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물의 근원인 운화기
⑴ 운화기의 형질과 본성
≪기측체의≫는 최한기가 비교적 젊었던 34세(1836년)에 완성된 저 서이다. 이해 비해 ≪기학≫과 ≪인정≫은 각각 55세(1857년), 58세 (1860년)라는 장년기에 완성되었다.135) 2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생긴 눈에 띄는 변화는 ≪기측체의≫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운화지기(運化之 氣), 즉 운화기(運化氣)라는 용어가 ≪기학≫, ≪인정≫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기에는 형질지기(形質之氣)와 운화지기(運化之氣)가 있다. 지월일성(地月日 星)과 만물의 형체는 형질지기이고, 우양풍운(雨暘風雲)과 한서조습(寒暑燥 濕)은 운화지기이다. 형질지기는 운화지기로 말미암아 모여 이루어진 것이 니, 큰 것은 장구하고 작은 것은 곧 흩어지는 것이 운화기(運化氣)가 스스로 그러하지 아니함이 없다.136)
최한기는 만물의 형체를 형질지기(形質之氣)로, 우양풍운(雨暘風雲) 과 한서조습(寒暑燥濕) 등의 속성은 운화지기로 구분한다. 또한, 큰 것 은 장구하고 작은 것은 곧 흩어지는 변화를 ‘운화기가 스스로 그러한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기가 작용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기가 작용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운화기’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이
135) 이우성, 「해제」( 증보명남루총서 , 대동문화연구원, 2002), 13쪽 참조.
136) ≪氣學ㆍ卷1-6≫,【氣有形質之氣。有運化之氣。地月日星萬物軀殼。形質之氣。雨暘風 雲寒暑燥濕。運化之氣也。形質之氣。由運化之氣而成聚。大者長久。小者卽散。無非運化氣之 自然也。】
어서 ≪기측체의≫에서의 ‘신기(神氣)’라는 용어에 담긴 의미를 이은 것 이다. 위 예문에 바로 이어서 최한기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형질지기는 사람이 쉽게 보는 바이나 운화지기는 사람이 보기 어려운 바이 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유형(有形), 무형(無形)으로써 형질과 운화를 분별했 다. 도가의 공(空)과 불가의 무(無)는 모두 무형으로써 도(道)와 학(學)을 삼았고, 심학(心學)과 리학(理學)에 이르러서는 마음속에 습염된 바를 무형 의 리라고 여겨서 깊이 궁구했고, 또 무형과 유형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러 나 사실 운화지기는 형질이 가장 큰 것이니, 무한한 공간에 가득 차고 천지 를 범위로 삼아서 만물을 함양한다. 피부와 뼈 속을 꿰뚫고 들어와서 풀무질 하니 견고하기가 견줄 데가 없고,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이 서로 부딪히면 굉음과 불꽃이 일어나니 이것이 운화지기가 유형이라는 분명한 증거이다.137)
최한기는 앞에서 운화기를 우양풍운, 한열조습의 속성으로 설명하였 다. 그런데 위 예문에서는 운화기가 ‘천지에 가득 찬 형질’을 가지고 있 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운화기는 천지에 가득 차 있고 우양풍운, 한열조 습 등의 작용 능력을 가진 기이다. 한편, ≪기측체의≫에서 최한기는 기 를 천지에 가득 찬 천지지기(天地之氣)와 천지지기가 모여서 형체를 이 룬 형체지기(形體之氣)로 구분한 바 있다. 그리고 천지지기와 형체지기 의 작용 능력을 천지의 신기[天地之神氣], 형체의 신기[形體之神氣]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운화기는 천지에 가득 차 있고 작용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기측체의≫의 천지지기의 의미를 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최한기는 ≪기측체의≫에서는 천지지기와 형체지기, 신 기로 표현되었던 내용을 위에서는 운화지기와 형질지기만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눈에 띄는 변화는 운화기가 유형(有形)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137) ≪氣學ㆍ卷1-6≫,【形質之氣。人所易見。運化之氣。人所難見。故古人以有形無形。分 別形質運化。老氏之空。佛氏之無。皆以無形爲道爲學。至於心學理學。俱以無形之理。潛究在 心之習染。用功於無形有形之間。然其實運化之氣。形質最大。充塞宇內。範圍天地。涵養萬 有。透徹膚髓。驅築鞴籥。則堅固無比。相迫冷熱。則轟燁斯發。是乃有形之明證也。】
