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에서는 미국이 정치적‧경제적 대외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FTA 와 RTA 같은 특혜무역협정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왔는지를 살펴보고 FTA와 관련한 최근의 미국의 전략을 살펴본다. 2차 세계대 전 이후 냉전시기동안 미국은 비차별적인 다자 세계무역질서의 수립 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정치, 안보적 필요에 의해 유럽 및 아시아 국가 들이 차별성을 특징으로 하는 지역무역협정과 발전전략을 채택하는 것을 용인하였다. 미국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FTA를 자국의 대외경 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0 년대에는 FTA를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비차별적인 다자 세계무역질 서 수립의 징검다리로 활용하였던 반면, 2000년대에는 정치, 안보적 이익실현을 위해 FTA를 ‘안보화’하였다. 미국의 경제적 위기가 심화 되고 있는 최근에는 FTA의 경제적 효과와 전략적 효과를 동시에 고 려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가. 다자 세계무역질서 원칙과 전략적 예외 추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비차별적인 다자 세계무역질서 수립에 앞 장서왔다. 이는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시기에 국가들이 취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되었다는 미 국의 인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후 GATT의 설 립을 주도하고 이를 통해 자유, 비차별의 원칙에 기반을 둔 전후 세계 무역질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냉전기 미국의 군사, 안보적 필요에 의해 종 종 무시되어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수립을 위한 미국의 지
44 한국의 FTA 전략과 한반도
정학적 목표는 두 가지였다.47 첫째는 소련과 공산주의 확장을 억제하 는 것이며, 둘째는 이를 위해 소련의 확장을 봉쇄할 수 있는 대항세력 거점을 전 세계에 걸쳐서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전략목 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자신들의 대외경제적 수단을 활용하였으 며, 이 과정에서 미국이 추구하고 있던 비차별적인 다자 세계무역질서 의 원칙은 종종 훼손되었다. 특히 미국은 유럽이나 아시아의 국가들이 비차별적인 다자 세계무역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지역무역 협정 혹 은 발전전략을 취하더라도 이를 용인하였다. 이는 자본주의 진영에 속 해 있는 국가들 사이의 협력을 촉진하고, 이들 국가들의 경제적 재건 혹은 성장을 촉진하여 자본주의 국가들의 세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공 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반영한 것이었다.48 2차 세계대전이후 유럽에서는 외부 국가에 대한 차별성을 특징으로 하는 지역주의가 발전하였다. 미국은 유럽지역에서의 지역주의 성장을 용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미
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경제재건을 돕기 위해 마샬플랜
(Marshall Plan)을 제안하면서 유럽의 경제재건을 위한 계획을 유럽 인들 스스로 협의하여 공동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촉구함과 동시에 서 독의 경제재건과 유럽으로의 복귀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유럽 국가들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형성하는 밑거름 이 되었다. 또한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이 1957년 석탄철강공동체를 유 럽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 EEC)로 전환하였을
47_미국의 지정학적 목표에 대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John L. Gaddis, Strategies of Containment: A Critical Appraisal of Postwar American Security Polic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0).
48_John Ravenhill, “The Study of Global Politics and Economy,” p. 191.
Ⅰ
Ⅱ
Ⅲ
Ⅳ
Ⅴ
Ⅵ
Ⅶ
때에도 이를 지지하였다. 유럽경제공동체가 GATT의지역무역협정 조 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산 상품에 대한 차별적 조치 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유럽에서 소련과 체제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미 국으로서는 자본주의 진영의 세력을 강화하고 동맹을 공고화하기 위 해서 지역무역협정을 지지하였던 것이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국 중심의 반공 전 후 질서(American-centered Anti-Communism Post-War Order)’
를 구축하고자 하였다.49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등과의 강력한 군사 양자 동맹을 바탕으로 ‘허브 앤 스포크(Hub-and-Spokes)’ 체제를 구축하여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50 미국은 이들 국가들과의 동맹관계 를 강화하기 위하여 군사적 원조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수단을 적극적 으로 활용하였다. 미국은 한국과 대만에 상당한 양의 경제적 원조를 제공함과 동시에,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의 국가들에 대한 시장 개방 요구 없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인 미국 시장을 개방하였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무역 특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 였다.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보호무역 정책을 통해 자국의 기업과 시장을 보호함과 동시에, 자국 상품의 미국 시장 수출을 장려하 는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을 통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49_G. John Ikenberry, “American Hegemony and East Asian Order,” Australian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 Vol. 58, No. 3 (September 2004), p. 355.
50_미국이 왜 유럽과 동아시아에 각각 다른 정책을 취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다음을 참조.
Mark Beeson, “Rethinking Regionalism: Europe and East Asia in Comparative Historical Perspective,” Journal of European Public Policy, Vol. 12, No. 6 (December 2005), pp. 969∼985; Christopher J. Hemmer and Peter J.
Katzenstein, “Why is there no NATO in Asia? Collective Identity, Regionalism, and the Origins of Multilateralism,” International Organization, Vol. 56, No. 3 (July 2002), pp. 575∼607.
