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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

徐禎卿은 시에서 근심과 슬픔을 읊은 내용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대 부분 시인 자신의 삶과 연계되어 나타난다

.

그가 조정에 몸담고 있던 실 제 기간은 매우 짧다

.

126) 본래 정치적 이상을 펼쳐보고자 했던 서정경은 여러 번 과거시험에 낙방하게 되자 좌절을 겪게 되었고

,

급제한 후에는 환관들과 마찰이 생기는 등 여러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

이런 인생 역정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으며

,

이러한 흔적은 주로 자기반성적 태도로 나타났다

.

시인은 작품에서 자신을 대상화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자의식을 확인하였다

.

서정경의 시에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는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이것은 유가적 현실의식이 전반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

서정경은 처참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기보다는 현실에 이 바지하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

또한 국가와 황제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픈 마음과 속세를 떠나 은거하고픈 마음 사이에서 갈 등하는 시인의 모습도 반영하였다

.

그밖에 자신의 삶을 회고한 후 앞으로 의 다짐을 드러내는 작품들도 있다

.

<경오년 중양절에 비로소 흰 머리칼이 보이다(庚午歲九日始見二毛)>

常年搖落不知悲, 이전에는 낙엽이 떨어져도 슬픈 줄 몰랐는데 九日今年感鬢絲. 올해 중양절에는 희어진 살쩍이 느껴지네.

綠醑滿眼竊自壽, 눈을 가득 메운 푸른 빛 맛있는 술로 스스로에게 축 126)서정경은 弘治 18년(1505) 2월에 진사에 급제한 후 正德 원년(1506) 2월에 호남으

로 떠났다. 그 후 正德 2년(1507) 10월에 북경으로 돌아왔다가 正德 3년(1508)에 죄수를 놓쳐 남하하게 되었다. 正德 4년(1509)에는 國子監五經博士에 임명되었다.

수하고

黃花插頭從帽欹. 머리에 국화를 꽂고는 두건을 비스듬히 써보네.

孤心久寄風霜外, 적막한 마음 오래도록 고달픈 생활에 부쳤으니 生意長含日月私. 이러한 처지는 오랫동안 천지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

이네.

已息塵機甘退斥, 속세를 향한 마음 접어두고 퇴척을 달게 받고자하니 猶將筆硯愧支離. 문인으로서 지리소에게 부끄러울 뿐이네.

위의 시는 서정경이

32

살 되던 해의 가을에 지어진 것이다

.

正德

5

(1510)

에는 劉瑾과 그의 측근들이 사형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

이 시는

유근이 죽임을 당한 이후 지어졌다

.

시인은 낙엽이 떨어져도 슬픈 줄 몰랐던 과거와는 달리 이 해에는 흰 머리칼을 문득 발견하게 되었다

.

이것은 긴박했던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비로소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시인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중양절 을 시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

시인은 맛있는 술을 마시며 국화를 감상하는 등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명절 분위기를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

이를 통해 그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오랫동안 고독함을 느꼈던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

또한 이제는 모든 걸 포기하고 관직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을 드러내었다

.

하지만 제

7-8

구 에서 시인은 자신의 신세가 支離疏보다 못한 처지임을 깨닫고는 부끄러 울 뿐이라고 밝혔다

.

지리소는 손발이 보통 사람들처럼 마음먹은 대로 움 직이지 않지만 이러한 지체장애 덕에 자급자족하며 천수를 누린 인물이 다

.

시인은 지리소를 통해 나라에 헌신하지 못하고

,

행복한 생활 또한 누 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었다.

이와 같이 서정경은 주로 소소한 것들에 자신의 불우한 상황을 깨닫게 되며

,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

이는 암담한 현실 속 에서 잊고 지냈던 평범한 일들을 통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모 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당인이 도화오에 집을 지어 살고자 나에게 부탁하였는데 빌려줄 돈이 없

어 편지를 부쳐 남들의 조롱에 변명하다(唐生將卜築桃花之塢, 謀家無貲, 貽書見讓, 寄此解嘲)>

1 予昔攀白日, 나는 예전에 태양을 붙잡고 오른 적이 있는데 2 虹霓干紫庭. 무지개는 자미궁에 걸려있었네.

3 浮沈帝座側. 제좌 곁에서 성쇠를 겪었으나 4 無人知歲星. 아무도 세성임을 알지 못했네.

(…) (…)

17 黃金不遇心自吁, 황금대를 만나지 못해 근심스럽기만 한데

18 白璧無媒翻見侮. 흰 옥으로도 추천 받지 못하고 도리어 업신여김 당하네.

19 昨日結交燕少年, 이전에 연지방의 청년과 교분을 나누었는데 20 酣歌擊筑市中眠. 노래 부르며 축을 타다가 도시 안에서 잠들어 버

렸지.

21 正逢天子失顏色, 마침 황제의 안색을 잃고

22 奪俸經時無酒錢. 녹봉이 깎여 오랫동안 술 살 돈조차 없었네.

(…) (…)

32 十年與爾青雲交, 그대와 오래도록 고상한 뜻을 같이 하며 33 傾心置腹無所惜.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였기 때문에 슬프지 않네.

34 擊我劍, 나는 검을 두드리고 35 拂君纓. 그대는 갓끈을 어루만지며 36 請歌鸚鵡篇, <앵무부>를 부르고 37 爲奏朱絲繩. 붉은 현으로 연주하네.