는 것이다. 특히, 최한기는 운화기의 형질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서 예문 마지막 부분에서는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이 서로 부딪힐 때 일 어나는 굉음과 불꽃’을 그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운화기의 형 질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천지에] 가득 찬 기의 형질을 안 다음에야 운화의 도리를 알 수 있다. 주발 을 물동이의 물위에 엎었을 때 물이 주발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그 주 발 속에 기(氣)가 가득 차 있어 물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기에 형질이 있다는 첫 번째 증거이다. 하나의 방에 동서로 창이 있을 때 동쪽 창 을 급히 닫으면 서쪽의 창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기운이 방안에 가득 차 있 다가 풀무처럼 부딪혀 움직이기 때문이니, 이것이 기에 형질이 있다는 두 번 째 증거이다. …… 이 여섯 가지 증거를 가지고 몸에 푹 젖어 있는 것과 만 물의 변동을 증험해 보면, 이들은 모두 기의 형질을 증명하는 것이 아님이 없다. 조화도 그 속에 있고 신령(神靈)도 그 속에서 생기는 것인데, 운화의 신통한 공효를 다시 어디에 가서 탐구하겠는가?138)
최한기는 주발을 물 위에 엎었을 때 물이 들어가지 않는 것과 방에 있는 두 창문 중에 하나를 급히 닫았을 때 다른 하나가 열리는 것을 기 에 형질이 있다는 근거로 삼는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경우는 모두 공기 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이다. 아마도 최한기는 천지에 가득 찬 기, 만물에 젖어 들어가 있는 기를 형용하기에 공기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공기의 성질을 통해 무언가가 공간을 가득 채우 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공기의 개별적인 특성이 그대로 운 화기의 성질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운화기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 는지 아래에서 살펴본다.
138) ≪人政ㆍ敎人門 三(卷10)ㆍ氣之形質≫,【見得充滿氣之形質。然後可以見運化之道。以 鉢覆於盆水之中。而水不入鉢中。以其鉢中氣滿而水不入。是氣有形質之一證也。一室有東西 牕。而急閉東牕。則西牕自開。以其氣滿室中。而橐鑰衝動。是氣有形質之二證也。…… 擧此六 證。驗之於身體之漬洽。萬物之變移。無非氣形質之可證也。造化在其中。神靈生其中。運化神 功。更向何處究得乎。】
기의 본성[性]은 원래가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것이다. [이 기가] 우주 안 에 가득차서 털끝만큼의 빈틈도 없고, 모든 천체를 운행하고 조물(造物)의 무궁함을 드러낸다. 그 맑고 투명한 형질을 보지 못하는 자는 공(空)이라 하 고 허(虛)라 하고, [만물을] 빚어내는 변함없는 법칙만을 깨달은 자는 도 (道)라 하고 성(性)이라 한다. 그 소이연(所以然)을 구하는 자는 리(理)라 하고 신(神)이라 한다. 139)
