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EAN이라는 명칭과 동남아라는 지역의 명칭은 국내에서 자주 혼란을 일으킨다. 간단히 정리를 하자면 ASEAN이라는 명칭은 현재 동남아의 10개국을 아우르고 있는 지역협력 기구의 명칭이며, 동남아 라는 명칭은 동남아라고 부르는 지리적 지역 안에 포함된 동티모르를 포함한 11개의 개별 국가 단위를 칭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동남아와 ASEAN은 구별되어 쓰여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점 에 입각하여 여기서는 지역기구인 ASEAN과 한국의 관계를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주의할 점은 어차피 ASEAN이라는 지역기구가 유럽 연합과 같이 고도의 통합단계에 들어선 것은 아니며 느슨한 지역협력 기구이기 때문에 결국 한국과 ASEAN이란 지역기구의 관계는 ASEAN이라는 단일 창구를 통해서 한국이 동남아지역에 있는 개별 국가와의 관계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1989년 ASEAN과 부분대화 상대국의 지위를 획득했다. 이는 한국이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이전에 내부와 한반도에 머물렀던 시각
을 차츰 지역적으로 넓혀나가는 시기와 동일하며, 또 한국이 경제적 으로 동남아지역에 진출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따라서 한국이
ASEAN과 대화상대국 지위를 얻은 것은 이런 정치, 경제적으로
변화된 흐름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부분 대화 상대국 지위에 머물렀던 한국은 1991년 ASEAN의 전면대화 상대국 지위를 획득한다. 이어 1994년에는 ASEAN의 주도로 만들어진
ASEAN 지역안보포럼(ARF)에 가입하고 적극적인 대ASEAN 외교
에 나서게 된다. 특히, 한국의 ARF에 적극 참여는 당시 한국이 안고 있던 안보문제인 제1차 북핵위기와 맞물린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소강상태를 보이던 한‧ASEAN 관계의 새로운 전기는 1997년 경제위기 상황이 시작된 직후 ASEAN이 한‧중‧일 3국 정상을 초청하 여 처음으로 비공식 ASEAN+3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다시 시작된 다. 1997년에 ASEAN+3 회의에 참석한 한국은 이후 김대중 정부
시기에 ASEAN+3 정상회의와 각종 협력 사업에 적극 참여하면서
지역협력을 주도해 나갔다. 이런 관계는 더욱 발전하여 2004년 한국 은 「동남아 우호협력조약」(TAC)에 가입했다. 「동남아 우호협력조약」
은 상호불가침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주요 골자로 하는 것으로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중요한 발전단계 라고 할 수 있다. 또 2004년은 지역기구로서 ASEAN과 한국이 몇 가지 의미 있는 발전을 경험했던 해인데, 「동남아 우호협력조약」 가입 외에도 한국의 대사회상대국 지위 획득 15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과 ASEAN이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고 이의 실질적 이행 을 위한 ‘포괄적 협력 동반자 선언 행동계획’을 발표하여 실질적인 협력의 단계로 진행한다. 이 연장선상에서 2005년에는 한‧ASEAN 간 ‘포괄적 경제협력에 관한 공동선언’이 이어지고, 이후로 한‧ASEAN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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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협정(FTA)를 위한 협상이 이어져 2006년에는 상품 분야
FTA의 서명이, 그리고 2007년에는 서비스 분야 FTA가 각각 합의
되었다.
한‧ASEAN 관계의 또 하나의 전기는 2009년인 바, 2009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과 ASEAN 간의 대화관계 수립 20주년을 기념하 는 해이다. 처음으로 ASEAN 정상이 모두 한국에 모여 대화상대국 수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정상회의를 열어 꾸준히 발전되어 가는 한‧ASEAN 관계의 공고함을 재확인했다.235 또한 태국 차암-후아 한에서 개최된 제12차 한‧ASEAN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ASEAN 10개국 정상들과 관계 증진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 다.236 이처럼 지난 20여 년간 지역기구로서 한국과 ASEAN의 관계 는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왔지만, ASEAN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 려는 중국과 일본의 노력에는 조금 못 미치는 속도를 한국이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은 ASEAN과 ‘전략적 동맹관계’
를 수립했고 그에 따라 양자간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며 최근에는
ASEAN 전담 대사를 임명했다. 그에 비해서 한국과 ASEAN의 관계
는 여전히 포괄적 협력관계에 머물러 있어 고위급 회의에 못 미치는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ASEAN 전담 대사 역시 임명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서 ASEAN과 한국의 관계 발전 속도는 조금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235_청와대, “2009 한‧ASEAN 특별정상회의.”
236_청와대, “제12차 한-ASEAN 정상회의 결과” (2009.10.24).
