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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경제정책

Dalam dokumen 북한경제 (Halaman 32-46)

가. 추진여건

대외관계

○ 핵문제 및 대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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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6일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을 계기로 북·미관계의 진전 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음.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10.11)시켰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한 해 동안 2단계 비핵화를 종료하는 데 실패하였음.

- 2008년 4월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미국은 핵신고 내용에 대해 합의하였 으며, 북한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신고서를 제출함(6.26).

- 이에 맞추어 미국은 적성국교역법의 적용을 중단하고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겠다는 방침을 의회에 통보하였으나 북핵 신고를 위한 검증체 계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함에 따라 테러지원국 해제가 연기됨.

- 이에 반발한 북한은 불능화 중단을 선언(8.26)한데 이어, 국제원자력 기구에 영변 핵시설의 감시카메라와 봉인의 제거를 요구하고 일주일 내 재처리시설을 재가동하겠다고 밝힘(9.22).

- 이후 지루하게 이어진 협상에도 불구하고 2008년 마지막으로 개최된 제6차 6자회담(12.8~11)에서 시료채취를 포함한 북핵 검증의정서 채택 에 실패하였음.

○ 대중관계

- 2008년 북한과 중국은 양국 정상들의 우호적인 발언 속에서 협력 분

위기를 유지시켜 나갔으며, 이를 기반으로 정치·경제적으로 한층 더

발전한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였음.

- 북·중관계 개선의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시진핑(習進 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방북이라고 할 수 있음. 시진핑 부주석은 국가발 전개혁위원회 부주임, 외교부 부부장, 중련부 부부장, 상무부 부부장, 중앙정책실 부주임 등을 대동함.

- 2008년 북·중무역은 양국의 정치적 관계의 개선을 기반으로 전년대 비 41.2% 증가한 27.9억 달러를 기록하였으며, 이러한 실적은 세계적 인 원자재 가격 폭등에도 일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됨.

○ 대일관계

- 북한과의 관계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후쿠다 정권의 등장을 계기로 국교정상화를 위한 실무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여기 에서 주요 현안인 납치자문제의 전면 재조사 등에 합의하는 등 진전을 보 였지만 갑작스러운 정권 교체로 중단됨.

- 후쿠다(福田康夫) 일본 총리의 사임 이후,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아소 정권의 등장으로 북·일관계는 다시 경색국면에 진입하게 됨.

○ 대러관계

- 북·러관계는 북·중관계에 비해서는 다소 소원해진 모습을 보인 것 으로 평가됨.

- 다만, 경제분야에서는 약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나진~하산 사이의 철도 현대화 사업과 나진항 개보수를 위한 협력에 합의함.

- 양측이 합의한 사업의 주요내용은 두만강~나진 철도 재건, 나진항 컨테

이너 터미널 건설, 인프라 구축, 하산~나진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수송을 담당할 합영기업 설립 등임.

2009년 북한의 경제정책 11

남북관계

○ 2008년 남북관계는 3월 말부터 북한의 대남 강경조치와 비난으로 경색 국면이 조성되었으며, 7월의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을 계기로 더욱 악화 되는 양상을 보였음.

- 여기에 더하여 북한당국이 12월부터 군사분계선 통행제한, 개성관광 중 지, 남북간 열차운행 중단, 남북육로 통행 제한 등의 조처를 취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11.24)함에 따라서 그나마 유지되던 남북간의 경제협 력사업 마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됨.

- 이에 따라 개성관광·철도운행이 중단되었고,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직원이 철수함.

○ 북한당국으로서는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서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전환 을 압박함으로써 남한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구사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표명한 것으 로 판단됨.

- 이에 대해 남한정부 역시 대북정책의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핵무기 포 기를 포함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전제되어야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이 지속될 가능 성이 클 것임을 시사하였음.

국제시장 환경

○ 2008년 9월부터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하여 세계경제는 급격한 침체를 경험하였음.

- 다만 2008년 말에는, 미국에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 출범하는 데대한 기

대감과 함께, 각국 정부들이 본격적인 경기부양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 상되었음.

- 세계경제의 침체와 함께 하락한 국제 원자재 가격은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2009년에는 다시 회복할 것으로 예측되었음.

나. 추진방향과 전략

○ 2009년 신년공동사설은 대외정책 기조로 “자주, 평화, 친선의 이념 아래 우 호국가들과 관계를 발전시키고 세계자주위업 실현에 이바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함.

- 더불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비핵화 의지를 천명함.

○ 대외 경제정책의 방향은 연초부터 대남관계의 악화와 대미관계 개선의 지체 등으로 인하여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대내 경제정책이 암시하는 바 와 같이 적극적인 대외 경제정책을 제시하지 않았음.

- 이는 세계금융시장에서 촉발된 경기침체로 인하여 2009년 세계경제가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분석됨.

- 이와 함께 북핵 관련 미국의 입장이 예상보다 강경한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시장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판단 도 작용한 것으로 보임.

- 또한 남한정부도 기본 원칙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남 한으로부터 경제협력을 유도해 내는 작업도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을 것임.

