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시장화가 식량권과
Ⅲ. 소비와 시장의 주체
1. 소비의 주체: 계층별 쌀 소비량 추정
2장에서 회령시 주민에 대한 가계조사 결과, 북한에서 현재 소비행
태를 중심으로 계층이 상·중·하·극빈층으로 분화되고 있음이 밝혀졌 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에서 소비계층을 구분한 기준은 어디까 지나 의·식·주 중심이며, 국민경제가 취약한 국가일수록 ‘의식주,’ 그 중에서도 ‘식’에 편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바꿔 말하면 회령시장에서
‘식’이라는 재화를 소비하는 주체가 하층부에 집중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무엇보다 첫째, 회령시 주민세대를 상·중·하·극빈층으로 나누 고 그 비중을 계산해 본 결과, 하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 다는 점을 통해서 뒷받침된다. 먼저 한 개 인민반이 20가구로 구성된 경우의 세대수는 총 1,440가구였으며, 이 세대를 다시 경제적 수준에 따라 분류하면 상층이 15가구, 중간층이 30가구, 하층이 1,251가구, 극
빈층이 144가구였다. 한편 인민반 하나가 25가구로 구성된 경우의 세
대수는 총 3,025가구로 위와 같은 방식으로 계층을 분류하면 상층이
30가구, 중간층이 60가구, 하층이 2,635가구, 극빈층이 300가구였다.
또한 인민반 하나가 30가구로 구성된 경우의 세대수는 총 2,100가구 로, 경제적 수준에 따라 분류하면 상층이 21가구, 중간층이 42가구, 하
층이 1,827가구, 극빈층이 210가구로 조사되었다.
그러므로 각 인민반에 속한 세대들을 계층별로 합산하면, <표 3-4>
와 같이 상층이 66가구, 중간층이 132가구, 하층이 5,713가구, 극빈층 은 654가구가 된다. 바꿔 말하면, 상층은 전체의 1%, 중간층은 전체의 2%, 하층은 85% 이상, 극빈층은 전체의 10% 이하를 차지하여 하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가족구성원의
수로 보면 이러한 특징은 더욱 부각된다. 극빈층의 경우 가족구성원이 부부 및 자녀 1∼2명으로 이루어져 한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3.5명으 로 나타났다. 반면에 하층부는 가족구성원이 노부부, 부부, 자녀 2∼3 명으로 이루어져 평균 가족 수는 6.5명이었다. 중간층은 부부와 자녀
3명 정도로 가족 수는 평균 5명이었다. 상층부는 부부와 자녀 2명으로
이루어져 가족 수가 평균 4명으로 극빈층 다음으로 적은 가족 수를 보 유했다. 이에 근거하여 회령시 주민세대 가족 평균치를 추정하면 한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6.145명18이 된다. 이는 하층부의 가족 구성원 수가 다른 계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에서 기인된다.
표 3-4 각 계층별 세대수 및 비율
(단위: 가구)
계층구분 20(세대 수) 25(세대 수) 30(세대 수) 합계(세대 수) 비율(%)
상층 15 30 21 66 1
중간층 30 60 42 132 2
하층 1,251 2,635 1,827 5,713 87
극빈층 144 300 210 654 10
총 합계 1,440 3,025 2,100 6,565 100 출처: 탈북자 인터뷰 및 북·중 접경지대 조사를 근거로 작성.
둘째, 이러한 관점에서 계층별 주민의 쌀 소비 총량을 추정해 본 결 과, 상층부의 한 가구당 쌀 소비량이 아무리 많아도 하층부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아 기여도는 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 물론 한 가구당 평 균 1일 쌀 소비량의 관점에서 보면 상층부가 8.4kg으로 가장 많이 소 비하는 계층이었다.19 이는 1인당 1일 쌀 0.6kg을 소비했으며, 쌀 소비
18_한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3.5명×10%+6.5명×87%+5명×2%+4명×1%)/100=
6.145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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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 또한 가족구성원 4명을 포함하여 1일 평균 손님을 10명 정도 치러야하므로 가구당 소비량이 많았다.20 그러나 한 가구당 하루에 쌀 을 소비하는 한계 소비량이 정해져 있어 상층부의 쌀 소비량이 아무리 많아도 전체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으로 적었다. 즉 상층 부는 66가구에 불과해 1일 쌀 소비 총량은 55kg이었다.21 반면에 하층 부는 한 가구당 1일 쌀 소비량이 3.25kg이다.
