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맞게 되는 모든 것들이 배움과 관련되며, 자그 마한 것까지 마음을 쓰는 일이라는 점에서 독서를 비롯해 산수 유람이나 서화 완상, 화훼 재배와 같은 완물에 그 의미를 부여했다. 완물이 문화적으로 전개되 면서 포착되는 특징적인 현상은 그것이 학문의 여정에서 쉬면서 노니는 이완의 장치로 그 가치가 노정된 점인데, 이런 내용을 만들어간 출발선상에 『예기』의
‘장수식유’가 도사리고 있다. 이하의 논의에서는 ‘장수식유’가 담고 있는 문화적 맥락을 짚어보면서 조선 내에 ‘유식’의 필요성에 따라 완물의 가치가 어떻게 설 정되어 문화적으로 추진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1. ‘장수식유(藏修息遊)’의 지침과 ‘유식’ 공간 조성에 담긴 완물의 가치
『예기』의 ‘장수식유’와 ‘일장일이’에 실려 있는 ‘노동과 휴식’ 내지는 ‘일과 놀이’라는 의미 맥락은 인류가 살아가면서 영위하게 되는 두 가지 주요 활동에 속한다. 노동과 휴식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조화로운 삶을 이루는 것은 고대사
醉終日, 無所用心者, 實士行之罪人也, 其違禽獸幾何哉.”
387) 李象秀, 『峿堂集』, 「雜技」5, “奕碁爲最雅, 然亦不如不爲. 此盖貴客閒人, 飽食終日, 無所用心者之事也.”
회에 이미 중시되어 왔으며, 휴식과 놀이를 통해 새로운 기운을 진작시킴으로써 다시 본업에 임하게 하는 측면은 오늘날 보편적으로 중시되고 있는 ‘여가(餘暇)’
의 함의와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388) 더욱이 ‘장수식유’의 문화적 맥락은 학문에 대한 정진과 함께 노닐고 쉬는 ‘유식’의 중요성을 끌어내게 한 경전적 근거로 활용되면서 여가의 ‘유예’ 활동이 곧 문사들의 완물 취미와 연결되는 방 향으로 전개된다. 다음에 소개되는 『예기』「학기」의 내용은 대학에서 다루는 교육 과정을 설명하면서 ‘장수식유’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대학의 가르침은 각 계절의 교육에 반드시 정업(正業)이 있고, 물러가서 쉬는 것 에는 반드시 거학(居學)이 있다. 느리고 빠른 것을 배우지 않으면 능히 현(弦 ; 현악기)을 다룰 수 없고, 넓게 배우지 않으면 능히 시를 지을 수 없다. 여러 가지 복식을 배우지 않으면 예(禮)에 안정될 수 없다. 예(藝)를 즐거워하지 못하면 능 히 학문을 좋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학문에 있어 배운 것을 마음에 간직 하고(藏), 그 안에서 닦으며(修), 물러가서 쉬고(息) 노니는(遊) 것이다.389)
중국의 고대 교육제도를 설명하고 있는 이 글에서는 ‘정업’과 ‘거학’이라는 두 가지 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즉, 학문의 전 과정에는 각 계절에 따라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규 학업으로서의 과정이 있는가 하면, 정규 학업에서 물러나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익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390) 말하자면 예․악을 비롯해
388) 『예기』의 ‘장수식유’를 비롯한 ‘일장일이’는 전근대기의 여가 관념에 대한 단서를 열어주는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본 논의에서는 『예기』의 ‘장수식유’와 ‘일장 일이’를 중심으로 완물이 쉬고 노닐 적에 이루어지는 여가 활동과 밀착되는 점에 주 목해 보았다. 여가와 관련된 기존 연구의 동향 및 논저 소개는 각주 26)을 참조.
389) 『禮記』, 「學記」, “大學之敎也, 時敎必有正業, 退息必有居學. 不學操縵, 不能安弦.
