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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禎卿은

기는 본래 장엄함을 중시하지만 또한 예리하고 너무 드러나 는 것을 피한다”130)라고 하였다.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비록 자신의 감정 을 마음껏 표출하고자 하였지만 그 표현은 비교적 완곡하다는 특징을 지 니고 있다

.

지금 그 글을 자세히 보면 온화하고 아담하게 감정을 나타냈고 정밀하면 서도 완곡하게 사건을 풍자하였으며 시원하게 그 기를 도달시켰다. 비흥수법 으로 그 의미를 나타냈고 옛 어휘로 함축시켰으며 토의함으로써 그 격식을 통일시켰고 슬픈 울음으로 불평함을 발산하였고 여러 가지를 비교하여 그 변화를 다양하게 만들었다.131)

128)徐禎卿, ≪談藝錄≫: “夫情能動物, 故詩足以感人.”

129)徐禎卿, ≪談藝錄≫: “情無定位, 觸感而興. 既動于中, 必形於聲.”

130)徐禎卿, 談藝錄≫: “氣本尚壯亦忌銳逸.”

131)李夢陽, 空同集卷52, <徐迪功集序>: “今詳其文, 溫雅以發情, 微婉以諷事, 暢以達其氣, 比興以則其義, 蒼古以蓄其詞, 議擬以一其格, 悲鳴以泄不平, 參伍以錯 其變.”

李夢陽이 적은 ≪迪功集≫의 서문에는 서정경이 사건을 풍자하는 방식 에 대해

정밀하면서도 완곡하다

라고 표현하였다

.

앞서 살펴본 서정경의 악부시에서도 이러한 점이 나타난다

.

그는 악부를 통해 현실을 풍자할 때 도 부드러운 어기로 완곡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선호하였다.

서정경의 작품에는 주로 시인의 슬픈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명시하 고 중복적으로 사용한 경향이 나타난다

.

그렇지만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 현하지 않고 완곡하게 표현한 작품도 여럿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이와 같이 사실적 묘사와 완곡한 표현이 모두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작품의 내용과 성향에 따라 표현 방법을 달리 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

먼저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풍자하는 작품을 통해 그의 완곡한 표현 방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옛날을 생각하며 2수를 유자에게 보내다(古意二首贈劉子)>

空爲郢中客, 공연히 영 땅의 나그네가 되었지만

不見郢中吟. <양춘백설>과 같은 고아한 시는 보이지 않네.

美人高堂上, 화려한 집에 있는 미인은 自奏山水音. 산수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구나.

帝子葬何處, 아황과 여영은 어디에 묻혀 있나.

瀟湘雲正深. 때마침 상강의 구름이 짙게 끼었는데.

寂寥誰共賞, 적막함을 누구와 함께 즐겨야 하나.

江上獨傷心. 강가에서 홀로 상심하고 있네.

楚妃一失寵, 초나라 왕비는 총애를 잃게 되자

獨宿楚江陰. 혼자서 초 땅 강의 남쪽에 머물게 되었네.

雖念榮華落, 아름다운 용모 시들어 애석하지만

終憐繾綣心. 임금에 대한 곡진한 마음 가엷게 느껴지네.

問說章臺畔, 듣자하니 장대 주변에는

畋遊歡自淫. 사냥하며 노는 일이 즐겁다 못해 음란하다는데, 今日宮中事, 오늘날 궁중의 일에 대해서는

不言讒妒深. 험담과 질투가 심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네.

이 시는 正德 원년

(1506)

에 지어졌다

.

1

수와 제

2

수 모두 여인에 대해 읊고 있으며 그 여인은 왕비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1

수에서 시인은 자신을

영 땅의 나그네

(郢中客)”

라고 일컬으며 ≪文 選≫의 ≪對楚王問≫을 이용하여132)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 상을 한탄하였다

.

시인은 제목인

‘古意’

와 연관된 내용을 통해 자신의 감 정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

요임금의 딸이자 순임금의 부인인 아황과 여영 은 순임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湘江을 헤매며 슬피 울었다. 그때 뿌 린 눈물이 대나무에 얼룩이 되어 湘妃竹이 생겨났고

,

아황과 여영은 상강 에 몸을 던져 신이 되었다

.