최한기는 예문 시작 부분에서 ‘기의 본성[性]은 활동운화(活動運化) 하는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운화기의 본성을 활동운화로 규정한다. 그 렇다면 활동운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위 예문에서 최 한기는 ‘운화기가 모든 천체를 움직이고 조물(造物)의 무궁함을 드러낸 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활동운화란 운화기가 만물을 생성하고 움직이는 작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활동운화(活動運化) 네 글자는 대기(大氣)의 무궁한 쓰임에 빠짐없이 두루 미쳐 이르지 아니하는 데가 없으며, 별들의 느리고 빠른 움직임을 총괄하되 가로막히는 바가 없고, 인물(人物)의 시종(始終)과 윤리강상이 행해지는 조 짐을 모두 갖추고 있다. 만물을 낳고 기름에 뜻이 없으나 만물은 운화를 따 라 생겨나고 길러진다. 만물을 거두어들임에 뜻이 없으나 만물은 운화를 따 라 거두어진다. 어찌하여 운화가 본성(本性)의 활동에서 유래되는가? 만약 운화를 조화(造化), 조물(造物)이라 한다면 제작한다는 뜻이 있어 주재(主 宰)나 신(神), 또는 리(理)의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140)
별들의 움직임, 인물(人物)의 생장노사(生長老死), 만물이 생겨나고 길러지는 것 등은 모두 운화에 따른 것이다. 이를 최한기는 ‘활동운화가
139) ≪氣學ㆍ序≫,【夫氣之性元是活動運化之物。充滿宇內。無絲毫之空隙。推轉諸曜。顯造 物之無窮。不見其瀅澈之形質者。爲空爲虛。惟覺其陶鑄之常行者。謂道謂性。欲求其所以然 者。曰理曰神。】
140) ≪氣學ㆍ卷2-1≫,【活動運化四字。洽盡大氣無窮之用而未有不達。兼總諸曜遲速之轉而 無所妨碍。人物始終倫常之行。兆朕咸備。無意於生養萬物。萬物從運化而生養。無思於收藏萬 物。萬物隨運化而收藏。何以運化由於本性之活動也。若謂之造化。謂之造物。則有制作之意而 歸屬於主宰也神也理也。】
대기(大氣)의 무궁한 쓰임에 두루 미쳐있다’라고 표현한다. 즉, 가장 큰 기인 운화기가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무궁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 다. 이러한 작용들은 어떤 의지를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최한 기는 ‘만물을 낳고 기름에 뜻이 없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최한기는
‘어찌하여 운화가 본성(本性)의 활동에서 유래되는가’라고 자문하고, ‘운 화를 조화(造化), 조물(造物)이라고 하면 제작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 다’라고 자답한다. 즉,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운화라는 작용은 인 격적인 신과 같은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운화기가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활동운화의 기는 천지 사이에 가득 차서 천지의 진액과 인물(人物)의 호흡 이 되는 것이니, 조화가 이로 말미암아서 생기고 신령(神靈)이 이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다. 모든 생령(生靈)은 이 활동운화의 기를 얻어서 활동운화의 형체[身]를 이룬 것이니, 비록 이 기와 서로 떨어지려 한들 떨어질 수 있겠 는가.141)
‘운화기가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킨다’는 표현만 보면 마치 운화기가 의지를 가지고 조화(造化), 조물(造物)을 행하는 존재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따라서 운화기가 만물을 만든다기보다는 만물이 운화기로부 터 생겨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위 예문에 최한기는 사물의 생성에 대해서 ‘천지 사이에 가득 찬 활동운화의 기를 얻어서 활 동운화의 형체[身]를 이룬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즉, 최한기는 천지에 가득 차서 활동운화하는 기(운화기)가 모여서 수많은 개별적인 사물들이 생겨나고, 그 사물들은 자신만의 활동운화(예컨대 별이 움직이는 것)를 하다가 흩어져서 다시 운화기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였다.
만사만물은 모두 운화에 의해서 기멸(起滅)하는 것인데, 사물을 따라서 공부
141) ≪人政ㆍ敎人門 一(卷8)ㆍ氣化人道敎≫,【夫活動運化之氣。充牣兩間。爲天地之精液。
人物之呴游。造化由此而生。神靈緣此而發。四海生靈。得此活動運化之氣。以成活動運化之 身。雖欲與此氣相離。其可得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