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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대만(역사편) 7-8장의 日本殖民統治時期에 대하여 쩡지엔민 은 교과서가 ‘일거시기’로 모두 습관적으로 사용해온 시대를 ‘일치시 기’로 대체하려한다고 비난했다. 리칭화 입법위원과 왕샤오보 교수 등 정치가와 학자들의 강력한 비판 후 임시로나마 ‘일본식민통치시기’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사회편」은 여전히 ‘일치시기’란 용어를 견지하였 다. 비록 교과서편찬위에서는 일치가 곧 일본식민통치라고 하지만 모 두가 알듯이 일치에서 식민통치의 핵심부분을 뺀 것은 일본통치의 특 징을 없앤 것이다. 이 장의 과목내용이 곧 좋은 증거인데, 식민통치의 사실을 드러내었는지 여부가 장절의 중점이라고 보았다.67) 이처럼 인 식대만(역사편)의 중요한 특징은 일본 식민지 통치에 대한 내용이 청 대나 중화민국 시기보다 많고 긍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비 판자들은 쑨원 등의 대만에서의 활동이나 대만인과의 관계를 말하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 등 대만인이 일본통치 시기 중 받았던 수모와 참 상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과서가 대만과 대륙 간의 역사문화 관계를 폄하하고 대만 독립을 고취했다는 사실과 일본의 대만 식민통 치를 미화하고 잔혹한 측면을 완화시켰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68)

66) 김유리, 「대만의 정권교체와 고등학교 역사과정 개혁」, p.115.

67) 王仲孚 編, 爲歷史留下見證:《‘認識臺灣’敎科書參考文件》新編, p.44.

68) 王曉波의 비판에 따르면, (1) 교과서 내용 가운데 객관적 역사사실의 오류가

리칭화는 인식대만 역사교과서 기술에 대해 대략 네 가지정도 지 적하였다. 첫째, 왜 ‘일거시기’를 모두 ‘일치시기’로 바꾸었는가? 둘째, 왜 전혀 일거시기 대만동포와 대륙과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았는가? 예 를 들어, 쑨원선생이 세 차례 대만에 와서 興中會의 대만분회를 만들 고, 羅福星이 同盟會에 가입하고, 蔣渭水가 中華革命黨에 가입하고, 連 震東 謝東閔 등이 대륙으로 건너가 抗戰에 참가했으나 교과서에 누락 되었다. 셋째, 왜 중화민족을 열렬히 사랑했던 連橫선생과 그의 대만 과 대륙의 역사연원을 저술한 대저 臺灣通史를 언급하지 않았나? 넷 째, 왜 일거시기 대만동포에 대한 여러 차별대우와 일본식민통치가 대 만동포에게 입힌 상처를 언급하지 않는가? 왜 전쟁시기의 대만국적 위 안부를 언급하지 않는가? 왜 대만국적 일본병의 고통을 언급하지 않는 가? 등이었다.69)

인식대만에서는 전체 11장 중 2개의 장을 일본의 식민지 통치시 기에 충당하였다. 특히 획기적인 것은 대만에 대한 일본통치의 부정적 측면만이 아니라 긍정적 측면도 객관적으로 기술하였다. 교과서에서 대만의 식민지화 과정은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일본의 대만 할양이 정해져 돌연 식민지로 전락했던 만큼, 식민지로의 전락과정이 나 원인에 대한 기술이 적고 “갑오전쟁 후, 일본은 대만을 획득해 대 만총독부를 설립하여 51년간의 식민통치를 전개했다.” 혹은 “1895년 4월 중일 양국은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해 대만과 팽호도를 일본에 할양했다.”라고 적고 있을 뿐으로 청일전쟁이나 식민지로의 전락 배경 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70)

많다, (2) 대만 인민의 주체성을 상실하였다. 이른바 대만 본토화의 미명아래 근대 식민통치를 미화하고 대만인의 식민통치에 대한 반항을 무시하였다, (3) 정치적 선전이 충만하며, 친일색채가 농후하다 등이다(王曉波, 「好漢剖服來相 見-評‘認識臺灣’國中敎科書」, 海峽評論 79, 1997.7, pp.42-43).

69) 李慶華, 「我對國中認識臺灣敎科書的質疑」 (王仲孚 編, 爲歷史留下見證:

《‘認識臺灣’敎科書參考文件》新編), pp.134-136.

70) 황안성, 「한국.대만의 역사교과서: 식민지기에 대한 기술」 (동아시아 역사교 과서는 어떻게 쓰여 있을까?, 에디터, 2006), pp.266-268.

과강미조 이전에는 ‘일본통치시기’라는 표현이 보통이었으나 과강미 조에서는 ‘일본식민통치시기’71)로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일본통치시 기는 이전에는 일본의 불법점거라는 의미에서 ‘일거’로 쓰였으나, 95 잠강에서는 ‘일치’로 통일하였다. 독립파 학자들이 주장하는 95잠강과 98과강은 일본에 의한 근대화 건설 과정을 통해 대만인이 어떻게 점 진적으로 중국을 벗어나 대만 주체성을 형성했는지를 강조한다.72) 일 본 식민지배의 피해를 언급하는 것보다 식민통치를 상당정도 긍정하는 것은 일본이 대만에 서방의 ‘근대’를 들여왔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 런데 중화민국의 창건과정(1911-1945)이 중국사에 편입된 것은 통일 파의 눈에는 ‘중국을 버리는 것’을 넘어서 ‘중화민국을 버리려는 것’으 로 보였다.

