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禎卿이 復古를 주장한 의도는 잃어버린 시의 본질을 되찾는데 있으 며
,
시의 본질이란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談藝錄≫에서는 감정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감정은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이것이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해88)王世貞, <藝苑卮言敘>: “余讀徐昌穀≪談藝錄≫, 嘗高其持論矣, 獨怪不及近體, 伏習 者之無門也.”
許學夷, ≪詩源辯體≫ 卷35: “徐昌穀≪談藝錄≫, 總論詩之大體與作詩大意, 中間略 涉≪三百篇≫、 漢魏而已, 六朝一下弗論也. 然矯枉大過, 鮮有得中之論.”
설명하고 있다
.
몽롱함에서 싹트는 것은 감정이 생성되는 것이고 넓게 퍼지는 것은 감정 이 왕성해지는 것이며 끊임없이 얽혀 모여지는 것은 감정이 합쳐지는 것이 다. 빠르게 쫓아가는 것은 기를 표현한 것이고 간소하게 다듬고 헤아리는 것 은 생각을 요약한 것이다. 들쭉날쭉한 것이 이어져 있는 것은 운을 정연하게 만든 것이고 혼잡하면서도 아름답고 순수함이 뭉쳐 있는 것은 내용이 잘 짜 여 있는 것이며 밝고 훤칠하며 청신하면서 원만한 것은 문사를 아름답게 만 든 것이다. 인재들이 틈날 때마다 글을 쓸 때 붓을 적셔 정교함을 구하고 뜻 을 표현하여 구상하니, 비록 사방에 많은 문이 있더라도 이 문을 거치지 않 은 자는 없다.89)
본래 형태가 없는 감정은 외물과의 접촉을 통해 조금씩 생겨나게 된다
.
어떤 물체로부터 느낀 감정은 또 다른 감정들을 낳게 되는데,
이러한 과 정을 통해 감정은 풍부해지게 된다. 서정경은 여러 감정들이 하나의 덩어 리가 되면 한 편의 작품을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중양절날 유람하다(九日遊眺三絕句)>
頻年搖落寄邊州, 수년을 표류하다 변경지역에 거주하게 되었지만 無賴今晨強出遊. 무료하기만 하여 오늘 새벽 굳이 나들이 나갔네.
從教烏帽欺人髮, 검은 모자가 머리카락을 우롱하는 건 상관없다만 不耐黃花亂客愁. 국화가 나그네의 근심을 어지럽히는 건 참지 못하겠네.
이 시는 중양절을 맞이한 시인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
먼저 마땅히 시끌 벅적해야 할 명절에 시인은 무료함을 느끼었다. 이러한 마음을 달래기 위 해 시인은 외출해보지만 허허벌판인 변방의 풍경은 도리어 환관에 의해 배척된 자신의 고달픈 처지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시인은 조정에서 물러 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보지만 가을에 핀 국화를 보니 다89)徐禎卿, ≪談藝錄≫: “朦朧萌拆, 情之來也; 汪洋漫衍, 情之沛也; 連翩絡屬, 情之一 也; 馳軼步驟, 氣之達也; 簡練揣摩, 思之約也; 頡頏纍貫, 韻之齊也; 混純貞粹, 質之 檢也; 明雋清圓, 詞之藻也. 高才閒擬, 濡筆求工, 發旨立意, 雖旁出多門, 未有不由斯 戶者也.”
시금 근심이 생겨나게 되었다
.
이 작품은 외물과 감정이 잇달아 다른 감 정들을 연상시키고 있다.
서정경이 말한 창작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감정들을 여과 없이 작품에 담아내기만 한다면 노골적인 표현을 사용하기 마련이어서 좋은 시라고 할 수 없다
.
따라서 서정경은 기(氣)
⋅생각(思)
⋅운(韻)
⋅내용(質)
⋅문사(詞)
를 적절하게 사용하 여 문장을 정교하게 다듬고 시인의 뜻을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고 역설하 였다.
이와 같이 ≪담예록≫은 감정이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시의 본질을 설 명하였고 격조가 빈약해질 수 있는 폐단에도 주목하였다
.
또한 감정과 기 타 창작 요소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분석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감정을 단 순하게 정의 내린 다른 前七子 일원들과는 구별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서정경이 말한 감정은 어떠한 것인가
?
李東陽과 서정경의 주 장을 통해 이들이 생각한 감정의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자.
≪詩經≫은 孔 子의 영향 아래 줄곧 유가경전으로 여겨져 왔다.
이동양은 시의 근원을≪시경≫에 두고 溫柔敦厚를 지향하는 ≪시경≫의 시교를 작시의 기본 사상으로 인식하였다
.
90) 또한 감정을‘性情之正’,
즉 올바른 성정을 시에 표현할 것을 주장하였다.
91) 이것은 유가의 시교에 부합되는 감정을 시로 표현해야 함을 요구한 것이다.
이동양은 ≪論語⋅八佾≫의“<
관저>
는 즐 거움에 겨워 무절제에 빠지지 말고 슬픔에 겨워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 라는 것이다”
92)라는 유가 시학의 중요한 지침에 따라 감정을 절제할 필 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명대 중엽부터 성리학을 반대하는 경향이 일어나면서 문인들은 ≪시
90)李東陽, ≪麓堂詩話≫: “詩在六經中, 別是一教.”
“別是一教”는 ≪詩經≫의 시가 지닌 교화를 말하는 것이다. (李東陽 著, 柳星俊 譯
解, ≪(중국시화의 정수) 회록당시화≫, 푸른사상, 2012, p.25 참조.)
91)李東陽, ≪麓堂詩話≫: “惟哀而甚於哭, 則失其正矣. 善用其情者, 無他, 亦不失其正 而已矣.”