不學博依, 不能安詩. 不學雜服, 不能安禮. 不興其藝, 不能樂學. 故君子之於學也, 藏 焉、修焉、息焉、遊焉.” 정현의 주와 공영달의 소에는 ‘時’자와 ‘居’자에서 끊고 ‘學’
자가 따로 한 구가 되었는데, 주희에 따르면 이는 옳지 않으며 ‘也’자와 ‘學’자에서 끊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가 후대에 정설이 되었기에 이에 의거하여 끊어 읽기를 표시하였다(朱子, 『儀禮經傳通解』卷16, 「學禮」10, ‘學記’, “今按上句鄭 注、孔疏讀時字、居字句絶, 而學字自爲一句, 恐非. 文意當以也字、學字爲句絶”). 다음 으로 ‘不興其藝’에 대해서 정현은 ‘흥’자를 기뻐하다, 즐거워한다(興之言喜也, 歆也)는 뜻으로 풀이하였으며, 공영달 역시 “‘흥’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 런 까닭에 『이아』에서는 ‘歆’자와 ‘喜’자가 ‘興’자의 뜻이라고 한 것이다(興, 謂歆喜 也. 故爾雅云, 歆喜, 興也).”라고 설명하였다. 이 구절에 대해 주희의 『의례경전통 해』‘학기’편에서도 정현의 해석을 따르고 있으며 거기에다 ‘不能樂學’의 ‘樂’를 좋아 할 ‘요’로 표기해두었다(樂五孝反. 興之言喜也歆也). 이에 따라 이 구절을 “예를 즐거 워하지 못하면, 능히 학문을 좋아할 수 없다.”로 번역하였다.
390) 『예기』의 주설(註說)로 인정된 원나라 진호(陳澔)의 『예기집설(禮記集說)』에 의 거해 설명하자면, 사계절의 가르침에는 각기 정업이 있는데 봄과 가을에는 예(禮)와
『시』·『서』등 정규 학업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거학에서는 이를 스스로 체득 하고 점진적으로 익혀나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따라서 각 계절 마다 배 운 금슬(琴瑟) 등의 현악기를 조율하며 손에 익도록 하고, 시의 비유와 그 속에 내포된 사물의 이치를 널리 익히고, 각종 복장 등의 예(禮)를 익히는 것이 거처 하는 곳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시·악·예의 조항은 이어지는 글에서 ‘예(藝)’로 통칭되며,391) 예를 익히는 중요한 의미는 당대의 공영달의 소(疏)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즉, 공영달은 “예를 즐거워하지 못하면, 학문을 좋아할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 하면서 “만약 『시경』·『서경』등의 정규 경전들을 배우고자 하는데, 그 뜻이 이러한 잡예를 즐거워하지 못한다면, 학문의 정도(正道)에 대해서 탐완하여 좋 아할 수 없다.”라고 해석하였다.392) 물러나 쉴 적에 익히는 ‘예’의 즐거움으로 학업을 계속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측면은 후대 학자들이 거학에서 다뤄지는
‘예’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서도 확인되고 있어서, 배우는 이들이 지쳐 있을 때에 쉬면서 그 뜻을 여유롭게 하여 학문을 계속 즐기고 좋아할 수 있게 하는 취지 로 그 의미를 규정하고 있다.393)
악(樂)을 가르치고 겨울과 여름에는 『시경』과『서경』을 가르치며 봄에는 암송하 고 여름에는 현악기를 다루는 것 등이 포함된다. 또한 물러나서 편안히 쉴 때에는 반드시 연거(燕居)의 배움이 있는데, 각 계절 마다 배운 금슬 등의 현악기를 조율하 며 손에 익도록 하고 『시』의 비유와 그 속에 내포된 사물의 이치를 익히고, 각종 복장 등의 예(禮)를 익히는 것이 진행되었다. 陳澔, 『禮記集說』卷6, 「學記」第18,
“謂四時之教, 各有正業, 如春秋教以禮樂, 冬夏教以詩書, 春誦夏弦之類, 是也. 退而燕 息, 必有燕居之學, 如退而省其私, 亦足以發, 是也. 弦也, 詩也, 禮也, 此時教之正業也.
操縵, 愽依, 雜服, 此退息之居學也.”
391) 「학기」편에 대해 정현이 ‘예’에 대해 예·악·사·어·서·수를 뜻한다고 풀이한 뒤로 공 영달은 ‘예’를 조만(操縵)·박의(博依)와 더불어 육예 등으로 보았고, 주희·진덕수·보광 (輔廣) 등 대다수의 학자들은 ‘예’에 대해 육예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보광의 주 석에서는 시·악·예의 조항이 예악의 부류로 ‘예’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를 돕고 있다.
다만, 앞서 소개되었던 진호의 경우는 ‘예’를 시·악·예의 세 가지 사항으로 축소시켜 보았다. 漢 鄭氏 注, 唐 陸德明 音義, 孔穎達 疏, 『禮記注疏』卷36, 「學記」, “不興 其藝, 不能樂學.【注】藝謂禮樂射御書數.” ; “【疏】藝, 謂操縵博依六藝之等.” ; 朱子,
『儀禮經傳通解』卷16, 「學禮」10, ‘學記’, “不興其藝不能樂學. 樂五孝反. 興之言喜也、
歆也. 藝謂禮樂射御書數.” ; 宋 衛湜, 『禮記集說』卷89, “慶源輔氏曰, … 藝, 謂禮樂射御 書數. 上言禮樂矣, 故下言藝以緫射御書數也. 詩亦樂也. 故因樂言之, 不興其藝不能樂 學, 故學者先敎以六藝也.” ; 元 陳澔, 『禮記集說』卷6, 「學記」第18, “藝, 即三者之 學, 是也.”
