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통과제의의 형식으로서의 귀향

소설에서 길 찾기는 통과제의적인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다.147) 길은 움직이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아가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하는 일련의 고통, 각성 등의 과 정을 함유하는 문화인류학적인 상징이다. 이 상징에는 소년으로부터 성인으로의

147)김용희,『현대소설에 나타난 ‘길’의 상징성』.정음사,1986,p.5.

전환, 무지에서 깨달음의 상태로 전이 속(俗)에서 성(聖)으로의 승화, 생명에서 불멸로 전환되는 초월적인 작용 등과 같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148) 그러나 분단 문제와 관련해서 ‘길’은 세계 타락의 의미를 깨닫고 주체를 정립해 나가는 인식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고향’은 비극의 근원이 되는 공간이다. 고향은 성장기에 치른 혹독한 시련과 반목으로 얼룩진 고통스러운 기억을 간직한 원체험 의 공간인 것이다. ‘귀향’의 행로는 비극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상상적 화해를 꿈꾸거나 주관적인 인상에 머물렀던 불가해한 수준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도정이 다.

『우울한 귀향』149)은 회상을 통해 성장기에 가해졌던 혼돈과 대면하고 그것의 극복을 거치는 통과제의적인 주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등단한 작가 지망 생이 방학과 함께 귀향하여 친구 집에 머물며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과거의 회상이 병행되는 구조이다. 서술자는 성장기를 회상하면서 탈향을 결심했 던 내력을 반추해 나간다. 가슴 설레던 순임과의 아련한 추억을 더듬으면서 그는 비극적인 과거와 다시 만난다. 순임 집안과 친구 철의 집안간의 갈등과 불화, 전 쟁 속에서 순임의 아버지가 처참하게 죽음을 맞았고, 철의 형이 오랫동안 방안 토 굴에서 은신하면서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내력들이 회상된다. 또한 삼촌의 입대, 그가 몸속에 파편을 안고 제대한 뒤 폐인이 되어버린 기억들…. 이것은 좌 우대립의 갈등 속에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에서 오래 반목하던 몰락한 순임과 철이 두 집안의 비극, 전쟁의 광풍으로 입은 상처에 관한 것들이다.

전쟁을 전후하여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들은 다수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탈 각되어버리지만, 화자와 비극의 당사자들은 깊은 상흔을 안고 탈향 한다. 화자는 이러한 슬픔을 회상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과거에 대한 가치혼돈을 청년기의 정 신적 방황으로 전환시킨다. 이것은 고향의 과거를 응시함으로써 “자욱한 안개 같 은” 기억을 글 쓰는 주체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다. 화자가 풍화작용 끝에 망각 해버린 기억을 불러내어 고통을 반추함으로써 옛날 소꿉친구들이 겪었던 고초와 성장기에 드리워진 비극의 의미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리고 이러한 실체와 대면한 서술 주체는 자신을 포함해서 철이, 순임이 모두 비극의 “깊은 수렁”에

148)김용희,위의 책,같은 곳.

149)이동하,『우울한 귀향』,제삼세대 한국문학,삼성출판사,1983.

서, “가장 긴 전쟁”에서 수난당한 피해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사야 비로소 과 거와 이별을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고통스러운 과거와의 조우는 존재의 자기정립 을 위한 제의적 과정으로서 비극 속에 놓인 과거 속 자신의 신원 해명으로 나아가 게 해준다. 서술의 주체는 낯익은 마을 풍경에서 “변해 버린 것”들에 주목하며 상처의 객관화를 통해서 자기정립에 이르는 것이다.

“죄는 우리 성한테 있고, 순임이 아부지한테 있고, 또 울 아부지한테 있는기라. 반 평생을 종살이했던 상전한테서 몇 뙈기의 붙임을 얻어낸 아부지가 잘못했고, 그걸 도 로 뺏어간 순임이 아부지가 잘못했고, 그기 억울하다고 앙심을 품었던 우리 성이 잘못 했을 뿐인기라, 그저 그런 기라, 윤아, 나는 차말로 더 버틸 수가 없더란 말이다. 영 미치겠더란 말이다. 차말로 미쳐뿌리겠더란 말이다.”150)

고향을 떠나며 절규했던 철이의 고백을 생생하게 환기하여 듣는 비극성의 육성 은 죄의 출처와 책임에 관한 것이다. 철이의 절규에는 스스로의 속죄를 통해서 비 극에 대한 자기긍정을 보여줌으로써 자기구원의 가능성이 발견된다. 그것은 살육 과 파멸로 몰아넣는 수많은 죄악을 해결할 수 없는 어린 존재의 양심의 발언이다.

철이의 절규를 환기하는 서술의 주체는 고향 마을에서 벌어졌던 살육과 수난이 어느 한 시점에 횡횡했던 광풍이 아니었으며 누대에 걸친 지주-소작 관계의 뿌리 깊은 갈등과 불화가 분단 현실 속에 증폭되어 발생한 비극임을 자각한다. 여기에 내포화자의 담화 의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는 성장기의 기억으로부터 혼돈의 정체를 깨닫고 이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의 호명을 통해서 획득하는 것 은 비극의 응시하는 주체의 내면성이다. 그가 고향을 다시 떠나 도시로 귀환하는 내면에는 도시로 상징되는 성인의세계로 진입하는 성숙한 개인의 의식이 발견된 다. 여기에는 비극의 의미를 각성하는 제의적 절차와 주체 형성이라는 문제와 결 부되어 있는 것이다. 회상의 주체는 “혼돈한 형성기를 보냈던 고장”과의 진정한 결별을 통해서 고향에 대한 부정이나 기억과의 단절이 아닌 고향 이외의 다른 공 간에서도 일어났던 비극이었음을 인식하는 주체로 거듭난 것이다. 즉, 비극은 고 향만이 아니라 “이 땅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있을” 사건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 이다.

150)이동하,위의 책,pp.188-189.

『우울한 귀향』에 나타난 귀향은 성장기의 회상을 통해 비극의 주관적 인식 차 원을 벗어나려는 고통스러운 통과제의임을 보여준다. 그 “후즐근한 귀향”과

“피로한 방황”의 정체는 자신을 낳은 비극의 공간에 대한 신원을 다시 한 번 확 인하며 성년에 이르는 과정이자 글쓰기였던 것이다.

도시를 성년에, 고향을 유소년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았을 때 결코 즐겁지 않은 과거로의 귀향은 속에서는 피고름이 있는데도 겉의 전쟁이란 상처를 섣불리 덮어 버리지 않고 헤집어, 근본적인 치료인 메스를 가해 치료하려는 외포작가의 의도라 고 볼 수 있다.

분단 이야기에서 성장기의 비극을 벗어나 주체의 정립에 이르는 글쓰기의 모습 은 귀향의 행로를 가지고 있다. 『우울한 귀향』에서 볼 수 있듯이, 고향은 과거 의 기억과는 단절된 공간으로서 화해와 분단해소의 대상, 주체 정립을 위한 고통 스러운 통과제의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귀향은 이들의 분단 이야기에서 비극을 회 상하는 구체적인 공간이면서도 인식의 주체가 화해의 소망을 상상하는 적극적인 장소이자 비극의 자기화를 거쳐 자기 구원에 이르는 통과제의적인 의식의 원점이 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