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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지위와 양안관계 중에는 양국론 관련부분을 삭제하고, 중화인민공 화국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을 피하며, ‘중국대륙’으로 고쳤고, 대만의 특색을 모호하게 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대만과 중국이 일체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했다.84)

실제로 미조 후의 104과강은 101과강과 비교해서 역사과의 대만사 부분이 대폭 바뀌었다. 저우완야오의 통계에 따르면 104과강 역사과 의 내용을 101과강과 비교했을 때, 대만사과강은 미조 전에는 1,937 자였으며, 미조 후에는 2,404자인데, 1,169자를 고쳐(새로 증가한 글 자가 818자, 없앤 글자가 351자) 60.4%에 달하였다.85) 이에 대해 張 亞中은 미조과정 중에 많은 글자가 더해지고 빠진 것은 실은 문자위치 의 조정 때문이라고 반박하였다.86)

만사교육에서 중국과의 역사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특 히 두 정부가 편찬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중 역사용어 논쟁은 양자의 핵심적인 갈등을 잘 보여준다.

후반부에서는 역사교과서 내용에서 시대별 주제와 관련해 어떤 갈 등과 논쟁들이 있는지 통일파와 독립파계열 학자들의 관점차이를 검토 하여 역사교육 논쟁이 순수한 학술논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문제 임을 확인하고자 했다. 대체로 중국사연구자가 많은 국민당계열 통일 파 학자들이 대만사연구자가 많은 독립파 학자들의 대만사 연구 성과 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만사연구의 무게중심이 중국과 대만의 분리로 기울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다수의 대만인이 스스로 중국 인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추세가 강화되면서 대만주체의 역사인식이 뚜 렷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통일파나 독립파 모두 국가(민족)주의적 성 향이 강하다고 비판하며 초국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학자들도 있다. 역 사용어 등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대만사회의 모습은 최근 국정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정계와 학계의 갈등과 너무나 닮아있어 많은 생 각을 하게 만든다.

결론을 대신하여 과강미조 후의 최근 대만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분 쟁상황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과강미 조와 관련해 등장한 17항의 쟁의에 대해 교육부는 ‘歷史課綱專家諮詢 小組’를 만들어 회의를 열어 쟁의를 토론하였다. 새로운 총통선거 직 전인 2015년 12월 21일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의 林滿紅은 전문가 모임을 통해 17개 쟁의용어에 대해 이미 기본적인 합의에 이르렀다고 발표하였다. ‘日治’와 ‘日據’에 대한 쟁의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 것 말고는 용어상 모두 ‘中性’적인 성격을 띤 용어를 채택하기로 하여 위안부와 원주민을 포함한 12개 용어는 모두 미조이전으로 돌아가기 로 했다. 쟁의용어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는 다음과 같다.

미조 전 과강의 ‘鄭氏統治’와 미조 후 과강의 ‘明鄭統治’는 ‘明鄭時 期’가 비교적 중성용어라고 보았다. 정씨통치를 명정통치로 바꾸는 논 쟁은 정씨가 대만을 통치할 때 永曆通寶의 화폐를 사용한 것은 정씨가

스스로를 명조의 연속으로 보았다고 보아 명정이 비교적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荷西治臺’와 ‘荷西入臺’의 쟁의는 ‘荷西時期’로 바꿀 것을 건의하였다. 당시 대만은 네덜란드정부가 직접 통치한 것이 아니라 네 덜란드 기업인 동인도회사가 다스렸으므로 ‘하서시기’가 비교적 적합 하다고 보았다. ‘淸代治臺’와 ‘淸廷治臺’의 쟁의는 개괄적인 의미의 ‘淸 朝治臺’로 하였다. ‘위안부’에 대해서는 굳이 강제성여부의 표현을 단 어 앞에 표기하지 않기로 했다. ‘日本統治’와 ‘日本殖民統治’의 쟁의는

‘日本統治時期’, ‘日本殖民統治時期’, ‘日本時期’ 등 3가지 가운데 1가지 를 선택하기로 하고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그밖에 “유 명전이 대만을 건설하여 대만이 중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이 되었 다.”는 내용에 대해 유명전이 순무를 담당해 대만을 건설한 사실이 완 전히 맞지는 않고 당시 중국의 모든 성 가운데 진보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할 필요가 있으므로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부분을 없애기로 하고 ‘청조의 대만에서의 건설’부분에 넣 기로 합의했다.87) 이런 결과에 대해 교육부에서는 여전히 이번 합의는 회의 중에서 다수의 견해에 따른 초보적인 결과로 다른 경로를 통해서 도 토론을 계속해 나중에 최종 심의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교과서 역사용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중성적인 용어를 찾으려는 노력은 나 름대로 평가할 만하다.

