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까지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방법을 이용해 북한의 비공 식 부문 추세를 검토한 결과 거의 완전히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북한 비공식 부문의 비중이 1990년대 초중반 이후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에 있었으나, 이러한 추세는 1999년을 기점으로 진정 또는 반전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결론을 얻기 위해 사용 한 방법은 북한의 비공식 부문 추정과 관련하여 현 수준에서 개별 연
구자가 이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합리적 방법들이었다. 따라서 우 리는 이상의 결론을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정보의 수준 에서 개별 연구자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가정 하고, 그것의 의미를 검토하기로 한다.
우리는 앞의 제Ⅲ장에서 198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에 대 한 다양한 가설들을 살펴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가설들을 북한에 있 어 시간에 대한 시장화의 추세를 나타내는 그림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북한 불변화 가설은 ‘일정 기간동안 북한의 시장 비중은 확대되겠지만, 이러한 추세는 조만간 역전되어, 시장의 비중은 다시 과 거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북한 경제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과거의 경제시스템을 보호하여,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 를 복구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 시장화 가설은 ‘시장의 비 중이 꾸준히 확대’되는 그림을 그리려 할 것이다. 또한 계획경제 정상 화 가설은 ‘시장의 비중이 일정기간을 지나면 기존의 급격한 확대 추세 에서 벗어나 진정되겠지만, 그렇다고 과거와 같은 수준으로까지는 복 귀하지 않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들을 이 장에서의 추정결과인 <그림 Ⅳ-2>와 비교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북한 불변화 가설은 현실적으로 지지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 다. <그림 Ⅳ-2>는 북한 비공식 부문의 비중이 1980년대 이후 뚜렷 한 상승추세에 있으며, 비록 1999년 이후 이러한 상승추세가 진정되 었는지는 모르나, 그 비중은 여전히 과거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 불변화 가설이 내포하고 있는 과거로 의 복귀가 실현될 수 없는 것이거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실현되지 않 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북한경제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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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경제개혁과 이행
터와 정보의 수준으로는 북한 불변화 가설을 쉽게 지지할 수만은 없 다고 결론짓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반면 북한 시장화 가설은 충분히 지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80년대 이후 북한 비공식 부문의 비중이 뚜렷한 상승추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유보조건이 따른다. 1999년 이후 이러한 상승추세는 진정되었을지도 모르며, 이러한 진정 현상이 발생한 시점이 바로 경제위기 이후 북한당국의 본격적인 경제정책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실은 2002년 ‘7.1조치’를 포함한 최근의 북한경제정책 변화가 진정으로 의 도하는 바는 시장의 용인이 아니라 이를 통한 공식부문의 회복이라 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물론 북한 시장화 가설은 이에 대해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북한당국의 의도가 그와 같을지라도, 이는 기존 의 시장화 추세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북한에 있어 시장의 확대추세는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다시 실증의 문 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비공 식 부문 규모를 추정하면, 이러한 답변에 대해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에서는 입수 데이터의 한 계 때문에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북한경제의 시장화 가 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한가지 숙제가 남겨진 셈이다.
