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국제(global) 분야
(1) 자유주의 국제질서 지속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일정 정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러한 미국 패권 중심의 국제질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통해 평화 공감대 확산의 우호적 환경을 제공해줌으로써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미중 패권경쟁으로 인해 갈등이 격화하고 불안 정한 질서로 진전하는 대신에 안정적이고 평화지향의 질서를 지속 함으로써 우리의 평화공감대 확산의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현재의 국제질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이자 미국의 패권에 기초한 질서로 인식된다. 이러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설립자인 미국과 함께 유럽 및 아시아지역의 동맹국들이 유 지해오고 있다. 그동안 이 질서는 미국을 비롯한 민주국가들의 연합 이 주도하여 힘과 제도를 통해 개방성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나름 성 공적으로 지속되어왔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상대적인 쇠 퇴와 서구국가들의 혼란, 일방적인 제도운영,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 는 국가들의 등장으로 인해 질서유지에 어려움이 닥쳤다. 이와 같은 어려움이 닥친 원인은 패권국가의 쇠퇴와 정당성 부족에 있거나 시 대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자체 결함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현 국제질 서에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세력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국 가들이다. 그렇지만 중국을 비롯해 이들 국가들이 현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중국은 현 국제질서를 보편적 질서로 인식하고 있고 단지 미국의 일방적인 주 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에 대한 개혁과 보완을 요구하고 있 다. 사실 미국도 현 국제질서의 개혁 및 보완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 는 상황이다. 낙관적으로 본다면 미국과 중국이 현 국제질서의 개혁 방향에 대해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면 현재의 국제질서 유지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합의가 쉽지는 않 을 것이며 합의된 개혁과 보완을 통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향후 어 떤 형태를 보일지도 알 수 없다. 결국 그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미중 간 패권경쟁, 영국, 일본, 러시아 등 여타 강대 국들과 그 외의 국가들 간의 경쟁과 변화 등을 통해 그 구체적인 형 태가 드러날 것이다.89)
그렇지만 과거의 경험과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특성을 볼 때 현재
89) 유희복, “국제질서의 다면성과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미래,” 아태연구, 제25권 4호 (2018), pp. 162~164.
의 국제질서가 붕괴하거나 다른 질서로 대체되거나 급격히 축소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상이한 역사와 문화, 제도를 갖고 있는 미 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무력을 통한 세력전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미중 양국 모두가 인내력을 발 휘하고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무력충돌을 피하는 역량을 보여야 만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중견국가들도 강대국에 편승하지 않는 독자적인 국제질서 형성의 주체로서 참여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강대국과의 동맹을 통해 세력균형을 추구하거나 세 력전이 과정에서 동맹전이를 추구하는 행위 보다는 정의로운 규범 과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형성을 원하는 국가들 과의 연합을 통해 독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불확실성의 증대로 인해 개방성과 효율성을 장점으로 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보다는 폐쇄적인 지역경제권, 중 상주의적 네트워크, 지역주의와 경쟁 등 매우 분산적인 국제질서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과거와 달리 매우 차별적 이고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주도하 고 유지해왔던 핵심 강대국들이 이 질서로부터 이탈하려하고 있다 는 것이다. 과거에도 자유주의 국제질서로부터 이탈하려는 국가들 의 움직임은 계속 있어왔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이 미국과 서방국가 들이 이러한 이탈 움직임을 주도한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변화를 요구해왔던 개발도상국들의 움직임에 대해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 사실이 다. 이러한 최근의 현상은 일시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 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것이다.
