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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노자 에 대한 시각 – 양생술과 통치론

모든 사상은 그 시대의 역사와 사회에서 분리될 수 없다.7) 노자의 정치 사상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노자의 정치사상의 특성을 파악하자면 그가 살았던 시 대와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노자가 살던 시대는 주나라의 봉건 질서가 무너지 고 정복 전쟁이 일반화되었다. 전국시대의 혼란과 절망에 신음하던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 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주나라 봉건제는 천자의 절대적 지배 아래 제후국들이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평화를 유지하였다. 전국 시대에는 이런 ‘천하관(天下觀)’이 무너져 지배 체제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이 등장하였다. 인간 사회의 절대적 지배자였던 하늘(天)의 보 편성과 능력이 의심받게 되면서 ‘천명관(天命觀)’이 무너지고, 하늘의 존재 가치나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다양한 인문주의적 논의들이 등장하게 된다. 기존의 피지배 계층에서 부와 권력을 형성할 수 있게 되자,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던 지배와 피지배 계층 사이에 동요가 생겨나면서 그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를 놓고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자는 혼란한 이유를 한 가지 체계로 통일하려는 인위적 문화 체계나 통치 방식으로 보았다.

노자는 인간의 언어, 개념, 인식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서로 대립되는 것들의 관계에 주 목한다. 특히 강함, 단단함, 높음, 그리고 채움에 대비하여 약함, 부드러움, 낮음, 비움, 그 리고 겸손함을 강조한다. 억지로 그리고 작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함을 반대하고 명예와 이 익에 대한 추구 그리고 지나친 욕망 등을 비판하고,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하여 일이 자발적 또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게끔 함을 주장한다. 통치자의 욕심으로 인하여 국가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결국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피해가 되니, 통치자는 헛된 마음 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명령과 법률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맞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오래 사는 것이다.

이렇게 통치자와 관련된 구절이나 유무(有無)에 대한 구절들에 주목하여 철학적으로 해석 하는 학자들은 왕필이다. '오래 사는 것'(長生不死)에 주목하여 양생론적 종교적으로 보는 쪽이 하상공과 도교의 입장이다. 노자의 정치 철학은 소국과민(小國寡民)이다. “나라는 작 게 하고, 백성은 적게 하라.” 노자는 원시 공동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여긴다.

노자의 사상은 유가나 법가와는 확연히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치자가 지향해야 할 바를 논한다는 점에서 같다. 노자 사상의 도교적, 양생론적 측면을 주목하는 입장에서는 노자 사상의 이러한 통치 규범적 측면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노자와 장자를 다 양생론으로 본다. 그래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도가’에 묶이게 되었다. 하지만, 도덕 경 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장자 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 등을 종합하여 노자의 상대성, 자연, 부드러움 등에 대한 태도가 결국 "부드러운" 형태의 통치술을 논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라고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특히 한비자의 「해노(解老)」 부분이나, 황로학파 등은 아예 노자가 유가, 법가, 묵가 등보다도 더 섬세한 고도의 통치술을 이야기한다고 보았다.

7)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소나무, 2001. p 9~11 참조

이 때문에 후대의 왕필본에서는 이게 권모술수에 대한 서술인지, 자연적 원리에 대한 서 술인지 애매하게 읽히는 부분들이 나온다. 실제로 이렇게 애매한 몇몇 부분들은 죽간본에 는 없다. 대표적으로 36장이다. 다만 죽간본에 있는 부분들만 놓고 봐도 유가와는 대비되 는 통치 기술서로 읽을 여지가 없는 게 아니다.

이런 면을 보면, 왜 한비자가 노자 에 주석을 달았고, 병법이나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노자에서 영감을 얻거나 비유를 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전한 초기, 특 히 한 문제 같은 경우 ‘無爲之治’의 도라고 해서 노장 사상의 이념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그의 부인인 두태후에 의해 한 무제 초기까지도 통치 이념으로 남았다. 대놓고 억지로 의 도를 내비치면, 상대가 반발할 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몇 수 앞을 읽 어 행동하는 통치자나 전략가야말로 도에 맞추어 사는 사람일 수 있다. 병법서에서도 거 국적인 외교술을 다루고, 격투기나 무기술에서도 음양수라고 해서, 실로 허를 치고, 허로 실을 치고, 허를 드러내는 것과 같이 기묘한 원리들을 다루는데, 노자를 이러한 맥락으로 읽을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점이 노자의 묘미이다. 당연하지만 노자 식의 사회를 이상 사 회로 긍정적으로 평하는 학자들은 노자를 "권모술수를 담은 책"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한 다. 둘 다 노자를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서 읽은 관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중심에 제자백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혼란과 사상적 격변의 시대는 역설적이게도 중국 고대 사상사를 가장 빛나게 만든 밑바탕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노자 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5.2, 도에 의한 정치 - 무위(無爲)의 정치

1) 도에 의한 정치 - 無爲 自然 ; 무통치의 통치

⑴ ‘無爲’는 ‘함이 없다’는 뜻이고, ‘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일반적으로 노자는 ‘無 爲 自然’의 통치를 주장했다고 한다. 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하게 두는 것이 통치의 요점 이다.

