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중심으로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성문화 작업과 함께 인권 메커니즘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오고 있다. 인권을 보호
‧증진하기 위한 성문화 노력의 결과 유엔에서 성안된 핵심 문건은
‘국제인권장전(International Bill of Human Rights)’이라고 통칭 되는 세계인권선언,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자유 권규약),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사회권 규약)이다. 또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서는 2개의 규 약을 포함하여 9개 조약을 핵심 국제인권조약(core international human rights treaties)으로 분류한다. 이 9개 핵심 국제인권조약 은 하나의 소위원회를 포함하여 각각의 조약을 관장하는 조약기구 (treaty bodies)를 두고 있다. 9개 핵심인권조약에서 보듯이 인권은 세부적으로 다양한 범주를 포괄한다.
냉전 시기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을 성안하는 과정에서 자유주 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합의를 이루지 못해 세계인권선언은 자 유권규약과 사회권규약으로 분리 제정되었다. 그렇지만 이후 국제 사회에서는 자유권과 사회권을 통합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본 절에서는 자유권과 사회권에 대한 통합의 관점에서 인권의 범주를 설정하고자 한다.
가. 인권이 평화에 미치는 상관관계에 대한 국제 논의
인권이 평화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논하는 경우 평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 개념 정의가 중요하다. 무력충돌을 포함한 갈등 상황, 전쟁 이 없는 소극적 평화, 구조적 요소가 해소된 적극적 평화 등 평화의 개념에 따라 인권과 평화의 상관관계의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권이 평화에 미치는 영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유엔 차원에 서 지속적인 논의가 전개되어 왔다. 특히 권리의 관점에서 평화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논의의 핵심이었다. 유엔 인권이사회(전신 인권위원회), 유엔 총회 논의를 통하여 국제사회는 평화를 인권에 통합하려는 성문화 노력을 지속하여 왔다. 인권과 평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유엔 차원의 논의는 2016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평화권 선언」에서 집대성되었다.199)
(1) 인권과 평화의 통합: 권리로서의 평화
세계인권선언은 인권침해가 세계평화를 위협한다는 신념에 따라 만들어졌다.200) 이러한 신념에 따라 인권이 평화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평화를 인권에 어떻게 통합시킬 수 있을 것인지가 유엔 차 원의 핵심 논쟁이었다. 그동안 개인을 주체로 하는 제1세대 권리인 자유권, 제2세대 권리인 사회권 중심으로 인권을 바라보는 것이 국 제사회의 인권에 대한 주류적 관점이었다. 그런데 제3세대 권리로 서 집단, 연대의 권리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평화를 연대의 권리 차원에서 성문화하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특히 인권과 평화를 통합하려는 국제사회의 논의는 권리로서 평화를 성문화하는 실천적 노력으로 전개되었다.
유엔 차원에서 평화를 권리로 성문화하려는 실천적 노력은 ‘선언’
형태의 결의 채택으로 표출되었다. 1978년 유엔 총회는 ‘평화적 생존
199) UN General Assembly, “Declaration on the Right to Peace,” UN Doc. A/RES/71/
189 (19 December 2016). 이하 2016년 평화권선언의 내용은 동 문서를 참조하였다.
1970~1990년대 유엔 총회에서 논의되었던 평화권 논의는 2000년대 인권위원회, 인권이사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연속 ‘평화권 증진(Promotion of the Right to Peace)’ 결의를 채택하였다.
200) Charity Butcher and Maia Carter Hallward, “Bridging the Gap between Human Rights and Peace: An Analysis of NGOs and the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International Studies Perspectives, vol. 18, issue. 1 (2017), p. 82.
을 위한 사회적 준비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Preparation of Societies for Life in Peace)’을 채택하였다. 동 선언에서 “모든 국민(nation)과 모든 사람(people)들은 [...] 평화적 생존에 대한 고 유의 권리(inherent right to life in peace)를 가진다”(제1조)고 규 정하였다. 평화를 인권으로 통합하려는 성문화 노력은 ‘평화적 생존의 권리’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1984년 11월 12일 유엔 총회
‘인민의 평화권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 of Peoples to Peace)’ 채택으로 이어졌다. 동 선언에서 최초로 ‘평화권’이 명시 되었으며 평화권에 대해 ‘성스러운 권리(sacred right to peace)’로 규정(제1조)하였다.201)
그리고 2016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평화권선언’에서는 ‘평화롭 게 살(life in peace)’, ‘인민’의 평화 등의 수식어가 빠지고 순수하게
‘평화권(right to peace)’으로 규정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평화를 향유할 권리(right to enjoy peace, 제1조)’로 인권과 평화의 통합이 명시되었다.202)
(2) 평화 및 갈등 예방 기반으로서의 인권
인권이 평화에 미치는 관계에 대해 선순환적 관점의 인식이 정립 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에서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자 유, 정의, 평화의 ‘기반(foundation)’이 된다는 점을 천명하였다. 세
201) UN General Assembly, “Declaration on the Preparation of Societies for Life in Peace,” UN Doc. A/RES/33/73 (15 December 1978), p. 56; UN General Assembly, “Declaration on the Right of People to Peace,” UN Doc. A/RES/
39/11 (12 November 1984), p. 22.
202) 권리의 주체는 1986년 ‘인민(people)’에서 2016년 ‘모든 사람(everyone)’으로 변하 였다. 2011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의 제목은 ‘인민의 평화권 증진(Promotion of the Right of Peoples to Peace, A/HRC/RES/17/16)’이었다. 2012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결의부터 ‘평화권의 증진(Promotion of the Right to Peace, A/HRC/RES/20/15)’으로 권리 주체로서의 인민의 명기가 제외되기 시작하 였다. <https://www.undocs.org> (검색일: 2020.10.24.).