서구국가들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이탈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리더십의 부재를 가져온다. 미국이 제조업의 부활과 자국 내 일자리 보호를 위해 신보호주의를 내세우고 상대국들에게 시장개방
을 요구하고 환율을 압박하는 등 일방주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TPP 탈퇴, NAFTA 재협상, 한미 FTA 개정 등을 실천하면서 기존 무역협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 지 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해왔던 유럽도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유럽은 브렉시트의 발생 자체가 예상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의 충격을 흡수하고 EU의 위상을 유지해야 하는 등 내부적 문제의 지속으로 인해 커다 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랑스의 국내 정치지형이 급격히 변화하는 등 브렉시트 이후 다른 유럽 국가들도 내부 문제 해결에 치중하게 됨에 따라 전 지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유럽의 리더십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중국은 2017년 다보스 포럼에서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촉 진하는 자유무역의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를 대내외에 주지시키면서 보호주의로 회귀하는 미국과의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중국은 자유 주의 국제질서의 수혜자로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필요성은 인지하 고 있지만 여전히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를 위한 비용을 담당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전 지구적 문제의 해결을 위 해서는 단순히 하드파워만 가지고는 안 된다. 현재 중국은 과학적인 지식이나 규범에서의 우월한 지위 등 소프트파워를 충분히 보유하 고 있지 못하다. 중국은 과거 미국이 가지고 있던 우월한 지식과 다 른 국가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 에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독자적인 리더십을 행사하기에는 역부족이다.90)
따라서 미국 패권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미중 간 패권 경쟁
90) 이승주, “초불확실성 시대의 글로벌 거버넌스,” EAI 이슈브리핑, 2017.5.16., 동아 시아연구원, <http://www.eai.or.kr/main/publication_01_view.asp?intSeq=694 6&board=kor_report> (검색일: 2020.10.23.).
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러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평화공감대 확산의 우호적 환경과 토대를 제공해줌으로 써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2) 미국의 글로벌 이슈 리더십 유지
미국의 국력은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는 쇠퇴하나 글로벌 이슈 리 더십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국력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 전히 패권국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미국의 글로 벌 이슈 리더십 유지는 국제사회 평화질서 수호를 위한 역할을 지속 함으로써 평화공감대 확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제도화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보유하 고 있기에 강대국으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를 위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국가전략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 및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러한 자유민주주의는 냉전 을 승리로 이끈 미국과 서구국가들의 정치체제였기 때문에, 자유민 주주의는 이념적 우월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현재에도 미국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을 추진하면서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거버넌스를 제시 하고 있는데, 이는 역내 민주주의 제고, 시민사회 활성화, 인권보호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립과 유지를 위해 추구해온 목표이자 수단인 것이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에 구축해온 자유주의 국제질 서는 단순히 사회주의권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 이상의 의미이다. 미 국은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의 각각 동맹과 다자제도를 형성하여 국 제질서를 구축하고자 했으며,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할 때 지속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미국의 쇠퇴는 곧 자유민주주
의의 쇠퇴를 의미한다. 미국의 쇠퇴로 인한 국제체제의 구조적 전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력균형을 반영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쇠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국가들 중심의 자유민주동맹(liberal democratic alliance)의 쇠퇴와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 가의 부상이 겹치는 구조적 전환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주요 구성 요소인 자유민주주의의 쇠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즉, 자유민주주 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보유한 서구국가들이 탈냉전기에 전략적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제도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 다. 서구국가들의 냉전에서의 승리는 자유주의 가치의 우월함을 증 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급속히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비 민주주의 국가들에 의해 자유민주주의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것 도 사실이다.91)
이러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경제적 이유가 크다. 서구 민주 국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민주주의 모델이 경제적 성과를 보장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구국가들의 경제 악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이제 서구국가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 가치 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자유주의 개혁을 원하고 있 다. 미국의 경우도 이미 미국 국민들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와 자유무역 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미국으로 하여금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이탈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국은 민주주의 확산 전략을 견지하고 있다. 미 국의 민주주의 확산 전략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 은 중국 등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이슈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역내 민주주의 제고에 힘쓰
91) 정구연,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인식 결정요인 연구: 민주주의 효과성의 변수를 중심으로,” 국제정치연구, 제22권 2호 (2019), pp. 11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