46 한국의 FTA 전략과 한반도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러한 대외경제정책은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 경제모델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일본을 시작으로 뒤이
어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이 채택한 개발국가 경제모델은 미국이 지 향하는 시장 중심의 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위협하는 것이었지만 미 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안보이익을 위해 이를 용인하였다.
나. FTA 추진과 세계무역질서 조화 추구
냉전시기 동안 미국이 안보적 필요에 의해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차별적 무역 정책을 용인하였지만 미국 스스로는 비차별적인 다자 세계 무역질서 수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특히 GATT 차원에서
‘케네디 라운드(Kennedy Round: 1963-1967)’, ‘도쿄 라운드(Tokyo Round: 1973-1979)’와 같은 무역 협상을 주도하며 전 세계적으로 관 세를 낮추고 차별 무역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1980년대 초를 기점으로 크게 바뀌게 된다. 1982년 미국 무역 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 브록(William Brock) 대표는 미국이 지역무역협정에 참여할 의지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이런 변화는 두 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51 우선, 세계 무역자유화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이 GATT 체제하에서 주 도하였던 여러 차례의 다자무역 협상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 미국의 정책 변화를 촉진했다. 보다 직접적인 요인은 유럽 공동체의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이 초래한 무역 질서의 왜곡과 그로 인한 무역마찰이었다. 1950년대 식량 을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상당량을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했던
51_John Ravenhill, “The Study of Global Politics and Economy,” p. 192.
Ⅰ
Ⅱ
Ⅲ
Ⅳ
Ⅴ
Ⅵ
Ⅶ
유럽은 역내 농업생산성 증대를 위해 공동농업정책을 도입하였다. 공 동농업정책의 주요 내용은 국제가격보다 높은 역내 가격을 설정해 생 산을 촉진하고 농산물의 해외시장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수출 보조금 을 지급하며 수입 농산물에 대해서는 국내 농산물과 가격이 동일하게 형성될 수 있도록 수입부과금을 매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동농업정 책의 수출 보조금 등에 힘입어 유럽은 1980년대 세계 농산물 시장에서 점유율을 급속히 확대할 수 있었다. 이는 곧 주요 농산물 수출국이었 던 미국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유럽과 미국의 무역마찰을 야기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FTA와 지역무역협정에 적극적으 로 나서면서 유럽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고 동시에 유럽에 자유무 역을 압박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책변화와 상응하여 미국은 1985년 이스라엘, 1989년 캐나
다와 FTA를 체결하였다.52 1994년에는 기존 캐나다와의 FTA를 확
대하여 멕시코를 포함하는 NAFTA를 발효하였다. 특히 NAFTA는 미국이 개발도상국과 체결한 최초의 FTA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또한 1994년에는 NAFTA를 확대하여 남미 국가들을 포함시키는 미
주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of Americas)을 2005년까 지 설립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였다.
미국의 FTA의 적극 활용의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나타난 다. 미국은 일본과 호주가 주도적으로 창설하였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 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에 적극 참여하였 을 뿐만 아니라 APEC을 신자유주의 무역과 경제를 논의하는 공론의
52_미국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이유는 중동 지역에 홀로 고립되어 있던 동맹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국내에 강력한 정치 로비 세력의 뒷받침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반면 캐나다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로 경제 산업구조가 미국의 국내 산업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48 한국의 FTA 전략과 한반도
장으로 적극 활용하였다. 호주와 일본의 원래 의도는 APEC을 통해 아 시아-태평양 국가들의 지역 경제협력을 촉진하는 것이었으나, 미국은 APEC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무역자유화를 위한 수단으로 도구화하 였다.
미국이 1990년대 초반 체결한 양자 FTA와 RTA는 미국이 GATT 체제하에서의 다자무역 협상만을 고집하였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났음 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미국이 지속적으로 추구하여 왔던 비차별적인 다자 세계무역질서 수립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 니었다. 오히려 미국은 양자 FTA와 RTA를 세계적 무역자유화를 촉 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이제 더 이 상 FTA나 지역무역협정을 비차별적인 다자 세계무역질서 수립의 걸 림돌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어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과 부장관을 역임했던 서머스(Lawrence H. Summers)는 일방, 양자, 삼자, 다자 등 모든 측면에서 무역 장벽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세계적 차원에서의 무역자유화가 가장 바람직 하겠지만 지역적 차원에서의 무역자유화도 좋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 다.53 즉 무역자유화에 기여만 할 수 있다면 방법에 구애받지 않겠다 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행위는 오히려 미국이 주도하였던 다자무역질서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54 비차별적인 무역자유화와 GATT/ WTO를 통한 세계무역규칙 제정을 주도하였던 미국이 양자 FTA를 체결하고 지역
53_Lawrence H. Summers, Symposium Report of the Federal Reserve Bank of Kansas (Wyoming, 1991), p. 296.
54_Ann Capling, “Preferential Trade Agreements as Instruments of Foreign Policy: An Australia-Japan Free Trade Agreement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Asia Pacific Region,” Pacific Review, Vol. 21, No. 1 (March 2008), pp. 2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