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정착의 일차적 목표는 안보불안 해소 및 안보협력의 강 화를 통해 남북한간 사실상 통일상태를 달성하는 데 있다. 그러나 최 근의 북한 핵문제에서 보듯이 현재의 한반도 안보상황 하에서는 단기 간내 그러한 목표의 달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 핵위기는 외견상
북·미간의 현안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이로 인한 위기고조는 한반도
전체의 안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남한이 결코 배제될 수 없다. 더구나 남북한은 1990년대 초반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 화 공동선언｣을 통해 재래식 군사력과 핵문제에 관한 안보협력의사를 공동으로 표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또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 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안보불안은 동북아 주변강대국들도 원 치 않는 바이다.
이처럼 한반도 평화정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의미에서 남북한 및 주변강대국들간의 안보 대화가 전개되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체제생존의 방편으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집착하는 북한 의 태도 때문이다. 둘째, 한반도 평화정착과정에서 자국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강대국들의 상이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긍정적인 평화질서의 확립이 쉽지는 않지만, 냉전종식이후 강대국들간의 협력 지향적 태도 덕분으로 적어도 한반도의 안보위기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우리의 노력과 역할은 매 우 중요하다. 동북아지역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외교적 위상과 역량은 상대적으로 그리 높지는 못하지만, 동북아 평화구축의 핵심변수인 한
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명분을 바탕으로 충분한 목소리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의 노력과 역할은 크게 두 방향성을 가진다. 일 차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북한이 우리와 군사안보적 대화를 회 피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우선 상호불신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정
치·경제·사회·문화적 분야의 화해·협력을 증대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안보문제에 관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복잡하게 뒤얽힌 동북아 강대국들의 안보이익을 고려하여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강대국들의 개별적 협력은 물론이고 공동협력을 위한 대화와 실 천의 장을 마련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과 역할이 추 진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내부에서 정책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마련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와 같은 현실을 염두에 두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추진되어 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지 비교적 분명해진다. 즉 남북한의 국내적 변 화를 수반하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우호적인 방향 으로 국제환경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추진되어야 할 과제영역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문화, 정치·외교의 모든 분 야에 걸쳐 있다. 구체적인 과제는 <표 Ⅵ-1>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표 Ⅵ-1>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과제
분야
차원 안보 경제 사회·문화 정치·외교
국내 환경
ㅇ냉전적 대결 의식 극복 (남북한)
ㅇ개혁·개방 의지(북한)
ㅇ대남차단정 책포기(북한)
ㅇ이념적 다양 성 확대 (남한)
ㅇ남북관계개선 을 위한 국내 적 제도기반 확충(남북한)
남북한 관계
ㅇ재래식 CBM ㅇ남북한 평화 협정체결
ㅇ통상협정체결 ㅇ경제교류 및 협력을 통한 상호 이익 극 대화
ㅇ인적 교류 확대 ㅇ통행·통신 협정 체결
ㅇ남북기본합의 서의 실천
국제 환경
ㅇ북·미간 북한 WMD 타결 ㅇ주변강대국의 한반도평화 보장
ㅇ북한의 세계 시장 참여
ㅇ국제적 사회 문화교류· 협 력에 동참
ㅇ북·미, 북·일 관계 개선 ㅇ주변강대국들 의 협력관계 증진
<표 Ⅵ-1>에서 제시된 구체적 과제들은 상호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
고 있다. 즉 국내환경 차원에서는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한의 문화적· 제도적인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남북한 관계 차 원에서는 이미 남북한이 합의했던 남북개선방안들, 특히 가장 구체적 인 내용들을 담고 있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할 때, 평화정착이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환경 차원에서는 북·미대화를 통 한 안보문제 해결을 비롯하여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방을 가능케 하는 국제여건의 조성이 평화정착과정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 과제는 현실 여건상 동시에 추진되기는 어렵다. 특히
관련국들의 정책목표와 세력관계로 인한 과제간의 시간적 연계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과제를 실천하는 과정은 순차성을 띠게 된다. 현 상 황에서 한반도 평화정착과정이 순조롭게 진척되기 위한 첫 단추는 북 한의 태도변화 여부에 달려 있다. <표 Ⅵ-1>의 과제들도 따지고 보면 북한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촉진시키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과제별 실천과정의 시간적 연계성을 단계적으로 도식화하면 <표 Ⅵ-2>와 같다.
<표 Ⅵ-2> 과제의 단계별 추진과정
<제1단계>
목표: 북한의 체제유지 자신감 확보를 통한 개혁·개방 의지 촉진 ㅇ국내환경 조성: 남한의 대북인식개선/ 북한의 대남불신 약화 ㅇ남북관계 개선: 당국간 대화 및 사회단체간 교류·협력 활성화/ 대
북인도적 지원/ 경제교류·협력 확대
ㅇ국제환경 조성: 북·미대화 재개/ 북한의 국제사회 참여기회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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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단계>
목표: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과 북·미간 안보문제 해결 ㅇ국내환경 조성: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 확대
ㅇ남북관계 개선: 남북기본합의서 실천기반 조성/ 재래식 CBM/ 인 적 교류확대/ 인도적 문제 해결
ㅇ국제환경 조성: 북·미간 WMD 문제해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 변강대국들의 협력 증진
↓
<제3단계>
목표: 평화협정체결 및 평화정착을 위한 문화와 제도 완비 ㅇ국내환경 조성: 냉전의식 극복(남북한)/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국
내적 제도기반 확립(남북한) ㅇ남북관계 개선: 남북평화협정 체결
ㅇ국제환경 조성: 북·미 및 북·일관계 정상화/ 북한의 세계시장 본 격 참여/ 동북아 안보협력체 구성(4자 또는 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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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체제 확립
<표 Ⅵ-2>에서 제시된 각 단계는 과제추진의 시간적 우선 순위를 보여주지만, 각 단계 내에서는 우선 순위가 가변적일 수 있다. 특히 추진주체의 현실인식과 이와 관련된 추진전략에 따라 우선 순위가 바 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과제의 성격상 문제해결에 걸리는 시간, 비중, 난이도 등의 측면에서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안보적 또는 경제적 과제 중 어느 것에 더욱 큰 비중이 두어지는가에 따라 추진전 략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 또한 전술적 측면에서 상호주의의 적
용방식(엄격한 또는 신축적 상호주의)에 따라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첫 단계의 과제들이라고 해서 다음 단계 에서 전혀 무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첫 단계에 속한 과제들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기까지는 물론이고 평화통일을 달성할 때까 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앞 단계에서 이루어진 성과는 다음 단계들의 과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