92)≪論語⋅八佾≫: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경≫의 가치를 인정하되 문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 었고
,
그 속에 담긴 예술의 본질적인 성질과 심미 특징에 대해 풀이하기 시작하였다.
서정경 또한‘
도덕’
과‘理’
의 기준으로 ≪시경≫을 이해하지 않고 인간의 솔직한 감정이 담겨 있는 책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그는 당 시 창작 방법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93)감정이란 만물을 감동시킬 수 있기에 시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 다. 형가가 부른 변치의 음은 용사들의 눈을 부라리게 만들었고 이연년의 아 름다운 음악은 한 무제가 흠모하였다. 생명을 가진 것들이라면 감정의 근본 은 모두 같다. 그래서 같은 걱정에 함께 근심하고 같은 기쁨에 함께 흠모하 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바람이라 할 수 있다. 바람이 미치는 곳에 풀은 반드시 쓰러지기 마련이다. 성인은 경(經)을 산정하면서 나라별로 나누 어 ‘풍’이라 한 것은 본래 이유가 있다. 무릇 한숨만 쉰 채 울지 않으면 행 인은 반드시 그것에 애도를 표하지 않을 것이며 하소연할 때 피부에 와 닿 지 않으면 듣는 사람은 반드시 낯빛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경직되고 딱딱한 문사는 마치 소리 없는 현악기와 같으니 어찌 사람들에게 들리겠는 가? 화려한 문사로 눈부시게 하고 공허함을 만들어 마음을 미혹되게 하는 것 또한 말단일 뿐이다.94)
서정경은 감정이란 만물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순수한 성질이라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은 기본적으로 공통성을 지니고 있으며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면 서로 동요할 수 있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
이와 같이 그가 복고를 제창할 때 감 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한 시라면 모든 인 간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정경은 주제에 따라 나타나는 감정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
93)崔秀霞, ≪徐禎卿詩學思想研究≫,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10, p.97 참조.
94)徐禎卿, ≪談藝錄≫: “夫情能動物, 故詩足以感人. 荊軻變徵, 壯士瞋目; 延年婉歌, 漢 武慕嘆. 凡厥含生, 情本一貫. 所以同憂相瘁, 同樂相傾者也. 故詩者, 風也. 風之所至, 草必偃焉. 聖人定經, 列國爲風, 固有以也. 若乃歔欷無涕, 行路必不爲之興哀; 愬難不 膚, 聞者必不爲之變色. 故夫直戅之詞, 譬之無音之絃耳, 何所取聞於人哉? 至於陳采以 眩目, 裁虛以蕩心, 抑又末矣.”
교묘의 문사는 장중하면서도 엄격해야 하며 군대의 문사는 굳세면서도 엄 숙해야 한다. 조회의 문사는 웅장하면서도 화목해야 하며 연회의 문사는 즐 거우면서도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 대의가 본래 이와 같다. … 이는 공식적 인 자리에서 쓰는 문사의 절대 법칙이다.95)
여기서 말하는 감정은
<
아>
와<
송>
에서 주로 나타나는 감정들을 말한 다.
즉 서정경은 형식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에서 지켜야 할 표준적인 법 칙을 설명하였다.
정성을 담아 이별을 전하는 글에는 평생의 돈독한 우정을 모두 드러내야 하고, 손잡고 멀리 떠나는 이를 전송하는 글은 그리운 마음을 달래주어야 한 다. 권면하고 경계를 담은 글은 완곡하면서도 직설적이지 말아야 하고, 상을 당해 애도하는 글에는 애통한 마음이 깊이 담겨있어야 한다. 여러 감회는 느 낀 바에 따라 읊어야 하고, 고적을 유람할 때는 상황에 따라 논의를 매듭지 어야 한다. 멀리 여행을 떠나면 저마다 고생한 바가 다를 테고, 유람하며 감 상할 때는 슬픔과 즐거움이 영원하기 어렵다. 고립무원의 신하와 서자는 원 망과 슬픔으로 가득할 것이고, 통달한 자는 사물을 동등하게 볼 것이다. 충 신은 울분에 차 있을 것이고, 가난한 선비는 근심과 걱정이 많을 것이다. 이 것은 시인의 복잡한 변화이고 격식의 다양함이다.96)
위의 인용문에서 말한 감정들은
<아>와 <송>에서 나타나는 감정들과
대조되는 것으로 지극히 인간의 개인적인 감정들을 뜻한다.
여기서 서정 경이 구체적으로 예를 든 감정들은 대각체로 인해 절제된 감정들이다.
이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에서 흘러나와 이념의 규제를 받지 않은 감정을 말 하는 것으로,
서정경은 슬픔(哀傷),
분노(憤懣),
연민(憫恤)
등을 그 예로 들었다.
또한 이런 감정들은 감정 주체의 품격이나 처지 등에 따라 다르95)徐禎卿, ≪談藝錄≫: “郊廟之詞莊以嚴, 戎兵之詞壯以肅, 朝會之詞大而雝, 公讌之詞 樂而則, 夫其大義固如斯已. … 此宏詞之極軌也.”
96)徐禎卿, ≪談藝錄≫: “若夫欵欵贈言, 盡平生之篤好; 執手送遠, 慰此戀戀之情. 朂勵 規箴, 婉而不直; 臨喪挽死, 痛旨深長. 雜懷因感以詠言, 覽古隨方而結論. 行旅超遙, 苦辛各異, 遨遊晤賞, 哀樂難常; 孤孽怨思, 達人齊物; 忠臣幽憤, 貧士鬱伊. 此詩家之 錯變, 而規格之縱橫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