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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북한 핵정책 현황

가. 미국의 북한 핵정책

(1) 부시 행정부의 북한 핵정책

2001년 부시 행정부 집권 직후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 나아 가 ‘잠재적 적대국’으로까지 규정하고 중국이 미국의 지위에 도전하 는 지역강대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동아시아정책의 최우 선 순위를 부여했다. 미국 EP3 정찰기가 중국 하이난도 해군기지에 대한 정찰비행을 빈번하게 진행하던 도중 중국 공군 전투기와 충돌하 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부시 대통령은 모든 수단을 다해 대만의 방위 를 위해 지원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하여 천수이볜 정부의 대만독립 노선을 부추김으로써 중국을 자극하였다. 미국의 대중정책변화로 인

하여 미·중 간 군사대화도 중단되었다. 부시 집권 1기 내내 체니 부통

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중국을 ‘잠재 적대국’으로 간주하였던 네 오콘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도하였고, 파월 국무장관 등 중국과의 협력을 상대적으로 중시하였던 인사들의 발언권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클린턴집권 시기에 비해 미·중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2차 북한 핵위기가 발생했다.94 미국 본토가 역사상 최초로 적대세력에게 공격을 받은 9·11테러 이후 미국은 반테러전 수행을 절박한 외교안보

94_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 중후반기 정상의 교환방문을 실현하고 ‘건설적 협력동반 자관계’ 구축에 합의함으로써 미·중관계가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이러한 분 위기 속에서 1997년부터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문제 논의를 위한 4자 회담이 개최되었다. 클린턴집권 말기에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 조명 록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의 방미가 성사되어 북한 미사일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그리고 북·미관계 정상화문제에 관한 협의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다.

정책 목표로 설정하게 됨으로써 중국부상 견제를 추구하였던 부시집 권 초기의 대중정책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부시 정부는 반 테러전 수행과정에서 중국의 협력을 구하면서도 동아시아에서 일본, 한국, 호주 등 동맹국뿐 아니라 인도와 베트남과의 안보관계를 강화 하는 등 반중국 동맹전선을 강화하려는 전략의도를 포기하지는 않았 다. 미국 내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였던 공화당 행정부는 민주 당 집권시기의 대중 및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전면적인 정책전환을 시도하였던 것이다.95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통해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미국은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양자대화를 통해 합의한 제네바합의를 불신하고,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과 직접 양자대화를 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면서 대북 강경정 책을 고수하였다.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비난하면서 중유지원을 중단하고, IAEA와 유엔 안보리를 통해 대북 제재조치에 나섰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불량배국가’인 북한의 핵물질과 생화학무기 등 대 량살상무기가 중동지역 국가와 테러리스트에게 유출될 수 있다고 우 려하여 북한의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원칙 을 견지하였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에 맞서 북한은 핵동결조치 해제를 선언하 고, IAEA에 영변원자로 폐연료봉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를 요청하 고, 2003년 1월에는 NPT 탈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플루토늄 추출작 업을 재개함으로써 핵위기를 고조시키는 행동을 보였다. 북한의 이

95_일부 전문가들은 부시 정부의 대외정책을 클린턴 정부의 대외정책을 전면 부정하 는 의미의 ‘ABC’(Anything But Clinton)정책으로 평가하였다.

러한 위기고조조치는 부시 행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정책 목 표를 정면으로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에게 “완전하 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를 주장하고 대북 제재조치를 발동하였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이 바라는 경제보상과 안전보장을 담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 이다.

그러나 중국의 중재로 2003년부터 2008년 12월까지 3자회담과 6차 에 걸친 북핵 6자회담이 개최되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 그리고

10.3합의가 도출되는 성과가 있었다. 중요한 문제는 6자회담 내에서

북·미 양자접촉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미국이 주장하였던 다자회담 방식에 의해 북한 핵문제가 다뤄졌다.

