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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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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新聞 속의 인천 해제

1883년 개항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전면에 등장한 인천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실제 1세기 이상에 걸친 시기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매우 주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 한 예로서 오늘날 ‘한국 최초, 인천 최고(最古)’라는 표제(標題)로 널 리 회자되는 각종 사안들이 개항 이후 모조리 인천을 현장으로 해서 이루 어진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 같은 인천의 역할과 위상을 설명한다고 할 것 이다. 이것은 물론 수많은 국사(國史) 기록과 사료(史料), 사재(史材) 등을 통해 규명되고 정리된 것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말하는 국사 기록과 사료, 사재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사실 자료의 하나가 신문기사 같은 종류이다. 당시 신문기사들은 우리 사회 제 분야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개항 후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각종 신문들의 기사 혹은 광고 형태로 활자화된 ‘인천’ 관련 자료들을 최초로 집성한 자료집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물론 그동안 여러 향토사학자, 연구자들이 단편적이나마 이에 대한 연구 가 이루어지고 향토사학계나 세간에 그 결과가 발표되어 온 것은 사실이 나, 어디까지나 집필자의 안목에서 취사선택된 것들뿐이어서 실제 그 전체 적이고도 온전한 자료의 원 모습과 세세한 사정(事情)은 알 수 없었던 것 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저간의 향토사 연구의 형편은 자료의 부족과 기술(記述)의 미 흡을 초래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인천광역시 시사편 찬위원회와 역사자료관에서는 차제에 인천 관련 기초 자료 총람(總覽)을 편찬키로 뜻을 모으고, 그 1차 사업으로서 개항 후 한국인 독자를 대상으 로 국내외에서 발행된 모든 신문을 대상으로 그 지상에 게재된 인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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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원문 그대로 망라한 자료집을 발간하는 데 이른 것이다.

이 사업의 목적은 향토사학자, 연구자는 물론 학계와 관심 있는 시민 제위에게 요긴한 자료집으로서 공(供)함에 있다. 특히 인천 역사의 주요 부분이 대부분 축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근현대사 속의 인천 의 면목을 수월히 일별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도 부차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 발간되는 첫 자료집을 비롯해 향후 연속할 자료집으로 인천 향토사의 기초 연구의 증진과 기록에 있어 그 지평이 크게 확장되리 라는 기대를 갖는다.

서두에서 피력한 대로 인천은 수도 서울의 인후(咽喉)라는 지정학적 위 치로 인해 개항에서 일제 강점기 이르기까지 수도 서울을 제외하고는 신 문을 통한 기사 게재 빈도가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였다. 따라서 그 양은 실로 방대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까닭으로 이번 1차 사업의 범위는 부득이 일부 신문에 국한되었다.

우선적으로 신문 발행 순서에 따라 한성순보(漢城旬報, 1883~1884), 한성주 보(漢城周報, 1886~1888), 독립신문(獨立新聞, 1896~1899) 협성회회보(協成 會會報, 1898~1898), 황성신문(皇城新聞, 1898~1906), 대한매일신보(大韓每 日申報, 1904~1910)가 그 대상이었음을 밝힌다.

관련 기사의 추출(抽出)은 신문 게재 빈도에 따라 인천, 제물(포), 부평, 강화(강도, 심도), 교동, 월미도, 화도진, 인천감리, 인천해관, 인천영사관, 세 창양행, 덕적도, 백령도, 영종도, 인천 물치도 등을 주 검색어로 사용하였다.

기사 정렬은 검색어에 의해 추출된 기사를 각 신문별로 게재 일자 순서대 로 하였으며, 여기에 기사 제목과 신문의 면(面)과 단(段)의 수를 표시하였다.

각주는, 예를 들어 ‘세창양행’ 광고처럼 동일한 내용의 광고가 반복해서 등장할 경우에 한해서 최초의 광고 원문만 본문에 게재하고 각주에 그 각 각의 날짜를 표시하여 본래 원문이 생략되었음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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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고신문 속의 인천[상]

한성순보 5

한성주보 89

독립신문 127

협성회회보 345

(5)

한성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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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순보

1883년 10월 31일, 三港監理, 2면 1단

동월 19일 通商衙門에서 현재 通商하고 있는 세 항구의 海關 사무에 관 하여 大員을 전임 파견하는 것이 옳겠으니 行護軍 趙秉稷을 監理仁川通商 事務로, 副護軍 李金憲永을 監理釜山通商事務로 하고, 元山은 사무가 아직 복잡하지 않으니 德源府使 鄭顯奭이 監理를 겸임하도록 할 것을 청하니,

󰡔그렇게 하라』하였다.

1883년 10월 31일, 仁川, 4면 1단

仁川이 옛날에는 묵은 염전지대였는데, 開港 후로는 무뢰배들이 몰려들 어 도둑질이 매우 심하므로 畿伯이 현재 譏校를 풀어 단속도 하고 잡기도 한다고 하지만, 아직 도둑 한 명을 체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대체 로 항만 사업이 초창기여서 상거래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다. 監理 趙秉稷이 지금 巡捕를 두고 완전 소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1883년 11월 10일, 獨逸 專權大臣이 서울에 옴, 7면 1단

동월 27일 辰時에 德國(獨逸)의 전권대신 겸 總領事 擦貝(차폐 Eduard Zappe)가 서기 두 명, 수행원 두 명, 從者 세 명을 거느리고 仁川港에 도 착하여 그날로 陸地에 내렸고, 같은 날 英國의 전권대신 巴夏禮(파크스 Harry Parkes)도 서기 두 명, 수행원 두 명, 종자 열두 명을 거느리고 역 시 육지에 내려 獨逸 公使와 함께 그날로 上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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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1월 10일, 英國領事官入京, 4면 1단

동월 16일 英國領事官 阿須頓(애스턴 Aston, W.G.)이 從者 한 명과 什 物 한 짐을 싣고 濟物浦에 정박하였다가 18일 서울로 들어왔다.

1883년 11월 20일, 仁川監理狀啓, 3면 1단

동일 인천감리 趙秉稷이 아뢰기를 󰡔지난 달 20일 仁川府에 도착하여 21 일 濟物浦 海關에 나가 稅務司 史必麟과 日本領事官 小林端과 함께 居留 地를 한 바퀴 돌면서 처리해야 할 모든 안건을 상의하여 결정한 후, 일본 商民들을 불러 아직 남은 租地를 公賣에 붙였으나 아직은 願買者가 없습 니다. 이번에 새로 정한 법은 租地를 公賣한 값의 5분의 1은 조약에 따라 당일 즉석에서 받고, 나머지 5분의 4와 地契 작성에 소요된 경비는 역시 조약대로 10일의 기한을 정하여 완전히 받아들인 후, 地契와 함께 租界의 圖形, 그리고 米突(미터) 수를 적은 것을 교부하기로 하였습니다. 公賣한 日本人 성명과 보관한 存備金과 任置한 돈을 낱낱이 成冊하여 올려보내고, 보존해야 할 地契 23건은 아직 本署에 留置하였음을 馳啓하옵니다』하였다.

1883년 11월 20일, 仁川港居留地의 日本商人 租界競賣簿, 3면 1단

제1호: 2米突(미터) 평방짜리가 모두 65개이다. 매 2미터 평방의 정가는 4 냥 5전으로, 65개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모두 2백92냥5전이다.

제2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5냥으로 2호의 총액은 3백25냥이다.

제3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6냥2전5푼으로 3호의 총액은 4백6냥2전5푼이다.

제4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5냥7전5푼으로 4호의 총액은 3백73냥7전5푼 이다.

제5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4냥으로 5호의 총액은 2백60냥이다.

제6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3냥인데 6호의 총액은 1백95냥이다.

제7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3냥7전5푼으로 7호의 총액은 2백43냥7전5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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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4냥인데 8호의 총액은 2백60냥이다.

제1호부터 제8호까지는 각각 65개이다.

제9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3냥5전으로 9호의 총액은 1백90냥7전5푼이다.

제10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7냥으로 10호의 총액은 3백81냥5전이다.

이상 9호와 10호는 각 54미터 반씩이다.

제11호: 2미터 평방짜리가 모두 1백30개인데 매 2미터 평방의 정가는 5냥 으로 11호의 총액은 6백50냥이다.

제12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8냥7전5푼으로 12호의 총액은 5백68냥7전5 푼이다.

제13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4냥으로 13호의 총액은 2백60냥이다.

제14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4냥으로 14호의 총액은 2백60냥이다.

제15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4냥5전으로 15호의 총액은 2백92냥5전이다.

제16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2냥7전5푼으로 제16호의 총액은 1백78냥7전 5푼이다.

