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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에 대한 일본의 대응

북핵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북핵을 빌미로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 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과 핵이 결합할 가 능성에 대비하여, ‘미사일방어망’(Missile Defense: MD) 구축에 진 력하고 있으며, 이로 이해 중국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는 궁극적으로 일·중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동북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듦으로써 한·중관계와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관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일동맹이란 가면을 쓰고 추진되는 일본 의 군사대국화는 한국에게는 상당히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공개 적으로 반대할 수도 찬성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북한 핵에 핵으 로 대응하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핵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세부적 으로 두 가지로 나뉘는 데, 일본이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하는 것이 하나의 축이고,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운용과 전략에 대한 접근성 을 높이는 것이 다른 하나의 축이다.

54_미국이 1978년부터 한·미 SCM 공동성명에서 핵우산 제공을 최초로 명기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 시도에 대한 미국 측의 대응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인택,

“동맹과 확장억지: 유럽의 경험과 한반도에의 함의,” 󰡔EAI-JPI 동아시아 평화 컨퍼런스󰡕 (동아시아연구원·제주평화연구원 공동 주최, 2009.9.11), p. 117.

북핵폐기 이전의 한‧미 안보협력 59 가. 일본의 핵무장 논의 활성화

2009년 6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소 수상이 “북한 핵문제가 심각 해지면 일본 내부에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질 것”이 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55 정상회담에서 일본수상이 직접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 특이하지만, 사실 ‘북한 핵에 대응한 일본의 핵보유’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67년부터 핵무기를 “보유·제조하거나 반입시키지 않는

다”(持たず, 作らず, 持ち込ませず)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하면서 도56 내부적으로는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주기적으로 해왔다.

‘비핵 3원칙’을 선포한 사토 수상도 핵무장에 대한 비밀검토를 지시한 적이 있다.57 나까소네 전 수상이 방위청장관이던 1970년에 발표된 방위백서는 “소규모 전술상의 순수한 방어용 핵무기를 소유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58 헌법상 공격용 핵을 갖는 것은 어렵지만 자위를 위한 소규모 핵보유는 가능하다는 것이 일본 정·관 계의 저변에 깔린 인식인 것이다.

두 발의 핵무기로 패전국이 된 일본국민들의 핵에 대한 저항감, 즉

‘핵알레르기’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핵무장과 군사대국화를 지지하는 의견은 전후 일본사회에서 쉽게 표출되기 어려웠다. 평범한 일본국민

55_󰡔朝日新聞󰡕, 2009년 7월 31일.

56_1967년 사토(佐藤榮作) 수상이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사회당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비핵 3원칙을 선언했다. 佐々木芳隆, “核戰略の中の日本,” 坂本義 和編, 󰡔核と人間: 核と對決する20世紀󰡕 (東京: 岩波書店, 1999), p. 244.

57_󰡔朝日新聞󰡕, 1994년 11월 13일.

58_Selig Harrison, “Japan to be medium-rank power,”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October 21, 1970; 1980년도 방위백서도 나이키-허큘리스 방공미사일 과 203mm 유탄포와 같은 방어용 핵무기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朝日新聞󰡕, 1980년 10월 15일.

60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 전략적 협력에 관한 연구

들의 이런 인식을 바꿔놓은 것이 바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다.

