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서 소통을 통한 관계적 자아 형성
모든 시 읽기는 텍스트와의 대화이자 텍스트를 매개로 한 타자와의 대화이 므로 소통을 전제로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서적 문식성에 주목한 시 읽기는 타자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학습자 자신과의 비교를 필수 적인 과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러한 소통이 더욱 강조되는 시 읽기이다.
학습자는 텍스트 내외의 타자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하는데, 텍스트의 내적 타자는 학습자가 텍스트를 통해 발견하는 화자나 등장인물, 시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학습자는 자신의 내적 감상 과정에서 이들과의 상상적 대화 과 정40)을 거침으로써 텍스트의 의미를 개별적으로 구체화하게 된다. 학습자는 텍 스트 내의 타자를 자신과 다른 정서적 주체로서 인식하고 그러한 주체의 내면 을 탐구하기 위해 텍스트에 드러난 정보를 토대로 개인적 특성을 유추해 나가 며, 그것을 자신의 내면 및 개인적 특성과 비교함으로써 타자 정서에 대한 이 해의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학습자는 교사, 동료 학습자, 전문비평가 등 텍스트 밖의 타자와도 감 상을 공유함으로써 대화의 과정을 겪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이 구체화한 의미를 소통 가능한 것으로 수정 및 보완하게 된다. 이는 텍스트의 정서적 의
40) 대화주의적 입장에서는 어떤 사상과 사고에 대한 담론구성에 있어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사유보다도 목소리의 주체로 인식하고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텍스트의 타자를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그것에 응답하는 텍스트 읽기를 의미하며, 독자의 대화적·응답적 해석을 강조하는 것이다. 학습자가 시를 읽는 과정 역시 텍스트 내의 타자를 자신과는 다른 주체로서 인식하고 그 주체의 개인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하는 대화 적인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대화주의적 입장과 맥락을 공유한다.
이재기, 「바흐친의 대화주의와 읽기 교육」, 『동남어문논집』 제41집, 2016, pp.4~5.
미에 대한 개별적 체험에서 나아가 그 결과를 교육의 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41) 이처럼 자신의 감상 과정의 타당성을 확인하 고 사회적 소통 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문학교육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관계 적 자아42)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정서적 문식성 교육의 목표이자 효과 중 하나가 타자와 자신에 대한 이해라고 하였을 때, 그것이 문학교육의 목적인 관계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까닭은 학습자가 타자와 독립된 상태로 존재하 는 주체로서 사고하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시 작품을 통해 타자의 존재를 정서적 측면에서 경험하고 소통함으로써 타자와의 관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는 관계적이고 도덕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 감상 교육에서의 정서적 문식성 연구는 이처럼 학습자가 텍스트 내적 타자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활성화하는 소통의 기제를 확인하여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내용을 마련하고, 텍스트 바깥에서 시를 공유하는 서로 다른 주체들과 시를 통해 얻은 정서에 대해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교육 방법을 제안함으로써 관계적 자아43)를 형성할 수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
(2) 정서 체험 주체로서의 능동성 확보
학습자 중심 문학 교육의 흐름 속에서 무엇보다 강조되어 온 것 중 하나로
41) 김정우, 『시 해석 교육론』, 태학사, 2006, p.215.
42) 태펀과 브운에 따르면 실제의 개인은 타자와의 관계를 떠나 생각될 수 없으며, 관계를 지향하고 타자를 통해 자아를 세움으로써 도덕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고립적 자아보 다는 관계적 자아이다. 이러한 관계적 자아로서의 학습자를 형성하는 것은 도덕교육뿐 만 아니라 공동체적 인간을 지향하는 문학교육의 목표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노희정, 「도덕교육에 대한 서사적 접근과 관계적 자아의 실현」, 『도덕교육연구』 제 16권, 205, p.117.
43) 소통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문식성 교육은 시 교육에 있어 사회적 관계 맺기를 강조함 으로써 독립된 주체로서의 자아가 아닌 다른 주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체험하고 사고하 는 관계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는 공동체·대인관계 역량의 함양을 중시하는 최 근의 인성교육적 국어교육의 맥락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명진, 「인성 관련 역량 향상을 위한 현대시 교육 내용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2017, pp.22~25.