392) 漢 鄭氏 注, 唐 陸德明 音義, 孔穎達 疏, 『禮記注疏』卷36, 「學記」, “【疏】不興其 藝, 不能樂學者, 此總結上三事, 並先從小起義也. … 若欲學詩書正典, 意不歆喜其雜藝, 則不能耽翫樂於所學之正道.”
393) 朱子, 『儀禮經傳通解』卷16, 「學禮」10, ‘學記’, “張子曰, 禮樂之文, 如琴瑟笙磬, 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거학은 정규 학업과는 달리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익히면서 그 즐거움이 학문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별도의 의미가 있 던 것인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거학이 물러나 쉴 적에 익히는 학문으로 설정 된 점이다. 따라서 때로는 물러나 휴식을 취할 때의 배움으로 설명되기도 하고, 때로는 물러나 쉴 때에 거처하는 공간에서 익히는 배움으로 다뤄지기도 하면서 거학은 물러나 편안히 쉴 적에 이루어지는 연거(燕居)의 학문으로 달리 표현되 기도 하였다.394) 『논어』「술이」편에 “공자께서 한가로이 지내실 적에 그 모 습이 느긋하시고 온화하셨다(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라는 말에서도 나온
‘연거’의 의미는 『집주』에서 풀이하였듯이 “한가하고 일 없을 때(閒暇無事之 時)”를 뜻한다. 이와 같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정업과는 달리 거학은 ‘쉬는 공 간’ 내지는 ‘쉬는 시간’에 이루어지는 배움이란 의미를 구성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예기』「학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군자의 학문이 항상 배움 을 자신과 떼어놓지 않는다는 점을 ‘장수식유’라는 핵심 명제로 새로이 제시된 다. ‘장수’와 ‘식유’에 대해 최초로 해석한 정현의 경우는 ‘장수’에 대해 “장(藏) 은 마음에 간직함이요 수(脩)는 익히는 것을 일컫는다.”라고 하였고, ‘식유’에 대해 “식(息)은 수고로운 일을 하고 휴식을 취할 적에 쉬는 것을 일컫는다. 유 (遊)는 한가하고 일 없을 적에 노니는 것을 일컫는다.”라고 풀이했다.395) 학업 에 정진하는 ‘장수’와는 달리 ‘식유’의 의미에 대해 한가롭고 일 없을 적에 이루 어지는 ‘휴식’과 ‘놀이’로 풀이한 한대 정현의 해석은 공영달에 의해 휴식과 놀 이까지도 배움의 과정으로 새로이 강조되는데, 공영달은 ‘장수식유’에 대해 “장 은 마음속에 항상 학업을 품고 있음을 이르고, 수는 익히며 폐하지 않는 것이 다. 식은 일하다가 피곤하여 쉴 때에도 배움에 마음을 둠을 이르고, 유는 한가 하여 일이 없어 놀러 다닐 때에도 마음이 배움에 있음을 이른다. 군자가 배움에
人皆能之. 以中制節, 射御亦必合於禮樂之文, 如不失其馳, 舍矢如破, 騶虞、和鸞, 動必 相應也. 書數其用雖小, 但施於簡䇿, 然莫不出於學. 故人有倦時, 又用此以游其志, 所以 使之樂學也.” ; 元 吳澄, 『禮記纂言』卷35, 「學記」, “藝猶技也, 即操縵博依雜服等 藝, 以退息之居學而言也. 樂謂心好之, 而耽玩不厭學, 即春所學之弦、夏所學之詩、秋所 學之禮也. 此謂既受正業而退息之時, 又有居學之事. 學操縵則習於調弦, 學博依則孰於聲 歌, 學雜服則孰於威儀, 而於弦於詩於禮自然便習, 而不待勉强矣. 蓋不興起於居學之藝, 則生踈澁滯, 不能耽好正業之學也.”
394) 陳澔, 『禮記集說』卷6, 「學記」第18, “退而燕息, 必有燕居之學, 如退而省其私, 亦足 以發, 是也.”
395) 漢 鄭氏 注, 唐 陸德明 音義, 孔穎達 疏, 『禮記注疏』卷36, 「學記」, “【注】藏謂懐 抱之, 修習也, 息謂作勞休止謂之息, 遊謂閒暇無事謂之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