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발전이 인권에 미치는 상관관계에 대한 이론적 탐구
(1) 발전이 인권에 미치는 상관관계에 대한 이론적 탐구국가는 인권을 보장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국가는 물리적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한 집단으 로, 군대와 경찰을 조직하여 시민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가 국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 하기도 한다.286) 따라서 국가 내부의 인권은 국가 발전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에 발전 과정에 따른 인권 변화를 연구한 이론 들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이 인권 향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와 발전 과정 중 어떠한 상황에서 인권이 위협받는지를 살펴본다.
경제발전과 인권신장 간의 인과관계를 연구한 네일 미셸(Neil Mitchell)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발전은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져 인권 상황의 개선에 도움을 준다. 반대로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한 빈곤한 국가에서는 국가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권을 억압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빈곤과 인권 탄압 간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287) 다시 말해, 가 난한 나라일수록 국가가 인권을 침해할 개연성이 크며, 경제적으로 성숙한 국가일수록 통치력 또한 안정적이므로 인권에 대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진다.
이러한 저발전과 인권탄압 간의 인과관계는 하버드 대학이 발표 하는 인권 보호지수(Human Rights Protection Score)에서도288)
286) Neil J. Mitchell and James M. McCormick, “Economic and Political Explanations of Human Rights Violations,” World Politics, vol. 40, no. 4 (1988), pp. 476~498.
287) Ibid.
288) 정부가 인간 개개인의 인권을 얼마나 보호하는지를 나타내며 최소 –3.8부터 최대 +5.4까지 점수로 산정한다.
확인할 수 있다. 인권보호지수는 국가가 자국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 하는 수준을 최저 –3.8점부터 최고 +5.4점으로 계량화하여 순위를 발표한다. 아래 <표 Ⅲ-3>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 1인 당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에서는 인권보호지수가 높은 반면 경제적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는 인권보호지수가 낮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 득과 인권보호지수 간의 뚜렷한 비례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아래 표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노르웨이는 인권보호지수도 가 장 높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두 번째로 높은 싱가포르의 인권보호지 수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러한 국가별 편차는 경제성장의 결과로써 인권의 발전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표 Ⅲ-3> 2017년 1인당 국민소득과 인권보호지수 간 상관관계
국가 1인당 국민소득(달러) 인권보호지수(HRPS)
노르웨이 75,496 4
일본 38,331 2.37
싱가포르 60,297 1.7
대만 24,390 2.7
사우디아라비아 20,803 -1
중국 8,759 -1.3
베트남 2,365 -0.37
카자흐스탄 9,247 -0.16
세네갈 1,367 0.8
북한289) (한국은행 통계) 1,295 -2.44
출처: The World Bank, “GDP Per Capita,” World Bank national accounts data, and OECD national accounts data files, 2019, <https://data.worldbank.org> (검색일: 2020.6.30.)과 Christopher J. Fariss, “Latent Human Rights Protection Scores Version 3,” Harvard Dataverse, 2019, <https://dataverse.harvard.edu> (검색일: 2020.6.30.)을 바탕으로 저자 작성.
289) 한국은행, “북한GDP관련통계,” <https://www.bok.or.kr/portal/main/contents.
do?menuNo=200091> (검색일: 2020.7.20.).
윌리엄 이스털리(William Easterly)는 경제발전과 대량학살 (genocide)과 같은 인권탄압 간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이스털리 의 연구 결과, 경제발전은 곧 노동생산량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경제 가 성장하면 생명의 가치 또한 증진되기 때문에 인권이 향상된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가져오는 기술 및 제도적 발전이 인권탄압을 위 한 비용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290) 무자비한 정치 지도자의 경우 민 주적인 절차를 앞세워 소수의 인권을 탄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러므로 경제성장을 거쳐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역으 로 인권이 억압되는 과도기적 단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스 털리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 도입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권이 위협 받는 과도기적 단계를 극복한다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탄압이 적어지며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는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게 된다. 다음의 <그림 Ⅲ-4>가 보여주는 것 처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1인당 국민 소 득의 증가와 인권탄압 발생 확률 간에는 역 U자의 상관관계가 도출 된다.291)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이 인권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 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인권을 위협하는 것이다. 특히 이 스털리는 연구를 통해 인권탄압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분기점이 1인 당 국민소득이 1,300달러가 되는 지점이라고 밝혔다. 이는 2020년 화폐가치로 환산하였을 때 1인당 국민소득이 1,697달러에 달하는 지점이다.292) 2020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1,216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북한은 가까운 미래에 경제발전 과정에서 가장 인권 이 위협 받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290) William Easterly, Roberta Gatti and Sergio Kurlat, “Development, Democracy, and Mass Killings,” Journal of Economic growth, no. 11 (2006), pp. 129~156.
291) Ibid.