이상 12·13·14·15·16호는 각 65개씩이다.

제17호부터 21호까지는 買入하려는 사람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기 때문 에 地價를 적지 않았다.

제22호: 2미터 평방짜리가 모두 1백30개인데 매 2미터 평방의 정가는 4냥 2전5푼으로 22호의 총액은 4백87냥5전이다.

제24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4냥2전5푼으로 24호의 총액은 2백12냥5전이다.

제25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4냥2전5푼으로 25호의 총액은 2백12냥5전이다.

이상 24호와 25호는 각각 50개씩이다.

제29호: 2미터 평방짜리가 모두 1백 개인데 매 2미터 평방의 정가는 7냥 으로 29호의 총액은 7백냥이다.

제30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5냥으로 30호의 총액은 2백50냥이다.

제31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3냥7전5푼으로 31호의 총액은 1백87냥5전이다.

제32호: 2미터 평방의 정가는 3냥5전으로 32호의 총액은 1백75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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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30·31·32호는 각각 50個씩이다.

이상 23호 및 26호에서 28호까지는 지금까지 買入하려는 자가 없기 때 문에 가격을 적지 않았다.

이상 총 23호의 미터수의 총계는 1천5백64 평방 미터이며, 地價의 총액 은 7천3백63냥5전이다.

상고하건대 미터는 프랑스의 자(尺) 이름인데, 1미터는 우리나라 曲尺 3 尺3寸에 해당한다. 즉, 2미터 평방은 곡척 6尺6寸으로서 6尺6寸에다 6尺6 寸을 곱한 면적으로 우리 곡척으로 4백35尺6寸이다. 일본 사람의 이름은 번다하여 기록하지 않는다. (註: 번역은 原文에 충실했으나 수자상 의문이 있음)

1883년 11월 20일, 沁留狀啓, 2면 1단

동일 江華留守 金允植이 장계 올리기를 󰡔臣의 營에서 관리하는 別抄軍 官·勸武軍官 등의 壬午년 秋等과 癸未년 春·秋等 도합 세 等의 都試와 신설한 병정의 砲都試와 소속된 四營 砲士의 每秋 砲都試를 本월 7일 開 場하여 試取할 것을 삼가 아뢰옵니다󰡕하였다.

1883년 11월 20일, 沁留農形狀啓, 2면 1단

동일 강화유수 김윤식이 장계 올리기를 󰡔本府의 농사 상황이 봄에는 비 가 고루 내렸으므로 갈고 씨앗 뿌리는 것을 제때에 하였사오나, 4월 이후 로는 줄곧 가물어서 기우제를 올리고 나서야 늦게 비가 내려 모내기를 제 때에 못했었는데, 7월로 접어들면서 가뭄이 더욱 극심하여 田穀과 水農이 겨우 큰 흉년을 가까스로 면하게 되었음을 삼가 아뢰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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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1월 30일, 內衙門草記, 3면 1단

동월 20일 내아문에서 초기하기를 󰡔仁川항구는 많은 사람과 많은 물자 가 모이는 곳이니 살피고 단속하는 기관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곳 府使에 게 討捕使를 겸임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니, 程式을 정하여 비답하시 기 바랍니다󰡕하니, 답하기를 󰡔그렇게 하라󰡕하였다.

1883년 11월 30일, 內衙門草記, 3면 1단

동월 19일 內衙門에서 草記하기를 󰡔현재 주조된 當五錢이 그 숫자가 너 무 많아 子錢·母錢을 혼용하는 형편이니, 별다를 程式을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當五錢은 典圜局에서만 주조하게 하고, 그밖의 다른 鑄所에서는 모두 葉錢을 만들게 하소서. 혹 어기는 곳이 있으면 발견되는 즉시 처벌한다는 뜻을 우선 서울의 鑄所에 엄히 알리고, 나아가 그 뜻을 三懸鈴으로 江華留守·平安監司·義州府尹에게 알리소서󰡕하니, 답하기를

󰡔그렇게 하라󰡕하였다.

1883년 11월 30일, 統禦使狀啓, 2면 1단

동월 동일 喬桐水使 李敎復이 아뢰기를 󰡔軍兵을 단속하여 官門에 모여 점호를 취한 일을 이 달 8일 格式에 따라 거행하였기에 삼가 아뢰옵니다󰡕 하였다.

1883년 11월 30일, 日本條約, 4면 1단

丙子年(1876년) 2월 1일, 判中樞府使·申櫶·都摠府 副摠管 尹滋承이 아 뢰기를 󰡔本년 2월 2일 大日本國 特命全權辦理大臣 黑田淸隆·特命副全權 辦理大臣 井上馨과 臣 櫶·臣 滋承이 江華府에서 회동하여 조약문서 1통 씩을 서로 교환한 바, 조항마다 타당하다 여겨지므로 이미 批准하고 길이 시행하여 두 나라의 친목을 더욱 돈독히 하도록 하였으므로, 모든 官民은 조약 내에 응당 시행되어야 할 일들에 대해 이 뜻을 받들어 일체 봉행하 도록 조치하였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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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1월 30일, 修好條規, 4면 1단

大朝鮮國과 大日本國은 오래부터 友誼가 두텁게 지내 왔었으나 근래 양 국간의 情義가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옛 友好를 거듭 닦고 친목을 굳게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日本國 정부는 特命全權辦理大臣 陸軍中將 겸 參議開拓長官 黑田淸隆과 特命副全權辦理大臣議官 井上馨을 선발하여 朝鮮國 江華府에 파견하고, 조선국 정부는 判中樞府使 申櫶과 都摠府 副摠 管 尹滋承을 선발하여 각각 諭旨를 받들어 議定한 條款을 다음에 列記한 다.

第1款: 조선국은 自主國이며, 日本과는 평등한 권한을 가진다. 이후로 양 국이 和親의 實을 表하려 할 때에는 마땅히 피차 동등한 예로써 서로 대우할 것이며, 추호라도 侵越·猜嫌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우선 종전에 交隣의 情誼를 저해하는 憂患이었던 모든 例規를 일 체 혁파하고 寬裕·弘通의 法을 확충하여 영원히 서로 평화롭게 지낼 것을 기하려 한다.

第2款: 日本國 정부는 지금부터 15개월 후, 使臣을 조선국 京城에 수시로 파견하여 예조판서와 직접 만나 교섭사무를 상의할 수 있다. 사신 의 駐留 기간의 長短은 모두 時宜에 따른다. 조선국 정부 역시 사 신을 일본국 東京에 수시로 파견하여 外務卿과 직접 접촉하여 교섭 사무를 상의할 수 있으며, 사신의 駐留기간 역시 時宜에 맞게 한다.

第3款: 이후로 양국간의 왕래 공문서는 일본은 자기 나라 國文을 쓰되, 지 금부터 10년 간은 漢文譯本 1통을 별도로 갖춘다. 조선국은 眞文 [한문]을 쓴다.

第4款: 조선국 草梁에는 일본 공관이 있어 오랫동안 양국인의 통상지였다.

이후부터는 종전의 관례와 歲遣船 등의 일은 혁파하고, 새로 의정 된 條款에 기준하여 무역 사무를 처리할 것이다. 또한 조선국 정부 는 별도로 第5款에 실린 2개 항구를 개항하여 일본국 인민의 왕 래·통상을 허락한다. 이들 항구내의 지역을 賃借하여 가옥을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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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나 혹은 해당 지역 주민의 가옥에 僑寓하는 등의 일은 편리한 대로 한다.

第5款: 경기·충청·전라·경상·함경 5개도의 船海중 통상에 편리한 항구 2개처를 선정하여 地名을 지정한다. 항구를 개항하는 시기는 日本 曆 明治 9년 2월, 조선력 丙子年 2월부터 起算하여 共히 20개월 이 내로 한다.

第6款: 이후로 일본국 선박이 조선국 연안에서 大風을 만나거나 땔감이나 양식이 떨어져서 지정된 항구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연 안의 어떠한 항구에라도 寄港하여 위험을 피하며, 부족한 물품을 보충하고, 船具를 수선하며, 땔감 등을 구입할 수 있다. 그 지역에 서 공급한 물품에 대한 비용은 반드시 船主가 지불해야 되지만, 무 릇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지방 官民들은 憐恤의 情으로 구호하여 보급에 부족함이 없도록 해 주어야 한다. 또한 양국의 선박이 大洋 중에서 파선되어 승무원이 漂着하였을 때에는, 그 지방 주민은 즉 시 그들을 救恤하여 생명을 보전케 하고 지방관에 보고하면, 그 지 방관은 그들을 본국으로 호송하거나 근처에 駐在하는 본국 관리에 게 交付한다.