이는 상층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22 세대수가 상층부
보다 86배나 많아 1일 쌀 소비 총량 또한 상층부의 337.6배나 많은
18,568kg이었다.
표 3-5 각 계층별 한 가구당 하루 쌀 소비량 추정
한 가구당 1일 쌀 소비량(kg)
세대 수 (가구)
계층별 1일
쌀 총 소비량(kg) 비율(%)
상 8.4 66 55 0.27
중 4.8 132 634 3.25
하 3.25 5,713 18,568 95.30
극빈층 0.35 654 229 1.18
합계 16.8 6,565 19,486 100.00
출처: 탈북자 인터뷰 및 북·중 접경지대 조사를 근거로 작성.
따라서 상층부의 1일 쌀 소비 총량은 전체 회령시 주민 소비량의
0.27%에 불과한 반면, 하층부는 95.3%를 차지해 회령시장에서 거의
19_소비 구성을 보면 네 식구에 하루 손님 인원수가 10명 정도이다. 이들의 하루 소비량은 평균 1인당 0.6kg이다.
20_따라서 상층부의 한 가구당 하루 쌀 소비 구성원은 총 14명이 된다.
21_8.4kg×66세대=55kg.
22_소비자 구성: 식구(6.5명); 0.4(입쌀)+0.1(강냉이)=0.5kg/일×인.
대부분을 소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중간층은 쌀 소비 총량 이 상층부보다는 많지만 역시 비율이 낮아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즉 한 가구당 1일 쌀 소비량은 평균 4.8kg지만23 총 세대수는 132가구 에 불과해 이들의 1일 쌀 총 소비량은 634kg에 머물렀다.24 이는 회령 시 주민의 하루 쌀 총 소비량의 3.25%였다. 마지막으로 극빈층은 상층 다음으로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은 1인당 1일 쌀 소비량 자체도
0.35kg으로 가장 적을 뿐 아니라25 세대수 또한 654가구에 불과해 하
루 쌀 총 소비량은 229kg으로 전체의 1% 정도의 비율이었다.
2. 순환 ‘밑천’의 생성 메커니즘과 회전율
2장의 1절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주민가계 소비의 기본은 의식주며, 그 중에서도 쌀은 대표 소비품목 중 하나다. 그런데 회령시장에서 1일 쌀 소비 총량을 계층별로 조사한 결과, 하층부를 제외한 나머지 계층의 기여도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특히 상층부는 회령시의 쌀 소비 총량에 대한 기여도가 1%에도 못 미쳤다. 반면에 하층부는 한 가구당 쌀 소비 량은 적지만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 기여도가 95% 이상을 넘었다.
이는 회령시장에서 하층부의 소비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 하는 논거가 된다. 물론 소득창출 메커니즘을 보면 하층부는 주로 주 민계층의 소수에 불과한 상층부로부터 ‘외상’으로 상품을 받아 시장에 소매로 판 후 판매총액에서 원금 이외에 이윤의 일부를 다시 상층부에 게 돌려주고, 또 다음 장사를 위해 외상으로 물건을 받아오는 형태로 장사를 하며 밑천을 보전(補塡)하고 생계를 유지했다.26 그런데 여기서
23_소비자 구성: 식구 5명+하루 손님 3명; 0.6kg/인×일.
24_4.8(kg)×132(세대).