한편, 이 장의 추정결과를 가지고 가장 안전하게 지지할 수 있는 가설은 아마도 북한 계획경제의 정상화 가설일 것이다. 북한에서의 시장의 추세와 관련하여 양자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 역시 시장화 가설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가지 유보조건이 따른다. 1999년 이후 시장 비중의 증가추세가 진 정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과연 진정한 추세의 변화인가 하는 점이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2000년 이후 현재 까지의 북한 비공식 부문의 비중 변화를 추정하면 보다 정확한 판단 을 내릴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다시 실증의 문제로 돌아간다. 계획경 제의 정상화 가설을 주장하기 위해서도 여전히 실증이라는 한가지 숙제가 남겨져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경제에 대한 정치적 변화의 가설은 이 장의 추정 결과를 가지고 논의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 가설이 북한경제의 현재 와 미래에 대한 복합적 가능성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 만, 이 장의 추정결과를 토대로 볼 때, 이 가설을 이용해 북한경제의 붕괴를 논의하는 것 보다는 그것의 안정화 또는 새로운 균형으로의 복귀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 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일지도 모른다 는 판단이다. 북한에서의 비공식 부문의 비중이 무한정 확대되는 것 이 아니라,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며, 이러한 현상이 경제 위기 이후 북한당국의 본격적인 경제정책 실행 과정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북한의 중앙 계획자가 다시 사회주의 (공 식)경제부문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북한 생산자들의 반발 역시 중앙 계획자 의 통제력을 무력화 시킬 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 다. 과거 1990년대와 같은 계획자 통제력(모니터링) 약화 → 생산자 노력 투입 약화 → 산출량 감소 → 계획자 통제력 약화라는 경제붕괴 의 악순환이 또다시 초래될 가능성이 그만큼 적어졌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V
맺음말
이제까지 이 글에서는 198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를 정 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가설을 검 토하고, 또한 북한의 비공식 부문을 추정함으로써 이들 가설을 평가 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가 개혁이라고 부르는 북한경제의 변화는 사실상 북한당 국이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추진해온 서로 이질적인 정책들의 복합 적 산물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기존의 경제시스템을 유지‧복구하기 위한 노력이었으며, 다른 하나 는 기존 시스템의 운영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였고, 나머지 하나 는 기존 시스템 이외의 시장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 임이었다.
둘째, 이러한 북한 경제정책 변화의 특징으로 인해 이를 해석하는 가설 역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 북한 불변화 가설과 시 장화 가설 그리고 계획경제 정상화 가설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가설들을 사회주의 경제의 이행 가설들과 접목하여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와 그것의 이행론적 함의 역시 살펴볼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가설 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1) ‘북한 불변화 가설 + 사회주의 붕괴론’, 2) ‘북한 시장화 가설 + 사회주의 비공식화론’, 3) ‘북한 계획 경제 정상화 가설 + 사회주의 붕괴론 및 비공식화론에 대한 반론’, 4) 북한경제 변화에 대한 ‘정치적 가설’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북한의 비공식 부문의 비중을 추정해 보면, 그것은 1998년까 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가 분명히 나타나지만, 1999~2000년 에는 이러한 추세가 관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두 해에는 비공식 부 문의 비중이 이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북한의 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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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경제개혁과 이행
용 석유 소비의 경우 비공식 부문의 비중이 1970년대의 2% 수준에서
1998년까지는 최고 7%수준으로 상승하지만, 이 수치가 1999~2000
년 사이에는 4%대로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넷째, 이러한 비공식 부문의 추세를 감안할 때, 북한 불변화 가설은 경험적으로 지지하기가 힘든 것처럼 보인다. 다만, 북한 시장화 가설 이나 계획경제 정상화 가설은 충분히 지지할 수 있지만, 이들 역시 보다 확고한 주장을 하려면 2000년 이후 북한의 비공식 부문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수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북한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의 함의를 진지하게 토 론하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이것이 결국에는 북한경제의 시장경제 로의 이행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길일지도 모르기 때문 이다. 더욱이 이를 둘러싼 다양한 정책적 갈등과 견해의 대립을 해소 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진지한 토론은 불가피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북한의 경제현상이 그러하듯이, 북한경제의 변화와 관 련해서도 어떤 진지한 토론이나 합리적인 추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정보나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 해 외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논의는 그 열의와 성의에도 불구하고 답답할 정도로 발전이 더 딘 상태에 놓여 있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소비에트 경 제의 붕괴를 계기로 이루어졌던 사회주의 경제 일반의 개혁과 이행 에 대한 논의들을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검토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러한 논의과정 속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미래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 모형뿐만 아니라, 이를 실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여러 데이터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