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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 의식 변화 추이

북한주민 의식이 변화하는 양상은 다양한 범위와 영역, 즉 시간,

공간, 그리고 구성원의 특성에 따라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 내외부 요인에 따른 북한사회의 변화: 시기적 구분

북한사회의 변화는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또한 상호 조응하거나 충돌하고 있다. 북한사회의 변화와 그

에 따른 주민의 의식 변화를 시간적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자칫 변화

하는 현실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다만 북한 내외부의 변화 속에서 북한사회를 좀 더 체계적으로 이

해한다는 측면에서 이 책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변화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분석하고자 한다. 북한사회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세 시기, 즉 ① 1990년대 중반 경제위기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 ② 2000년대 초반 국가의 대응이 본격화된 후 2010년대 초반

김정은 체제의 등장까지, 그리고 ③ 2010년대 초반 김정은 체제의

등장 이후 현재까지로 구분할 수 있다.

<표 Ⅱ-1>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 북한사회의 변화

충격기 조정기 전환기

시기 구분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2000년대 초반 ~ 2010년대 초반

2010년대 초반 ~ 현재까지

대내 환경

정치 분야

■김일성 사망과 유일체제의 위기 - 유훈통치

■선군정치를 통한 위기 극복

■김정은 체제의 등장 - 당의 지배 정상화

경제 분야

■계획경제의 붕괴 - 배급제의 붕괴 - 암시장 등 확산

■국가의 개혁조치 - 71경제관리개선

조치

- 종합시장 공식화

■국가와 시장의 공존 - 도시건설 활성화 - 경제집중 노선

대외 환경

■사회주의체제 붕괴 - 국제사회의 원조

수용

- 남북경협사업 추진

■협상과 대결의 반복 - 對중국 의존 확대 - 남북관계의

진전과 중단

■북한 핵개발과 협상 - 대북 경제제재

지속

- 북미남북관계 조정

출처: 필자 작성.

첫 번째로,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정치적, 경제적 위기와 함께 극

심한 사회적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동구 사회주의체제가 붕괴

되고 북한지도체제의 공백(김일성의 사망)이 경제위기와 함께 중첩 되어 나타나며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였으며 이에 따라 북한사

회 역시 기존의 규범과 생활양식을 전면 수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가의 공급능력이 붕괴되면서 사회적 혼란이 극대화되었

다.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기제로 작동하던 의식주의 제공, 무엇보

다도 식량 배급이 중단되면서 위기가 가중되었다. 결국 배급제도의

붕괴는 대량 아사와 탈북으로 이어졌으며 북한주민의 의식을 변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국가의 위기로 말미암아 기존의 전체주의적 정향은 상

당부분 형식화되었고 개인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인식을 갖게 되었다. 암시장의 확장과 종합시장의 등장,

그리고 그에 따른 사적 공간의 확장은 이전에 비사회주의적 요소로

받아들이던 현상들을 생존의 공간 내지 도구로 재인식하게 되는 결 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두 번째로, 2000년대 초반 북한은 경제위기 이후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선군정치로 극복하는 한편 주민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함으

로써 경제위기로 이완된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게 된

다. 김정일 체제는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군대를 앞세우는 선군정

치를 주창함으로써 유일지도체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2000년대 북한의 경제는 국가의 공급체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암

시장 등 비공식적 경제활동이 여전히 주민들의 의식주 생활을 지탱

한 시기였다. 결국 김정일 체제는 국가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부 단

위의 자력갱생을 요구하는 한편 비공식적으로 확산되던 암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국가가 관리하는 종합시장을 각 도시에 설립하게 된

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의 공식적 인

51)은 북한사회의 변화를 수용한 국가의 대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 차관 형

식으로 대북 식량지원이 이뤄지고 남북 간 경제협력사업이 본격적

으로 추진되면서 한국에 대한 북한주민의 의식이 일정 부분 변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 간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고 개성과 금강산