‘道’는 ‘길’을 뜻한다. 길은 바깥에 있는 것이고, 사람이 따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道’는 객관적 필연성, 혹은 자연의 필연적 추세를 뜻한다. 객관 세계에는 길, 즉 필연성이 있다.

이 필연성을 다른 말로는 ‘自然’이라 한다. ‘스스로 그러함’이다. 스스로 그러함이란 객관 그 자체이고, 주관적으로 즉 내가 원하는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아 무리 원하거 싫어한다고 해서 그 필연성-추세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객관적 필연 성을 따라야 한다.

노자는 주관을 비우고, 객관을 따르라고 한다. 즉 ‘허심(虛心)’을 해서, 도를 따른다. 이 런 점에서 볼 때 도(道)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은 같은 것의 두 측면이다. 객관의 측면에서 볼 때는 도(道)를 따르는 것이다. 주관의 측면에서 볼 때는 주관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무위(無爲)’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관을 비우고 객관을 따라야 한다.

주관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마음 속에 담긴 감정 욕망이다. 이것은 비워야 할 대상이다. 허심(虛心)해야 한다. 둘째는, 그 감정 욕망에서 나온 행위이다. 이 행위는 해서 는 안 된다. 이런 행위가 없는 것을 ‘무위(無爲)’이다. 욕망 감정을 비우고, 그것에 따른

행위를 없애고, 도(道 길)를,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을 따라야 한다.

⑵ 노자는 세상을 ‘도와 현상’, 둘로 나누어 본다. 1장에 나오는 무명(無名)-유명(有名), 무욕(無欲)-유욕(有欲)의 대립이 그것이다. 도는 무명(無名)이며 무욕(無欲)이다. 이름이 없 고, 욕망이 없다. 반면 현상 세계는 유명이며 유욕이다. 이름이 붙어 있고, 욕망의 대상이 다. 따라서 도(道)는 자연의 법칙이며, 객관 필연성이다. 그것을 ‘스스로 그러함(自然)’이라 한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無爲) 꼭 그렇게 된다. 도(道) - 무위(無爲) - 자연(自然), 이렇 게 연결되는 사상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노자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본다.

‘無爲 自然’이란 내가 주관적 욕망과 의지를 가지고 행위함이 없이, 도라는 객관적 추세 (스스로 그러함, 自然)를 따르라. - 이것이 정치의 요점 중 하나이다.

⑶ 이 사상을 한비자는 받아들인다. “통치의 大體는 道이다.”( 한비자 「대체(大體)」) 군 주는 道=길=객관 필연성을 따르라. 그러면 힘들이지 않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無爲이면 無不爲이다.’ “함이 없어 도, 하지 않음이 없다.” 즉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왜 그런가? 도를 따르기 때문이다. 객관 필연성이 그 일을 이루어 주기 때문이다. 군주가 통치할 때 무위(無爲)하 면, 국가 전체에서 무불위(無不爲) 한다.

한비자는 군주가 도(객관 필연성)을 따르라고 했다. 그러나 진시황은 자신을 ‘皇帝’라고 한다. 즉 ‘신-하느님’이라 한다. 신은 객관 필연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객관 필연성을 만드는 존재이다. 신은 그렇게 만든다. 그러나 진시황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 다. 황제 놀음을 한 끝에 나라가 처참하게 망한다.

⑷ 도(道)를 따름은 무위(無爲)이다. 여기에서 무위(無爲)는 주관적인 실천을 배제하는 것이다. 노자는 주관을 줄이고, 객관을 따르라고 한다. 객관 우위의 사고 방식이다. 이런 생각은 경험론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2) 객관 필연성

‘道’는 길이다. 길은 밖에 있는 것이고, 사람이 따라가 걸어야 한다. 그래서 객관적 필 연성, 필연적 추세이다. 이것을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의 길은

다투지 않아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며, 느리고 굼떠도, 잘 꾀한다.

하늘의 그물은 (코가) 넓고 넓어서, 엉성하기는 해도 놓치는 법이 없다.

天地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網恢恢, 疏而不失. 『노자』 73장

여기에서 천도(天道)는 하늘의 길, 하늘의 방법이다. 자연이 가는 길이다. 자연을 배우 자는 것은, 노자의 기본적 신념 가운데 하나이다. ‘하늘의 길’은 ‘도(道)’를 따른다. 따라서 다툼, 말함, 부름 등의 주관적 실천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응하고, 온다. 상대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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