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동아시아 지역질서 변화에 관한 이론
1. 향후 동아시아 지역질서 전망을 위한 이론적 착상
미국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체제 하에서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밑받침으로 국제정치질서 유지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수 행하는 패권국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 국중심의 국제질서는 영원불멸의 지속성을 지닐 수 없다. 왜냐하면 패권적 국제질서 내부에는 경제적 불균등 성장, 과학기술의 불균등 발전 등의 다양한 요인으로 인하여 국력분포에 변화가 생기고, 이러 한 변화는 기존 국제질서 틀을 흔들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낳기 때 문이다.
패권적 국제질서의 변화를 보다 잘 설명해주는 이론으로는 세력전 이이론이 있다. 오르갠스키(Kenneth Organski)는 국가들 간의 성장 속도 차이로 인한 국력의 재분배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세력전이 과정 동안 강대국들 간의 전쟁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체제 내 국력분 포가 하나의 지배국(dominant power) 또는 패권국(hegemon)에 쏠 려 있을 때 그 체제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세력전이 및 패권안정 가설
을 주장하였다. 오르갠스키에 의하면188, 산업화 이전의 시대에는 대 부분의 국가들이 농업경제를 바탕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국가들 간 의 상대적 국력의 변동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정적인
(static) 체제에서는 단기간에 국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주변국들과
동맹을 맺는다든지, 경쟁국가의 기존 동맹관계를 와해시킴으로써 상 대적인 국력의 증대를 꾀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주로 동맹을 통해서 국력을 증대시킨다고 가정하는 세력균형이론은 산업화 이전 의 국제정치와 체제 내 주요 행위자들 간의 갈등 원인을 설명하는 데 무리가 없는 이론이라고 오르갠스키는 지적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 후 국가들 간의 국력의 변동이 심한 동적인(dynamic) 체제를 이해하 는 데는 세력균형이론이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르갠스 키는 바로 산업화 단계에서 일어나는 국제관계 현상, 특히 패권적 질 서의 변화를 야기하는 강대국들 간의 전쟁 원인이 국력의 증대와 동 맹을 강조하는 세력균형론과 다르게 산업화를 통한 불균등 경제성장 과 같은 내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력전이이론에 따르면 국제질서는 지배국에게 가장 유리한 형태 로, 몇몇 만족국가군에 속하는 강대국들에게 그 다음으로 유리하게 재생산되어진다. 이와 같이 지배국에 의해 정립된 국제질서는 체제 내 국력의 분포가 지배국가를 중심으로 편중된 상태에 있는 한 안정 을 유지할 수 있다. 즉, 국제체제내의 어느 한 국가가 압도적인 권력 을 갖고 있으면서 체제내부 국가들이 국제체제 참여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경우 국제체제는 평화가 유지되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도전국
188A.F.K. Organski, World Politics (New York Alfred A Knopf, 1958).
김우상, “세력전이와 동아시아시아 국제관계 전망,” Strategy 21 , 제2호 (1998 가을/겨울호), pp. 224-252에서 재인용.
가의 국력이 지배국가의 세력을 따라 잡는 세력전이현상이 일어날 때 이들 국가들 간 갈등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다. 이러한 세력전이현 상이 일어나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지배국가와 도전국가 간의 전쟁 위험은 한층 높아진다. 또한 도전국가가 원래 불만족국가군에 있던 강대국이었을 때, 세력전이현상은 전쟁을 초래하게 되고, 전승 국가에 의한 새로운 질서가 확립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국력차이 를 따라잡는 불만족국가들이 현상유지의 지속보다 갈등적 국제질서 재편을 통해 더 큰 이익과 특혜를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마침내 국제질서에서 패권 경쟁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체제전쟁(system
war)으로 전환될 수 있다. 체제적 위기는 불만족국가군에 포함되어
있던 강대국들 중 하나가 산업화를 통하여 국력을 급신장하게 되어 지배국가에 대한 도전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때 나타나게 된다. 즉, 불 만족국가가 지배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자국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하 고 체제변화를 시도할 경우 체제위기가 발생하고, 이것은 패권전쟁으 로 발전한다는 것이 세력전이이론의 핵심명제이다. 또는 패권국가가 패권적 지위가 쇠퇴할 때 이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패권경쟁을 초래하여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189
반면, 세력균형이론가들은 국제체제 내 국력의 분포가 편중된 상태 가 가장 불안정한 상태이고, 적대국가들간의 세력이 비슷하게 분포되 었을 때 그들간의 전쟁 가능성은 억제되어지고 체제적 안정을 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제체제 내의 전쟁은 세력균형이 파 괴될 경우 발생하는 것으로 세력균형이론은 보고 있다. 예컨대 세력 균형론에 의하면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질서는 세력균형의 원칙에 의해 유지될 것이며, 이러한 세력균형에 의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
189A.F.K. Organski, World Politics 참조.