第7款: 조선국 연해의 島嶼와 巖礁는 이제까지 조사를 거치지 않아 매우 위험하니, 일본국의 항해자가 자유롭게 해안을 측량하도록 허가하 여 그 위치의 깊고 얕은 데를 자세히 조사하여 海圖를 제작, 양국 의 船客들이 위험을 피하여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한다.

第8款: 이후부터 일본국 정부는 조선국이 지정한 항구에 경우에 따라 일본 국의 商民을 관리할 관원을 둘 수 있다. 만약 양국간에 교섭할 안 건이 있을 때에는 그 관원은 그 지역 지방관과 회동하여 처리한다.

第9款: 양국은 이미 通好하였으니 상대편 인민은 각자 임의로 무역할 수 있다. 양국 관리는 조금도 여기에 간섭하지 못하며, 또 제한하거나 금지하지도 못한다. 만약 양국의 商民이 장사를 하면서 속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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貸借한 것을 보상하지 않을 때는 양국 관리는 그 위반 상민을 엄 중히 다스려서 손해를 입힌데 대하여 추가로 배상하도록 할 것이 다. 다만 양국 정부는 이를 대신 판상할 수 없다.

第10款: 일본국 人民이 조선국이 지정한 각 항구에서 조선국민에게 관계되 는 죄를 범한 사건을 일으켰을 경우에는 일본 관원이 심판할 것이 다. 만약 조선국 인민이 죄를 범하여 일본국 인민과 교섭할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조선관원이 조사하여 처리할 것이다. 다만 각 각 자기나라 법률로 심문·처리하되, 조금도 庇護함이 없이 공평 타당하도록 해야 한다.

第11款: 양국이 이미 通好하였으므로 따로 통상장정을 설정하여 양국 商民 의 편의를 도모할 것이다. 또한 아울러 현재 설정한 각 條款 중 다시 細目을 보충하여 조건을 따르는 데 편리하게 할 것이다. 이 것은 지금부터 6개월 이내에 양국이 따로 委員을 조선국 京城 또 는 江華府에 파견하여 회동·상의하여 제정케 한다.

第12款: 이상에 설정한 11款의 조약은 지금부터 양국이 신의로 遵行한다.

양국 정부는 이를 다시 변경할 수 없으며, 영원히 신의로써 준행 하여 和好를 돈독하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約書 2통을 작성, 양국이 위임한 大臣이 각각 조인하고, 서로 교부하여 증거를 명확 히 한다.

大朝鮮國 開國 485년 丙子년 2월 초2일

大官 判中樞府使 申 櫶 副官 都摠府副摠管 尹滋承 大日本國 紀元 2536년 明治 9년 2월 26일

特命全權辦理大臣 陸軍中將 겸 參議開拓長官 黑田淸隆 特命副全權辦理大臣 議官 井上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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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1월 30일, 修好條規附錄, 5면 1단

日本政府는 전에 特命全權辦理大臣 陸軍中將 겸 參議開拓長官 黑田淸隆 과 特命副全權辦理大臣 議官 井上馨을 朝鮮國에 보내고, 조선국 정부는 大 官 判中樞府使 申櫶과 副官 都摠府副摠管 尹滋承을 파견, 江華府에서 회동 하여 日本曆 明治 9년 2월 26일, 朝鮮曆 丙子年 2월 초2일 협의 타결하고 상호 조인하였다. 이제 그 修好條規 11款의 취지에 따라 일본국 정부 委 任理事官 外務大丞 官本小一이 조선국 경성으로 가서 조선국 정부 委任講 修官 議政府堂上 趙寅熙와 회동하고 협의하여 결정한 條款을 다음과 같이 開列한다.

第1款: 각 항구에 駐在하는 일본국 인민의 管理官은 조선국 연안 지역에서 일본국 상선의 파선 혹은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는 지방관에 게 고하여 해당 지역 船路를 경과할 수 있다.

第2款: 사신이나 管理官이 발송한 공문이나 서신의 우편료는 사후에 辨濟 하며, 혹 人民을 雇用하는 경우는 각기 편의에 따른다.

第3款: 議定된 조선국의 각 통상 항구에 있어서 일본국 인민으로 租借地에 거주하는 자는 모름지기 地主와 상의하여 그 액수를 정하고, 官有 地일 경우에는 守門·說門을 설치하였는데, 이후부터는 이를 철폐 하고 새로 의정한 규정에 의하여 경계상에 標識를 세운다. 다른 2 개 항구도 역시 이 예에 준한다.

第4款: 이후부터 釜山港에서 일본인 인민이 다닐 수 있는 道路의 里程은 부두를 기점으로 하여 東西南北 각각 직경 10리(조선 里數)로 정한 다. 東萊府는 특별히 왕래할 수 있으며, 일본국 인민은 이 里數 내 에서는 자유로 통행하고 토산물 및 일본국 물산을 賣買할 수 있다.

第5款: 議定된 조선의 각 항구에서 일본국 인민은 조선국 인민을 고용할 수 있으며, 만약 조선국 인민이 조선 정부의 허가를 얻으면 일본국 으로 가는 것도 防碍를 받지 않는다.

第6款: 議定된 조선국의 각 항구에서 일본국 인민이 病死할 때에는 적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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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선택하여 매장할 수 있으나, 모두 草梁 부근 지역으로 한다.

第7款: 일본국 인민은 本國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여러가지 화폐로 조선 국 인민이 소유하고 있는 물품을 교환할 수 있으며, 조선국 인민은 그 교환된 여러 종류의 화폐로 일본국 토산의 여러 가지 화물을 매입할 수 있으며, 인민들은 이것을 조선국이 지정한 모든 항구에 있어서 상호 통용할 수 있다. 조선국 銅貨弊를 일본국 인민이 사 용·運輸할 수 있으며, 양국 인민이 錢貨를 사사로이 鑄造할 경우 각각 국내법을 적용한다.

第8款: 조선국 인민은 일본국 인민으로부터 買得한 물품이거나 또는 贈遺 된 각종 물품을 마음대로 사용하여도 무방하다.

第9款: 修好條規 제7관에 기재된 바에 따라 일본국 測量船이 小船을 내어 조선국 연해를 측량하다가 폭풍우를 만나거나 조수에 밀려나가 本 船으로 돌아가지 못할 경우에는 그 지역의 里正이 부근의 인가에 安接시키며, 만약 필요한 물품이 있을 경우에는 官에서 주선해 주 었다가 추후에 판상을 받는다.

第10款: 조선국은 아직까지 해외 여러 나라와 通信을 하지 않고 있으나 일 본은 이와 달리 諸國과 修好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고, 和盟을 체 결한 여러 나라와 友誼를 지키고 있다. 이후 諸國 선박이 풍파로 연해 지방에 漂到하게 되면 조선국 인민은 마땅히 愛恤하고, 그 漂 流民이 본국으로 송환되기를 바랄 경우 조선국정부는 각 항구에 있 는 일본 管理官에게 인계하여 본국에 송환한다.

第11款: 이상 10개조의 章程 및 통상규칙은 修好條規와 더불어 동일한 권 리를 가진다. 양국 정부는 이를 준행하여 감히 위반하는 일이 없어 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각 款 중 만약 양국 인민이 교제와 무역 을 실시함에 있어 障碍가 있다고 인정되어 개정이 불가피할 경우, 양국 정부는 속히 議案을 작성, 1년전에 이를 통보한 후 협의 개정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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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朝鮮國 開國 485년 丙子 7월 초6일 講修官議政府堂上 趙寅熙

