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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이전기

정부는 9·19 공동성명 이후 이 성명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마련하 는 토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평화번영정책의 기조에서 외교적 해결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자 노력했다.31 주변국가와 협력하여 당면한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 으로 해결하고, 이를 토대로 남북의 실질적인 협력 증진과 군사적 신뢰구축을 실현하며, 북·미, 북·일관계의 정상화를 지원하여 한반 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실마리를 풀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미간의 공조를

30 _외교통상부, 󰡔2006년 외교백서󰡕 (서울: 외교통상부, 2006), pp. 35~36.

31 _이러한 정부의 노력은 2005년 11월 18~19일 부산에서 열린 제13차 APEC 정상회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참가국 정상들은 9·19 공동성명의 채택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의장 자격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는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의 최근의 긍정적인 진전들을 환영하며, 이러한 진전들은 역내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우리 는 6자회담의 추가적인 실질적 진전과 특히 제4차 6자회담에서 만장일치로 채 택된 공동성명의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성실한 이행을 격 려하였다”는 내용의 의장 구두성명을 발표하였다. 아울러 회의기간 내내 한국 은 미·일·중·러 등 6자회담 참가국과의 양자 정상회담, 외교장관회담 및 기타 다자포럼 등을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자회담의 진전에 대한 국제사 회의 폭넓은 지지와 공감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삼았다. 특히 한·미정상회담에 서는 양측이 북핵불용, 평화, 외교적 해결, 조속하고 검증가능한 핵프로그램 폐 기 등 3원칙과 함께 9·19 공동성명을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하 고, 공동성명의 상응조치 이행공약을 재확인했다.

중시하며 북·미간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중 국과 함께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을 위한 중재 역할을 감당했다.

나아가 남북 공동번영을 추구하여 평화통일의 실질적 기반을 조 성하고, 한반도를 동북아의 경제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능주의적 통합이론에 근거하여, 점 진적으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수적인 데, 이를 위해 노무현 정부는 남북간의 경제교류·협력을 차질 없이 진행시켜 나가고자 노력했다. 9·19 공동성명은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 가세했다. 실제로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개성공단 건설과 남 북경협협의사무소 개소(10.28), 그리고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제정·공포(12.29)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북핵문제 가 난항을 겪게 된다. 제5차 6자회담 1단계 회의32 과정에서 돌출된 방코델타아시아(Banco Delta Asia: BDA) 문제33로 북·미간의 갈등 이 재발되고 만 것이다. 이후 북·미 양국간에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 고 후속회담이 계속 지연되자, 정부는 미·일·중·러 등 주요 6자회담

32 _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의 과제는 북핵 폐기 및 상응조치의 시기·방법·절차

등 구체적인 이행계획에 합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첫 회담인 제5차 6자회 담 1단계 회의는 2005년 11월 9~11일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회의에서 는 관련 국간 활발한 의견교환을 통해 상대방 입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 를 마련하였으나, 회의과정에서 북한이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한 미국의 금융관 련 조치문제를 제기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33 _BDA 문제란 2005년 9월 15일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 은 행을 북한의 불법자금을 세탁한 혐의로 미국 애국자법(USA PATRIOT Act) 제311조에 따라 ‘돈세탁 주요 우려대상’(primary money laundering concern) 으로 지정한 것을 말한다. 북한이 이에 반발하며 6자회담 속개를 지연시키자, 미국은 이 금융제재조치가 불법행위로부터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적 조치로서 6자회담과는 별개의 법집행 차원의 문제이며 타협의 대상이 아니 라는 입장을 취했다.

참가국들과 조속한 회담재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나갔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06년 1월 베이징 미·북·중 3자회동, 3월 뉴욕에서 의 미국의 BDA문제에 관한 대북 브리핑, 4월 도쿄 동북아 협력대 화(NEACD: Northeast Asia Cooperation Dialogue)회의 계기에 관 련국간 협의 등이 개최되었다. 특히 3월 뉴욕에서 열린 BDA 관련 브리핑에는 이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참석하였는데, 미국과 북 한 양측은 각기 BDA 관련조치에 대한 북측의 주요 관심사항과 미 국의 상세한 설명을 청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아시아협력대화(Asia Cooperation Dialogue: ACD)를 계기 로 5월 23일 한·미, 한·중, 한·러 외교장관회담을 각각 개최하고, 6월 29일에는 반기문 장관이 미국을 방문하여 주요 인사들과 6자회담 재개 문제를 협의하였다. 또한, 미국·일본·러시아 등과의 외교차관 협의를 연속으로 개최하는 등 6자회담 과정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상황 타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였다.34

한편, 정부는 남북대화를 통한 대북설득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2006년 4월에 개최된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에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함과 아울러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 호혜적 경협구조 창출, 과거청산, 인도주의 문제 실천, 남북협력의 저변 확대 등 다양 한 분야에서 남북간에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 회담에서 북한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에 동의함에 따라 김 전대통령의 방북을 추진하기 위한 실무협의가 5월에 진행되기도 했다.

우리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유관국들이 핵문 제 이외의 문제가 6자회담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34 _외교통상부, 󰡔2007년 외교백서󰡕 (서울: 외교통상부, 2007), pp. 30~31.

는 입장에서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음 에도 불구하고, 대북 금융제재조치 문제를 중심으로 북·미간의 대 립이 심화되면서 6자회담 재개가 장기간 지연 되었다. 이러한 교착 상황 속에서 북한은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 하고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7기의 미사일 발사를 강 행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 등 주변국과 긴밀한 협 조체제를 유지하면서 한반도에서 긴장이 조성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외교채널과 남북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을 경주하였다. 미사일 발사 직후인 2006년 7월 부산에서 개최된 제19 차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유관국가들의 적 극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데 대해 매 우 개탄스럽고 유감이라는 입장을 북한 측에 직접 전달하고, 빠른 시일 내에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이와 함께 유엔 안보리 결의 1695호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조치35에 부응하 는 한편, 국민감정을 감안하여 북한이 제기한 쌀 50만 톤 제공문제 에 대한 논의를 유보하였다.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보류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등 국제사회와 함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한

35 _유엔은 7월 15일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북한에 대한 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물자와 재정적 지원을 금지 하는 안보리 결의 1695호를 안보리 15개 이사국의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주요내용은 ①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행위를 규탄하며 미사일 개발 중지 및 기존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 약속 준수 촉구, ②모든 회원국에게 북한으로 부터 미사일 및 미사일 관련 물품, 재료, 기술을 구매하지 않고 북한에 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재정 자원을 이전하지 않으며 이를 감시할 것을 요청, ③북한의 조건 없는 6자 회담 복귀 및 9·19 공동성명 이행, 핵확산금지조 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협정 재가입 강력 촉구 등으로 이루어졌다.

입장을 견지해 나가는 동시에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기 위한 외 교적 노력도 병행하여 나가는 두 가지 방향의 균형 잡힌 접근을 취 하여 나갔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 정상은 9월 14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6자 회담을 조속히 재개하여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추진해 나가야 한 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회담 재개 및 진전을 위해 6자회담 참가 국들과 함께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을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하 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북한은 2006년 10월 3일 외무성 성명 을 통해 실험 실시 계획을 발표하고, 뒤이어 10월 9일 핵실험을 감 행하는 무모한 행태를 보였다. 북핵 실험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체제 보장 차원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을 반전시키고 북·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반도 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는 물론 국제 비확산 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임과 동시에 6자회담 당사국간 합의한 9·19 공동성명이 요구하 는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였다. 이는 또한 남북한이 1991년에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