1993년 5월 북한이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중거리미사일을 개발하 면서부터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 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북한 위협론’이 일본국민들에게 먹혀들기 시작한 것이다. 1998년 8월 대포동미사일 시험은 ‘북한 위협론’이 일 본사회에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되었고, 2006년의 1차 핵실험으로 ‘북한 위협론’은 활짝 꽃을 피웠다. 2009년 4월 5일 북한이 3차 장거리미사 일을 발사했을 때, 일본 전역이 비상상태였지만 일본국민들은 당연하 게 받아들였다. 오죽하면 자위대 군인들이 김정일의 초상화를 향해 절을 한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라는 더 큰 화를 자초하는 화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 미국 핵에 대한 접근성 강화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일본정부와 자위대는 유사시 미군의 핵능력에 대한 접근 권한, 즉 핵전력과 핵전략의 운용 전술에 대한 협의와 의사결정 체계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조용하게 기울여왔다. 북한의 1차 핵실험 6개월 후인 2007년 3월 20일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이 당시 미국과 함께 작성하고 있던 공동작전계획에 미국측이 핵우산 공약을 어떻게 실천할지 구체 적인 설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59 그 이유는 일본이 북한의 핵위협을 받는 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미국이 일본과 어떻게 협력 해서 대응할지,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핵무기 사용결정을 내리고 어 떤 방법으로 일본에게 알려줄지 등에 대해서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59_󰡔연합뉴스󰡕, 2007년 3월 20일.

북핵폐기 이전의 한‧미 안보협력 61 했다.

이후 일본 전문가와 관료들로부터 미·일 양국이 미군의 핵사용에 관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1998년부 터 4년 간 유엔주재 일본대사를 역임한 사토(Yukio Satoh)는 지금 까지 미·일 안보협력이 보여준 특징은 미국의 확장억지가 어떻게 기 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일본에서 최근 미국의 안보공약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많아졌다고 지적했다.60 사토 대사는 미·일 양국이 핵을 포함한 확장억지의 개념을 공유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일본이 미국의 핵전략과 작전계획에 대한 정보를 받고 일본의 의견을 얘기할 수 있 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유럽의 경험을 모델로 삼고 있는 듯하다.61 유럽에서는 냉 전시대부터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는 나토 회원국들과 미국 사이에 핵관련 협력이 진행되어 왔다. NATO 회원국들이 미국의 핵우산 공 약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한 것이 그 동기였 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전문가와 관료들도 일본의 요구에 공감을 하 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외교정책분석연구소는 일본과 미국이 핵무기 운용에 국한된 NATO 방식의 ‘핵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 NPG) 보다는 핵을 포함해서 보다 다양한 요소들을

다루는 ‘억지정책그룹’(deterrence policy group)을 창설하는 것이

60_Yukio Satoh, “Reinforcing American extended deterrence for Japan: an essential step for nuclear disarmament,” Policy Forum Online, Nautilus Institute, May 5, 2009.

61_Jacquelyn Davis, et al. (eds.), Updating U.S. Deterrence Concepts and Operational Planning (Cambridge, MA: Institute for Foreign Policy Analysis, February 2009), p. 10.

62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 전략적 협력에 관한 연구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62 이 그룹에서 다룰 수 있는 의제로는 다음 사항들이 제시되었다: ① 미국의 핵정책과 미·일 핵협력 시나리오,

② 미·일 공동 위협평가, ③ 북한과 중국의 억지전략에 대한 공동연 구, ④ 핵·미사일 확산에 대한 공동대처, 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경제제재와 외교적 조치 공유 등.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로 임명 되어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켐벨(Kurt Campbell)도 미·일 양국 이 핵억지의 요소들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 했다.63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과 미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데에 따른 것 으로 보인다. 우선 일본은 자체적인 핵무장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미군 핵에 대한 접근성 강화를 차선책으로 삼았 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을 아시아 최대의 전략동맹으로 간주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도 서유럽에서 진행되어 온 수준의 핵협력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처지이고, 역시 일본의 핵무장을 피할 수 있는 차선책으로 서 일정 부분의 핵협력에 호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일본의 핵무장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보장책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만약 이런 노력이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일본은 자체 핵무장을 비밀리에 추진하되 핵보유 여부는 이스라엘과 같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62_James Schoff, Realigning Priorities: The U.S.-Japan Alliance & the Future of Extended Deterrence (Cambridge, MA: Institute for Foreign Policy Analysis, March 2009), p. xiv.

63_Stephen Yates and Christian Whiton, “Smarter North Korean diplomacy:

talking to allies is more important than talking to Pyongyang,” Wall Street Journal, August 5, 2009.

북핵폐기 이전의 한‧미 안보협력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