大日本國 紀元 2536년 明治 9년 8월 24일

1883년 11월 30일, 監理告示, 4면 1단

監理仁川通商事務 趙秉稷은 고시한다. 󰡔본 감리가 명을 받들어 새로 부 임하였다. 초창하는 모든 사무는 앞으로 하나하나 정돈해 나갈 것이나 다 만 염려되는 것은 각국이 조약을 정하고 통상을 시작한 것은 그 목적이, 하나는 이웃끼리 사귀면서 친목을 도모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백성들 생업에 보탬을 주자는 것이다. 交涉하는 과정에서는 誠信을 힘써야 하고, 貿易을 하는 데는 당연 공평해야 하는데, 돌이켜 볼 때 우리 商民들은 時 制에 익숙하지 못하고, 律例에도 어두워서 이해관계에서는 의리를 돌보지 않는 무리와 금령을 무시하고 잔꾀를 부리려는 무리들이 가는 곳마다 있 으니, 혹시라도 그 폐습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그런 행위를 계속한다면 그 죄를 용서 받기 어려울 것인가. 그러므로 여기 몇 줄을 적어 우리 백 성들에게 두루 알리는 것이다. 앞으로 각국 사람들과 접촉할 때는 誠과 信 으로 대할 것이며, 물건을 사고 파는 데는 공평을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 이다. 혹시라도 禁物을 사고 팔거나, 남의 재물을 편취하거나, 그밖의 싸 움질이나 주정을 하는 일이나, 힘만 믿고 약자를 깔보는 일들이 있다면, 이 중에 한 가지만 있다 하더라도 가차 없이 응분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 니 각기 조심스런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자기 스스로 죄를 부르는 일 이 없도록 하라. 만약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조약을 생각지 않고 함부로 남을 속이거나 얕잡아 보는 자가 있으면, 그들 역시 公法에 의거하고 定約 에 비추어 자국 기관에 알려서 조치하도록 하는 확연한 규정이 있으니, 모 든 우리 商民들은 서로서로 알리고 경계하여 이웃과 화목을 유지하고 생 업에 보탬을 주려는 정부의 뜻을 십분 이해하여 誠信과 公平의 도를 다 해주기 바란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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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1월 30일, 英使出境, 4면 1단

동월 30일 영국공사 파크스가 叅贊 禧在明懋德(힐리어 Hillier, W.C.)·

領事 阿秀頓(아스톤 Aston W.G.)·통역관 唐永祚 등을 인솔하고 出發하여 그 날로 제물포에 당도하였는데, 그들은 天津으로 간다고 한다.

1883년 11월 30일, 議政府啓, 2면 1단

동월 17일 의정부가 아뢰기를 󰡔지금 강화유수 金允植의 狀本에 재가된 것을 보니, 그 營에서 내보낸 校卒을 잡아다가 함부로 쏴 죽였으니 前 金 城縣令 韓昌錫의 죄상과 그때 함부로 행동한 자들에 대하여 廟堂에서 아 뢰어 재가를 받아 처리해 줄 것을 청하였사온데, 그때 함부로 행동했던 자 들에게 대하여는 關東 繡衣가 이미 輕重을 참작하여 처리했으므로 지금 와서 다시 논의할 것이 없고, 그 현령은 당연히 王府[義禁府]에서 잡아다가 문초한 후 적당한 조치를 취해야 하겠지만 문제는 그곳 道臣이온데, 허다 한 人命을 그렇게 함부로 죽였으니 그것이 비록 邑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는 하나 빈틈없이 죄상을 조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입장으로 볼 때 너무 소홀하였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우니, 전 監司 南廷益에게도 譴罷의 벌을 적용해야 될 것이옵니다󰡕하니, 답하기를 󰡔그렇게 하라󰡕하였다.

1883년 11월 30일, 沁留狀啓, 2면 1단

留守 金允植이 아뢰기를 󰡔삼가 政府에서 재가 받은 關文에 의하여 賊魁 金明根을 뒤밟아 체포하기 위해 本營의 校卒 12명을 發送하여 白川地域으 로 가서 체포해 오게 하였더니, 校卒들이 金城 昌斗驛을 지나는 순간 갑자 기 수백명의 無賴輩가 나타나 수상하다고 말하면서 구타하여 상처를 입혔 습니다. 뜻밖에 당한 변이라 사람을 놓아 읍에 알렸으나, 알리러 간 사람 이 미처 돌아오기도 전에 公差가 와서 모두를 잡아다가 縣獄에 가두고는 賊黨이라고 말하면서 誣服을 하도록 다그친 뒤 억지 文案을 꾸며 공문과 함께 감영에 보고해 왔는데 일시에 다 죽였다고 하옵니다. 와서 보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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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나 가서 탐문한 바가 같사오니, 양민을 무함하여 적당을 만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縣令으로 말하면 애당초 탐문도 하지 않고 함부로 사람을 쏴 죽였으니, 政令의 顚倒가 어쩌면 이렇게 심하다는 말입니까. 우 선 그 현령을 파면할 것을 아뢰나이다󰡕하니, 답하기를 󰡔그렇게 하라󰡕하였 다.

1883년 12월 9일, 美國約條, 2면 1단

大朝鮮國과 大亞美理駕(大아메리카)合衆國은 상호 인민간의 영원한 친선 우호 관계를 수립하기를 충심으로 원하여, 이에 대조선국 군주가 특파한 全權大臣 經理總理機務衙門事 申櫶, 全權副官 經理總理機務衙門事 金宏集 과 大美國 伯理璽天德(프레지던트 President)이 특파한 전권대신 水師總兵 [해군제독] 薛斐爾(슈펠트 Shufeldt. R.W.)는 각기 전권의 위임장을 서로 較閱하여 그 樣式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조문을 협정하였다. 條款을 左에 列記한다.

第1款: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프레지던트 및 그 인민은 각각 모두 영원 토록 和平友好를 지키되 만약 타국이 부당하게 輕侮하는 행위를 하 게 되면 상대편 정부는 그 사건의 통지를 받는 즉시 원만한 타결 을 가져 오도록 주선을 다함으로써 友誼를 표시하여야 한다.

第2款: 이번에 조약을 체결하고 修好를 한 뒤에 양국은 全權公使를 파견하 여 피차의 수도에 駐在시킬 수 있고, 아울러 피차의 通商港口에 領 事 등의 관원을 둘 수 있다. 이들 관원은 그곳 지방관과 왕래하고 교섭하되, 品級에 상당하는 예우를 받는다. 양국의 全權公使 및 領 事 등의 官員은 最惠國 대표와 동등한 일체의 특권과 혜택을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다. 領事는 반드시 駐紮國의 批准書를 받은 뒤에 사무에 임할 수 있다. 파견된 영사 등의 관원은 정규 관원이어야 하며 商人으로 겸무케 하거나 또는 겸직으로 무역을 경영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항구마다 영사를 두지 못하는 경우에는 혹 다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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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에게 청하여 겸무로 대행케 할 수도 있되, 이 경우에도 역시 상인으로 겸무케 해서는 안 된다. 혹 정한 조항에 의하여 그곳 지 방관에게 대행시킬 수도 있다. 만약 조선에 駐在하는 미국 영사 등 의 官員이 합당하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경우, 사전에 美國公使에 게 조회하여 피차의 의견이 부합하면 비준서를 철회할 수가 있다.

第3款: 미국 배가 朝鮮 근해에서 폭풍우를 만나거나 양식과 음료수의 부족 을 당하게 되는 경우, 특히 開港口까지 도달할 수 없는 먼 거리일 때에는 근처 항구에 정박하기를 허락하고, 양식을 구입하고 배를 수리케 한다. 소요 경비는 船主가 부담한다. 그 지방의 官民은 응 당 憐恤을 가하여 요구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만약 어떤 배가 통상 항구가 아닌 곳에 가서 密貿易을 하면 화물을 관에서 몰수한 다. 또 미국 선박이 조선 근해에서 난파되면 조선 지방관은 사건의 통지를 받는 대로 부하 직원에게 영을 내려 먼저 船員을 구조하고 양식 등을 제공하는 한편, 조치를 강구하여 배와 화물을 보호한다.

동시에 미국 領事에게 연락하여 선원은 본국으로 돌려보내도록 하 며, 선박과 화물은 구출토록 한다. 이때에 발생하는 모든 경비는 船主나 미국 정부에 의하여 支辨된다.

第4款: 조선에 거주하는 美國 인민으로 본분을 지켜 자기 일에 종사하는 자는 조선의 지방관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받을 것이며,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일체의 凌蔑과 毁損에서 방위된다. 만약 폭 도 또는 放火者에 의해 미국인의 가옥이나 재산이 劫奪·燒毁 당할 때에는 지방관은 領事의 요청에 의하여 즉시 군대를 파견하여 탄압 하는 동시에 범죄자를 체포하여 법에 따라 엄중히 처리해야 한다.

만약 조선 인민 중에 美國人을 기반하거나 凌蔑하는 자가 있으면, 응당 朝鮮 官員에게 보내어 조선 법률에 의거하여 처벌받는다. 한 편 美國 인민 중에 船上이나 陸地에서 朝鮮 인민의 생명·재산 등 을 欺瞞·凌辱·騷擾·損傷하는 자가 있으면, 응당 美國 영사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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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 정부에서 파견된 관원에게 보내져 美國 법률에 의거하여 체 포·처벌된다. 朝鮮 국내에서 朝鮮과 美國의 인민 사이에 訴訟事件 이 있게 되면, 응당 被告가 소속한 나라의 관원에게 보내어 본국 법률에 의해 심판을 받되, 原告 소속국은 관원을 파견하여 聽審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심판관은 마땅히 禮로써 대우하고 만약에 聽審 官이 범인을 소환하여 취조하거나 증거물을 검사하겠다고 하면 그 것을 허락해 주고, 또 심판관이 공평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을 때 에는 상세히 抗辯함이 허락되어야 한다. 大美國은 大朝鮮國과 더불 어 피차 분명히 정하노니, 만일에 후일 朝鮮이 法令과 재판 절차를 개정하여 美國의 것과 一致한다고 판단되면 朝鮮에 있어서의 美國 官員의 治外法權을 즉각 철회하고 그 후부터는 朝鮮 영토 내의 美 國人民도 朝鮮 지방관의 관할하에 돌아가도록 한다.

