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중국의 한반도 정책과 평화경제
평화경제는 물리적이고 조직화된 정치 폭력과의 어떠한 인과성도 가지지 않는 경제 관계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 활동의 전 세계적인 상호의존성 때문에 명확하게 평화 경제로 분류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경제는 단순히 부정적인 평화 인 전쟁의 부재와 연관된다. 이러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와는 다르게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보면 평화경제는 불평등과 정 의의 문제와 같은 구조적인 폭력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94)
전쟁경제에서 평화경제로 변혁하는 과정에서 최종 목표는 단순히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의 부재를 의미하는 ‘소극적 평화경제’가 아니라 그러한 폭력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이 없는 정의롭고 지 속가능한 평화를 지지하는 ‘적극적 평화경제’이다. 따라서 평화경제 를 실현하는 방식도 두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공공연한 물리적 폭 력에 의존하지 않는 부정적 평화경제이다. 두 번째 단계는 평등, 공 정성, 복지와 같은 규범들을 정치‧경제적 삶에 집어넣는 긍정적 평 화경제이다. 이러한 과정은 정량적으로 측정되기 어렵고 정성적으 로 포착될 수 있다. 두 번째 긍정적인 변혁단계는 각각의 상황에서 패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다양한 이익상관자들과 협상하는 것이 고, 이러한 협상은 안전과 경제 성장을 다른 사회‧정치‧경제적 정 의보다 더 우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95)
94) Jenny H. Peterson, Building a Peace Economy?: Liberal peace building and the development-security industry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14), pp. 5~7.
이러한 정의에 따라서 한반도 평화경제를 정의하면 남북한과, 한 반도와 상호의존적인 주변 국가들 사이에 물리적인 폭력이 수반되 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평등하 고 공정한 국제관계를 형성하고, 관련 국가 내부 국민들의 불평등과 불의와 같은 구조적인 폭력이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평화경제를 신한반도 체제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인 경제 협력 공동체의 틀 속에서 볼 수 있다.96) 즉 평화경제는 역내 평화정 착과 함께 남북한과 유라시아 및 태평양 간의 경제적 교류를 단절시 킨 장벽을 해소함으로써 한반도를 중심으로 태평양 해양권과 유라 시아 대륙권이 하나의 경제적 통로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한반도와 중국 동북3성, 그리고 시베리아 극동을 육상 교통‧물류체 제로 연계하는 경제통합을 말한다.97)
신한반도 체제의 핵심전략으로 평화협력과 경제협력이 선순환 구 조를 형성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 평화경제 의 개념이다. 이러한 평화경제의 선순환 관계를 이루는 세 가지 차 원은 남북 관계, 동북아와 아시아 지역, 우리 사회 내부의 차원이다.
특히 동북아 지역의 협력이 남북 간 협력을 촉진‧발전시킬 수 있 다.98)
평화경제의 예상 가능한 사례는 우선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상 이다. 한반도 종단철도를 통해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를 실현한 후
95) Ibid., pp. 7~8.
96) 신한반도체제론은 우리가 자기 운명 결정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분단국가로 살아온 역사를 반성하면서 기존의 동북아 국제질서를 타파하고 남북한 우리 민족이 중심이 되어 평화협력공동체와 경제협력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동북아 국제질서를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97) 2019 KINU 학술회의 자료집, 조한범, “신한반도체제의 비전과 목표,” 2019, pp.
24~25.
98) 임강택, “경제협력공동체 추진 전략과 과제: ‘평화경제’를 중심으로,” 2019 KINU 학술회의 자료집 (2019), pp. 72~73.
에너지‧경제 공동체로 발전하고, 이를 통해 미국을 포함한 다자 평 화안보공동체 형성에 기여한다는 비전이다. 비정치적인 경제 분야 협력이 정치 분야 협력으로 확대되어 간다는 것이다.99)
두 번째 사례는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은 2010년 5‧24조치로 위기를 맞은 후 2013년 가동 중단되었지만 평화경제의 대표적인 사 례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개성공단을 통한 남북 간 경제협력은 평화를 촉진했다. 개성공단은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저임금 노동집 약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는 일반적인 경제특구에 비해 비교우위가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리한 국제환경, 북한의 산업 인프라 부족, 중소기업 위주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가지 고 있는 평화 실현 효과는 남북한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 탈분 단 소통의 장을 촉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반면 평화환경 이 악화되었을 때, 개성공단을 통한 경제협력은 투자자 심리 악화, 수출 판로 문제, 북한의 개혁 후퇴로 인한 투자환경 악화의 영향을 쉽게 받았다.100)
2019년 7월 8일 조선신보에 실린 북측의 개성 공업지구 지원재 단의 김진향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공단 설립의 근본 이유는 ‘평화를 위한 경제협력’이라면서 이를 실제 운영해 나가면 ‘경제를 위한 평
화’도 자동으로 성립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101)
한반도 평화경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평화가 경제를 촉 진하지만 아직까지 경제가 평화를 촉진하기는 힘든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북미 간 협상 결렬,
99) 최용환, “평화협력공동체 실현을 위한 실천과제,” 2019 KINU 학술회의 자료집 (2019), p. 90.
