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애를 전적으로 봐 줘야지’
1) ‘수입이 있는 사람이 일해야지. 내가 시간이 제일 많아’
은퇴 전에는 ‘보조양육자’로서의 위치에 머물러 있던 김철수는 외손녀가 생후 9개월이 되었을 때 ‘주양육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 게 되었다. 외손녀가 태어나고 1달 뒤부터는 친손자는 친손자의 외가에서 키우고 외손녀만을 김철수 부부가 딸과 함께 거주하면서 키우게 되었다. 사위는 주말부부로 떨어져 있었고 딸은 출산 이후 에 건강이 좋지 않아 딸을 잘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외손녀를 전담하여 키워주던 김철수의 아내가 일 때 문에 타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김철수가 예상했던 것보다 1년 일찍 은퇴를 하게 되면서 두 사건이 시기적으로 맞물 리게 되었다. 아내가 외손녀를 ‘주양육자’로서 키워주웠었는데 아내 가 타지역으로 가게 되자 현실적으로 외손녀를 ‘주양육자’로서 봐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갑작스럽게’ 손자녀를 돌보는 ‘주양육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 다.
‘보조자’로서의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 육아에서 자신의 도움 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도와주는’ 역할만을 하면 됐었다.
그러나 주양육자로 아이를 키우던 아내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 황 즉, 손자녀 양육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김철수는 외손녀의 ‘필요를 채워주는 주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김철수의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은퇴한 남성들은 손자녀 양육에 참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남성의 일 이 아니라 ‘여성의 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철수 가 ‘주양육자’로서 외손녀를 키워주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지. 자기네들은 내가 그런 소리하면 자기들은 퇴직하면 절대 애 안 봐주겠다. 자기는 절대 안 한다. 다 그런 생각이지.
모르긴 몰라도 남자들은 특히 우리 세대는 남자들이 집안일을 하고 애를 키운다 이거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주변에서 할아버지들이 된 남성 노인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김 철수가 부인이 일 때문에 타 지역에 가면서 자신에게 외손녀를 돌 보는 ‘주양육자’의 역할이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인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은 ‘은퇴자’이고 부인은 아직 경제활동을 하면서 ‘돈을 버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의 계획이 불확실하고 은퇴해 서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보다는 현재 경제활동 을 하고 있는 부인이 경제활동을 계속해서 하고 자신은 부인이 하 던 외손녀 양육을 전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리고 난 내가 퇴직하기 전에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겠다 돈벌이 를 하겠다 구체적인 일이 사실은 떠오르지가 않았어...상황이 그렇잖 아... 내가 인제 퇴직하고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마침 또 엄마가 한 달 에 조금이라도 수입이 생기는 일이 있으니까. 그러면은..어떻게 사람을 한 달에 뭐 용돈이라도 한달에 수입이 있어야 되는데 너는 돈 벌지 못하고 돈 을 계속 써야 되고 애는 자라고... 뭔가가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러면 내가 애를 봐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은퇴자로서의 할아버지는 직업세계와의 단절, 경제적인 수입의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은퇴 이후에 경제적인 수입이 단절되고 가 정에서의 시간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은퇴자는 ‘할아버지’로서 손자 녀 양육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된다. 특히 은퇴 이후의 경제활동에 대한 계획이 뚜렷하게 없는 상황에서 배우자인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서 전통적인 성역할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즉, 배우자인 아내는 직업세계에서의 경제활동에, 은퇴한 남성 노인은 가정세계 에서의 손자녀양육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은퇴 이전까지 계속되 어왔던 전통적인 성역할이 ‘은퇴’라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남녀의 역할이 뒤바뀌게 된다.
2) ‘애를 키워본 경험이 있으니까 자신 있었지’
과거에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은 손자녀 양육에 ‘주양육자’로서 ‘겁 없이’ 참여하게 하기도 한다. 김철수는 과거에 동생들과 자녀들을 키워본 경험이 있었다. 동생들을 ‘업어서’ 키우고 자녀들이 클 때에 도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애 키우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주양육자’로서 외손녀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겁 없이’ 손자녀 양육을 시작할 수 있 었다.
왠고 하면 나는 과거에 애를 키워본 적이... 두 세대를 키워봤거든. 내 동 생들...내가 업어서 키웠봤고. 그 다음에 너하고 니 동생도 내가 클 때 많 이 도움을 줬고. 그래서 그러니까 애 키우는 거는 별로 어렵지 않다라고 생
각했지 사실은. 겁 없이 시작을 한 거지.