2016년 1월 총통과 입법원 선거가 민진당의 압승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학생들과 정치가들의 과강미조의 폐지요구에 대해 새로운 교과과정에 대한 공포는 신정부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과강미조 는 이미 실시되었으므로 철회할 수는 없다고 버티었다.88) 그러나 민진 당 출신의 신임총통 차이잉원이 2016년 5월 20일 공식 집정하자마자

87) 「歷史課綱爭議 專家建議採中性用語」 (中央社, 2015.12.21); 「歷史課綱17 爭議達共識 僅日據vs.日治未解決」 (風傳媒, 2015.12.21); 吳柏軒, 「中硏院林 滿紅: 黑箱課綱17項爭議 12項直接改回」 (自由時報, 2015.12.22) 등 신문기 사 정리.

88) 莊孟軒 林曉雲, 「敎部暫緩12年國敎領綱 不撤黑箱課綱」 (自由時報, 2016.

2.4).

곧바로 변화가 일어났다. 다음 날인 5월 21일 새로운 교육부 장관 潘 文忠은 기자간담회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행정명령으로 사회과와 국문 과에 대한 과강미조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로 쟁의가 일어 난 내용들, 예를 들어 ‘일본통치시기’를 ‘일본식민통치시기’로 바꾸거 나, ‘백색공포’시기의 역사에 반공정책 등 배후요인을 첨가하여 민중들 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미세조정안은 진행과정이 올바르지 않고 참여연구자가 대표성과 전문성이 부족하여 문제가 심각 하므로 가까운 시일 내에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고등학교 에서 이미 교과서를 채택한 경우 선택권을 존중하여 과강미조 판본의 교과서를 임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2016년도 2학기부터 2018년도까지의 과도기는 기존 101과강 판본을 사용해야한다고 발표 했다.89) 실제로 2016년 5월 31일 대만 교육부는 과강미조를 정식 폐 지하였다.90)

89) 2016년 6월 16일 교육부는 교과과정 심의위원회(41-49명 내외)을 정부기 관대표 10-12인, 비정부대표 31-37명으로 구성하기로 하고, 그 가운데 학생 대표 2명을 참여시키기로 결정했다. 학생대표에 중학생은 포함되지 않는다.

90) 이 논문은 본래 104과강(課綱微調)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5종에 대한 비교분 석을 하려던 것이었으나 심사위원의 지적대로 과강미조에 대한 소개 글에 머 무른 점이 없지 않다.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별도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별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역사(제1책) 대만사의 장절 비교

* 각 출판사별 교과서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음.

95잠강(괄호: 98과강) 101과강(괄호: 과강미조)

단 원 주 제 단 원 주 제

1. 早期臺灣

(1) 臺灣原住民族 (考古與臺灣原住民 族)

(2) 荷 西與明鄭 (荷 西與鄭氏政權)

1. 早期臺灣

(1) 十六世紀中葉以前的 臺灣與原住民

(十六世紀中葉以前的 臺灣與原住民族) (2) 國際競逐時期

(漢人來臺與國際競逐 時期)

(3) 鄭氏統治時期 (明鄭統治時期) 2. 淸代的長

期統治( 淸代的統 治)

(1) 政治經濟的發展 (2) 社會文化的變遷 (3) 外力衝擊與近代 化

2. 淸代的統 治時期(淸朝統治 時期)

(1) 開港以前政治經濟的 發展

(2) 開港以前社會文化的 發展

(3) 開港以後的變遷

3. 日本統治 時期

(1) 殖民統治前期的 特色

(2) 社會與文化的變 遷(3) 戰爭期的臺灣社 會

3. 日本統治 時期

(日本殖民 統治時期)

(1) 殖民統治前期的政治 經濟發展

(2) 殖民統治下的社會文 化變遷

(3) 戰爭時期的臺灣社會

4. 當代的臺 灣與世界

(1) 政治: 從戒嚴到 解嚴

(2) 經濟: 成長與挑 戰

(3) 社會: 變遷與多 元

(4) 世界體制中的臺 灣

(文化: 中國化 本 土化與世界化

4. 中華民國 時期: 當代臺 灣

(1) 從戒嚴到解嚴 (從光復到政府遷臺) (2) 經濟發展與挑戰

(民國四十到六十年代 的政經發展)

(3) 社會變遷

(民國六十年以後的政 經發展)

(4) 文化發展

(社會變遷與文化發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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