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개인은 물론 국가도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다. 자원, 기술, 인적 자원 등에서 상호 차이가 심한 현대사회에서 상부상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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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력 평가 85 상호의존 없이는 자국이 처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역을, 안보문제 해결을 위해 서는 군사동맹을, 기술낙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협력을 이 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대이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무역거래는 주로 중국을 통해 해결하고 있고, 군사분야의 협력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관계를 맺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우방국 획득을 위해서 북한은 <표
Ⅱ-2>에서처럼 2009년 1월 현재 160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북한을 폐쇄국가로 분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정치적으로 ‘예외적인’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 고, 경제분야에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진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고립 국가’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표 Ⅱ-2 남북한 외교관계 수립현황(2009년 1월)
지역 한국 북한 동시수교
아주 36 25 25
미주 34 24 23
구주 53 49 48
중동 19 17 16
아프리카 46 45 45
계 188 160 157
* 출처: 외교통상부 홈페이지 (검색일: 2009. 9. 22).
전통적으로 약소국가들은 국력강화를 위해 강대국의 등에 업혀가 든지(bandwagoning), 아니면 강대국에게 대항하기 위한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balancing)이 상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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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필마로 세계최강국 미국과 쟁투를 벌이고 있다. 이는 역사상 매 우 ‘예외적인’ 일이다. 물론 형식적으로 중국 및 러시아와 안보동맹을 맺고는 있지만 현재 그것은 거의 사문화되어 있다. 북한 또한 이들의 지원을 기대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 자주적인 입장에 서 자력갱생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노선은 북한을 더욱 고립무원으로 빠뜨렸고, 2006년 10월 및 2009년 6월 UN안보리에서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도 목도되었다시피 북한의 원군은 하나도 없 는 상태이다.
각종 정치·군사·경제 동맹은 국력을 배가시킬 터인데, 북한은 이 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생존하겠다는 ‘좁은 문’을 택하고 있다. 아직 까지는 비록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체제를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 지만, 최악의 경우 북한은 주변국 모두로부터 외면당하여 고사되는 순간이 도래할 지도 모른다. 북한의 대외관련 국력은 그만큼 최악인 것이다. 특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관계가 최악이고, 전통적인 우방 인 중국과의 관계도 ‘혈맹관계’나 ‘순치관계’와는 거리가 먼 상태이기 때문이다.111 다만 중국의 한반도 안정기조 유지라는 대한반도 전략 때문에 최소한의 대북 경제지원이 있기에 북한은 버티고 있는 실정 이다.
가. 불리한 대외환경
북한의 대외정책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 유지 및 김정일 정권 유지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국가의 대외정책 목
111_최명해, “북한의 2차 핵실험과 북·중 관계,” 국방정책연구, 제25권 3호 (한국국 방연구원, 2009), pp. 11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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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력 평가 87 표는 국가체제 유지를 위한 것이 상식이나 북한은 체제유지 외에 ‘수 령주의’ 내지는 ‘장군주의’에 입각, 김정일 개인 또는 정권 보위에 대 외정책 목표를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짐은 국가다”라는 절대주의 시 대의 국가관 및 지도자관을 가진 북한은 절대자인 김정일을 국가 및 인민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유고는 북한체제의 붕괴라는 인식으로 인해 ‘김정일 결사옹위’를 위해서 모든 인민이 강대국 특히 미국에 항거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둘째, 경제지원 획득이다. ‘우리식 사회주의’의 최대 맹점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미비로 인한 생산성 저하인 바, 북한은 김정일 정권의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서방세계로 부터 경제지원 획득을 외교정책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북한 경제난의 실체는 외화난, 식량난, 에너지난, 생필품난 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화난이 가장 심각한데, 북한은 외화획득을 위해 마약밀매, 무기수출과 함께 금강산 및 개성 개방 등 ‘부분적 개 방’을 통해 서방 기업의 적극적 참여 유도를 대외정책 목표로 설정하 고 있다.
그렇다면 대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은 어떠한가? 물론 그 환경은 매우 좋지 않다. 첫째, 북미간 갈등이 심하다. 북한의 대외정책 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은 북핵문제로 인해 긍정적이지 못하다.