서정경은 제

1-4

구에서 조정을 떠난 자신의 신 세와 궁궐에 있는 황제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

5-8

구는 아황과 여영의 전설을 떠올리며 조정에서 멀어진 자신의 처지에 상심하는 모습을 묘사 하였다

.

2

수에서 시인은 총애를 잃은 초나라 왕비의 모습과 음란하게 노는 임금의 모습을 묘사하였고 궁중에서는 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사실 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였다

.

여기서 말하는 초나라 왕비는 楚莊王의 부인 인 樊姬를 일컫는다

.

樊姬는 매우 현명한 여인으로 초장왕이 여색에 빠지 자 나라가 위험에 빠질 것을 우려하였다

.

그래서 친히 용모보다는 인품이 빼어난 여인들을 선발하여 임금의 곁에 두었다

.

또한 사냥을 지나치게 좋 아하는 초장왕에게 사냥을 자제하고 정치에 전념해야 한다고 간언하였고

,

당시 신임을 얻고 있던 令尹 虞邱子를 퇴임시키고 많은 충신들을 등용시 키도록 하였다

.

그 결과 초장왕은 패자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

7-8

구에서 시인은 당시 정치에 힘쓰지 않는 武宗과 궁중에서 벌어지는 무질 서한 일들을 비판하였다.

위 작품들은 옛날 현명했던 여인들을 등장시켜 지금의 황제 곁에는 현 명한 인물이 없는 사실을 나타내었고 이에 슬퍼하는 시인의 마음을 표현

132)蕭統, ≪文選≫, ≪對楚王問≫: “나그네가 영(郢)에서 노래하는데, 처음에 하리파 인곡을 부르니 화답하는 자가 수천 명이었고, 양춘백설곡(陽春白雪曲)을 부르니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밖에 안 되었다(客有歌於郢中者, 其始曰下里巴人≫, 中属而和者數千人. 其为≪阳春≫、 ≪白雪≫, 国中属而和者不过数十人.)”

하였다

.

1

수는 자신의 신세를 통해 인재를 내쫓는 현실을 비판하였고

,

황제 곁에는 아황과 여영같이 진심을 다하는 인물이 없음을 애석해하였 다

.

2

수에서는 번희의 지혜를 그리워하며 유희에 빠진 황제와 권력 때 문에 서로를 헐뜯는 환관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그려내었다. 이를 통해 현실에 대한 그의 착잡한 마음을 나타내었다

.

따라서 이 시 전체는 비흥 수법을 통해 時事를 비판하는 색깔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다음 시는 달을 통해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16일 밤의 달(十六夜月)>

乍滿虧俄及, 순식간에 가득 차다 이지러지니

緣明晦易侵. 밝음과 어두움에 따라 범하기 쉬워졌네.

不愁妨玉兔, 옥토끼를 방해할까 근심할 필요 없지만 常恐近浮陰. 움직이는 그늘이 다가올까 늘 두렵기만 하네.

白露丹楓急, 가을 이슬은 단풍잎을 재촉하고 清光紫闥深. 밝은 달빛은 궁궐 깊숙이 비추네.

如何鴻雁意, 기러기의 뜻은 어떠한가.

噭噭有驚音. 찍찍 두려운 듯 소리 내고 있네.

이 시는 正德 원년

(1506)

가을에 지어졌다

.

이 작품은 제목에 주목해야

한다

. ‘16

일 밤

(十六夜)’

은 달이 둥글다가 일그러지기 시작할 때를 일컫는

.

따라서 일반적으로 달이 변화하는

‘16

일 밤

(十六夜)’

은 감정이 옅어짐 을 표현한다든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 정점을 찍고 쇠퇴해지는 현상을 빗대어 이야기할 때 사용된다

.

正德 원년

(1506)

은 유흥에 빠진 武宗과 권력을 전횡하던 환관들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

2

구의

밝음과 어두움

(明晦)”

은 둥글고 환하던 달이 일그러지면서 빛의 밝기도 그만큼 어두워진다는 것 을 나타낸다

.

여기서는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와 암흑 정치를 뜻한다

.

시 인은 달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고 소인배들로 인해 세상이 혼돈에 빠질 위험을 걱정하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신하들을 “기러기(鴻雁)”에 비유하 고 기러기가 소리 내며 우는 장면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어지러운 세상

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을 표현하였다

.

