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 참여한 교사들은 모두 고경력 영어교사로서 ‘고경력 교사’라는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참여교사들은 교과 교사이기 이전에 고경력 교사로서 모두 교직경력 25년 이상, 50대라는 공통의 속성을 공유하고 있었 다. 이번 절에서는 고경력 교사 일반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중심으로 살 펴보고자 한다. 이는 교과 특성을 떠나 모든 교과의 고경력 교사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으로, 학생들과의 세대차이, 체력의 한계, 새로운 지식 습득 의 어려움, 미디어 리터러시 문제를 포함한다.
가. 소통 거부: “요즘 학생들이 소통을 거부해요”
참여 교사들은 고경력 교사가 되어가면서 힘든 첫 번째 요인으로 ‘학생들 과의 의사소통 단절’을 꼽았다. 모든 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
으로 많은 학생들이 고경력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즉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 으로 고경력 교사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또 요즘 학생들이 교사 에 대한 신뢰가 낮고 교사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때 참여 교사들 은 특히 더 힘들다고 했다. 면담 과정에서 정 교사는 학생들이 나이 든 교 사를 일단 본능적으로 선호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고경력 교사들이 젊은 교 사와 비교해 외적인 매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세대 차이로 인해 공감대 형 성이 어렵다는 점에서 학생들은 고경력 교사를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이현 화, 김회용(2009)의 학부모 및 학생들의 교사 선호도에 관한 연구에 따르 면, 부모와 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교사의 연령대는 30대였으며, 최소의 응 답자만이 50대 이상의 교사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즉, 고경력 교사들은 그 들만이 가진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나이 든 교사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들로 그들과의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것에 큰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또 나이가 들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학생들이 거부해요. 학생들이 나이 든 선생님을 특히 거부해요. 우리가 수준별 수업을 하는데 선생님의 강의 를 듣기도 전에 젊은 선생님, 늙은 선생님 이렇게 구분을 해요. 그 정도로 일단 영어 교과목은 좀 젊은 선생님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정 교사 인터뷰)
또한 정 교사는 “요즘 학생들”의 성향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음을 회상했 다.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이 신경 써서 해주는 말도 다 잔소리로 받아들이 며 선생님에게 고마워하기보다는 해당 교과나 선생님을 싫어하기까지 한다 고 했다. 학생들은 흔히 잔소리하는 선생님들을 “꼰대”라고 인식하며, 선생 님과의 소통을 아예 차단, 단절시켜버린다고 했다. 이러한 요즘 학생들의 성향이 고경력 교사로 하여금 더욱 쓴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하며, 교사가 학 생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 교사는 학생 들의 태도가 달라지면 “무섭다”라고 표현을 할 정도로, 요즘 학생들이 교사 를 대하는 태도,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음을 지적했
다. 또한 정 교사는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잘 들어주지 않을 경우, 학생들이 단순히 교사에 대한 거부, 반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 및 수업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며, 이러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요즘 아이들의 성향은 자기들을 사랑한다고 표현 안 해주면 자기를 미워 하는 줄 알아. 선생님의 충고 어린 말도 자기를 미워해서 한다고 생각해.
근데 선생님이 조금만 잔소리를 하면 바로 확 달라져버려요. 무서워요.
그럼 수업도 안 해버려요. 떼쓰는 거죠. 선생님 미워해서 난 안 해. 자버 리거나 일부러 떠들거나 학습지도 안 해버리고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해 요. 내 주장만 막 했다가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교과목이 되어 버린다는 거에요.
(정 교사 인터뷰)
이 교사 역시 젊은 시절 다른 학교에서 근무할 때 나이 드신 고경력 선 생님이 수업 중 학생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고 크게 충격 받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이 교사는 비교적 젊은 편이었는데 당시 고 경력 선생님의 경우 충분한 교과지도 실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무시하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 이 교사는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라고 생각하며 크게 걱정했었 다고 언급했다.
