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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으로 인식된 어른의 존재 방식

김승옥의 작품에서 어른의 세계는 폭력으로 그려지고 있다. 악의 세계요, 폭력 의 세계인 어른의 세계는 나아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도 갈 수 밖에 없는 세계이 다. 결국 그 폭력의 세계와 순수의 세계가 부딪쳤을 때 어지러움으로 나타난다.

돈 때문에 빨치산의 시체를 처리하러 나서는 아버지, 어린이가 꿈도 꾸지 못할

‘남해’로의 무전여행을 떠나려는 형과 형 친구들의 세계는 어른의 세계이면서 악의 세계로 그려진다.

1962년 『산문시대』에 발표된 「乾」은 참혹하고도 부조리한 현실을 어린 소년 의 눈을 통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작품이다.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순진한 소년인 주인공 ‘나’는 이웃에 살고 있는 윤희 누나로부터 받은 심이 굵은 4B 도화연필 을 학교에서 도둑맞았기 때문에 윤희 누나를 대할 때마다 뭔가 죄를 지은 기분으 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순진한 소년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나’의 삶에 대한 기대가 전쟁과 형들이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본능, 그리고 아버지의 돈에 대한 욕구 때문에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따라서 “분단분제 와 관련된 소설들 중에 순진한 눈을 도입한 최초의 소설”117)이라고 평가받고 있 다.

이 작품은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즉 하루 동안에 체험한 빨치 산 시체 구경, 시체의 매장 등의 놀라운 발견과 체험을 통해 주인공인 ‘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타락과 음모의 세계를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충격의 경험은 ‘나’를 성숙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그러 한 세계로 전이되어 감을 보여준다. 빨치산이 시(市)를 습격한 다음날 아침에 12 세의 소년인 ‘나’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시가지, 특히 어린이 놀이터가 됐던 왕국 같던 방위대 본부가 불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놀던 아름답던 옛 날을 그리워한다.

117)이동하,「한국문학의 전통지향적 보수주의」,서울대박사학위논문,1989.

아아, 하루종일 그 지하실에 틀어박혀 우리들은 얼마나 가슴뛰는 놀이들을 하였던가.

애들 중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던 내가 그 지하실의 백회벽(白灰壁)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면 한 아이는 초 동강이에 불을 켜서 들고 나의 손이 움직일 방향으로 불 빛을 보내주었고 그리고 나머지 그림 속에서 많은 애기를 끄집어내어서 지껄이며 떠들 고 그 그림을 자기들이 그린 것처럼 아껴주고 다른 마을의 애들을 끌어와서 자랑도 해 주곤 했다.118)

이 방위대 본부의 파괴는 유소년기에 있어서 아름다운 꿈의 세계를 상실한 것이 다. 불타고 있는 방위대 본부를 ‘나’가 바라보는 것은 유소년기의 꿈을 키우던 곳을 잃게 됨으로써 아름다운 과거까지 파괴되어 버리는 것을 뜻하게 된다. 또한, 이 부분은 주인공인 ‘나’에게 앞으로 닥쳐올 일을 예상하게 한다.

‘나’는 학교 가는 길에 이웃집에 사는 윤희 누나를 만난다. 윤희 누나로부터 벽돌공장에 빨치산의 시체가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 ‘나’는 친구들과 함 께 흥분에 들떠 시체구경을 하러 갈 때는 제일 앞장서서 뛰어간다. 그곳에서 어느 영감이 “빨갱이 시체 구경도 한 이태만에 하는군” 이라고 침을 탁 뱉고 돌아서 서 가자, 몇 사람이 그 뒤를 이어 역시 땅에 침을 뱉고 가 버리는 것을 본다.

나는 고개를 얼른 돌려 버렸다. 다시 시체가 있었다.···흙을 파내오는 주황색 언 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언덕에서부터 까만색 레일이 잡초를 헤치고 뱀처럼 흐늘거리 며 이족으로 뻗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던져주는 구도(構圖) 였다. 방금 잠깐 쑤시고 간 그 강렬한 색체들 때문에 나의 눈은 눈물이 나도록 쓰렸 다.119)

위 인용문 중 희화적으로 묘사된 부분에서는 이 세계를 신식하게 된 한 소년이 그 세계를 얼마나 혼란스럽고 암담하게 보았는가를 간결하게 압축하고 있는지 보 여준다. ‘나’는 시체를 본 후 어지러움을 느끼는데, 이 어지러움은 ‘나’의 심 리 상태가 혼돈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시체를 보고 난 ‘나’

는 유소년기의 순수의 세계를 잃어버린 심리적 불안 상태로, 이것이 ‘어지러움’

118)김승옥,「乾」,『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청아출판사,1991,pp.36-37.

119)김승옥,앞의 책,p.44.

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버지와 형 친구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때 반장이 찾아와 아버지에게 빨치 산 시체를 매장해 줄 것을 제의한다. ‘나’는 아버지가 불쾌하게 여겨 거절할 것 을 기대하지만 아버지는 “약간의 보수” 대문인지 선뜻 대답하고, 형과 형 친구 들도 빨치산의 매장에 함께 동참시킨다. ‘나’는 시체를 보면서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 오는 그런 환상”을 가졌었는데, 그 시체의 매장을 아버지가 하 게 되었다는 데에 더욱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와 형들은 구덩이 속에 관을 내려놓은 후 돌을 던져 넣고 흙을 채워 매장 을 끝내게 된다. 시체의 매장에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나’는 돌을 던져 넣는 것에 증오심을 갖는다.