38 胡爲擾擾蒼蠅之惡聲. 어찌 파리의 듣기 싫은 소리 때문에 근심스러워 하겠는가.

39 我今蹭蹬尚如此, 오늘날 나는 잘못을 저질러 궁핍한 형편에 이르 게 되었지만

40 嗟爾悠悠世上名. 아, 그대는 유유히 세상에 명성을 떨치고 있구나.

위의 시는 전체 시의 제

1-4

,

17-22

,

32-40

구에 해당하는 부분이 다

.

이 시는 正德

3

(1508)

에 지어졌다

.

서정경은 이 시기에 죄수를 놓치 게 되었고 唐寅은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 사건에 연루되어 명예를 실추 한 상태였다

.

1-4

구는 시인이 과거시험에 급제하자 세상이 혼란스러워졌음을 표현

하였다

.

또한 ≪太平廣記≫권

6

에 기록되어 있는 東方朔의 전고를 사용하 여 아무도 시인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았음을 밝혔다

.

17-22

구에 서는 뜻대로 되지 않던 정치 생활에 설상가상으로 잘못을 저질러 녹봉까 지 깎인 시인 자신의 형편을 묘사하였다. 돈을 빌려달라는 당인의 부탁을 완곡히 거절하기 위해 시인은 회재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죄수 를 놓칠 때의 일을 회상하였다

.

32-40

구는 부탁을 거절당한 당인을 위 로하기 위해 적은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서정경이 추구하는 삶의 모 습이 반영되어 있다

.

34-35

구에서는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픈 당인 과 서정경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

이것은 어릴 적부터 두 사람 모두 추구 하던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

시인은 그러한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은 그 렇지 못한 사실을 나타내고 있지만

,

한편으로는 소인배들의 악행에 근심 할 필요가 없다며 궁핍한 형편에 이르게 된 자신을 위로하는 모습을 묘 사하였다

.

<잡술(雜述)>

1 緬求先民跡, 아득히 멀리 있는 옛 현인들의 자취를 구해왔지만 2 體德異通玄. 타고난 덕성으로 미묘한 이치를 깨닫는 것과는 다르네.

3 自非孔聃志, 만약 공자와 노자의 덕행이 아니라면

4 所造孰無諐. 어느 누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5 伊予實闇劣, 나는 참으로 어리석고 무능하며 6 秉算昧幾先. 앞날의 일 잘 예측하지 못하네.

7 言念恭人德, 사람의 도덕을 공경하고

8 惴惴戒重淵. 깊은 못에 이르기가 두렵던 때가 그리울 뿐.

9 徒隆守己樸, 오직 자신의 천성을 높이니 10 罔達濟時權. 관직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네.

11 順正不尤物, 바르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은 귀한 물건보다 중 요하고

12 任道故樂天. 중대한 임무를 맡은 인자는 천명을 따름에 즐거워하네.

13 務光以潔湛, 무광은 청렴함을 위해 깊은 물에 빠졌고 14 梅生智自全. 매복은 지혜로 자기 자신을 지켰으며 15 箕子狂爲奴, 기자는 미친 척하며 노예로 살았으니

16 何必屈父賢. 어찌 그들의 어짊을 욕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17 未周群物情, 세상 물정 모두 헤아릴 수 없으니 18 且復徇己偏. 잠시 개인의 이익만을 꾀해보려고 하네.

19 人命幾何時,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되는가.

20 金石忽以遷. 금석도 홀연히 변해 가는데.

21 永言保貞素, 정결함 간직하고자 시를 읊으며

22 庶明松柏堅. 소나무와 측백나무와 같은 굳건함이 지켜지길 바라네. 23 眷念攜手益, <휴수곡>으로 그리움 더해가니

24 用嗣北風篇. <북풍>을 이어 부르네.

위의 시는 正德

4

(1509)

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이 작품을 서정경 이 國子監五經博士로 좌천된 직후 지어진 것으로 본다면 그 어느 때보다 그의 감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을 것이다.

1-4

구는 현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려 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시인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

이것은 제

5-6

구의 내용과 연결된다

.

시인은 자 신을 “어리석고 무능하다(闇劣)”라고 표현하며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해 자책하였다

.

그리고는 덕을 쌓고 매사에 조심하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 음을 나타내었다

.

하지만 서정경은 자신의 지난 삶이 후회스럽지는 않았 던 듯하다

.

13-16

구에서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은거를 선택한 務光과 현실 세계를 피해 다닌 梅福, 고위 신분을 포기하고 노예 신분을 선택한 箕子를 언급하였다

.

시인은 그들의 선택을

어질다

(賢)”

라 말하였다

.

이것 은 어지러운 세상과 타협할 바에는 차라리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 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

그래서 서정경은 비록 잘못을 저질러 불우 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굳건한 절개를 지키고자 하였다

.

서정경은 어릴 적부터

생명

에 관심을 기울였다

.

127) 따라서 그

127)서정경의 吳中 시기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는 주요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다.

생명에 대한 슬픔을 읊은 내용.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비교하여 생명을 존 중하는 마음을 읊은 내용. 인간의 생명과 시대의 흥망을 연결 지은 내용. 시인의 생각이나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 등 시인의 삶과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읊은 내용. (崔秀霞, ≪徐禎卿詩學思想研究≫,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