292)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화폐가치계산,” <http://kostat.go.kr/incomeNcpi/cpi/
cpi_ep/2/index.action?bmode=pay> (검색일: 2020.7.20.).
<그림 Ⅲ-4> 1인당 소득과 인권 탄압 발생 확률 관계 도식화
인권 탄압 발 생 확률
1인당 국민소득 1,697달러
출처: 저자 작성.
반면,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경제발전이 곧 인권 신장을 의미한다는 이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헌팅턴의 연구 결 과에 따르면, 매우 가난한 국가의 국민들은 정치 문제에 저항할 만 큼의 경제적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최빈국에서는 인권에 대한 폭력 이 빈번하지 않다. 또 싱가포르에서는 경제가 매우 빠르게 성장하였 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은 경제성장 속도에 비해 더디게 발전하였다.293) 이런 점에서 헌팅턴은 경제성장을 통한 민주주의 및 인권 신장은 사회문화, 정치 엘리트의 지향 가치, 대외적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헌팅턴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발전은 다 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만큼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며 동시에 전통적 통치 방식은 도전받는다. 이후 새로 운 시민사회가 출현하면서 기존의 통치 방식과 긴장관계를 형성한 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의 제도 및 문화가 성숙하지 못할 경우 인
293) Samuel P. Huntington, “Will More Countries Become Democratic?” Political Science Quarterly, vol. 99, no. 2 (1984), pp. 193~218.
권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인권에 대한 폭력은 국가가 ‘현대화(modernization)’ 과정에 있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며,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경제가 성장할수록 인권 수준은 오 히려 악화된다. 특히 민주주의는 개인주의와 매우 강한 연관성이 있 으므로 개인주의 문화를 정착하지 못한 국가에서는 경제성장이 권 위적인 정부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헌팅턴의 이론은 북한이 경제 성장에 성공하더라도 사회문화적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 이상 민주 주의가 쉽게 정착되지 않을 것이라는 함의를 제공한다.
경제성장과 인권 간의 상관관계는 경제발전에 성공한 이후에도 유의미하다. 콘웨이 헨더슨(Conway W. Henderson)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가가 빠른 경제성장에 성공하더라도 인권은 더디게 발전 한다. 그 원인은 개발도상국의 엘리트 정치와 연관이 있다. 대부분 의 개발도상국은 사회경제적 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정치 엘리 트들이 주도하는 불균형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빠르지 만 고르지 못한 경제발전의 경우, 경제부양에 성공하더라도 엘리트 들은 경제적 성장에 뒤이은 정치적 개혁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권 신장을 억제한다.294) 정치 엘리트들은 인플 레이션 비율을 의도적으로 높이는 방식 등으로 국민들의 실질적 구 매력을 낮추고 생계비를 높인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대 중들의 삶의 질이 악화되고 인권은 향상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우 중상층의 비율이 증가하고 나서야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수준이 완 화되고 인권도 점진적으로 향상하게 된다.
294) Conway W. Henderson, “Conditions Affecting the Use of Political Repression,”
The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vol. 35, no. 1 (1991), pp. 120~124.
<표 Ⅲ-4> 발전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론 정리
이론가 발전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
네일 미셸 (Neil Mitchell)
경제발전은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져 인권 상황을 개선함
경제수준이 높을수록 인권 보호 수준도 높음 윌리엄 이스털리
(William Easterly)
경제발전은 인권향상을 촉진함
그러나 인권탄압 또한 부추길 수 있으며 역 U자의 상관 관계 존재
사무엘 헌팅턴 (Samuel P.
Huntington)
경제발전이 곧 인권 향상을 의미하지 않음
인권은 사회문화, 엘리트의 지향 가치, 대외적 영향에 의해 발전함
콘웨이 헨더슨 (Conway W.
Henderson)
경제발전에 성공하더라도 인권은 더디게 발전함
정치 엘리트에 의한 불균형한 경제성장은 인권 발전을 더디게 함
출처: 저자 작성.
정리하자면, 발전은 인권과 불가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경제 성장은 그 자체로 인간의 가치를 향상시켜 인권 향상을 촉진한다.
그러나 앞서 발전과 인권 간의 관계를 분석한 이론가들의 이론처럼, 경제발전이 반드시 인권 향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특정 요건이 충족되는 변환점까지는 지속적으로 인권 탄압의 발생 가능성이 커지는 ‘중진국의 함정’과 같은 과도기적 단 계가 존재한다. 다음의 <그림 Ⅲ-5>가 보여주는 것처럼, 변환점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엘리트 이기주의를 넘어서 균형적 발전의 형태여야 하며 사회문화의 성숙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도기 단계를 극복한다면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면서 인권 상황 은 안정화 될 수 있다. 덧붙여, 속도가 빠르더라도 지나치게 불균형 한 경제성장은 인권 향상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경제 성장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발전과 인권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북한 발전에도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