그러나 김철수가 ‘애를 키우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라고 생각 은 했지만 자신이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모든 일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기존에 부인이 여성으로서 담당했던 가사일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고 그 나머지 부분 들, 즉, 자신이 이제까지 해 오던 우유 먹이고 목욕시키는 일을 감 당한다면 지금까지처럼 충분히 손자녀를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 뭐 키우는 게 별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별거 아니다라는 게 가볍게 보 는 뜻이 아니라 뭐 가사도우미를 한 일주일의 두 번 도움을 받으면은 뭐 애 우유 타 먹이고 목욕시키고 이거는 별 문제가 아니니까. 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했지.
전에 아이를 양육해 본 경험은 손자녀를 주양육자로서 전담하여 손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남 성으로서 주로 ‘힘쓰는 것’에 국한되어서 했던 제한된 아이 양육의 경험은 ‘손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역시 자신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3) ‘내 손녀를 포기하는 건 내 딸을 포기하는 거잖아’
김철수가 외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주양육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로 마음을 먹은 가장 큰 이유는 부인이 타 지역에 있는 상황에서 출산 후 아픈 자신의 딸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자녀를 돌보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딸을 포기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선 택의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거는 애를 포기하는 거는 내 딸을 포기하는 거하고 비슷한 거잖아. 그러 니까 니가 건강이 정상 육체적인 건강이 정상적이라면 내가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지도 모르는데 너가 애를 전혀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애를 손을 놔 버린다는 거는 그거는 말이 안되는 거지. 있을 수가 없는거지. 그 러니까 뭐 선택이고 뭐 이런 사항이 아니라 그러니까 애 엄마인 너도 살려 야 되고 애는 정상적으로 잘 크니까 애는 또 이 문제 없이 잘 키워야 되는 그런 두 가지가 한꺼번에 닥친거지. 그러니까 무슨 생각할 이렇게 할까 저 렇게 할까 하는 고민 자체가 불가능한거야. 이거는. 의미가 없는거야.
김철수는 외손녀를 잘 돌봐주면 아이가 잘 크는 것을 보면서 아 이 엄마가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손자녀를 돌봐 주는 것’이 곧 ‘자녀의 건강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김철수에게 외손녀를 돌보 는 것은 ‘무조건 내 일’이고 자신이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이거는 무슨 사명감 무조건 이거는 내 일이다. 내 아니면은 이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러면은 어쨌든간에 애를 좀 제대로 챙겨주면은 니가 빨 리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겠다 그 생각밖에 없었지.
이러한 이유는 김철수가 부인이 타 지역으로 이주한 상황에서
‘주양육자’로서 외손녀를 키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것은 앞 으로 이러한 상황이 언제 끝나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철수에게 있어서 부인이 타 지역에 가 있고 딸이
아픈 상황은 자신이 언제까지 어느 정도 범위에서 손자녀양육을 감당해야 할지 불분명했기 때문에 심경이 매우 ‘복잡’했다.
복잡했지 그 때는. 심정이 복잡했던 거기도 하고 또 하나는 새로운 생명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있으니까 거기에 대한 것들이 다 내가 좀 관심 있게 보고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계속 애를 봐야 될 것인가. 그럼 딸은 언제쯤 되면은 괜찮아질 것인가. ……(중략)…… 그러니까 막 그런 것들이 복잡하단 얘기 야. 내 머리가 뭐 막 죽을 지경이다가 아니라 애가 누구 손에서 커야 될 것 인가. 나는 그럼 애 양육에 얼만큼 기여를 해야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생 각을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러니까 복잡하지.
손자녀양육에 ‘주양육자’로서 전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기간과 참 여의 범위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주양육자’로서 손자녀의 양육에 참여하는 것은 심적인 큰 부담감을 갖게 한다. 은퇴자로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녀의 건강 회복이 될 때까 지 손자녀양육을 끝까지 책임지며 ‘전적인 헌신’을 해야 하는 상황 은 은퇴 이후의 삶을 혼란스럽게 한다.
2. ‘남성 노인’인 ‘할아버지’로서의 한계
1) ‘토막잠을 잤지. 헌 데가 많이 났어’
김철수는 외손녀를 돌봐 주는데 하루 종일 혼자서 애를 보는 것 이 무리가 되고 시간적으로도 손자녀 양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