(예전 학교에 근무할 때) 연세가 든 선생님이 실력은 있는데 애들 통제를 너무 안 하시는 거야. 그래서 내가 지나가면 애들이 막 선생님 수업하시 는데 뒤를 돌아보고 잡담을 하고 그래. 그래서 내가 선생님들한테 ‘어머 나! 저 선생님은 애들 통제를 못 하시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
(이 교사 인터뷰)
교사가 학생들로부터 교사로서의 권위를 잃고 학생이나 상황에 대한 통제
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때 교사들은 정체성에 큰 위기를 경험하게 된 다. 특히 교사들은 학생들과의 소통이 단절되고 학생들로부터 충분히 존경 받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크게 좌절하며 스스로 학교를 떠날 때가 되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나. 체력 문제: “체력적인 에너지가 부족해요”
몇 해 전 건강이 안 좋았던 정 교사는 나이가 들어가며 체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지적했다. 특히 체력적인 문제는 비단 정 교사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많은 고경력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체감하는 문제였다. 정 교사는 45 분의 시간 동안 학생들 앞에서 수업하는 것이 50대의 고경력 교사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수업 자체가 체력 소모가 매우 큰 일이라 언급했 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학교 영어수업은 활동수업이 많고 교사가 직접 말 하고 보여주는 형태의 수업이 많다 보니 고경력 교사들은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사실 영어교사로서 위기를 느껴요. 어떤 부분에서 느끼냐하면 체력 적인 부분에서. 옛날의 열정으로는 더 이상 하기 어렵다는 거죠. 아무래 도 영어는 할 것도 많고 (다른 교과에 비해)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정 교사 인터뷰)
학교 현장을 들여다보면 많은 고경력 교사들이 수업하는 것을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고경력 교사들의 경우 수업 시수를 빼주 거나 행정업무를 경감시켜줌으로써 교사들이 체력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 도록 많은 부분 배려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 는 일 자체가 체력 소모가 크며,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고경력 교사들은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이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고경력
교사들은 교감, 교장과 같이 관리자로 승진을 준비하거나 전문직 시험을 봐 서 연구사나 장학사의 길을 모색하거나 혹은 다른 교과로의 전과, 명예퇴직 등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다. 지식 습득의 한계: “새로운 게 습득이 잘 안 돼요”
고경력 영어 교사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자기계발이 지 속적으로 요구되는 현실과 동시에 새로운 게 잘 습득되지 않는 체력적 ․ 지 적 한계에서 비롯되는 괴리감이었다. 이 교사는 교사들이 교과를 잘 가르치 기 위해서는 교사들도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거나 기존의 내용들을 반복적으 로 꾸준히 재학습해야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것들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어교사는 가르치는 학년이나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새로 운 교과 내용과 단어를 학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습내용이 잘 습득되지 않을 때, 교사들은 스스로의 교과 교사 정체성에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자기계발을 계속 해야 된다는 거야. 나이 들면서 젊을 때는 새로운 게 습 득이 잘 되는데 나이가 들면 어휘 하나도 새로운 게 잘 안 들어 와. 아직 은 젊어서 잘 모르지?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 새로운 것들이 습득이 잘 안 되는데 그런 것들이 힘이 들지.
(이 교사 인터뷰)
정 교사는 영어교사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새로운 영어단어를 학습하 고 꾸준히 외워야 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단어도 잘 기억이 안 나고, 영어 단어를 학습할 수 있는 시간적 ‧ 체력적 여건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견교사가 되면서 영어 교과목에 대한 자신감이, 꾸준하게 영어에 대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교과에 대한 자신감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아요. … 나이 들면 단어도 생각이 잘 안 날 때가 있어요.
(정 교사 인터뷰)
참여교사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본적인 교과지식 마저 잘 습득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고경력 교사들의 경우 젊었을 때만큼 교 과지식을 얻기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적 ․ 체력적 여유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두뇌 회전도 예전 같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는 노화에 따른 자 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고경력 교사들에게도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라. 미디어 리터러시: “화상수업 자체가 부담인거야”
개인적인 체력, 환경, 나이 차이에 따라 어느 정도 조금씩 다르겠지만, 본 연구에서는 참여 교사 중 나이가 가장 많았던 이 교사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비대면 원격 수업 형태가 너무 힘들다고 지적했다. 최근 코로 나19가 확산되며 수도권 학교의 등교형태가 1/3 내지 2/3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변화된 등교형태에 따라 새로운 교수학습법을 빠 르게 익혀야 했고 원격으로 이루어지는 화상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인천의 경우 코로나 19가 처음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까지는 비대면 원 격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을 매개로 화상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2021 년 하반기부터 줌 서비스가 유료로 전환됨에 따라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많 은 예산을 들여 줌을 대신할만한 플랫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 천에서는 e학습터, EBS 온라인 클래스, 네이버 밴드, 구글미트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여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급격한 수업 형태의 변화는 평소 미디어를 자주 다루지 않았 던 고경력 교사들에게는 다소 급진적이고 부담스러운 변화였으며, 적응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특히 이 교사는 나이 든 교사들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기기를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더 힘이 든다고 말했다.
지금도 줌으로 수업하고 화상수업하고 이런 게 우리들한테는 부담인거야.
그래서 그런 면이 좀 힘들지 사실은.
(이 교사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