第5款: 朝鮮國 商民과 상선이 앞으로 美國에 가서 무역을 할 경우, 모든 關稅·선박 및 일체의 手數料는 당연히 美國의 관세 규칙에 의하여 지불되어야 하며, 最惠國 인민에게 부과되는 것보다 높아서는 안 되고, 또 다른 세율의 關稅나 噸稅(톤稅)는 강요되지 않는다. 美國 상민과 상선이 앞으로 朝鮮에 가서 무역을 할 경우 수출입품에 대 해 關稅를 지불해야 된다. 關稅 賦課權은 당연히 朝鮮政府에 속한 다. 수출입 상품에 대한 關稅率은 밀수 및 기타 非行을 방지하기 위한 稅關規則과 함께 朝鮮國이 설정하고 미국 관원들에게 통지하 면, 그 官員은 자기 나라 상민에게 알리어 이를 준수하도록 한다.

이번에 대강 정한 稅率은 각종 수입품 중 일용품에 속하는 것은 從價稅 1할을 초과하지 않게 하고, 외국의 술·呂宋煙·시계와 같 은 사치품은 從價稅 3할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며, 수출 공산품은 대개 5分을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 수입품 관세는 개항장에서 납부 한 뒤에는 內地에서나 다른 開港場에서 다시 세금을 내지 않는다.

美國商船이 朝鮮 開港場에 들어오면 톤當 銀5錢의 선세를 지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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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리고 선박마다 음력을 기준, 3개월에 한 번씩 세금을 지불한 다.

第6款: 朝鮮國 商民이 앞으로 美國 각처에 가면 垈地를 賃借하고, 토지를 구입하며, 주택이나 창고를 건축하도록 허가해 준다. 그리고 각종 本業 및 副業에 종사함과 동시에 법률에 의하여 禁制品으로 宣言되 어 있지 않은 일체의 未加工品 및 가공품을 자유롭게 交易하도록 허가해 준다. 美國 商民이 앞으로 朝鮮國 開港場에 와서 租界지역 내에 거주하며 그곳에서 건물 또는 토지를 賃借하거나 주택 또는 창고를 건축하도록 허가된다. 그들에게는 각종 本業 및 副業에 종 사하며, 법률에 의하여 禁制品으로 선언되지 않은 모든 未加工品 및 가공품을 교역할 수 있도록 허가된다. 토지나 건물을 취득 혹인 賃貸할 때에는 강제나 협박이 있어서는 안 되며, 地代는 朝鮮國에 서 정한 바에 따라 지불해야 한다. 賃貸한 토지는 朝鮮 땅에 속하 며, 이 조약 내에 명시된 바에 의하여 분명히 美國 관원의 관할하 에 있는 商民이나 그 재산을 제외하고는 모두 朝鮮 지방관의 관할 에 속한다. 美國商民은 수입품을 內地로 수송하여 팔수 없으며, 또 內地에서 土産物을 사가지고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수송하여 팔 수도 없다. 위반자는 貨物을 몰수하고 商人은 領事官에게 넘기어 처단한다.

第7款: 朝鮮商民은 洋藥[여기에서는 주로 아편을 말한듯 하다]을 싣고 美國 開港場에 들어갈 수 없으며, 美國商民도 洋藥을 싣고 朝鮮 開港場 에 들어 올 수 없고, 또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수송하여 洋藥을 매매할 수 없음을 朝鮮國과 美國은 상호 합의 約定한다. 또한 양국 商民은 본국 선박이든 타국 선박이든 그리고 본국 선박이 타국 상 민에게 고용되어서 洋藥을 수송·판매하는 것이든 어느 것이나 영 구히 금지하도록 하고 범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第8款: 만약 朝鮮國에 食糧難을 우려하게 되는 일이 생기면 大朝鮮國 君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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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잠시 양곡의 해외 유출을 금지한다. 다만 朝鮮國 당국은 이 令 을 美國官員에게 통보하여 각 항구에 있는 美國 商民에게 告知하여 이를 준수케 한다. 仁川港에서는 각종 식량의 반출을 금지한다. 朝 鮮國은 오래 전부터 紅蔘 수출을 금하여 왔으므로, 만약 美國人 중 에 수출하기 위하여 밀매할 경우에는 이를 몰수하고 위반자는 처벌 한다.

第9款: 大砲·短銃·刀劍·火藥·彈丸 및 일체 군수품의 구입은 朝鮮官員 에게만 허가한다. 美國人은 朝鮮 정부의 면허를 얻어야만 수입할 수 있다. 만약 이 물품을 사사로이 구입할 때는 관에서 몰수하며 위반자는 징계 처벌한다.

第10款: 모든 양국 官員과 商民은 모든 종류의 합법적인 사업에 지방민을 고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만약 朝鮮人이 朝鮮國 法을 범하거 나 혹은 사건에 관련되어 美國商民의 주택이나 창고 및 상선에 숨 게 된다면, 美國 領事는 그곳 지방 당국으로부터 그러한 통지를 받 는 대로 지방 差役들이 스스로 체포함을 허락하거나 영사가 관리를 시켜서 범인을 체포하여 지방경관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美國官民 은 범인을 은닉해서는 안 된다.

第11款: 언어·문예·법률·기예 등을 학습하고자 상대편 국가에 유학한 학생에게는 돈독한 호의의 표시로써 가능한 모든 보호와 협조를 하 여야 한다.

第12款: 本 條款은 朝鮮國이 처음으로 立約한 것이기 때문에 槪括的이고 不完全한 것이나 條文은 당연히 실시될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規定은 5개년 후 양국 官民이 언어가 서로 얼마간 통하게 될 때 다시 議定한다. 상세한 通商章程은 반드시 萬國公法通例를 참작 하여 공평하게 상의하여 정하고 불평등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第13款: 本 條約 체결 후 양국 정부간의 往復公文은, 朝鮮측은 전적으로 漢文으로 쓰고, 美國도 漢文으로 쓰되 혹 英文을 사용할 때에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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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시 漢文을 첨가하여 오해가 없도록 한다.

第14款: 이번에 양국이 議定한 뒤 朝鮮國 君主가 제3국 혹은 그 나라 商 民에게 航海·通商·政治, 기타 교섭에 관련된 것을 막론하고 本 條約에 의하여 부여되지 않은 권리·특권, 또는 특혜를 허가할 때 에는 이와 같은 권리·특권·특혜는 美國의 官民도 무조건 均霑된 다. 다만, 제3국과 특별 조약을 맺어 부여될 때에도 美國官民이 關 係 諸條件 또는 利權을 응낙하였을 때에 한해서 이와 같은 권리와 특혜의 便益을 누릴 수 있다.

이상의 각 條款은 현재 大朝鮮·大美國 양국의 대신이 朝鮮의 仁川府에 서 議定하고, 漢文·英文으로 각각 3통씩 작성하였는데, 語句는 물론 서로 같다. 먼저 署名 捺印하여 證憑으로 삼고, 그 批准은 調印日로부터 1년 내 에 교환될 것이며, 그 즉시 本條約의 全條款을 양국 정부에 의하여 公布되 어 周知시키고 피차 그 官民에 의하여 각각 준수하도록 한다.

