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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승인 문제

문제는 헌법상 조약 체결 당사자로서의 북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조약이 ‘평화협정’이라면 그 본질적인 성격상 상대 당사자를 국가로 승인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 는 우려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하 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승인하고 있다기보다 전쟁과 분단 이라는 한반도의 법적 상태로 인하여 불승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반도 평화협정 체결 시 남‧북 상호 간에 그리고 북‧미 상호 간에 국가승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국제사회에는 국가의 성립을 통일적으로 인정하는 절차나 기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개의 국가의 승인을 통하여 국가의 성립이 인정된다. 승인의 의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적 대립이 존재한다.

하나는 창설적 효과설(constitutive theory)로서, 승인을 국가의 성 립을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 보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선언적 효과 설(declaratory theory)로서, 어떤 실체가 국가로서의 요건을 갖추 고 있으면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며 승인은 단지 사실 을 확인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오늘날의 현실에 비 추어 보면 승인은 선언적 효과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의 성립 여부가 논란이 되는 경우 승인은 국가 성립에 관한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하며, 반면 불승인은 문제된 국가의 국제적 활동을 봉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84) 따라서 일정한 상황에서는 또는 특정 국가들 간의 관계에서는 승인이 여전히 창설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85)

승인은 승인을 부여하는 국가의 ‘일방적 재량행위’이다.86) 즉, 어

84) 정인섭, 신국제법 강의: 이론과 사례 (서울: 박영사, 2019), p. 180.

85) 북한은 국가승인에 있어서 창설적 효과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국제무대에서 주인행세를 하던 낡은 시대의 그릇된 사고방식에 기초한 궤변에 지나 지 않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의 존재와 국제적 지위는 미국의 승인 여하 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미제는 무장간첩선 ≪푸에블로

≫호 사건과 관련하여 1968년에 그 조직집행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을 데 대한 서약을 담은 미합중국 정부의 사죄문을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 정부에 제출함으로써 사실상 우리 공화국을 승인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현대국제법연구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 사, 1988), pp. 68~70.

86) 김대순, 국제법론, p. 404.

떠한 실체에 대하여 승인을 부여할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승인을 언제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개개의 국가에 달려 있 다. 따라서 국가승인은 ‘상대적’ 성격과 ‘가변적’ 성격을 가지게 된 다. 구체적으로, 승인의 효과가 승인을 한 국가와 승인을 받은 국가 와의 관계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며, 애초에 승인을 부 여하지 않았던 국가가 추후에는 승인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 변적’이다.87) 승인은 정치적‧정책적 결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단 승인이 부여되면 그에 따른 법적 효과가 발생한다.

통상적으로 승인의 의사는 국제회의, 조약 규정, 선언, 통고 등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표시되나(명시적 승인),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 상 승인으로 간주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승인의 의사가 표시되기도 한다(묵시적 승인). 전통적으로, 독립을 획득한 신(新) 국가에게 국가원수가 축전을 보내는 것, 정식의 외교관계를 수립하 는 것, 신국가와 장기간에 걸쳐 포괄적 사항을 규율하는 정규의 양자 조약을 체결하는 것 등은 묵시적 승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다만 현실에 있어서는 명시적 승인과 묵시적 승인 간의 구분이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오늘날 국가들이 국가승인과 외교 관계의 수립을 구분 없이 하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명시적 승인과 묵 시적 승인 간의 구분은 더욱 모호해진 측면이 있다. 한편, 다자조약 이나 국제기구에 함께 가입하는 것, 통상대표부의 설치를 허용하거 나 무역사절단을 교환하는 것, 신(新)국가의 국민에게 입국사증을 발급하는 것 등은 묵시적 승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87) 김명기, “북한의 국제법상 지위와 남북평화협정 체결,” 고시계, 통권 제483호 (1997), pp. 115~118.

나. 평화협정 체결과 국가승인 문제

그렇다면 평화협정 체결은 당사자 간 상호 묵시적인 국가승인으 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만이 조약체 결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조약의 체결이 그 자체로 묵시적 국가승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1920년에 영국 과 소련 간에, 그리고 프랑스와 소련 간에 포로교환협정이 각각 체결 되었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그로부터 수년 뒤에 소련을 국가로 승인 하였다. 과거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도 여러 차례 정전협정들 이 체결된 바 있지만, 상당수의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양자 간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그리고 불확정한 기간 동안 규율하기 위한 조약의 체결은 명백히 국가만을 상대로 취할 수 있는 행위라는 점에서 묵시적 승인에 해당하는 것으 로 간주되어 왔다. 우호통상항해조약과 기본관계조약이 대표적인 예이다.88) 우호통상항해조약은 우호관계에 있는 국가 간의 통상과 항해에 관한 권리‧의무를 설정하는 조약으로서, 대개 당사국 국민 의 입국‧거주‧영업 등에 관하여 규정하며 영사의 교환을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관계조약은 국가 간의 정치적‧외교적 기본관계를 수립하는 조약이다.89)

일각에서는 평화협정의 체결도 당사자 상호 간 묵시적 국가승인 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서 Yoram

88) Robert Jennings and Arthur Watts, eds., Oppenheim’s International Law, vol. Ⅰ (London: Longman, 1992), p. 174; 이한기, 국제법강의 (서울: 박영사, 2000), p. 207; 김대순, 국제법론, p. 409.