정 및 현상유지도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이 동아시아시아 현상타파를 시도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미국을 견제 할 것이며, 또한 미국은 중국의 잠재적 위협을 없애기 위하여 일본과 의 동맹관계를 통해 중국을 지속적으로 견제하고자 할 것이다. 동아 시아에서 안보적․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은 중국, 러시아 가운데 그 어느 나라도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 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일 방적 패권주의와 일본의 군사대국화 가능성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요인도 동아시아에서 세력균형이 형성되는 원인이다. 따라서 테 러사태 이후 동아시아에서 미․중․러․일은 공동의 적에 협력해 대 응하고 공동의 이익과 필요성에 의해 경제적 협력을 모색하는 상호 견제․경쟁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체제의 체제위기는 특정 역사적 상황을 일반화 하여 이론화한 것으로 보인다. 세력균형의 예로는, 유럽대륙에 강대 국이 출현하는 것을 두려워한 영국은 프랑스가 강해지면 독일을, 독 일이 강해지면 프랑스를 지원해 왔으며, 제 1차 세계대전 전의 독 일․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제국과 영국․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제국, 제 2차 세계대전 전의 이른바 추축국(樞軸國)과 연합국 사이에서 전개된 정책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세력전이이론의 역사적 배경은 영국중심의 국제체제에서 후발산업국이었던, 독일, 일본, 이 탈리아 등이 선발산업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등에게 도전하여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 세력전 이이론과 세력균형론은 기본적으로 영합게임이 주도적인 국제경제질 서가 존재했던 Pax Britanica 상황을 배경으로 발생한 전쟁 상황을 일반화한 것이다.
예컨대 제 2차 세계대전 이전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선진자본주 의국가들은 산업생산력의 발전속도가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임금상 승률 자체가 생산력 증가율에 못 미쳐서 발생하는 만성적인 유효수 요 부족에 시달렸다. 더욱이 섬유제품 등 경공업 제품 생산 중심의 산업구조는 양모, 면화 등 원자재 수입을 유발시켜 이들 국가들은 전
형적인 1차 상품 수입국이었다. 따라서 선진자본주의 열강들은 자국
의 상품과 원료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식민지 및 반식민지 경략 에 나서게 되었다. 즉, 제 2차 세계대전 이전 국제경제질서는 영합게 임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국제경제질서에 의해 불 이익을 받는 불만족국가로서 일본, 독일 등은 지배국가로서 영국, 프 랑스가 선점하고 있었던 식민지․반식민지를 빼앗기 위해 세계대전 을 일으켰던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 이전 영합게임적 국제경제 질 서에서는 세력균형이 파괴되어 유럽 내에서 프로이센, 프랑스, 이탈 리아, 오스트리아 등이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미국중심의 국제체제로서 Pax Americaner에서의 국제질 서, 특히 국제경제질서의 구조는 역사상 존재하는 기존의 다른 국제 체제보다도 국제체제 내부에서 국가별 경제적 불균등 성장을 자체적 으로 초래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의 국가들 은 생산성 향상이 높은 포오디즘 기술을 생산과정에 체화시키고, 유 효수효 부족을 노동조합의 합법화를 통한 임금상승률 제고로 해결하 는 한편, 농업생산성 향상을 통해 원자재 수입을 상당 부분 화학섬유, 화학고무 등의 화학원료로 대체시켰다. 이는 주변국들이 선진국으로 부터 식민지․반식민지로 전락하여 제국주의적 수탈을 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후발국들은 과학혁명을 통해 이룩해야 하는 기술력을 국제경제 질서의 자유화를 통해 손쉽게 이전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선도국과의 경제력 격차를 손쉽게 축소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후발국들은 저임금과 선도국의 저수준 기술을 결합하여 세계시장에서 획득한 외화를 자본재 수입에 활용하여 높은 단계의 산업화를 달성하는 한편, 다국적 기업의 유치를 통해 기술이 전을 용이하게 받는 등 선도국과 달리 산업화를 보다 빨리 달성할 수 있는 국제경제 질서를 활용할 수 있다. 후발국들이 산업화전략이 수 입대체모델이 아니라 수출지향적 산업화모델에 의해 산업화를 추진 할 경우 후발산업화는 보다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 에서 후발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국가들로 대만, 한국, 싱가포르는 물론, 1980년대부터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중 국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라티아메리카 등의 국가들은 후발산업화를 수입대체산업화 위주로 산업화를 추진했기 때문에 산업화 과정이 외 채의 위기에 빠지는 등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키고 있다. 즉, 미국중심 의 현재의 국제체제는 영국중심의 국제체제보다 훨씬 더 빨리 수출 지향적 산업화를 추진할 경우 경제적 불균등 성장을 가져와 패권국 과 경쟁국 간의 경제력 격차를 축소시키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으 로 분석된다.
이러한 Pax Americaner의 경제적 특성은 패권경쟁 구도에도 지대 한 영향을 미친다. 흔히 제국주의 체제로 지칭되는 Pax Britanica의 경우 지배국 또는 선도국들은 국제경제적 영합게임에서 식민지․반 식민지를 경략하여 상품시장을 확보하는 한편, 원료수입을 원활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국제체제에서 후발산업화로 인하여 식민지경략 에 늦게 뛰어든 독일, 이탈리아 등은 불만족국가로서 지배국가인 영 국에게 도전하여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세력전이이론에 따르면 패권전쟁은 도전국의 국력이 지배국가와 비슷해질 때 전쟁이 발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