大朝鮮國 開國 491年, 즉 中國 光緖 8年 4월 6일

全權大臣 經理總理 機務衙門事 申 櫶 全權副官 經理總理 機務衙門事 金宏 集[金弘集]

1882년 5월 22일

大美國 全權大臣 水師總兵 슈펠트

1883년 12월 9일, 釜山港電線, 9면 1단

仁川항에서 알려온 바에 의하면 근일 일본 정부는 유럽 丁抹國(덴마크) 의 大北電線會社에 청하여 자기 나라인 長崎에서부터 對馬島를 경유, 우리 나라 釜山항의 海底까지 전선을 가설하는 공사를 이미 마치고, 아마 다음 달 초순부터 公私간의 긴요한 체신업무, 개통업무를 개통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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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2월 9일, 美國 사신의 書信, 18면 1단

朝鮮 주재 미국 全權公使 福德(푸트 Foote)이 그 나라 貴紳에게 보낸 書信에 의하면 󰡔美合衆國 汽船 毛魯哥호에 조선의 두 使節과 그 隨行官들 을 태우고 조선의 仁川港을 출발하여 곧장 일본의 橫濱을 거쳐 우리나라 에 入港하려 합니다. 이들 두 使節의 이번 出航은 우리 정부에 進言하고 아울러 우리의 풍속을 시찰하려 함이며, 隨行 通譯은 2명으로 하나는 中國 語에 하나는 日本語에 정통하며, 朝鮮國 사람이 西洋에 出航하기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니 간절히 바라건대, 귀하는 上部의 搢紳에게 이들을 잘 소 개하여, 모든 政治의 得失과 貿易의 盛衰에 대해 낱낱이 설명해 주어서 交 際에 관한 이익과 富强에 관한 방법을 알게 하여, 조선국으로 하여금 상등 의 개발도상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요. 전번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을 세계 각국에 소개하여 지금까지의 鎖國的인 陋習을 탈피시켰으니, 이번에 조선을 세계 각국에 소개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러나 조선이 끝 내 새것에 어둡고 옛것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도 어찌할 수 없거니와, 조선 에서 이미 우리와의 친분이 있어 外務를 익히 강구하였고, 또 조선에도 農 桑의 수익과 鑛山의 풍부함이 우리 合衆國에서 가장 부유한 省과 같으며, 전국의 人口가 1천5백만이나 되므로 外國 物品을 필요로 할 수효도 적지 않을 것이니, 우리가 조선과 通商을 개시한다면 반드시 많은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바라건대, 우리 정부에서는 이들 使節을 歐美 强國의 전례 대로 원만히 대우하여 소홀함이 없이 하고 상호의 조약을 확정하도록 하 시오󰡕하였다. 이상은 日本新聞에 보인다.

1883년 12월 9일, 獨逸公使出境, 2면 1단

11월 1일 德國(독일)公使 擦貝(자페 Eduard Zappe)가 領事官 卜德樂(부 들러 Budler. H.) 등을 대동하고 濟物浦를 떠났는데, 英國領事官 阿秀頓 (애스턴 Aston. W.G.)과 독일 군함 賴夫西호에 동승하여 이튿날 오후 4시 에 출발, 日本으로 향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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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2월 20일, 海關稅則, 3면 1단 進口貨[輸入貨]

제一, 藥材 諸藥 및 香料는 값의 100분의 5를 관세로 받는데, 別項에 기록 된 諸製藥類 白礬, 膠[아교]·樟腦는 제외된다. 값의 100분의 10을 관세로 받는 것은 龍腦-一名 氷片·丁香·麝香이다. 값의 100분의 20을 관세로 받는 것은 安息香·乳香·沉香·白檀·甘松·線香 및 기타 香料이다.

제二, 염료 및 顔料는 값의 100분의 8을 받는데, 土靛[靛은 염료임]·水 靛·漆·蘇木 및 소목越幾斯·五倍子·紅花·染紛·色油 각색의 鉛 紛 및 白鉛粉·洋漆·靑靛·雌黃·群靑·銅靑·銅朱와 別項에 기록 되지 않은 일체의 안료 및 염료이다.

제三, 금속 및 금속으로 만든 제반 기구류는 값의 100분의 5를 관세로 받 는데 紅銅이다. 값의 100분의 8을 관세로 받는 것은 鐵鋼·鉛·錫·

汞夾金과 別項에 기록되지 않은 제반 금속류와 塊·錠·條[철사]·桿 과 鐵線·銅線·銅鐵로 된 못類·水銀·金屬名 刷爾達·白銅·金屬 名 晏地縻呢(안티모니 antimony)·鍋[솥]·釜[가마솥]·각종 刀子[칼]

및 生鐵·馬口, 철로 만든 기타 일체의 제품, 금속으로 만든 器物類 이다. 값의 100분의 10을 관세로 받는 것은 金箔·銀箔·銅箔·錫箔 의 類이다. 값의 100분의 20을 관세로 받는 것은 금·은으로 만든 그릇 및 금·은으로 도금한 그릇이다.

제四, 油蠟脂類는 값의 100분의 5를 관세로 받는데, 煤炭油[石炭油]이다.

가격의 100분의 8을 관세로 받는 것은 密蠟·木蠟·炯油-洋名瀝責 (varnish) 및 嗒爾·獸蠟·山茶油[동백기름]·蔴油名冽不·洋油名-塞 煞喃·蠟燭·日本梳髮類膏·氣類와 別項 기록되지 않은 油蠟脂類다.

제五, 布帛類는 값의 100분의 8을 관세로 받는데, 生平-日本布名·海黃(일 본 비단이름)·명주·綸子·郡內(일본 비단이름)·絹絽·綿緞·綿繻 子·무늬가 있는 면유자·綿綸子·原色布·白色布·柳條布·雲齊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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倉織紋羽類(일본 베이름)·洋布·洋紗·紅色布·色布·紋布·棉線·

斜紋布·印花布·棉絽·棉毛哆囉呢·棉天鵝絨(一名 花剪絨)蚊幮巾·

褥巾·純羽緞·斜紋羽緞·間條羽緞·毛布-洋名 불拉涅爾(blanket)로 純雜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毛布(서양 이름 莫不爾로 純雜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毛繻子·縐羽緞·純毛哆囉呢·毛緞·絨呢 및 서양 이름 羅世板塞爾寔斯四巴呢斯突來不斯는 純雜 여부는 따지지 않는 다. 絨파布- 洋名阿爾巴哈(aplaca)·蔴布 및 毛麻類는 原色·白色을 따지지 않는다. 臥氈·帆布는 棉麻를 따지지 않는다. 油布·臘布·

別項에에 기재되지 않은 일체의 絹·棉·毛·麻布類이다. 값의 100 분의 10을 관세로 받는 것은 紗·縐紗·緞子·繻子·綾類·琥珀絹 羽二重(일본 絹 이름)이다. 값의 100분의 20을 관세로 받는 것은 絲 絨·各式 花毯의 類이다.

제六, 文房具類류는 가격 100분의 5를 관세로 받는데, 일본인이 쓰는 雜紙 이다. 값의 100분의 8을 관세로 받는 것은 印刷에 쓰는 洋紙는 어느 나라 제품인가를 따지지 않는다. 포장에 쓰는 洋紙·각종 日本종 이·墨斗·封套·연필·洋筆·毛筆·片石盤·각종 먹이다. 값의 100 분의 10을 관세로 받는 것은 色紙·紋紙·印材·印肉·別項에 기록 되지 않은 일체의 文房具 및 紙類이다.

제七, 음식물·煙草類는 값의 100분의 5를 관세로 받는데, 일본 음식물·

生氷菓·穀物·穀粉·된장·간장과 식초다. 값의 100분의 8을 관세 로 받는 것은 소금·茶·醃肉·醃魚 및 식료 통조림·국수·葛粉·

寒天菜·낙화생·레먼水·生姜水·曹達水(소다수) 및 각종 음료수·

白·黑糖·蜜糖·糖水·中國·日本의 酒類·林禽酒[능금주]·別項에 기록되지 않은 일체의 음식물類이다. 값의 100분의 10을 관세로 받 는 것은 赤·白 포도주·맥주다. 값의 100분의 15를 관세로 받는 것은 氷糖·精製糖·點心[菓子]類이다. 값의 100분의 20을 관세로 받 는 것은 炯類 일체. 값의 100분의 25를 관세로 받는 것은 洋酒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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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양주 卜爾脫· 양주 瀉哩이다. 값의 100분의 30을 관세로 받는 것은 양주 撲蘭德·양주 惟斯吉·양주 上伯允·櫻酒·杜松子酒·양 주 哩九爾·糖酒·4別項에 기재되지 않은 일체의 酒類이다.