나는 처음의 돌 몇 개는 남들처럼 천천히 던져 넣었지만 그러나 나중엔 힘껏 마치 돌판매질 하듯이 던졌다. 내가 던지는 돌이 관에 맞는 소리는 딴 소리와 뚜렸이 구별 되어 들렸다. ‥‥ 나는 힘껏 돌을 던졌다. 나는 돌을 던지면서 힐끗 노파를 쳐다보았 는데 노파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주시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내 오른팔에 더 욱 세찬 힘을 느끼며 던지기를 계속했다.120)

‘나’의 이런 의도적인 증오심에 의해 나타난 공적인 행동은 “약간의 보수”

때문에 시체 매장 일을 수락하는 아버지나, 시체 매장 일을 부탁하러 와서 “뻗어 있는 놈, 구역질” 등의 거친 말을 하던 반장 때문이다. 즉, 성인사회의 비인간성 을 처음 느낀 당황함이 ‘나’도 모르게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났고, ‘나’는 성인들의 세계에 수용되어 버린다.

‘나’에게 오는 또 다른 충격은 형과 친구들 때문이다. 형과 형 친구들은 남해 무전여행이 도시의 파괴로 무기한 연기되자 하는 일없이 방을 뒹굴다가 아버지의 빨치산 시체 매장에 함께 동참한다. 시체를 매장한 후 산을 내려오다 형 친구들은 윤희 누나에게 어둠과 음란의 냄새를 풍기는 이상한 말을 하고, 이런 일에 형이 앞장서는 것을 보고 도한 충격을 받으며 산을 내려온 후 참을 수 없는 잠에 떨어 져 버린다. 이 잠은 육체적인 피로에서 오는 잠이라기보다 정서적 손상 때문이라 할 것이다. 낮의 사건들, 빨치산 시체 매장, 형과 형 친구들의 윤희 누나에 대한

120)김승옥,앞의 책,p.50.

음모 등으로 인한 정서적 손상인 것이다.

윤희는 순수 정서의 표상이다. 윤희누나가 형들의 음모에 휩싸여 순결을 짓밟힌 다는 것은 순수세계나 가치 있는 세계의 파괴를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형들 음모에 동참하고 오히려 한 수 더 뜬 행동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 체 매장에 동참하며 받은 충격이 가져온 혼란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양심 의 통증으로 눈을 감는다.

또한, ‘나’는 유소년의 친구이자 일본으로 피난 간 친구인 미영이네 집을 악 의 장소로 사용한다는데 죄책감을 느낀다.

온 시내에 있는 애들이 모두 들어와서 놀아도 좁지 않을 정도로 단순히 넓다기보다 는 여러 가지로 재미있게 꾸며져 있는 곳이었다. 물이 말라버린 못에는 괴석(怪石)을 이리저리 얽어 붙여서 내 작은 몸뚱이가 들어가 숨을 수 있을 만큼의 동굴 따위가 여 러 개 만들어져 있기도 하고, 문을 열면 또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또 문이 있고 이 렇게 다섯 개의 문이 가지각색 장식으로 꾸며져서 달려 있는 연회색의 커다란 창고가 있고 또 바람이 불어도 그 안에 세운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석등이 서양 사람처럼 큰 키로 서있기도 하고, -중략- 아아, 하루 종일 그 지하실에 틀어박혀 우리들은 얼 마나 가슴 뛰는 놀이들을 하였던가. 애들 중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던 내가 그 지 하실의 백회벽(白灰壁)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면 한 아이는 초 동강이에 불을 켜서 들고 나의 손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불빛을 보내 주었고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부러 움과 감탄의 눈초리로 내가 그리는 그림을 바라보고 그 그림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끄 집어내어서 지껄이며 떠들고 그림을 자기들이 그린 것처럼 아껴주고 다른 마을 애들을 끌고 와서 자랑도 해주곤 했다. 그 중에서도 미영이라는 계집애를 잊을 수가 없다. 내 게 크레용을 갖다 주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연필이나 연필 꽃이를 나누어주던 미영이.

1학년 때 어느 날이었던가, 이상스럽게도 둘만 그 지하실에 남게 되었을 때 나는 자신 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불쑥 미영이를 꽉 껴안아 버렸었다.121)

아아, 모든 것이 항상 그렇지 않았더냐, 하나를 따르기 위해서 다른 여러 개 위에 먹칠을 해 버리려 할 때, 그것이 옳고 그르고 따지기보다 훨씬 앞서 맛보는 섭섭함.

하기야 그것이 <자라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영아, 내게 응원을 보내라. 그건 뭐 간단한 일이다. 마치 시체를 파묻듯이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다.122)

121)김승옥,「건」,『한국소설문학 대계』,동아출판사,1995,p.109-110.

122)김승옥,앞의 책,pp.5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