정부에 도전하는 한편 남북 각 주의 재건론자들을 협박하기도 하였다
.
이 테러단체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대체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테러리즘은 무정부주의
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미국
,
서유럽,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 해 왔으며 주요 인물을 암살하는 테러를 감행하였다. 그들은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서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서 주 요 인물 암살에 나섰다.
이러한 테러행위는 결국 세르비아 청년의 오 스트리아 황태자 암살로 이어졌고 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
가 되었다.그 이후
20세기 상반기 테러리즘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한 공
포수단으로 자행되었다.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스탈린의 소 련 등 전제주의 국가의 독재자들이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기 위 한 수단으로서 테러에 의한 공포정치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2)
제2차 세계대전~ 2001년 9·11
테러사건이전제2차 세계대전이후 과거 삼각 동맹이었던 일본
,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극좌 테러분자들의 테러활동이 있었다.
일본·독일에서는
「적 군파」(RedArmy Faction)가 이탈리아에서는
「붉은 여단」(RedBrigades)이 활동에 나섰다 .
특히 독일의 적군파는 악명 높은 테러조직의 하나이다
.
이 외 프랑스에서는 「직접 행동」(Direct Action), 벨기 에서는 「공산주의 전투단」(Communist Combatant Cells) 등이 활 동하였다. 이들 테러단체들은 한 때 이념적 목표를 위해 테러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이러한 이념적 이유 외 테러리즘은 식민제국에 맞서는 민족운동의
수단으로 자행되었으며
,
「아부 니달 조직」(Abu Nidal Organiza-tion: IRA),
콜롬비아의 「혁명군대」(RevolutionaryArmed Forces of Colombia: FARC),
스페인의 「바스크 조국 해방」(Basque Father-land and Liberty: ETA),
스리랑카의 「타밀 호랑이해방운동」(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LTTE)
등 민족 국수주의적 테러리스트들이 자유와 해방 추구라는 목표 하에 테러리즘을 사용하 였다. 또한 냉전시대 이데올로기 단체들에 의해 테러리즘이 주도되기 도 하였으며 국가내 소수민족이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한 일환 에서도 감행되었다.1960년대에는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테러가 확산되었다.
북미, 유럽, 일본 등지에서는 좌파에 의한 도시테러가 발발하였다
.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사이의 도시테러는 급진적 좌파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과격 학생운동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이루어졌다. 이 러한 테러는 독일의 「적군파」의 반전 운동과 함께 확산되었다
.
학생들의 주도로 진행된 도시테러는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진압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유형의 테러출현을 예견한 것이었다. 그 결과 도 시테러는 점차적으로 지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민족·종교분쟁으로
,
스페인에서는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의 양상으로 도시테러가 전개되었다.
서유럽 좌파 테러조직들처럼 영국과 스페인 의 테러조직들은 반정부 운동에 나서는 형태를 보이면서 테러에 나섰 다. 중동의 경우,
영토·민족·종교분쟁의 혼합양상을 보이면서 진행되었 다. 중동의 테러조직들이 테러대상을 주로 서유럽 정부로 국제화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2차 대전이 종식되기 이
전부터 투쟁을 해왔으며1970년대 서유럽에서 좌파 조직들에 의한
도시테러의 와중에서 부분적으로 상호 연계투쟁을 전개하면서 발전시 킨 점이다.36)전반적으로
197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테러리즘에 대해 국제사
회는 큰 우려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기부터 테러리즘이 대형 화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자 국제사회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부 아랍 테러리스트들의 테러리즘은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 정도로 대담성과 잔혹성을 보였다.
1980년대부터는 팔레스타인에 의한 테러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
다.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등장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들에 의 해 미국은 주요 테러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 대상에 있어 미 국내보 다는 해외의 미국인과 시설물이 표적이 되었다. 1983년 4월 베이루
트 미 대사관 폭발과10월의 베이루트 해병대 막사에 대한 자살 공격
은 레바논에서 미국을 나가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테러였다.37)1985년에는 미국 민간인을 죽이는 데 나섰다.
이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을 응징하기 위해서다
. 1988년 팬암 (Pan Am) 103기 폭
발사건은 다수의 미국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미국에 대 한 보복공격 차원에서 단행되었다. 그러나 이 때 테러리스트들은 자 신들의 소행을 밝히지도 않았으며 요구사항을 전하지도 않았다.한편 좌파 테러는
1980년대에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대신 신보수주
의의 등장과 함께 우파 테러가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우파 테러는 주 로 미국과 유럽에서 출현한 신나치즘(Neo-Nazism)에 의해서 이루 어졌다.
다른 하나는 중남미와 아시아의 경우는 친미정권들이 후원하 는 준군사집단들(self-defense groups, paramilitary groups,
death squades
등)에 의한 좌익 동조자들 ,
각종 노조운동,
반정부36) 조성권, “21세기 새로운 테러리즘과 한국의 대응방안,” 「9·11 테러 이후 국제 안보환경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제 48차 학술회의, 2001.11.22), p. 5.
37) Joseph Kahn, “A Trend Toward Attacks that Emphasize Deaths,”
New York Times, September 12, 2001.
운동, 인권운동, 반독재시민운동
,
학생운동 등을 반공이라는 미명 하 에 무차별 인권유린을 행한 것이다.38)이 때까지만 해도 테러리즘은 조직의 지휘·통제 하에 어떠한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정해진 대상에 대해 이루어졌다
.
이들의 테러행위는 납치·암살·폭탄테러 등 극한적이었지만 무차별적이지는 않았으며 목적
달성을 위해 추진되었다. 그래서 사안에 따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통상적으로 테러행위에 대한 성명서를 통해 자신들의 테러행 위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테러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고,
특정 정부와의 명백한 협조 또는 지원·지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테러행위의 예상 및 통제가 가능하였다.39)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테러리즘은 이해할 수 없는 국수주의 나 사상·종교적 동기에 의해 자행되는 추세로 흘러갔다
.
이러한 테러 리즘은 테러리스트들을 지휘·조정·
관리·훈련시킬 수 있는 체계화된 조 직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막대한 재원은 이러한 체계를 뒷받침하였다.특히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과격단체들의 테러리즘은 공포를 자아내게 하였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세계화, 근대화 과정에서 개인은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종교, 민족, 국가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며 이런 개인의 귀속의식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용하려 하였다.40) 더 구나 그들은 투철한 신앙심으로 무장
,
정신적 지도자와 소규모 조직 을 바탕으로 극단적 행위를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다.1990년대에 들어 테러리즘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국제테러가 절정기에 달했던
1980년대에는 5,431건의 테러가 발생하여 4,684명
이 사망했으나,
탈냉전이 본격화된1990년대에는 3,824건이 발생하
여
2,468명이 목숨을 잃었다.
41) 이 시기 역사적으로 테러빈도가 많38) 조성권, “21세기 새로운 테러리즘과 한국의 대응방안,” p. 7.
39) 정우영, “화학 및 생물무기 테러 대응정책,” p. 30.
40) Remarks by Charles Taylor, 「조선일보」, 2002.10.29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