제八, 雜貨는 값의 100분의 5를 관세로 받는데 煤炭콕 ·일본인이 상용하 는 器具·建築用 목재 및 竹材·지붕을 이는 木片·裱糊紙·障子門 紙·疊·石灰·砥石·砂紙·自來火·모든 비누類·靴·기타 穿履物 및 우산·提燈·일본인의 작은 食卓椀·食盒子·일본衣箱·盆·鏡臺 및 木製器 일체이다. 값의 100분의 8을 관세로 받는 것은 木材·竹 材·石材·煙火石 및 기와·木炭·皮·角·骨·牙·蹄·毛類로 加工 되지 않은 것·藤·棉花·綿絲·繭絲 및 熨斗絲·亂絲頭·天蠶絲·

羊毛 및 기타 짐승의 털·蔴苧·搬貨車船·金剛砂·목화씨·과일 씨·삼씨·亞麻子·胡麻子·燈草·銀櫃·器械·食器用磁器·陶器 類·창문용 玻璃(유리)·洋燈 및 기타 그에 준하는 물건·臥床(침 대)·의자 및 기타 가구·의복·모자·양말 및 기타 服飾物·眼鏡·

象牙 및 일체의 角·牙·扇·團扇類·玻璃片·磨牙粉·磨牙水(가루 치약)·別項에 기록되지 않은 잡화 일체이다. 값의 100분의 10을 관 세로 받는 것은 熟皮類·馬具 및 馬車·제반 유리그릇으로 別項에 기록되지 않은 것과 거울 종류는 테두리가 있고 없는 것을 따지지 않는다. 紫檀·黑檀·서양 이름으로 得古斯木·黃楊木·鐵刀木 및 일체의 단단한 나무·洋·雨傘·絹製鐵幹(여행용상자)·提囊(손가방) 및 佩袋類·樂器·鈕釦扣子類·礦山에서 쓰는 폭발물·撮影機이다.

값의 100분의 15를 관세로 받는 것은 烟管(파이프) 및 담배쌈지·佩 帶·囊包등 諸物類. 모피·狐皮·수달피·海狸皮·兎皮等類이다. 값 의 100분의 20을 관세로 받는 것은 金漆器 등의 類. 玩具·머리장식 類·時辰鐘[괘종시계] 및 時辰表[손목시계]·등의 물건이다. 값의 100 분의 25를 관세로 받는 것은 撮影機·꽃병·실내장식기구·기타 실 내에 장치하는 물건·玳瑁를 사용한 가공품類·繪畫는 表具여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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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지 않는다. 조각품 등이다. 값의 100분의 30을 관세로 받는 것 은 烟火類·玻璃珠·獵銃 및 부속기구·珊瑚珠·珍珠 및 寶石玉類·

衝球[撞球공]·象棋·骨牌·기타 일체의 遊戱物이다.

제九, 船舶-火輪船은 每톤에 銀貨 50錢을 징수한다. 風帆船은 매 톤에 은 화 25전을 징수한다.

제十, 免稅物項: 貨幣·製鍊하지 않은 金銀·여행자의 여행도구·貨物의 見本-액수가 적당할 때에 한한다. 신문지·世間에 廣告하기 위해 쓰 는 用紙類·서적·지도·海圖·招牌·기술을 수련하기 위한 각종 기구로 작은것·농기구·의술용 의료기구·도량형구·온도계·晴雨 儀·실험기구·나침판·기타 학술용 기구 및 그 부속물·鉛字[活字]

신품, 구품을 막론한다. 救火용기구·선박에 소용되는 기구-만약 불 필요한 물건을 上岸에 파는자는 조사하여 세금을 부과한다. 포대·

제반 거적 및 새끼類·화물을 포장할 때 쓰는 물건 등이다.

제十一, 禁制物項: 아편(藥劑)에 쓰는 아편은 제외한다. 가짜 藥品·위조화 폐類·음란 외설한 그림이나 초상화·軍器類(모든 軍器 만드는 樣 式)·防身具는 영사관을 거쳐 조선관리의 허가를 얻어야 들여올 수 있으나 팔지는 못한다.

出口貨[輸出貨]

제一, 값의 100분의 5를 세금으로 받는 물건: 일체의 出口貨物.

제二, 免稅物項: 이미 만들어진 貨幣·제련되지 않은 금은·여행자의 휴대품.

제三, 禁制物項: 紅蔘.

1883년 12월 20일, 仁川口租界約條追錄, 1면 1단

제1조: 조선국 仁川口에 각국 사람들이 覊留하는 租界 내의 지도 위에 붉 은 줄로 표시한 곳은 특별히 日本 商民의 거주 지역으로 정한다.

그것은 일본 상민들이 먼저 왔기 때문이다. 혹시 뒤에 오는 자들이 있어 租界가 차면 조선정부에서는 조계지역을 넓혀 주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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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각국 사람들이 기류하는 조계라 하더라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일본 상민은 편의에 따라 거주할 수 있다.

제2조: 조계 내에 일본 상민들이 거주하는 곳의 도로와 溝渠를 제외한 나 머지는 조선정부에서 지도상에 정해진 거주지역을 조사하여 公拍法 을 적용하여 일본인에 租與하기로 한다.

제3조: 모든 조계 내의 도로·구거·교량, 그리고 깊은 곳을 메우거나 해 안에 石築을 쌓는 일 등은 조선정부에서 創設하되, 창설하는 방법 은 조선의 監理事務가 반드시 일본 영사관과 상의하여 실시하고, 지도상의 붉은 줄이 쳐진 곳에 부두를 쌓는 것과, 조계 내에 근무 하는 巡捕 등에 대한 경비는 조선 감리사무와 일본 영사관이 공동 으로 商定하여 조계의 수입으로 충당한다.

제4조: 거주지의 地稅는 매년 매 평방 2米突(미터)단위로 정하여, 海沿에 가까운 첫째 거리를 上等으로 정하여 조선 銅錢으로 40文을 징수하 고, 두 번째 거리를 中等으로 정하여 30문을 징수하고, 세 번째 거 리를 下等으로 정하여 20문을 징수하되, 매년 12월 15일에 명년의 지세를 선납하기로 한다. 단 조선 정부는 그 지세 중에서 3분의 1 만을 징수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租界의 存備金으로 책정하여 조 선 감리 公所에 보관하되, 확실한 방법을 세워 보관하였다가 도 로·구거·교량·가로등·순포·기타 조계의 각 사업에 필요한 경 비에 충당한다. 그러나 그 존비금을 지출할 때는 감리사무와 일본 영사관이 협의하여 결정한다.

제5조: 거주 조계의 公拍[公賣]原價는 매 2평방미터에 조선 동전 2백50문으 로 정하고, 공박 기일을 반드시 일본 영사관에 알려 5일 전에 포고 하고 영사관과 회동하여 실시한다. 단 公賣 방법은 값이 높은 자에 게 租與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혹 두 명 이상이 경쟁하여 돈을 내는데 서로 異論이 발생할 때는 공매를 다시 실시하되, 단 조선 정부는 거주 조계를 공매한 값 4분의 1을 조계의 存備金으로 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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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고 그것으로 租界의 모든 것을 수리·보수하는 비용에 충당하며, 공매한 값이 그 조계지의 원가를 초과할 때도 그 초과분의 절반을 존비금으로 내어놓는다.

제6조: 도로·구거·교량·가로등·순포, 그리고 기타 조계의 모든 것을 수리·보수하는 비용은 위의 존비금이 있으므로 비상한 사태나 天 災로 인한 파손을 제외하고는 조선정부는 상관하지 않는다. 단 천 재로 인하여 조선정부에서 금액을 지출할 사항이 생겼을 때는 피차 회의를 하여 그 액수를 결정하기로 한다.

제7조: 공매할 때는 조계 거주자의 성명을 장부에 기재하고 즉석에서 租價 5분의 1을 징수하여 그것을 定銀[입찰 보증금인 듯함]으로 하고, 나 머지 돈은 10일 이내에 완전 청산토록 하고 地契[土地所有權을 인 증하는 문서]를 교부한다. 혹 10일 이내에 完納하지 못할 경우에는 罷約으로 간주한다.

제8조: 租地者에게 교부하는 地契는 좌기 양식에 의한다.

1883년 12월 29일, 副大臣復命, 1면 1단

21일 全權副大臣 洪英植이 復命하였다. 副大臣 洪英植이 美國으로부터 日本을 거쳐 仁川항에 上陸하여 이날 入京하였다. 외국 參贊官 美國人 魯 越(로웰 Lowell. P)과 중국인 吳禮堂도 함께 왔다.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 의 交涉은 지난번 交聘이 시작되었으니 이는 아시아와 美洲, 두 洲 사이에 和好가 크게 일어날 一大局面이다. 우리나라 全權大臣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을 듣건대, 미국 정부 및 국민들이 다 함께 기꺼이 환대하여 대 우가 융숭했다 하니, 참으로 만리 먼 곳의 이웃이고 兄弟 나라라 하겠다.

전권대신의 축사와 미국 대통령의 答辭를 보건대 양국 국교에 틈이 없음 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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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12월 29일, 海關, 6면 1단

監理仁川港通商事務: 趙秉稷 監理釜山港通商事務: 李金憲永 監理元山港通商 事務: 鄭顯奭

1883년 12월 29일, 國內 各稅務司, 7면 1단

京都 稅務司: 澳國人(오스트레일리아人) 夏士(하스 Hass) 帮辦: 美國人 麥倍時(맥베트 Mackbet) 英語敎習: 英國人 奚來百士(핼리팩스 T.E.