이 시는 달의 형상을 통해 조국에 대한 시인의 진심 어린 마음을 드러내었다

.

그밖에 친구를 위로하는 작품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완곡하게 표현하였 다.

<사선 시어를 보내다(送士選侍御)>

1 壯士樂長征, 장사는 원정에 참가하길 좋아하여도 2 門前邊馬鳴. 문 앞의 수레 끄는 말들은 울부짖고 있네.

3 春風三月柳, 삼월 버드나무에 봄바람 불자

4 吹暗大同城. 버들개지가 날리어 大同府를 어둡게 하네.

5 蘆溝橋下東流水, 蘆溝橋 아래 강물은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6 故人一樽情未已. 친구와의 우정은 한 잔의 술로도 끝나지 않네.

7 胡天飛盡隴頭雲, 오랑캐 지역의 하늘에는 농산의 구름 모두 날아가 버 리고

8 惟見居庸暮山紫. 오직 해질 무렵 軍都山이 자줏빛으로 물드는 것만 보 이네.

9 羨君鞍馬速流星, 그대가 유성처럼 말 타고 떠나는 것이 부러워 10 予亦孤帆下洞庭. 나 또한 외로운 배 타고 동정호로 갈 것이네.

11 塞北荊南心萬里, 만 여리나 떨어져 있는 북방과 남방에서 그리워하겠 지만

12 佩刀長揖向都亭. 허리에 칼 찬 채 두 손 마주 잡고 절하고는 객사로 향하네.

이 시는 正德 원년(1506), 서정경이 湖南으로 떠나기 전날 친구 熊卓을 전송하며 지은 것이다

.

웅탁은 劉瑾에 의해 大同으로 쫓겨났던 인물이다

.

1-4

구에서 시인은 웅탁이 떠나기 전의 암담한 분위기를 묘사하였다

.

시인은 웅탁의 말들이 울부짖는 것을 보고 말들도 웅탁의 억울함을 알고 있다고 느꼈다

.

또한 바람에 날아다니는 버들개지를 보고 이것이 대동까 지 날아가 대동 전체를 어둡게 만들 것이라 생각하였다

.

이것은 시인과 웅탁의 우울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

9-10

구에서 시인은 친구 와의 작별에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그는 오히려

부럽다

(羨)”

하여 시인의 솔직한 감정을 숨겼다

.

또한 떠나는 친구가 부러워 자신도 곧 뒤따라 갈 것이라 하였다

.

이것은 자신의 감정을 자제시켜 떠나야 하 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게다가 친구 가 떠나는 모습은

“빠르다(速)”라 표현한 반면,

자신의 모습은

“외롭다 (孤)”

라 표현한 점은 먼저 떠나는 친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으로 보 인다

.

서정경과 웅탁 모두 환관 세력에 떠밀려 타지로 떠나야 했었다

.

하 지만 서정경은 슬프고 억울한 마음을 완곡히 표현하며 친구와의 이별을 받아들였다

.

이상으로 서정경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완곡한 표현에 대해 살펴보았다

.

앞서 말했듯 서정경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사실적 묘사

완 곡한 표현

이 있으며 두 가지 방법은 모순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

하지만 서정경은 감정에 따라 작품은 다양한 형식으로 창작될 수 있다고 생각했 기 때문에 특정한 풍격을 추구하지 않았다

.

따라서 이를

모순

이라 일컫 기보다는 그의 작품이 가지는 특징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다

.

서정경은 대부분 어지러운 세상과 관련된 감정을 읊을 때 완곡하게 표 현하는 경향을 보였다

.

주로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한 불만과 근심을 표현 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을 위로할 때 사용되었다

.

이러한 표현 방법은 吴中 시기 서정경의 작시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연구도 있 다.133) 서정경 또한 다른 吴中 지역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白居易의 시풍 을 좋아했는데

,

이 연구에 따르면 서정경은 백거이의 感傷詩를 본받아 감 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

따라서 그의 작품은 부드러운 어기 로 완곡하면서도 맑은 소리를 내는 특징을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시풍은 前七子의 일원이 되어서도 여전히 남아있게 된 것으로 보았다

.

서정경이 다양한 표현 방법을 주장한 점을 감안한다면

,

필자는 이러한 연구 시각 또한 참고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

133)崔秀霞, ≪徐禎卿詩學思想研究≫,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10, p.15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