100) 김연철, “한반도 평화경제론: 평화와 경제협력의 선순환,” 북한연구학회보, 제10 권 제1호 (2006), pp. 64~67.
101) 리준식, “지경학적 견지에서 본 조선반도경제의 가능성에 대하여,” 2019 한반도포 럼 발표자료(2019.7.26.).
한반도에서 중미 간 영향력 행사 경쟁 등의 안보적 요인이 한반도 평화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북중 접경지역에서 남‧
북‧중 사이의 경제협력과 무역과 같은 상호의존이 이러한 정치적 문제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즉 평화경제는 무역과 같은 경제관계의 확대가 평화 증진을 가지 고 온다는 경제평화론과는 그 순서에 있어 차이가 있는데,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서 본격적인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평화적 환경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102)
둘째, 한반도 평화경제는 관련 각국의 사회문화 교류에 영향을 받 는다. 즉 남‧북‧중 혹은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한반도 경제 관련 당사국들 사이에 장기적인 사회문화 교류가 이루어지면 경제협력과 교류 역시 활성화되고, 경제협력이 많아지면 사회문화 교류도 늘어 나는 선순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중 사회문화 협력의 범위는 사회는 과학, 기술, 학술, 종 교, 체육, 교육, 언론 등이고, 문화 분야는 미술, 연극, 음악, 무용, 영화 등이다. 남‧북‧중 사회문화 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북한의 개 방 지향적 사회변화, 한민족 사회문화 공동체의 복원, 양자협력의 비효율성 제거, 한중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남‧북‧중 사회문화 협력이 필요하다.103)
셋째, 한반도 평화경제는 세계체제-분단체제-국내체제의 세 개 층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분단체제가 미국 국내의 분열과 미중 경쟁 구도라는 세계체제와 연동되어 있고, 국내 협치와 도 중첩되어 있다.104) 따라서 한반도 평화경제도 세계체제의 미중
102) 임강택, “경제협력공동체 추진 전략과 과제: ‘평화경제’를 중심으로,” p. 74.
103) 정은이 외, 한반도 평화번영과 남북중 협력방안(서울: 통일연구원, 2018), pp.
77~79.
104) 이일영, 뉴노멀 시대의 한반도 경제, (파주: 창비, 2019), pp. 43~44.
경쟁 속에서 중국의 일대일로라는 대전략과 남북한 간 개성공단을 비롯한 경제협력, 그리고 국내적으로 국제협력과 남북한 간 경제협 력을 유도할 수 있는 혁신 정책들이 중첩되고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한반도 평화경제에 관한 중국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첫 째, 한반도 평화경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북한 의 김정은은 통치자로서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확보한 후, 경제 발전 을 위한 주변 환경 조성을 위해 핵 포기를 결심했다. 그리고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에 국제 사회 특히 중국의 경제 제재가 북한에 타격 을 주었기 때문에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 다.105)
따라서 한반도 평화경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이 잃는 것보 다 얻는 것이 더 많은 매력적인 옵션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프로세스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 대를 추구하기 때문에 북한의 개발과정에서 한국, 미국, 일본, 러시 아와 같은 주변국과 경쟁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경쟁이 오히려 북한에게는 더 많은 개발기회를 주기 때문에 비핵화를 통해 하루 속 히 경제발전을 이루려는 북한의 의지도 더욱 커질 것이다.
둘째, 한반도 평화경제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인하는 데 필요한 체계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이 체제안정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반도 평화경 제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은 두만강 지역 개발과정에 서 투자와 개방의 확대로 체제안정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106) 중 국의 북한 개혁개방에 대한 입장은 중국모델을 북한에 수출함으로
105) 진창이, “북핵 문제의 로드맵과 한중관계,” 조성렬 외, 한반도 평화와 중국(서울:
지식공작소, 2019), pp. 180~181.
106) 정은이 외, 한반도 평화번영과 남북중 협력방안, p.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