학습자의 능동적·주체적 태도의 형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의 목표와 달리 시의 비유적 표현과 그 의미에 대한 보편적 해석을 암기하고, 정 서 체험의 주관적 과정이 아닌 작품에 내재된 하나의 지식으로서의 정서에 대 한 파악에 주목하고, 교과서와 교사라는 이상적 독자에 의해 여과되어 제시된 정서를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식의 기존의 시 교육 내용은 능동적이고 주체적 인 학습자의 태도를 형성하는 것을 가로막아 왔다. 따라서 학습자의 정서 체 험을 강조하는 시 감상 교육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학습자 스스로가 정서 체험의 주체로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시 텍스트와 타자, 자기에 대한 이해 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시의 정서는 문식의 대상으로서 존재할 수 있으나 이는 기존의 시 교육에서 와 같이 정서가 지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식으로서 의 정서가 이미 완성되어 단지 전달되는 것이라면, 문식 활동의 대상으로서의 정서는 학습자에 의해 구성됨으로써 이해되고 표현되는 정서라 할 수 있다.
학습자는 단지 시가 어떤 정서를 드러내느냐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머무르지 않으며, 시 속의 특정한 상황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구성하고, 그 속 의 정서적 주체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정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성 찰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감상 과정을 평가하고 조정함으로써 정서를 내면화 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학습자로 하여금 텍스트 내의 정보를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텍스트의 정서적 상황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도록 하고, 정서적 주체로서의 자신과 타자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탐구하여 정서 이해의 합리적 내용과 근거 를 마련하도록 하는 교육 내용과 방법을 제안하였다. 이는 학습자가 지식으로 서의 정서를 전달받는 수동적 주체에서 벗어나 정서 체험의 능동적 주체로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
(3) 정서 이해 및 표현 능력 신장
정서적 문식성 중심의 시 감상 교육은 학습자가 텍스트 표면에 드러난 정서
를 인식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배경에 존재하는 타자의 특성,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자신의 특성을 이해하는 소통적 과정을 통해 정서를 심층적으로 이 해한다는 점에서 학습자의 정서 이해 능력을 신장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문 학 교육에서와 같이 학습자가 지식을 전달받는 소극적 위치에 서서 작품의 주 된 정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서 이해 능력의 신 장이란 학습자가 정서 인식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표면에 드러난 맥락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맥락을 살펴봄으로써 텍스트를 입 체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의미화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시 텍스트를 전문 비평가가 제시하는 바와 같이 ‘이상적으 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폭 넓고 다양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에 가깝다.
또한 이러한 시 감상 교육은 정서에 대한 이해가 표현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전제하는 관점에서, 비교와 성찰을 통해 학습자가 표현 방식과 내용 간의 관계를 긴밀하게 인식하여 다양하고 새로운 표현 방식의 효과와 가치를 이해하고 활용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정서 표현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 학 습자의 정서 표현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시 교육의 내용은 주로 창작교육 연구44)에서 이루어져 왔으나, 본 연구는 직접적인 창작의 과정을 거치지 않더 라도 학습자의 표현 방식에 대한 성찰을 가시화할 수 있는 교육 내용과 방법 을 마련하는 것을 통해 정서의 이해 가능성과 전달 가능성45)에 대한 학습자의
44) 학습자의 시 창작에 대한 교육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연구들을 참고할 수 있다.
노진한, 「창작교육을 위한 소론」, 『선청어문』 제25집, 1997.
김대행, 「창작교육의 이념과 지향」, 『문학교육학』 2호, 1998.
유영희, 「이미지를 통한 시 창작 교육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노철, 「대화를 통한 시 창작 교육」, 『청람어문교육』 32호, 2005.
문신, 「시 창작교육을 위한 정서체험 표현양상 연구」, 『문학교육학』 32집, 2010.
45) 창작교육에 대한 문신의 연구에 따르면, 진정한 정서 체험의 표현은 단순히 ‘정서’와
‘표현’의 표면적 발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이해 가능성과 전달 가능성의 확보에 대 한 문제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해 가능성과 전달 가능성을 포함하는 정서 표현이 이 루어질 경우 학습자는 자신의 정서를 인지하고 통제하면서 문학적 지평을 확장할 수 있 게 된다.
문신, 위의 논문, pp.126~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