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쳐야 비로소 美國이 보인다
국제관광학과 남상민
Ⅰ. 서론
미국으로 오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나의 생활들은 짜여 진 대본처럼 하루하루 가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신라대학교 홍보대사로 활동을 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대 내외 활동을 하다보면서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나라는 사람의 성격보 다는 홍보대사 부회장이라는 사람의 성격으로 1년을 살아왔다.
내가 받은 일들은 120% 이상 완수해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늘 초조하고 바쁘 게 살아왔다. 모든 것이 힘이 들어질 때쯤에 나는 어릴 적 꿈으로만 생각하고 간직해왔던 유학에 대해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취업을 나가는 바쁜 4학년이 되기 전 유학을 떠나자 라는 생각으로 망설임 없이 모든 걸 내려놓고 유학을 준비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지원한 다음부터 출국하는 날까지 오로지 영어 회화에 매달렸다. 미국으로 출국을 하기 몇 주일 전 나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미국에서 어떻게 공부해야할까? 많은 단어를 못 외웠는데 회화에는 문제가 없을까? 그곳의 생활들은 어떨까? 회화에만 매달린 내가 잘 못 된 건 없을까? 라는 수많은 고민을 하다 보니 이 걱정들이 오히려 나의 발 목을 잡아버리게 된 것 이였다. 이런 고민이 채 해결되지 않은 채 미국으로 출 국을 했다.
Ⅱ. 미국인으로 살아보자
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나는 영어를 배우는 것 외에도 미국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 깊이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래서 처음 온 순간부 터 나와의 다짐을 했다. ‘미국문화의 복사기가 되어보자.’ 우선 외형적인 것부 터 시작해 생각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영어의 악센트까지 모든 걸 따라 할려고 노력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 복사기 같은 행동들이 나를 더욱 더 성장 시켰다 는 걸 어학연수가 끝난 지금 느끼게 되었다.
Ⅲ. 친구를 사귀기 위한 나만의 시간들
함께 온 친구들 모두 외국인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친구 를 만들어 갔다. 하지만 어학원이라는 특성상 UCO대학교 학생들과 만날 기회 가 많이 없으니 친구가 되는 일은 상당히 어려웠다. 고민을 했다. 가뜩이나 여 름방학이라 학교에 학생들이 많이 없는데 어디로 가면 미국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정답은 간단했다. 학교에 있는 헬스장으로 찾아갔다. 나 역시 운동 을 좋아해서 헬스장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나는 미국에 있으면서 텐트와 캠핑 용품 등을 구입하는데 제법 많은 돈을 투 자했다. 이유는 유학원에서 있는 엑티비티 말고 반대로 내가 엑티비티를 만들 어서 친구들을 초대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결과적으로 캠핑이 대 박이 나서 유학원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인근 아카디아 호수로 가 바비큐 파 티와 함께 캠핑을 진행했다. 미국 사람들 중에서도 텐트가 있는 사람이 많지가 않기에 새로 생긴 친구가 있을 때 마다 캠핑장으로가 시간을 보내고 더 깊은 친구관계를 형성 할 수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이 캠핑장비 들을 어떻게 챙겨오나 제일 걱정이 컸다.
Ⅳ. 더 넓은 미국으로 여행기
1.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
2. 요세미티 국립공원 (Yosemite National Park) 3. 라스베이거스 (Las Vegas)
4. 그랜드 캐니언 (Grand Canyon) 5. 텍사스 (Texas)
6. 캔자스 (Kansas) 7. 위치타 (Wichita)
이번에 미국을 함께 갔던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들이다.
우리 모두는 짧은 4달이라는 미국생활을 좀 더 깊은 미국을 경험하고 싶어 했 고 결과적으로 학업과 함께 병행하면서 정말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미국의 수 많은 주 곳곳으로 떠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문화를 겪으면서
또 한 번 성장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였다.
Ⅴ. 현지 친구들과 남긴 추억들
현재 어학연수를 마친 지금 나에게는 수 많은 미국인 친구들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들을 몇 명 소개시켜 준다면 투안이라는 친구와 후탄이 라는 친구 그리고 기숙사 지미 사장님이 계신다.
투안이라는 친구는 미 육군을 제대한 베트남계 미국인 친구다. 처음 투안과 만 나게 된 계기가 헬스장에서 만나게 된 인연이 였다. 한창 미국인처럼 살아보고 싶어서 머리도 길게 기르고 수염도 기르고 있던 자유분방한 시기에 투안이 먼 저 워킹데드의 동양인같이 생겼다는 인사와 함께 친해졌고 우리는 곧 우리만 의 공통점을 찾아갔다. 둘 다 군대를 전역했고 야외 엑티비티 활동을 좋아한다 는 점을 알아냈다. 몇일 뒤 투안과 함께 사격을 하러 야외 사격장으로 놀러갔 다. 미 육군 출신 투안은 소음기와 스코프가 장착된 M4소총 2정과 글록 권총 2정을 준비해 왔고 우리 서로는 능숙하게 소총을 다루면서 실제 사격훈련을 방불케 하듯 둘만의 사격에 푹 빠져있었다. 그로부터 몇 일후 투안과 투안의 친한 친구들과 함께 3시간 가량 떨어져있는 장소로 레프팅을 타러갔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여기는 레프팅을 하면서 노를 젓지 않는다. 강이 워낙 길 기 때문에 준비해온 맥주와 음식들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보트에 실고 다녔다.
보트위 넓은 강에서 수백명의 사람들과 파티를 즐겼다.
또 다른 친구 후탄은 한국 연세대학교에서 2년간 홍보대사를 하며 교환학생을 한 친구였다. 그는 이란계 미국인으로써 그 또한 헬스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이가 동갑인지라 그와는 정말 절친한 친구처럼 늘 함께 운동하면서 오클라 호마 시내를 놀러 다녔다. 내 친구 후탄은 나의 수호천사처럼 내가 미국에서 힘들거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마다 나서서 도와주곤 했다.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좋은 사람들만 만나 좋은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어서 정말로 감사드린다.
이외에도 많은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있지만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없기에 마음속으로만 간직해본다.
Ⅵ 모두가 한국으로 떠난 후 시작된, 나만의 미국생활 ‘후반전’
이 내용들을 읽다보면 알겠지만 나는 현재 어학연수생이라는 신분을 마치고 자비교환학생의 신분으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도 이번 결정은 쉽지가 않았다. 끝나가는 어학연수 시간을 보면서 고민을 되게 많이 했 었다. 늘어가는 영어실력과 친구관계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 더 알아가보고 싶 은 생각이 되게 컸다. UCO 자비교환학생을 하기위해서 어학연수가 끝나기 한 달전 부터 준비를 했었다. 정말 혼자 준비한다는 것이 힘이 들기도 했지만 내 가 하고 싶은 목표가 있기 때문에 나는 즐겁게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를 했고 결국에는 자비교환학생에 합격을 했다. 원래 전공인 관광학과가 아니라 여기서 는 마케팅학과에 지원을 했다. 어학연수와는 또 다른 차원의 삶이 기다리고 있 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 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것을 다짐한 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쉴 새 없이 미국생활에 적응을 하면서 살아 온 나이지만 가끔은 혼자 외로울 때가 있다. 하지만 나를 지켜봐주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있기에 머나먼 미국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 않나 싶다.
이 부족한 체험수기를 보면서 해외 어학연수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여러 고민 생각하지 말고 떠나라, 인생에는 정답이 없듯이 또 다른 기회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