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북한의 핵개발 재개와 북·미관계
미국무부 대변인은 2002년 10월 16일 제임스 켈리 미 대통령 특 사의 방북 기간동안 북한이 농축 우라늄에 의한 핵개발을 인정했다고 밝힘으로써 북한 핵개발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하였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에는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추출함으로써 핵무기를 개발하는 방법과 천연우라늄을 농축하여 핵무 기를 개발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합의에 의 해서 플로토늄을 이용한 핵개발을 포기하기로 합의하였으며 그 대가 로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북한이 이번에는 농 축 우라늄에 의한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북한은 외교부 대변인 성명(2002. 10. 25)을 통해 핵개발에 대한 북한의 기본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가지게 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자주권 인정, 북·미불가침 조약, 북한 경제발전에 장애요인 제거를 전제로 핵문제를 협상을 통 해 해결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1994년 이후 제네바합의에 의해 국제원자력기구는 북한의 16개
핵시설 가운데 5MW 원자로, 50MW 원자로, 200MW, 방사화학실
험실(재처리시설), 연료봉 저장소의 5개 핵심시설에 대해서 봉인장치
와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사찰요원을 상주시켜왔다.
그런데 북한은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이후 미국의 대북중유 제공 중단에 대응하여 핵동결 조치를 해제하고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북한은 외교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동결 해제, 핵시설 가동과 건설의 즉시 재개’ 입장을 천명하였다(12. 12). 그리
고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에 대해서 최단시일 내 봉인 제거와 감시카 메라 철거를 요구하고(12. 14), 5MW 원자로의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12. 21), 핵연료봉 저장시설의 봉인 제거, 5MW 원자로에 새 핵연료봉의 장착 준비(12. 23) 등 일련의 핵동결 해제조치를 취했다. 더욱이 북한은 2003년 1월 10일 NPT탈퇴를 선언하였다. 북한은
NPT를 탈퇴하되 핵무기 개발의사는 없으며, 미국이 대북압박정책을
포기할 경우 북·미간 별도의 검증을 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196) 이로써 북한핵문제는 1993년 3월 북한이 NPT를 탈퇴했던 상황으로 되돌아 갔다.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한 것은 체제보장에 대한 북한의 요구 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핵카드를 활용하여 미국으로부터 체제보 장 약속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북한이 북·미 불가침 조 약 체결을 핵문제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체제보장에 대한 북한 의 직접적 요구를 표명한 것이다. 북한은 제네바합의를 통해 미국으 로부터 핵무기의 대북선제 불사용에 관한 ‘소극적 핵안전보장(NSA)’
을 확보했었는 데, 다시 핵카드를 활용하여 미국으로부터 보다 광범
위한 ‘불가침조약’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은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는 한편, 정 책수단을 세분화하는 ‘살라미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1993-94년의 핵위기시와 같은 ‘벼랑끝 전술’에 입각하여 핵프로그램
의 재가동에 착수하였다. 북한은 일단 전력생산을 구실로 5 MW원자 로의 재가동을 추진하였다. 이후 북한은 단계적으로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 농축우라늄 개발 추진 등 핵무기 생산과 직접 연관될 수 있 는 조치를 세분화하여 단계적으로 취함으로써 협상력을 제고하려고 할 것이다.
196) 「조선중앙통신」, 2003년 1월 10일.
또한 북한은 미국이 대이라크전을 앞두고 양면전을 감행하기가 어 렵고 북한문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여, 위 기를 단계적으로 점증시킴으로써 미국의 관심을 촉구하고 협상력을 제고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최근 한국내 반 미정서를 감안할 때,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경우 한국내에서 북한에 대한 비난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이 조 성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를 통해 북한의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한·미공조체제를 와해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지니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은 제네바합의, 핵비확산조약, 국제원자력기구 의 핵안전조치 협정,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모두 위반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미국은 북한이 핵개발을 먼저 포기해야 북한과 대화할 수 있으며, 국제적 합의를 위반한 북한에 대해 보상을 제공하 는 방식의 협상을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제재와는 달리 북한 핵문제를 평 화적이고 외교적 방법에 의해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부 시대통령은 APEC을 계기로 한 한·미일 3국 정상회담(2002. 10.