계인권선언에서 천명한 인권이 평화에 미치는 선순환적 영향에 대 한 인식은 1968년 4월 22일 열린 제1회 세계인권대회, 유엔 인권위 원회, 인권이사회 논의를 거쳐 2016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평화권 선언에서 회원국들의 총의로 명시되었다. 동 선언에서 인권분야에 서의 국제협력이 평화와 안정의 국제환경을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 는 선순환 관계를 강조하였다.203) 이와 같이 세계인권선언에서부터 2016년 평화권선언에 이르기까지 인권의 예방, 보호, 증진이 평화 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서 널리 수용되고 있다. 인권은 개인 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 평화공존을 증진시키며 이를 통해 사회를 더욱 복원력 있게 만들게 된다.204)
경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 Peace: IEP)의 연구 에 따르면 인권과 ‘평화스러움(peacefulness)’ 혹은 적극적 평화 사이에 강한 연계성이 존재한다. IEP의 ‘세계평화지수 2017(2017 Global Peace Index)’에 따르면 가장 평화로운 국가는 가장 견고한 인권기록을 가진 국가들이다. 불만(grievance)을 예방하고 대처하 기 위하여 인권과 법치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국가는 훨씬 더 평화롭 고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한다. 반면, 인권침해가 방치된다면 폭력적 갈등의 위험은 증가하게 된다.205)
203) 동일한 내용이 이미 2003년 4월 및 2005년 4월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 2008년 인권 이사회 결의에 포함되어 있다.
204)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IPI), “Human Rights and Sustaining Peace,”
December (2017), p. 2;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IPI), “Applying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the Links between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September (2017), p. 4.
205) Institute for Economics & Peace, “2017 Global Peace Index,” p. 81, p. 84,
<https://www.economicsandpeace.org/reports> (검색일: 2020.9.25.). 동 지수 보고서에서 IEP는 적극적 평화의 구성 요소를 타인의 권리 수용,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낮은 부패 수준 등 8가지로 설정하여 적극적 평화와의 관계를 산정하고 있다.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IPI), “Applying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the Links between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p. 2, p. 4;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IPI), “Human Rights and Sustaining Peace,” p. 1, p. 7.
인권과 평화의 상관관계와 관련하여 국제사회는 평화의 ‘지속가능’ 에 주목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인권이 상이한 평화구 축의 국면에서 국제적으로 합의된 규범적 틀과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갈등 주기(conflict cycle)’의 모든 단계에서 인권이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평화, 갈등예방을 지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206)
갈등의 ‘예방(prevention)’ 차원에서 인권이 평화의 유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지속가능한 평화’
를 유지하기 위한 갈등예방의 수단으로서의 인권의 역할에 주목한 다. 특히 인권을 조기경보 모니터링과 연결시켜 갈등 예방에 기여한 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권 모니터링과 분석은 방치된다면 폭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 ‘불만(grievance)’에 대한 조기 경보를 제공할 수 있 다. 광범위하게 인권이 유린될 경우 장래 불안정의 지표나 폭력적 갈등의 즉각적인 위험의 징조가 될 수 있다. 국가가 아직 갈등 상황 에 있지 않더라도 광범위한 인권 유린은 잠재적 장래 불안정을 예견 할 수 있는 지표이다. 상황이 악화되고 인권침해의 증가가 가시화되 면 이것이 폭력적 갈등의 즉각적인 위험의 강력한 지표가 될 수 있 다. 이러한 예방의 관점에서 인권과 평화의 상관관계에 접근할 경우 조기 경보 모니터링에 입각한 조기 개입은 갈등 위험을 완화시키고 갈등의 위험이 증폭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또한 인권은 갈등, 위 험, 차별, 불평등의 근본요인을 판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가치 있는 분석 수단을 제공하며, 장기적인 구조적 예방과 갈등 상황에서 보다 즉각적인 예방행동을 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207)
206)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IPI), “Applying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the Links between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p. 4.
207)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IPI), “Human Rights and Sustaining Peace,”
p. 2;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IPI), “Applying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the Links between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p. 4.
위에서 보듯이 인권의 모니터링은 사회불안정에 대한 조기 경보 를 제공하고 사회불안정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갈등 ‘예방’의 필수 요소이다. 인권 모니터링→ 불안 정에 대한 조기경보와 예방→ 적극적 평화 구현의 선순환 관계가 형 성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평등, 참여, 책무성 등 인권의 주요 원칙들은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개 입하여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208)
<그림 Ⅲ-1> 예방 피라미드
The Prevention Pyramid
Acute prevention
& recovery Peacekeeping Human rights crisis and violent conflict Tertiary Prevention Crisis prevention/peacemaking Serious and widespread violations of human rights; institutions failing Secondary Prevention
Sustaining Peace
Some human rights violations which institutions with support can address but which if left unaddressed could lead to crisis
Primary Prevention Sustainable Development Widespread enjoyment of human rights.
Strong institutions to address grievances Human rights in
peace operations
Human rights in conflict prevention
HRB development combined with human rights-based peacebuilding projects
HRB development and long-term structural prevention
Credit: OHCHR, 2017
출처: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IPI), “Applying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the Links between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p. 5.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인권과 갈등 예방, 발전 사이의 피라미드를 아래와 같이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급성(acute) 예방과 회복: 평화유지 활동에서의 인권 ↔ 평 화유지 활동, 인권 위기와 폭력적 갈등
208)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IPI), “Applying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the Links between Sustaining Peace and Human Rights,” p.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