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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념·인종·종교 등을 떠나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안녕과 복리증 진을 위해 노력하는 행위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차원에서, 인 도주의는 어떠한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 것인 가? 이에 대한 답에 앞서, 우리는 인도주의적 차원에 다루어야 할 ‘남 북 간 사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체제경쟁하에서 남북한은 상대로부터의 안보위협을 이유로 구성원 의 자유와 권리를 상당 부분 제약하여 왔다. 세계적 차원에서는 냉전 이 종식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번영을 추구하고 있으나, 아직도 한반도에는 이념적 갈등으로 빚어진 분단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남북 분단으로 야기된 기본권의 침해 중의 하나가 이산가족문제 이다. 가족권은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규약 등 국제인권법에도 명 시되어 있으며, 1949년 체결된 제네바 제4협약(전쟁에 있어서의 민간 인의 보호에 관한 협약)과 1977년 체결된 제1추가의정서에 의하면, 각 국은 ‘전쟁으로 인해 이산된 가족’과 ‘무력충돌의 결과 이산된 가족’의 재결합에 협조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산가족 이외에도 한반도 분단의 가장 큰 희생자는 납북자와 국군

포로들이다. 특히 전쟁기간 동안 자신들의 의지에 반하여 납치된 민간 인과 전쟁포로들은 분단기간 동안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체제하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도록 강요당하여 왔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다 수의 납북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상당수는 북한에 억류된 채 송환되지 못하였다. 남북 간 체제경쟁으로 인해 ‘납치’와 ‘자진입국’의 정황을 공 정하고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안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납치자의 경우 에도 정치적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 족들까지도 ‘부당한 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따라서 이산가족, 납북 자, 국군포로문제의 실질적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만 하는 인도적 과제이다.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등 남북 간 인도적 사안 이외에도, 북한 의 지속된 식량난으로 인한 인도적 위기상황은 우리의 해결 과제이다. 1995년 이후 지속된 자연재해와 경제난은 식량난 악화 및 보건의료체 계의 붕괴를 초래하여 북한 주민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었다. 뿐만 아 니라, 절대빈곤은 개인의 존엄 실현을 저해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1995년 수해발생 이래 북한의 인도적 지원요청으로 북한의 식량난이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되면서,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는 북한 주민의 고 통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을 추진하여 왔다. 이는 단순한 인도적 차원을 넘어서서 동포애를 구현하고 남북 간 화해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대북 지원을 추진하면서,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등 남북 간 인도적 사안 해결을 위한 협의를 지속하여 왔다. 지원 초기에는 북 한의 식량난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인해 대북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 및 방법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제기되어 왔으나, 점차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도적 지원’의 개념과 원칙, 목표 및 추진 방안에 대한 견해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매우 큰 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북의 군사적 대치상황에서 북한은 통일을 이루어 가기 위해 ‘협력 해야 할 상대’이면서 동시에 ‘주요 안보위협’이다. 따라서 인도적 사안을 포함하여 남북관계에서 파생되는 모든 영역에서 정치적인 고려가 우선 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분단기간 상호대립과정에서 누적된 불신과 적대의식으로 인해 북한의 인도적 위기상황에 대한 평가와 대응방안과 관련해서도 첨예한 논란이 발생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는 대북지원을 정치적 차원에서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고, 민간의 대북지원도 정부가 허용하는 범주 내에서 추진하 도록 제한하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대북 지원운동을 ‘이적행위’, ‘무책 임한 행위’, ‘철없는 행동’으로 비판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민간 단체들은 대북지원운동의 의미를 단순히 인도주의 차원에서만 머무르 지 않고 민족화해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 및 통일운동임을 강조하였다. 인도적 지원은 인도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정치적 중립성·형평성·독 립성을 기반으로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무상지원으로 규정되어 왔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지원은 정치적 도구로서 기능해 왔고, 인도적 지 원의 중요한 원칙인 정치적 중립성의 유지는 끊임없이 도전받아 왔다. 더욱이 ‘신인도주의’ 개념의 등장과 함께, 국제사회는 ‘인도주의의 정 치화’, ‘대외원조의 외교정책 통합’을 일반적인 경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은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

하였다. 6·15 공동선언 제3항은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과 친척

들을 교환하고, 비전향장기수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 한다.”라 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의 이행이라는 차원에서 이루 어진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주소 확인, 서신 교환, 비전향장기수 의 송환 등은 이산가족들에게 희망과 동시에 새로운 아픔과 좌절을 안 겨 주었다. 이는 정부가 상봉의 정례화와 교류의 제도화를 끌어내고자

노력하여 왔으나, 남북 간 대화 중단 등으로 인해 이산가족들의 기대 와는 달리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협력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사업이 일정 기간 지속되면서,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정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까지 북한 사회에서 소외계층으로 차별 받아 온 이산가족(월남자 가족)들의 위상이 변화되기도 하였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도 분단과정에서 월북자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이산가족들 이 발생한 상황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 는 상봉행사를 통해 오랜 이산을 통해 형성된 다른 삶의 모습 등 이산 가족문제의 현실을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할 수 있었다. 상봉대상가족 이 부모와 자식과 같이 직계가족인 경우에 재정지원 등 적극적인 교류 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의 시간적 절박성을 보여 주었다. 이산가족 문제가 남북관계의 진전에 중요한 함의를 지님에도 불구 하고, 이제까지 이러한 측면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여왔다. 즉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이 가장 가시적으로 표출되는 사안이 바로 이산가족의 교류이며, 이는 이산의 당사자가 아닌 경우에게도 남북이 화해와 협력 을 지속해 나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인식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 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 당국 간의 대화와 협상 을 통해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에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정부는 납북자 문제와 국군포로 문제를 각각 ‘자국민 보호’,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라는 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의 기본적 책무로 상정하고, 남북 간 대화와 협력과정에서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 여야 한다. 남북 간 협상 결과 국군포로와 전시납북자의 경우에는 ‘전 쟁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라는 용어로 생사확인 문제에 합의하게 되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상봉을 성사

시키는 한편, 정부는 귀환 국군포로에 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귀환 한 국군포로에 대한 보상과 정착지원을 실시하여 왔다. 2005년 제15차 장관급회담(2005.6.21~ 24)에서는 남북한 당국은 “전쟁 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생사확인 등 인도주의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합의(공동보도문 3항)하였다. 제16차 장관급회담(2005.9.13~16)에서 도 ‘전쟁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생사확인 문제를 적십자 회담에서 계속 협의·해결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제17차 장관급회담

(2005.12.13~16)에서도 납북자·국군포로문제 해결 관련, 2006년 2월

안으로 적십자회담을 개최, ‘상호 관심을 갖는 인도주의 문제들’을 협 의·해결키로 합의하였다. 제7차 적십자회담(2006.2.21~ 23)에서 남북 은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의 생사확인’ 협의에 합의함으로써, 전후 납북자문제가 남북회담의 정식 의제로 논의될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으로 인한 주민의 생존권 위협상황을 주목하 면서, 이를 개선시켜나가기 위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여 왔다. 정부는 식량난·경제난의 장기화로 영양부족 및 발육상태 부진이 심각 한 북한 영유아에 대한 인도적 대북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였다.

2006년부터 WHO, UNICEF 등 국제기구 및 국내 민간단체를 통한 영

유아지원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어린이 영양 개선은 장기적으로 통 일한국의 인적자본을 형성하는 데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인 한 잠재적인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북 한의 모성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모자보건사업은 보다 적극적인 지원 이 필요한 분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