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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를 먼저 체결함으로써 한국이 동아시아 FTA

허브가 되는 기 반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둘째, 국내 정치적 요인이다. 노무현 정 부는 한·미 FTA로 국내 산업구조조정 추동을 통한 중국과의 비교 우위 산업경쟁구조 건설을 주 추진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 만 결정 배경으로 정권업적, 한·미 동맹 약화에 대한 국내비판에 대한 대응 등의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미 동맹 강화론은 부분적으로 설득력이 있으나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위해 FTA카드를 사용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 하면 미국은 한국과의 FTA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FTA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2006년 정책결정을 내린 한·미 FTA는 한국을 둘러 싼 미·중 경쟁에서 한·미가 이해관계를 함께하고 중국이 결과론적 으로 소외된 사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07년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후 같은 해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방한하여 한국과의 FTA 체결의사를 표시했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환영 의 뜻과 함께 한·중 FTA에 대한 공동연구작업을 실시하도록 지시 하는 등 개방된 자세를 취했다.

한국의 입장

한국은

2003년 8월 FTA의 길잡이라 할 수 있는 ‘동시다발적

FTA’를 작성했다.

작성 당시의 FTA 협상 대상 1순위는 거대경제

권이었다. 여기에는 미국, EU, 중국 등이 포함된다. 미국은 당시 협 상대상 1순위는 아니었으나 2006년 1순위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지 고 있다. 미국이 FTA 협상대상 1순위가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경제적 이익에 대한 고려이다. 선진국 일본과 거대경제권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미국과 FTA를 먼저 체결함으로써 경쟁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것이다. 동시 에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 증진의 중요성이라고 하는 전략적 고려 가 필요했다.

미국의 입장

미국은 한국과의 FTA 체결에 경제적 효과 등을 감안하여 미온 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6년 한국 측의 설득으로 입 장을 선회했는데 그 배경과 관련해서는 2006년 부시 대통령의 한·

미 FTA에 대한 설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2월 “한·미 FTA

추진은 양국 모두에 전략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

이고, 미국의 동아시아 관여를 증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전개하는데 있어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한 차원에서 한·미 FTA의 중요성을 고려했 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입장

중국이 FTA를 체결할 때 국가별 우선순위는 중화권, 동아시아 비중화권 지역과 국가, 비동아시아 지역 및 국가, 기타 지역 순이 다. 그렇다면 한국은 비중화권이며 동아시아에 속한 국가로 고려 대상 2순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중국의 FTA 전략의 4대 고려사항 을 살펴보면, 한국의 중요성은 보다 부각된다. 중국은 지리적 위치

,

자원보유, 신흥 강대국, 중국과 주요한 이해관계 등을 중요한 추진 요인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 중에서 비중화권이라는 점과 자원보

유국이 아니라는 점, 신흥강대국이 아니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한 국은 중국의 주요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에 속한다. 무엇보다 중 국이

FTA

를 기본적으로 비경제적,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이 중국의 외교에 있어 중요한 상대국에 해당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이 미국과 FTA협상을 타 결하자 원자바오 총리는 방한일정까지 조정하고 농산물 시장개방 양보안까지 제시하며 한·중 FTA 체결 의지를 피력했다.

한국의 조화외교 시도

한·미 FTA를 한·중 FTA에 우선해 추진한 결과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왜냐하면 FTA의 효과는 현재진행형이기 때 문이다. 다만 미·중 관계와 관련해서 노무현 정부 시기 추진한 한 국의 FTA 정책으로 한·중 관계가 악화되지는 않았다. 중국은 노 무현 정부 시기에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본격적으로 상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말해 중국은 여전히 미·중 관계에서 현존질서 에 대한 수용자이자 피동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이 미국과 타결하면서 한국과의 FTA 체결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보다 적극적 자세로 임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에 대해 매우 개방 적 접근법을 취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가 체결된 상황에 서 중국과의 협상을 환영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 입장에서는 FTA 협상에 대한 축적된 경험과 자신감을 가지고 한·중 FTA를 고려했 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국과의 FTA가 가져올 경제적 효과에 대 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한·미 FTA를 통해 동아시아 FTA 선진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노무현 정부 시기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