27)에서 “미국은 북한을 침략할 의사가 없으며, 북한이 미국의 지원
을 필요로 하고 있으므로 다른 문제들과 함께 핵문제를 해결할 기회 를 갖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무력제재 의사가 없다는 점을 명시함으로써 북한의 불안감을 완화하는 한편,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전제로 북한과 포괄적 협상을 통해 북한에게 반대급부 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은 회담을 개최(2003. 1.
6~7)하고 북한에게 신속하고도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핵개발프로그램 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면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미국 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폐기하기 이전이라도 핵포기 의사를 표명하
면, 북한과 핵프로그램의 폐기방법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197)
나. 북한 핵문제와 북·미관계 전망
북·미간 현격한 입장차이를 고려하면, 북·미 협상 개시가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그 동안 개별국가에게 조약 형태로 불 가침을 보장한 선례가 없으며,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나 핵태
세검토(NPR) 보고서 등에서 제시된 ‘선제공격 독트린’은 9·11 테러
사태 이후 대테러 전략 차원에서 발전된 개념이기 때문에 철회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대이라크 사찰과 유사하게 북한의 모든 의혹 시설에 대한 전면적 사찰을 요구할 가능성이 큰 데, 북한이 이것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 발생 직전이나 비중있는 제 3의 중재자가 개입 하기 이전까지 북·미 대립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북·미대화 를 촉구하기 위해서 5MW 원자로의 재가동 수준을 넘어서 핵무기 생 산과 직접 관련된 행위를 하는 등 순차적으로 위기고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은 전력생산을 구실로 5MW원자로의 재가동, 사용후 연료봉 8,000개의 봉인 제거 및 재처리시설 가동을 통해 핵무기 생산을 목적으로 한 플로토늄 추출, 50MW 및 200MW 원자로의 재건설, 농축 우라늄 개발을 통한 핵무기 개발 추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북한의 긴장고조 행위에 대응하여 미국과 IAEA는 북한에 대한 외
교적·경제적 제재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예를 들면, 경수로 건설의 중
단, 경제제재 강화(경제제재 강화에 대한 일본, 중국, 유럽연합 등의 197) Korea Herald, January 1, 2003; 「조선일보」, 2003년 1월 9일.
동참 요구), 한반도 근해에 미 함대의 파견 등 군사적 대응태세 강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안 채택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그러나 북·미간 긴장고조에도 불구하고 북·미가 전면 대치하거나 대 북군사적 제재가 실시될 가능성은 낮다. 북한은 부시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극단적 행동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첨단무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무력제재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한국의 반대 및 주한미군의 안전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이 쉽사리 무력을 사용하기 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무력사용 반대입장도 미 국의 군사적 제재를 어렵게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은 군사적 제재를 감행할 정도의 전략적 이익이나 경제적 이익
(예를 들면 중동지역의 원유확보)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의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측이 대화의 필요 성과 협상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여곡절 과정을 거치더라도 북·미가 궁극적으로 협상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
다. 북·미 양측이 각자의 선결 요구사항이 대화를 통하지 않고는 접점
을 찾기 힘들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 대북무력불사용 및 평 화적 해결원칙을 밝히고 있으며, 북한도 대화를 통해 핵개발을 포기 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북·미 협상의 계기는 미국측 고위급인사의 평양방문이나 북한측 고
위급인사의 워싱턴 방문, 또는 제 3국의 중재자를 통해 미국의 先 핵 개발 계획 중단 입장과 북한의 先 북한체제인정 요구가 6타협점을 찾 음으로써 마련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이 핵프로그램 중단에 관한 가시적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북·미대화가 시작되는 형태의 타협안이 도출될 수 있다. 북한의 긍정적 조치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의 대북식 량지원이나 대북중유제공 등이 실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