Hallifax) 帮辦: 德國人(독일人) 安耨(아르노스 Arnous), 中國人 吳仲賢 仁川 稅務司: 英國人 邵入佛刺(스트리플링 Stripling A.B) 理船廳: 독일人 蕭鬱始(슐츠 Schultz) 機器司: 俄國人(러시아人) 斐巨富識(베코프스키 Bekofsky) 帮辦: 法國人(프랑스人) 羅布退(라포르트 Laporte), 美國人 屈入 是(크레브스 Krebbs), 中國人 吳禮堂 指泊所: 독일人 牟世乙(뫼르셀 Moersell) 驗貨: 意國人(이태리 人) 富理安來(보리오니 Borioni) 鈐字手: 독 일人 李大趣(라다지 Ladage)

釜山 稅務司: 英國人 魯富(노블 Noble) 理船廳: 荷國人(네덜란더人) 蒲是 摩時(포세프레즈 Fosseprez) 帮辦: 英國人 鄧幹(던칸 Duncan), 吳來士(오 스본 Osborne), 中國人 唐紹儀 驗貨: 英國人 許見士(허킨스 Hurkins) 鈐字 手: 英國人 雷威士(루이스 Lewis), 蘇茂世(스미스 Smith), 이태리人 士播利 來(Schoenicke인 듯)

元山 稅務司: 英國人 雷液退(라이트 Wright) 帮辦: 美國人 魯善方(로젠바 움 Losenbaum) 指泊所: 丹國人(덴마크人) 巨甫退(크라포드 Crawford) 驗 貨: 독일人 羅五學(로크트 Laucht), 英國人 盧外椎(로바트 W.N. Lovatte) 鈐字手: 독일人 蘇眉退(사배틴 Sabatin)

1884년 1월 8일, 日本人閑行里程約條, 2면 1단

제1조: 兩國 정부는 일본 明治 15년 8월 31일, 조선 壬午년 7월 17일, 각 국의 全權大臣이 議定했던 續約 제1관의 취지에 의거하여 조선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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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仁川·元山·釜山 세 항구에서 금년에 확충해야 할 閑行里程 을 지금 두 나라 委任大臣의 議訂을 거쳐 以下와 같이 開列한다.

제2조: 인천항구는 동으로 安山·始興·果川, 동북으로는 陽川·金浦, 북으 로는 江華島까지를 한계로 정하고, 원산항구는 서쪽으로 德源府를 한계로 하여 馬息嶺을 관할하고, 남으로는 安邊府를 하계로 하여 古龍池院을 관할하고, 북으로는 文川郡을 한계로 하여 業加直을 관 할하며, 부산항구는 동으로 機張, 서로는 金海, 남으로 鳴湖, 북으 로 梁山까지를 한계로 한다. 이상 정한 각 곳의 경계에는 두 나라 관리들의 입회하에 각기 푯말을 세워 四方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제3조: 일본 明治 17년 조선 辛未년에 다시 확장할 里程 경계는 마땅히 그때 가서 양국 위원의 의정을 거쳐 이 약조의 附錄을 만들기로 한다.

제4조: 이 里程 내에서는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총을 쏘고 사냥할 수 있도 록 한다. 단 人家와 가까운 곳 또는 조선 정부에서 금지하는 곳에 서는 총을 쏘지 못한다.

제5조: 만약 일본인이 이 이정 내에서 행패를 부리거나 혹 경계를 넘어서 는 자가 있을 때는 당연히 그 지방을 관할하는 관리가 체포하여 일본 영사관에 인도하고, 혹은 그곳에 억류해 둔 채로 영사관에 알 리어 조치토록 한다. 단 억류하거나 송치할 때 너무 가혹하게 다룰 수 없으며 억류 기간은 영사관에 갔다가 올 때까지의 기간으로 한 다.

제6조: 이 이정 내에서 만약 조선인이 일본인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는 자 가 있을 때는 당연히 그곳 지방관이 즉시 관리를 파견하여 구호하 는 동시에 그 행패 사람을 엄벌한다.

제7조: 일본인이 한가히 거닐다가 날이 저물어 돌아가지 못하거나 혹은 도 중에서 질병이 발생하여 더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沿路의 人民들은 그의 청에 따라 轎馬를 마련해 주거나 혹은 자기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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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게 하여 정성껏 대접해야 한다.

제8조: 조선 정부는 제4조 이하의 각 조항을 그 이정 내에 있는 마을과 길에다 揭示 廣告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누구를 막론하고 준행하게 한다. 이것을 양국의 위임대신이 記名捺印하여 서로 信守할 것을 약속한다.

大日本國 明治 16년 월 일 大朝鮮國 開國 492년 월 일

1884년 1월 8일, 京畿道觀察使狀啓, 1면 1단

12월 3일 관찰사 金宏集이 장계하기를 󰡔濟物浦 항구에 11월 한 달 동안 출입한 외국 선박 숫자를 보고에 의하여 조사하온 바, 영국 商船 2帆짜리 南陞丸 한척이 동월 3일자로 나갔고, 중국 掛帆 宋三興 상선 한 척이 동일 들어왔으며, 중국 괘범 張福順 상선 한 척이 동월 6일 들어왔고, 중국 괘 범 趙福昌 상선 한 척이 동월 8일 들어왔으며, 일본 상선 괘범 住吉丸 한 척이 동월 10일 들어왔고, 중국 괘범 協源順 상선 한 척이 동월 11일 들 어왔으며, 중국 괘범 呂寶興 상선 한 척이 동월 12일 들어왔고, 일본 상선 2범짜리 鎭西丸 한 척이 동월 12일 들어왔으며, 중국 3범짜리 招商局 富 有상선 한 척이 동월 18일 들어왔고, 일본 상선 2범짜리 蓬萊丸 한 척이 동월 20일 들어왔으며, 중국 3범짜리 招商局 富有 상선 한 척이 동월 21 일 나갔고, 일본 상선 2범짜리 鎭西丸 한 척이 동월 23일 나갔으며, 영국 상선 2범짜리 南陞號 한 척이 동월 24일 들어왔고, 중국 괘범 金同盛 상 선 한 척이 동월 25일 나갔으며, 일본 상선 2범짜리 봉래환 한 척이 동월 29일 나갔고, 영국 상선 2범짜리 南陞號 한 척도 동일 나갔기에 삼가 아 뢰옵니다󰡕하였다.

1884년 1월 18일, 仁川港의 日本商人 居留地 稅收納登記 牒報, 1면 1단 監理仁川港通商事務인 趙秉稷이 정부에 첩보한 내용에 󰡔일본 상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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租地의 甲申년(1884년) 세금을 公賣때 작성한 約條에 의해 이달 15일에 다 받아들였는데, 租地의 米突稅[미터稅: 평방미터 당 받는 세금]의 액수와 상인의 姓名을 하나하나 기록하여 첩보합니다󰡕하였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제1호 住址[住居地] 65方2米突[2미터 평방짜리가 65개라는 뜻], 木下 淸兵衛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上等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합계액수는 2 천6백文. 제2호 住址 65方2미터, 木下淸兵衛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上等 액수는 40文으로 地稅의 총액은 2천6백文. 제3호 住址 65方2미터, 木下淸 兵衛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上等액수는 40文으로 地稅의 총액은 2천6백 문. 제4호 住址 65方2미터, 慶田常治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6백문. 제5호 住址 65方2미터, 小西昇作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6백문. 제6호 住 址 65方2미터, 度建一郞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 의 총액은 2천6백문. 제7호 住址 65方2미터, 林市良治 거주. 매 2미터 평 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6백문. 제8호 住址 65方2미 터, 郡金三郞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6백문. 제9호 住址 54.5方2미터, 梅野德治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 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1백80문. 제10호 住址 54.5方2미터, 官 田常治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1 백80문. 제11호 住址 1백30方2미터, 棍山新介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 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5천2백문. 제12호 住址 65方2미터, 堀久太 郞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6백문.

제13호 住址 65方2미터, 土井福三郞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 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6백문. 제14호 住址 65方2미터, 土井福三郞 거 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6백문. 제16 호 住址 65方2미터, 小柳友吉 거주. 매 2미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2천6백문. 제22호 住址 1백30方2미터, 小倉幸 거주. 매 2미 터 평방의 상등액수는 40文으로 지세의 총액은 5천2백문. 제24호 住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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