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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는 중국 사상을 대표하는 철학자이다. 노자에 대해서 가장 믿을만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 이다. 노자는 은자(隱者) 계열 사상가이다. 은자들은 세속에서 벗어나서 숨어 살려고 했다. 숨기 위해서 맨 처음에 하는 것이 자기 이름을 감추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라는 사람은 어느 시기에 사람인지, 혹은 실존 인물인지도 불분명하다. 노자라는 사람 과 『노자』라는 책은 다르다. 노자 는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이론이 중첩 되고 편집되어, 전국 시대 말기 이후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 같다.

노자는 항상 일반인들과 반대로 생각하며, 상식을 뒤엎으려 한다. 높음보다는 낮음을,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을, 앞으로 나서기 보다는 뒤로 물러남을, 남성적인 것보다는 여성적 인 것을 취하라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강함, 남성적임, 앞으로 나섬”을 취하면, 좋은 현실적인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노자는 현실을 냉엄한 힘의 관계로 파악한다. 강한 힘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다줌을 통찰한다. 그는 신비한 사상가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공 자와 노자는 사고 방식이 다르다. 공자는 이상주의적 정치를 주장했고, 반대로 노자는 현 실주의적 정치를 말한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움을 주장한다. ‘~다 움’은 이상적인 모습이다.

노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시대로 정복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사회의 혼란기였다.

노자가 살았던 곳은 초나라였다. 이 지역은 초, 오, 월이라고 하는 세 나라가 가장 심하게 싸우던 지역이다. 이런 지역적인 특성상 자연스럽게 전쟁을 반대하는 사상이 나오게 된다.

이것이 노자의 사상에 기반이 되었다. 노자는 항상 힘으로, 우격다짐으로 하는 것을 반대 한다. 또한 상식을 뒤엎는다.

노자는 현상적인 차원을 넘어선 도(道)라는 절대적인 원리를 추구한다. 현실 사회가 어 지러운 것은 사람들이 불완전한 이성(理性)을 바탕으로, 자기중심적인 그릇된 판단 아래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道와 德을 따르라고 한다. 이것이 노자의 기본 사상이다. ‘道’는 ‘길’을 뜻한다. 노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변화한다. 변화해 나가는데는 필연적인 과정이 있다.

이를 ‘道’, 즉 ‘길’이라 한다. 이런 점에서 ‘道’는 객관적인 필연성, 추세를 의미한다. ‘객 관적’이라는 말은 인식하는 사람과 아무 상관없다는 뜻이다. 현상 세계에는 그 자체로 필 연적으로 흘러가는 추세가 있다. 그것이 道이다. 德은 능력이고 힘이며, 또한 특징이다.

사람이 도를 알 때, 그 사람이 가지는 능력이다.

노자는 세상을 ‘도와 현상’이라는 두 가지 대립으로 본다. 1장에 나오는 무명(無名)-유 명(有名), 무욕(無欲)-유욕(有欲)의 대립이 그것이다. 도는 무명(無名)이며 무욕(無欲)이다.

이름이 없고, 욕망이 없다. 반면 현상 세계는 유명(有名)이며 유욕(有欲)이다.

객관 필연성으로서 道는 ‘대립자의 공존’으로 말할 수 있다. Α가 있으면, 반드시 ~Α 가 있게 된다. 도를 알기 위해서는 대립자의 공존을 이해해야 한다.

노자는 도(道)를 무명(無名)과 무(無)라고 표현한다. ‘無名’은 “이름이 없음”이다. 더 정 확하게 말하면, “이름을 없앰”이다. 여기에서 ‘이름’은 현상 사물을 규정하는 수단이다. 이 름이 붙었다는 것은 그 사물을 그 이름으로 규정했다는 말이다.