가. 정치‧안보 분야
정치‧안보 분야에서 한국과 ASEAN 관계의 현주소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될 수 있다. 가장 먼저 동아시아 역내 평화와 안정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ASEAN과 한국의 협력을 주요한 관계의제 로 들 수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ASEAN이라는 지역기구 는 역내 평화와 안정, 그리고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출범했다. 1967년 시작된 ASEAN이라는 지역기구는 당시 동남아지역 의 국가들이 안고 있던 안보문제, 즉 외부로 부터의 위협,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확산되고 있는 공산주의의 위협,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내 국가들 간의 잠재적 갈등에 따른 위협을 관리하고자 출범했다.
1960년대라는 시점은 이들 국가들이 식민지배에서 막 독립을 한 시기로 외부의 간섭에 대해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약한 동남아 국가들이 극도로 민감한 시기였다. 또 196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쟁이 확대되면서 동남아에서 인도차이나 발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갔던 시기이며, 특히 태국은 이런 공산주의 위협 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60년대 초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 그리고 필리핀 과 말레이시아 사이의 불편한 외교관계, 개별 국가들의 소수민족 문제 들로 인한 역내 국가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했던 시기이다.237
이런 배경 하에 탄생한 ASEAN이라는 지역기구는 역내 안정과 안보를 최우선으로 했다. 그 결과로 공산주의 문제에 공동대응하고 역내 국가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 결과 비핵지대화
237_Donald E. Weatherbee, International Relations in Southeast Asia: The Struggle for Autonomy (Lanham: Rowan & Littlefield Publishers, 2005), pp. 6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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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TAC) 등이 선포되었고, 내정불간섭-주권존중의 원리가 ASEAN의 핵심 질서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런 노력은 ASEAN 역내에 궁극적으로 평화 와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고, 이런 평화와 안전은 동남아 국가들의 성장의 원동력이 된 해외직접투자가 동남아로 쏟아져 들어오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동남아 국가들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항상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238
이런 ASEAN의 입장과 한국의 입장이 가장 적절히 조화되는 계기 는 한반도 평화에 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지역의 범위를 확대하여 동아시아 차원에서 보면 현재 가장 첨예한 안보의제이면서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지역이 한반도이다. 한반도 상황의 군사적 전개 혹은 물리적 충돌로의 발전은 한국뿐만 아니라, ASEAN 국가들에게 있어서도 역내 안정과 평화를 바탕으로 한 번영이란 관점 에서 환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하여 한국과 ASEAN은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서 항상 공동의 보조를 취해왔다.239 뿐만 아 니라 ASEAN은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존재하는 유일한 다자안보 협의체인 ASEAN 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을 이끌고 있다. 2009년 6월 한‧ASEAN 특별정상회의 시 ASEAN
238_Richard Stubbs, “ASEAN: Building Regional Coopearation” in Mark Beeson (ed.). Contemporary Soiutheast Asia: Regional Dynamics, National Differences (London: Palgrave, 2005), pp. 216~224.
239_ASEAN+3 계기로 한‧ASEAN 정상회의, ASEAN+3 정상회의 후 발표된 공동성명과 의장성명에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북한 핵의 확산에 대한 우려,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내용으로 ASEAN은 꾸준히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1997년 한‧ASEAN 정상회의 공동선언, 2002년 ASEAN+3 정상회의 의장선언, 2004년 ASEAN +3 정상회의 의장선언, 2005년 ASEAN+3 정상회의 의장선언, 2007년
ASEAN+3 정상회의 의장선언 등이다.
측 의장을 맡은 태국의 아피싯 총리의 언급에도 나타나듯이 역내 안정을 중시하는 ASEAN에게 북한 핵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이의 해결을 위해서 언제든지 ARF를 활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240 현실적으로 창립 당시의 많은 관심과 달리 ARF의 실질적 효능에 대한 의문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유일 다자 안보기구인 ARF는 지금도 그렇지만 향후 중요해질 수 있는 기구이며 따라서 ASEAN과의 협력을 통한 ARF의 적극적 참여 역시 한‧ASEAN 정치‧안보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한‧ASEAN 정치안보 협력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분야는 동아시아 지역 협력을 통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모색이라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지역 협력을 통한 한‧ASEAN 관계의 새로운 국면 전개는 한‧ASEAN 관계에 있어 한국에게 지역 국가 간 역학의 측면에서 중요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동아시아지역 협력의 틀 안에서 전개되는 국제정치적 상황은 한국에게 왜 ASEAN을 중시해야 하는지 한 가지 이유를 더해준다. 동북아의 한‧중‧일 3국과 ASEAN 10개국이 모인 동아시아지역 협력의 구도에서 한국은 애매한 위치, 혹은 취약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정치, 경제, 군사적 대국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또 ASEAN 10개국의 경우 10개 국가가 하나의 ASEAN이라는 단위로 지역협력에 참여하고 있 고 나라 수가 가지는 이점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 이 10개국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중국과 일본이 ASEAN에 다양한 이익과 양보를 제공 하고 있다. ASEAN은 이를 이용한 약자의 외교를 통해 자신의 이익 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구도 속에서 한국은 ASEAN과 같은 수적
240_“한‧태정상, 특별정상회의 공동회견 문답,” 연합뉴스, 2009년 6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