특히 대외정책 목표실현을 위해서는 세계패권국인 미국의 협조가 필 수적인데 미국은 북핵문제를 이유로 적극적인 대북지원을 기피하고 오히려 강력한 제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북미관계는 매우 불안정 한 상황이다. 비록 2009년 9월 현재는 오바마 정부가 ‘포괄적 패키지 (Comprehensive Package)’를 당근으로 하여 북핵폐기를 유도하기 위해 양자대화를 허용하는 모양새이지만, 미국의 대북 인식인 ‘악의 축(Axis of Evil)’ 개념이 근본적으로 제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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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향후 언제든 북미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북한과 중국·러시아 관계 변화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전통적 맹방이었으나 자본주의 세계체제 편입 후 미국과 관계가 중요 시되었기 때문에 북한의 독특한 사회주의를 일방적으로 편들기는 어 렵게 되었다. 물론 러시아는 일정정도 북한의 정책을 옹호하고 있으 나, 중국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북핵문제와 관련 북한의 입장에서 대화를 추진하다가 미국의 거부를 당했으나, 중국은 미국의 입장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 하였기 때문에 6자회 담 의장국이 될 수 있었다. 특히 북한의 실질적인 지원자인 중국이 미국의 입장에서 핵포기를 종용하는 것은 북한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북핵문제로 인해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을 가장 크게 경계하고 있다. 2002년 9월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일본과의 수교를 달 성하고 배상금 약 100억 달러를 획득하려는 북한의 의도는 일본 내 반북 분위기로 인해 무산되었다.
셋째, 남북관계가 순탄치 않다. 김대중 및 노무현 정부시기 시행되 었던 대북 포용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거의 폐기되다시 피 되었다. 이명박 정부도 북한 핵폐기를 전제로 ‘그랜드 바겐(The
Grand Bargain)’을 내놓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의 존재를 인
정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식’ 통일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관 계가 상생·공영관계로 변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폐기를 이행하지 않는 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대규모의 대북 경제 지원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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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력 평가 89 나. ‘벼랑끝 전술’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현재로서 북미관계는 최악이다.112 2009년 1월 미국에서 진보성향 의 오바마 정부가 출범했지만 대북정책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의 행위에 대해 UN안전보장 이사회 결의를 유도하는 등 대북 제재를 주도하고 있다. 그 동안 북 한은 대미 ‘벼랑끝 전술’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던 것이 사실이 다. 역사상 북한이 대미 ‘벼랑끝 전술’을 취한 사례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1차 북핵위기이다. 199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북핵문제는 북한의 대미 벼랑끝 전술의 전형이었다. 미국의 대북 ‘압박’을 제어하기 위해 북한은 핵문제를 매개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였다. 1994년 6월 북미간 대립은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 검토까지 갔고, 카터(Carter)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최악의 상황은 도래하지 않았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미간에는 대화가 지속되어 동년 10
월 21일 북미제네바 합의가 도출되었다.
둘째, 제2차 핵위기이다. 2001년 1월 등장한 부시행정부는 강한 대 북 압박 정책을 채택하였다. 9월 11일 소위 ‘9.11테러사건’이 발생하 였고, 미국 국민들의 반테러정세에 편승한 부시 정부의 테러 및 테러 지원국가들에 대한 압박은 전례 없이 강력하였다. 드디어 2002년 1월 에는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대통령 연두교서가
112_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이수혁, 전환적 사건-북핵문제 정밀분석 (서울: 중앙 books, 2008); 서훈, 북한의 선군외교; 최용환, “북한의 대미 비대칭 억지·강제 전략-핵과 미사일 사례를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2); 임수호, “실존적 억지와 협상을 통한 확산: 북한의 핵정책과 위기조 성외교(1989-2006),”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박사학위논문, 2007) 등에 자 세히 분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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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되었다. ‘악의 축’인 북한을 제어하기 위해 미국은 북핵문제를 다 시 꺼냈다. 2002년 10월 3일부터 5일까지 방북한 미국의 켈리(James
Kelly) 특사 일행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려
는 비밀계획을 시작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 장했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2005년 9월 ‘9.19 공동성명’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BDA 문제제기로 인해 이 성 명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에 대해 북한은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 동년 10월 핵실험 등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였다. 결국 미국은 북한의 희망대로 북미 양자회담을 실시하였고, 2007년 2월 ‘2.13합의’와 ‘10.3 합의’가 도출되었다. 2008년 들어서는 4월 8일 소위 ‘싱가포르 합의’
도 도출되었다. 드디어 10월 11일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해제’를 획득하였다.
셋째, 제3차 핵위기이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시절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시사하였기 때문에 북한은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북미관계가 크게 진전될 것으 로 기대하였으나 미국은 ‘시간 끌기’를 지속하였다. 오히려 힐러리 클 린턴 국무장관은 북한의 ‘후계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의 불안정성을 거론하였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오히려 부시 1기 시절의 그것 과 비슷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2009년 4월 5일 로케발사, 5월
25일 제2차 핵실험 등으로 맞섰다. 기존의 벼랑끝 전술이 재등장한
것이다. 미국 또한 강경하였다. 미국은 UN안보리를 통해 대북제재를 가하였다. ‘안보리 결의 1874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가혹했고 미국 과 일본은 독자적인 대북제재까지 취하였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여 기자 2명의 억류사건이 발생하였고,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방북이 이루어졌으며 비록 다자간 회담 복귀를 전제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