25_소비량 구성: 식구 3.5명; 입쌀 환산으로 0.1kg/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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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하기 쉬운 측면은 하층부는 다음 장사를 위해 ‘신용’이라는 장사
‘밑천’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회전시키면서 장마당 경제를 순환시키
고 있다는 점이 극빈층과 극명하게 구분되는 특징이었다. 이에 대해
탈북자 S씨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부자의 경우, 화폐가 외화로 사장되고 있으며 밑천 없는 극빈층
은 집도 없는 꽃제비, 방랑자 수준이다. 반면에 주민 대부분은 하 층민으로, 이들은 돈이 조금 있거나 또는 돈의 담보물이 있다. 여 기서 담보는 집이라든가 사유재산이다. 1990년대부터 이미 집은 담보물이 되었다. 담보로 해서 돈을 빌렸다. 그렇지 않으면 앉은 장사들이 돈이나 물건을 선불로 주지 않는다. 처음에 장마당에서 떡을 좀 팔고 싶다면 앉은장사들은 한 소랭이를 주고는 얼마치 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가져오려면 미리 담보물을 내놓아야 한다. 이는 집이 될 수도 있고 노동이 될 수도 있다. 며칠 그 집 가서 일 하면 된다. 그렇게 시작하는데 그게 없는 사람은 신용이 없는 꽃제비다. 자기 몸이 어지러워 음식물을 줄 수가 없다. 집도 없는데 달아나면 어떻게 물건을 선불로 줄 수 있겠는가?”(S)
그런데 하층부는 이 밑천을 보전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동력을 재생 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소비(消費)’가 필요하다. 소비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재화를 ‘소모(消耗)’하는 행위다. 즉 이들은 장사해서(노동해서) 벌어들인 이윤 중 일부를 매일 생활에 필 요한 쌀, 옷 등 소비재를 시장에서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 더욱이 식량 은 다른 재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모성이 높아 회전율도 빠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층부는 상대적으로 상층부에 비해 경제적 여유는 많지 않지만 자기 ‘밑천’을 가지고 노동력을 부가해 상품을 화
26_2010년 현재 가계 총수입에서 남성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하인 반면,
여성의 수입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중 하층민은 70% 이상의 소득을 시장에서의 장사를 통해 충당하고 있었다.
폐로, 화폐를 다시 상품으로 순환하는 민간경제의 주체라고 할 수 있 다. 밑천에 의한 자립적 생활을 행하는 주체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 중의 이윤으로 주민 속에 축적되는 것이다. 꽃제비는 밑천이 없는 계 층, 돈의 담보물이 없는 계층, 신용이 없는 계층이며 상층 또한 직접 노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층은 자기 노력으로 이윤을 창출하며 이 이윤의 일부를 소비하며, 이 소비량은 절대적으로 많은 부문을 차지 할 수밖에 없다. 다음 탈북자 D씨의 증언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그냥 밥이나 먹으면 잘 산다고 한다. 근데 내가 생각하
기로는 이제 이 밥은 다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보통 국수장사하 고 뭐해도 그런 집들조차 밥은 먹고 사는 것 같다. 나는 북에 있 을 때 이렇게 말했다. 왜 사탕장사라도 못하는가? 왜 못사는가?
(당국에서) 이렇게 풀어놓았는데, 풀어놓으면 그 다음은 제 머
리로 해야 한다. 풀어놓았다는 것은 장마당도 세워주고…… 사 실 내가 제일 처음 장사 시작했을 때는 장마당이라는 것 활용하 지 않고 했다. 나는 진짜 삼엄한 경계 속에서 장사를 시작 했다.
한 3, 4년 정도 그렇게 힘들게 장사를 했다. 그래서 안전부 취조 도 많이 받고 어렵게 장사를 했다. 근데 지금은 많이 풀어놓았 다. 무엇을 하든지 해서 살아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왜 사람 들이 굶는지 이해가 안 간 다. 게으르니까 죽는 것이다. 사탕장사 라도 해야지.”(D)
이러한 사실은 국내시장에서 상층부가 유통하는 화폐량보다 일반 대중이 유통하는 화폐량이 훨씬 크다는 것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