89) 구체적인 예로서, 1965년 12월 18일 발효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 한 조약」은 제1조에서 “양 체약당사국 간에 외교 및 영사 관계를 수립한다”고 규정하 고 있다. 1993년 7월 7일 발효한 「대한민국과 러시아연방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과 러시아연방은 주권평등‧영토보전 및 정치적 독립 존중, 국내문제 불간섭 등의 제원칙과 기타 일반적으로 확립된 국제법 원칙에 따라 우호관 계를 발전시킨다”고 규정하고 있다.

Dinstein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평화조약의 특징은 그것이 소극적 성격의 문서만은 아니며(전쟁 의 종료라는 의미에서) 적극적 성격의 문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교전당사자들 간의 전후 관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전쟁을 종결 하는 것으로서 평화조약은 체약당사자들 간의 새로운 경계 획정(전 쟁 이전과 이후에 영토적 변경이 있는 경우), 배상 청구에 대한 피해 구제 및/또는 메커니즘 등 무력분쟁의 해결에 관한 여러 규정들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평화조약은 교전당사자들 간의 우호적 인 관계의 정상화를 수립하거나 회복한다. “정상화”는 법적인 용어 는 아니며, 문화교류 및 외교관계부터 관광 및 무역에 이르는 다양 한 사안들로 구성된다. 체약당사자 간 관계의 정상화를 초래함으로 써 평화조약에는 과학교류, 항해와 비행 등 여러 일상적인 내용들이 포함될 수 있다. 평화조약의 본질은 체약당사자들 간의 무력분쟁 뿐 아니라 갈등 전체를 끝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절한 상황에서 평화 조약의 체결은 체약당사자에 대한 묵시적 국가승인을 구성한다.”90)

이는 평화협정이 전쟁상태의 종식 뿐 아니라 당사자 간의 정상적 이고 우호적인 관계의 수립 또는 회복이라는 특징을 갖기 때문에 이 러한 협정의 체결이 당사자 간의 관계를 장기간에 걸쳐 포괄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조약의 체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물론 여기서의 평화협정은 국가로서의 객관적 요건을 갖추고는 있 으나 상호 국가승인을 하지는 않은 실체들 간의 평화협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군과 같이 국가성 자체가 인정될 수 없는 비국가실체를 상대방으로 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경우 에는 국가승인 문제가 대두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91)

90) Yoram Dinstein, War, Aggression and Self-Defense, 6th ed., p. 38.

91) 유엔은 1990년 이래로 내전(civil wars)의 50퍼센트 정도가 평화협정 체결에 의하

그런데 기존의 평화협정 사례를 보면, 체결 형식, 방법, 내용 등에 있어 정형화된 유형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협정 체결 시의 환경 및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92) 이런 점에 서 본다면 평화협정의 체결이 그 자체로 묵시적 국가승인으로 해석 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형식과 내용에 따라서 묵시적 국 가승인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 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은 기본적으로 분단 국의 구성체인 남‧북한이 당사자로 포함된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지 닌다. 즉, 남북 분단체제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체결되는 것인 만큼 한반도 평화협정은 형식이 독특할 수밖에 없으 며 내용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동안 학계 혹은 시민단 체 차원에서 제안된 평화협정 시안들을 보면 대체로 남‧북한 특수 관계를 전제로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는 내용 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93) 이는 한반도 상황에서는 당사 자 간 상호 묵시적인 국가승인으로 해석될 수 있을 정도로 포괄적인 성격의 평화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욱이 오늘날에는 묵시적 승인의 방법이 자주 사용되지 않으며 묵시 적 승인의 인정도 과거보다는 엄격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9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시 이 문제에 대한 입장 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한다면 이 협정의 체결로 당사자 상호 간 국가 승인의 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협정 자체에서 명시하거나 별도의 선언으로 밝히면 될 것이다.95) 남‧북한의 경우만 국한해서

여 종료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Christine Bell, On the Law of Peace: Peace Agreements and the Lex Pacificatoria, p. 27.

92) 김덕주, “한반도 평화협정의 특수성과 주요 쟁점,” p. 9.

93) 전쟁의 종료, 경계 및 평화지대, 불가침 및 안전보장, 한반도 비핵화, 군비통제, 평화 관리기구에 관한 내용은 거의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94) 정인섭, 신국제법 강의: 이론과 사례, p.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