‘道’를 규정하는 다른 말은 ‘無’이다. 노자가 말하는 無는 뭔가 있기는 한데, ‘규정(名)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말한 것이다. 이때의 無는 ‘無名’ 과 같은 뜻이다. 이 無란 규정이 없 는 것, 한정짓지 않음이므로, 그것은 자유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이 다. 현상 사물은 명확하게 규정된 것들이므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것과 반대가 도이 다. 도는 규정되지 않은 것이며,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며 힘이다. 이런 점에서 도는 ‘무 명(無名)’이며 ‘통나무’이다. 그래서 노자는 ‘무명(無名)의 통나무’(無名之樸)라고 한다.

도(道)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무명(無名)이다. 뿐만 아니라 도는 모든 유명(有名)이 생 기게 되는 원천이다. 도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無名)이기 때문에 말(언어)로 표현 될 수 없다.

노자는 도의 이미지를 곡신(谷神)과 현빈(玄牝), 박(樸)으로 표현한다.

곡신(谷神) 현빈(玄牝)은 둘 다 여성의 성기를 비유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말로 도를 비 유한 것은 도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낳는 ‘생산력’이 있다는 뜻이다.

‘樸’은 가공하지 않은 통나무이다. 원 재료이다. 무규정자이다. 노자는 ‘樸’이라는 말로 국가 최고 권력의 원래 상태를 은유·비유한다. 국가 최고 권력은 무엇에도 규정되지 말아 야 한다. 마치 아직 가공하지 않는 통나무처럼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권력은 다양하게 변해야 한다. 모든 것을 낳는 자는 ‘무 규정자’이다. 가공하지 않는 통나무(樸)와 같다. 무 엇으로든지 변할 수 있는 자유-가능성-힘이다.

노자는 역발상을 한다. 그는 반대로 뒤집어 생각하기를 철저히 실천한다. 이 실천의 결 과가 ‘대립자의 공존(모순 공존)’의 논리이다. 화의 곁에는 복이 있고, 고난의 끝에는 행복 이 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노자는 대립자의 공존이라는 논리로 인류의 역사를 해석한다. 역사가 흘러가면 갈수록 대립자의 공존 갈등이 더 심해진다. 그래서 그는 인류 역사의 최초의 공동체인 ‘소국과민 (小國寡民)’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본다. 국가가 커짐에 따라 전쟁과 혼란도 가중된다.

그래서 노자는 문명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소국과민(小國寡民)으로 돌아가자 고 한다. 노자는 전국시대의 정복 논리를 반대한다. 그 논리의 바탕에는 ‘소국과민’이 있 다. 따라서 노자의 역사관은 퇴보 사관이다.

노자의 국가론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념이 ‘통나무’(樸)와 ‘그릇’(器)이다. 통나무는 원료 를 뜻한다. 따라서 그것을 사용해서 만든 제품이 있음을 함축한다. 그릇은 담는 것이다.

통나무는 원재료이다. 통나무를 가공해서 가구를 만든다. 이것은 재료와 제품의 관계이 다. 노자는 樸과 器로 최고 권력(주권)이 국가를 구성함을 설명한다.

노자는 국가의 권력을 신기(神器)와 이기(利器)로 말한다. 신기(神器)는 ‘신비한 그릇’이 나 ‘도구’라는 뜻이다. 노자는 천하를 ‘신묘한 그릇’이라 한다. 신기(神器)는 국가의 최고 권력을 의미하는 측면도 있다.

‘利器’는 ‘성능이 매우 좋은 도구’라는 말이다. 이 연장은 나라에 속하는 것이다. 즉 군 주가 가지고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利器’는 일차적으로 국가 최고 권력(주권, 왕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利器’는 법규 규정 명령 형벌, 각종 통치 제도나 법령을 총망라한 사회 시스템의 총체이다. 백성 교화 수단, 정치 경제 외교 군사적 조처까지 포함 한다. 요컨대 군주는 이 모든 것을 다 사용하여 국가를 통치하되, 강압으로 해서는 안 된 다. 권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사용해야 한다. 이는 무위(無爲)의 통치를 말한다.

노자의 정치 사상은 도에 의한 무위(無爲)의 정치이다.