○ 이와 같은 어려운 외부 환경에도 불구하고 북한경제의 회생, 특히 ‘2012년

강성대국 대문 열기’의 경제적 기반 구축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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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는 사실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기 위한 필요성은 내부적으로 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 이런 관점에서 북한의 2009년 대외 경제협력 증대를 위한 전략은 상 대적으로 미국경제와 정치의 영향력이 적은 지역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었음.

- 이에 따라서 중국을 비롯하여 유럽, 중동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확대

하고, 이들 국가의 자본 투자를 유치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전망됨.

3. 2009년 북한의 경제정책 특징

가. 대내 경제정책의 특징

보수적, 과거 회귀적 계획경제 심화

○ 경제에 대한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일적 지도의 강화 시도

○ 과거 속도전, 대중운동 기본방식 재연

- 모범의 창출과 대중적 확산, 목표의 조기 달성, 노력 경쟁 등 과거 ‘천 리마운동’, ‘성강의 봉화’ 등과 같은 속도전 방식 답습

- 각 생산 단위의 목표 조기 달성과 증산 실적에 대한 선전보도를 지속 하는 한편 각 부문의 경쟁단위를 소개하면서 실적 경쟁을 유도

○ 대중동원, 시장을 포함한 사회통제 강화 등 내부 단속 강화

국가재원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제건설

○ 2009년 한해 북한의 전반적인 경제정책 기조는 ‘2012년 강성대국’과 ‘새 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이행하고 실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음.

-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150일 전투, 100일 전투 등 대중동원 방식을 동원하고 있음.

○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희천발전소 건설을 비롯한 대규모

산업 건설과 수십만 가구의 살림집, 공공건물 건설 등 “방대한 규모의 기

본건설”의 조기 완료를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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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한정된 재원을 역점 추진사업인 4대 선행부문에 집중 투입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것임.

○ 일반 주민들에게는 ‘절약 투쟁’의 확산 및 인센티브 제공 모색

- ‘절약 투쟁’은 “제국주의자들의 제재책동으로 하여 조성된 경제적 난관 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의 하나”라고 강조

- 이는 국제사회의 제재 등으로 제한된 국가 재정 속에서 핵심적인 국 가건설 사업에 집중하면서 나머지 부문에 대해서는 절약을 강조한 것 - ‘절약’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공장, 기업소 등에서

절약계획의 이행실태를 평가해 ‘원자재 절약 상금, 원자재 절약 장려 금, 노동정량 갱신 장려금 등 추가적 노동보수 지불형태를 적용’함으 로써 증산·절약을 유도하고자 함.

(1) 노력동원 운동을 통한 성공사례의 창출

‘150일 전투’ 실적 홍보를 통한 주민 사기 고양

○ 북한은 ‘150일 전투’가 끝난 9월 중순과 말 기간에 각종 언론매체, 시 당 지도일꾼 협의회 등 각종 모임 등을 통해 생산 전투 실적을 애초 목표보 다 초과달성했음을 집중 홍보하면서 주민들에게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희망 등을 주면서 후속적인 ‘100일 전투’ 추진을 위한 명분으로 활용하였음.

-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이례적으로 9월 21일 “150일 전투가 승리 적으로 결속된데 대하여”라는 보도문을 통해 “지난 4월 20일부터 9월 16일까지 진행된 ‘150일 전투’가 승리적으로 결속되었다”고 밝힘.

-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특별 보도문은 “지금 온 나라 전체 인민들과 인

민군장병들은 ‘150일 전투’에서 승리한 기세로 년말까지 ‘100일 전투’를

계속 벌려 강성대국건설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제낄 불타는 결의에 충만되어 있다”고 강조

○ 북한은 사회주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주요 부문별 경쟁단위를 소개함.

(󰡔노동신문󰡕, 2009년 8월 29일).

- 금속부문: 성진제강소(함북김책)와 9월 제철소(평북 의주), 황해 제철소(황북 송림)

- 벼농사: 미곡(황북 사리원), 신암(평북 용천군), 삼지강(황남 지령), 은흥(평북 태천), 동봉(함남 함주)

- 감자생산: 대홍단군·백암군(자강), 부전군·장진군(함남)

- 화장품: 평양화장품공장의 ‘은하수’와 신의주화장품공장의 ‘봄향기’

- 문화예술: 가극 ‘홍루몽’과 연극 ‘네온등 밑의 초병’

○ 그러나 ‘150일 전투’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100일 전투’를 벌이는 것은 북 한이 세웠던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동 시에 생산 촉진효과뿐만 아니라 사회 통제를 위한 긴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을 가능성이 있음.

- ‘100일 전투’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150일 전투’ 선전 내용과도 일 치하지 않음.

‘150일 전투’를 통한 정치 · 경제 · 사회적 목적 달성

○ ‘150일 전투’는 경제적 목적 외 정치·사회적 목적을 함께 갖는 다목적용 돌격대식 증산운동으로 평가되고 있음.

- 이는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특별 보도문을 통해, “우리 인민에게 있어

서 ‘150일 전투’는 단순한 경제활성화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혁명의

Dalam dokumen 북한경제 (Halaman 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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