한국과 미국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와 역할반경을 한반도를 넘 어 지역안정으로 확대하는 문제를 놓고 2003년 4월 ‘미래 한·미 동 맹정책구상(FOTA)’ 회의를 개최했다. 한·미 간 협상이 시작된 이 후 약 3년 간의 협상과정을 거쳐 한국과 미국은 2006년 1월 주한미 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개괄적으로 합의했다. 주한미군 전략 적 유연성 합의는 국내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 라 중국 또한 예의주시했던 사안이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수용에 대해 한국이 우려했던 사안은 크 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우려사항은 주한미군의 대북억지력이 약 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고, 둘째는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의 사안 특히 중국의 양안분쟁 개입이나 중국과 관련된 사안에 개입함으로 써 한국이 미·중 분쟁에 연루될 수 있는 개연성이다. 특히 두 번째 우려사항은 중국이 직접 이해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안에 해당했 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분쟁이 벌어질 경우 주한미군이 동원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이 경우 중국은 최악의 경우 개전 초기 억지력 확보를 위해 한국의 주한미군 기지를 직접적 공격 대상으로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방위와 대북 억지력을 위해 주둔 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오히려 한국이 동북아 국제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주한미 군의 전략적 유연성 허용 자체가 국익에 상반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상호성’의 문제였다

.

한국 의 방위를 위해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만큼 한국 또한 미국의 입 장과 이해를 고려해야하는 호혜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했던 것이었다.

한국은 1996년 이미 28차 한

·

미 연례안보협의회(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SCM)

결과보고에 “북한의 위협이 소멸하는 단계에서 한반

도 방위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며, 지역방위는 미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지원해야한다”는 내용에 합의했었다.172한·미 동 맹과 주한미군의 지역방위 역할에 대한 기본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 져 있었던 것이다. 이 내용은 그 이후로도 연례안보회의에서 지속적 으로 재확인되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주한미군 유연 성 요구를 노무현 정부가 거부할 수는 없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 연성 적용은 부시 행정부 들어 미국의 군사전략 변혁의 큰 방향에서 결정된 사안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으로서도 주한미군을 군사전 략 변혁의 예외로 인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한국도 주한미군의 지속 적 주둔을 원하는 한 미국의 요구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는 한·미 동 맹의 상호주의에 어긋나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우려사항을 최소화하는 접근 법을 택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원칙적으로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되, 그로 인해 미래 동북아 에서 한국 국민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자동적으로 말려들거나 개입 하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 결과 합의 사항에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 이 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조항을 삽입시켰다.173 이에 대해 중국에 통보함으로써 중국의 이해를 구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172_󰡔신동아󰡕, 2004년 12월 27일,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 /shin/2004/12/27/200412270500000/200412270500000_1.html> (검색일: 2014.7.14).

173_“[이종석칼럼] 전략적 유연성의 진실과 불신의 벽,” 󰡔한겨레󰡕, 2010년 1월 10일.

한국의 입장

2003년 미국 상원의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주한미군 재배치가

정치적 의제로 부각된 이후 한국은 주한미국 재배치에 대해 부정 적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새로운 군사 변혁으로서 한국이 무조건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인식하고 절충적 수용을 추구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수용 으로 한국이 미·중 간 군사적 문제에 휘말리지 않고 미국과 함께 중국에 대적하지 않을 것임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는 중국과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하 면서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섰다. 미·중 간 중립적 입장을 견지 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고민의 결과는 노무현정부의 외교노선인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지

속적으로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한다 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방미와 2005년 공 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주한미군이 한국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역분쟁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의 입장

미국은 2001년 부시 행정부 이후 새로운 미군 전략적 운용 개념을 도입하면서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 배치를 결정하고 전 세계 에 주둔한 미군에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주한미군 역시 이러한 맥 락에서 전략적 유연배치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

주한미군 유연배치는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진과정에서 나온 것이었지 중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입장으로서는 1992년 주한미군의 지역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