일반적으로 노자는 ‘無爲 自然’의 통치를 주장한다. 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하게 두는 것 이 통치의 요점이다. ‘無爲 自然’이란 내가 주관적 욕망과 의지를 가지고 행위함이 없이, 도라는 객관적 추세(스스로 그러함, 自然)를 따르라. 이것이 정치의 요점 중 하나이다.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은 그의 정치론의 핵심 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無爲’가 실현 된 상태를 ‘자연(自然)’이라고 한다. ‘無爲’란 정말로 완전히 행동을 정지 하거나 아무 것 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하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하는 것을 뜻하며, 인위 적인 것이나 인공적인 것을 가하지 않은 자연스런 행위를 뜻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인의 (仁義)와 같은 유가적인 덕목을 반대하였다. 그것은 도와 덕이 타락한 데서 생기는 인위적 인 처방이다. 도를 인식하면 덕이 생긴다. 인의는 본래의 덕을 상실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도를 무시하고 덕을 따르지 않는다.

노자는 사람의 행위 가운데 강제로 억지로 하는 행위를 ‘爲’라 한다. 문명사회가 부과하 는 모든 행위, 국가가 백성들에게 가하는 모든 행위, 그런 것을 ‘爲’라고 보았을 것이다.

따라서 노자가 원하는 사회는 ‘無爲而無不爲’였을 것이다. “함이 없어도 하지 않음이 없 다.” ‘無爲而無不爲’와 더불어 유명한 말이 ‘無爲自然’이다. ‘無爲=自然’이다. 이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의 뜻이고, 요즘 말로 번역하자면 ‘자유’이다. 외부의 강제나 통제 없이(無 爲) 스스로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우민(愚民) 정치란,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백성들에게 무지(無 知)와 무욕(無欲)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우민(愚民) 정치는 도(道)의 현(玄)과 묘 (妙)를 실현시킨 것이다.

제왕학은 군주가 처세하는 방법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처세술’이라 하고, 군주의 경 우에는 ‘제왕학’이라 한다. 노자의 주된 이야기는 처세술이다. 그리고 이는 제왕학의 측면 이 매우 강하다.

군주가 가진 국가 최고의 권력을 ‘주권’, 혹은 군주권이라 한다. 이것이 결국은 국가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군주권이 분할되어 나간 것이 국가의 관청이나 기구가 된다. 관청과 관리는 군주권의 일부를 받은 것이다. 반면 최고 권력으로서 군주권은 분할되지 않은 것, 가공되지 않는 것(樸, 통나무), 혼돈 상태의 것이다. 그것은 통나무처럼 원재료이다. 이 재 료에서 국가의 모든 조직과 기구가 만들어진다. 모든 것을 만드는 원재료는 전혀 마름질 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크게 마름질된 것은 쪼개지지 않은 것 이다.”(大制不割) 라고 했고 “통나무가 흩어져서 그릇이 된다.”(樸散爲器) 라고 했다.

노자가 말하는 ‘抱一’이란 ‘하나로 껴안음’이다. 여기서 ‘하나’라는 말은 둘을 함축한다.

둘이기 때문에 하나로 껴안는 것이다. 둘은 Α와 ~Α처럼 모순 대립되는 두 측면이다. 따 라서 노자는 Α와 ~Α의 어느 하나만 보면 안 된다고 한다. 반드시 둘 다를 보고, 전체를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로 껴안음’이다. 제왕학의 핵심이다.

노자는 숨겨 놓은 지혜를 화광동진(和光同塵), 습명(襲明). 현동(玄同) 사상으로 설명한 다. 이것은 권력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고,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여성적인 것을 상징한 다. 권력을 쓰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는 수가 많다.

襲明, 玄同, 和光同塵은 선악이 입장이 아니다. 선악 (윤리 도덕)에 따르면, 버릴 사람, 구할 사람이 구분된다. 노자의 襲明 玄同은 모든 사람을 다 구출하는 것이다. 나를 찬성

Dalam dokumen 노자의 사회 정치사상에 대한 연구 (Halaman 1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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