식민지근대화와 관련해 일치시대의 연구가 정치이데올로기가 충만 한 항일사관에서 탈피해 역사사실에 근거해 식민통치가 만든 근대사회 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최근 20여 년 간의 일이다. 물론 학자 들은 일방적으로 식민통치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며, 신중하게 근대화 건설의 배후에 놓인 통치목적과 대만사회에의 영향에 주목하여 식민성 과 근대성의 중층구조를 탐색한다. 95잠강에서는 비록 식민성과 근대 성에 대한 토론을 실고 있지 않지만 각종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사실 을 담고 있다. 101과강에서도 그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치시대 대만사회의 근대화에 대한 묘사는 기본적으로 학자들의 관점보다는 정 치이데올로기에 따른 내용을 담고 있다.73)

101과강에 따르면 위안부문제는 반드시 교과서에 수록되어야 한다.

그런데 101과강은 위안부의 역사적 진술을 교과서에 제시하면서 위안 부 중 ‘자원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런 진술은 교과지침

71) 南一書局과 翰林出版 고등학교 역사교과서(104年版)의 경우 ‘日本殖民統治時 期’로 제목을 정했으나, 康喜文化와 龍騰文化의 역사교과서는 ‘日本統治時期’

로, 三民書局는 ‘淸治臺灣’으로 정했다.

72) 추스제, 「대만지구 중등학교 역사교육의 쟁점: 중일갑오전쟁 120주년에 즈 음하여」, p.265.

73) 林琮舜, 臺灣史硏究在高中敎科書中的落實與落差, p.61.

의 원래 의도와는 다른 것이다. 과강미조에서는 위안부를 ‘위안부를 하도록 강제된 부녀’로 변경했다. 이에 독립파 학자들이 위안부의 강 제성만을 강조한 것과 관련해 반발하였다. 101과강이 나온 이래 독립 파 학자들은 대만인의 항일운동을 교과지침에 삽입하는 것을 별로 중 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특히 중국대륙에서 발생한 항일운동에 대해 그 랬다.74)

과강미조의 3장 ‘일본통치시기’는 ‘일본식민통치시기’로 바꾸어 ‘식 민’이라는 글자를 추가하였다. 일본시대 대만과 중국의 교류를 넣었는 데, 예를 들어 쑨원이 대만에 와서 중국혁명에 대한 지지를 구했던 것 과 오사운동의 대만에 대한 영향 등이다. 일본의 대만건설에 대한 내 용을 약화시켰고, 일본식민통치와 일본상인의 경제적 독점과 약탈을 강조하였다.75) 대만사학자 李筱峰은 ‘일본식민통치’로 바꾸는 것이 잘 못된 것인가? 아니다. 잘못이 없다. 일본은 확실히 대만에서 식민통치 를 하였다. 문제는 대만에 있었던 네덜란드, 스페인, 정씨, 만청, 일본 부터 중화민국까지 어느 시기 하나 식민통치가 아닌 것이 있단 말인 가? 만약 일본의 통치에 ‘식민’이라는 옷을 입히려면 왜 다른 식민통 치에는 입히지 못하겠는가? 라고 반박했다. 그가 보기에 국민당정권조 차도 외래정권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군정대권을 하나로 모아 실행 한 것은 일본총독부의 ‘行政長官公署’제와 다름이 없는 식민체제라고 주장했다.76) 널리 알려졌듯이 일본통치시기와 관련해 대만학계와 한국

74) 추스제, 「대만지구 중등학교 역사교육의 쟁점: 중일갑오전쟁 120주년에 즈 음하여」, pp.264-265.

75) 李筱峰에 따르면, ‘일치’시대인가 ‘일거’시대인가에 관한 논쟁은 개인적으로 는 일치든 일거든 모두 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대만주체의 입장에 선다면 일거를 사용하는 것도 불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친중성향의 통일파나 통일 파 매체의 진정한 목적은 대만사를 중국사의 일부분으로 볼 것을 요구하는 것 이며, 대중국을 대만사의 주체로 삼아 대만사의 해석을 대만에서 세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 문제가 있다(李筱峰, 「臺灣史是中國史的一部分嗎?」, 蘋果日 報, 2013.7.26.; 吳俊瑩 等著, 我們爲什麽反對課綱微調, p.8).

76) 李筱峰, 「臺灣史哪個階段不殖民?」 (自由時報, 2014.1.29.; 吳俊瑩 等著, 我們爲什麽反對課綱微調), p.14; 李筱峰, 「請問王曉波」 (蘋果日報,

학계는 적지 않은 시각 차이를 보이는데, 양자의 비교연구를 통해 학 문발전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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