제네바 합의처럼 북한이 양자 간 합의를 쉽게 파기할 수 있다는 우려 와 핵문제 합의에 대한 보상을 미국 혼자 부담하지 않겠다는 판단 아래, 미국은 다자회담 방식을 고수하였다. 미국이 6자회담 방식을 선호했던 이유는 국제연대를 통한 북한 압박구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북한 비핵화 유도의 대가를 다른 참가국에게 분담시키려는 데에 있었 다. 6자회담 방식은 북핵 해결과정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시켜주 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에서, 미국은 중국의 협조 아래 북핵 해결을 추진해 왔다고 평가된다. 북한 핵문제가 동아시아 지역 강대국 부상 견제라는 부시 집권초기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 온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부시 집권기간 내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진행되어 왔지만, 6자회담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결과 로 나타났다. 6자회담은 역설적이게도 북한에게 핵무장의 시간을 벌 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후 국제사회는 미국과 일본 주도로 유엔 안보리 1714호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와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대북제재 결의안 통과가 가능했다. 부시 행정부의 전 세계적 차원의 반확산정책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 지 못한 근본적 이유는 북한의 안보불안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근원적으로 해소해 줄 수 없다는 데에 있지만, 북한 핵문제와 북한문 제에 대한 미·중 간 불신의 간격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중국이 북한 핵문제의 완전한 해 결보다는 북한의 안정을 우선시하여 충분한 역할행사를 주저하고 있 는 것으로 판단하였고, 중국은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이용하여 북·중 관계를 이간시키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우월권을 지속시키 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우려하였다.

(2) 오바마 행정부의 북한 핵정책

‘변화’를 경선구호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부시 행정 부시기 일방주의 외교로 인해 실추된 미국의 국제위상을 만회하기 위해 대화를 바탕으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대외정책을 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경선과정에서 그는 북한의 김정일 같은 독재자와도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수차에 걸쳐 피력하였으며, 집 권 이후에는 실제로 이러한 외교정책 방침을 구현하였다. 이슬람세계 와의 관계개선에 나서고, 런던 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에 핵무기 감축을 제안하고, 이란과 쿠바와도 관계개선 의지를 밝혔다. 미주정 상회의에서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도 악수하였다. 오바마의 이 러한 행보는 부시시기의 외교방식과는 분명히 차별화된 것이다. 군사 력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에 의해 미국의 이익을 구현하는 형태

의 외교정책을 자제하고,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적절하게 배합하 는 ‘스마트외교’ 기치를 내걸고 있다. 적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방식 보다는 경제지원 등 소프트파워를 동원하여 상대국의 호감을 확보하 는 데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 단독으로 모든 국제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동맹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긴 밀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96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초기 경제위기극복과 아프간과 이라 크문제 해결을 우선 정책목표로 설정하였고, 북한 핵문제는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서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는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이라는 비전 아래 NPT 체제를 강화하고 러시

아와 핵무기 감축계획에 합의 하는 등 핵 확산방지 노력을 보이면서 도 북한에 대해서는 ‘선의의 무시정책’(benign neglect)을 취해왔다.

대북정책의 우선목표를 핵문제 해결에 두고 북핵 불용 원칙하에 ‘완 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주장을 고수하였지만, 북 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않았다. 미국 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노력을 취하지 않 은 데에는 김정일 정권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과 북한 의 핵능력이 아직은 미국 본토를 위협할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는 평가가 작용했다.97

96_이상현, “오바마 행정부 외교안보와 대북정책 전망,” 󰡔국방정책연구󰡕, 제25권 2호 여름호 (한국국방연구원, 2009), pp. 31~59; Joseph S. Nye and Richard Armitage, CSIS Commission on Smart Power: A Smarter, More Secure America (Washington D.C.: Center for Stru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2007).

97_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북한과 양자대화에 임하는 입장을 확정한 가운데

9월 20일 CNN TV 인터뷰에서 김정일이 건재하고 통치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Obama says North leader in good health,” <http://joong angdaily.joins.com/article/view.asp?aid=2910377> (검색일: 2009.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