등 경제‧관광특구라는 교류협력의 공간이 창출되며 접촉이 지속적

으로 반복됨에 따라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접촉지대 행위자들의 의

식 변화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2011년 12월 김정일의 사망과 김정은 체제의 등장을

전후한 북한사회의 변화는 1990년대 중반 경제위기의 충격과 2000

년대 사회 변화의 수용이란 성격과 또 다른 양상을 보여 왔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나타난 변화의 양상들, 즉 대외적으로, 북한의 핵 개

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와 남북관계의 악화, 그리고 내부적으로,

시장의 점진적인 안정과 확산, 점차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외부 문화

콘텐츠의 유입 등이 북한주민의 의식에 일정한 변화를 추동하고 있

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북한사회의 변화는 주민의식의 변화가 시장화 등 사회

의 역동성을 추동하는 형태 또한 보이고 있다. 최근 북한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상행위(사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경제적 이익에 대한 북한주민들

의 의식이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추가적으로, 2017년 최고조에 이르렀던 한반도 안보 위기가 2018년 평창올림픽을 정점으로 점차 대화를 통한 비핵화 국면으로 접어들

51)“시장운영에 대한 내각지시,” 북한 내각지시 제24호 (2003.5.5.).

면서 남북관계 복원과 동시에 내부적으로 경제건설을 강조하고 있

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해소하고 ‘경제집중노선’을 천명하였다.52)

이와 같은 내외부의 변화는 향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국제사

회와의 관계 개선, 그리고 이어질 경제개발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대

응에 따라 북한사회의 전환적 변화를 추동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는 북한주민들의 의식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 된다.

나. 공간의 상이성과 주민의식의 변화

북한에서 공간의 상이성은 과거와 달리 주민들의 의식 변화에 일

정한 변수로 상정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북한주민의 의식 변화와

관련한 공간의 상이성을 크게 ① 국경지역과 내륙지역, ② 도시와 농촌, 그리고 ③ 국영 기업과 지방의 영세 기업소로 나누어 설명하 도록 한다.

첫 번째로, 외부접촉지역에서 주민의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국

경지역, 즉 북중 접경지역과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를 중

심으로 한 남북 간 접경지대는 상대적으로 외부정보를 취득하기 쉬

우며 공식, 비공식 교류를 통해 내륙지역에 비해 개방되어 있어 주

민의식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가능하

기 때문이다.53)

52) 정성장, “북한의 경제- 병진노선 폐기 배경과 비핵화에 대한 입장 평가,” 󰡔세종논평󰡕, no.

2018-22 (2018.4.23.), <http://www.sejong.org/boad/bd_news/1/egofiledn.php?

conf_seq=1&bd_seq=4> (검색일: 2018.9.9.).

53) 이와 관련하여 국경지역이 내륙지역에 비해 체제 불만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국경지역이 내륙지역보다 사회 변화에 민감한 만큼 국가의 통제에 불

무엇보다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작된 한국 정부

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의 인도적 지원은 북한의 고위층

과 주민들의 대남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54)

남북 간 교류협력사업 중 개성공업지구는 남북경협의 공간으로,

금강산관광지구는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의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이

들 공간에 다양한 목적으로 참여한 행위자들의 인식 변화 또한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성공단은 남한의 기업인과 북한의 노동자가 함께 입주기 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접촉지대(contact zone)로서 남과 북 모두

에게 새로운 실험이라 할 수 있었다. 개성공단에서 일한 남한의 관리

자들은 이와 같은 접촉을 통해 북한주민들의 정서, 특히 남한에 대한

적개심 내지 대결의식이 상당히 해소되었다고 지적한다.55)

두 번째로, 평양을 중심으로 한 주요 도시에서 주민의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특히 평양은 국가단위의 공급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고

토대와 성분이 좋은 충성분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만큼 북한 당국이

요구하는 사회규범에 여전히 충실하며 국가가 주도하는 개혁정책에

도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56) 평양은 김정은 체제

에 가장 충성도가 높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체제의 등장 이후 평양을 중심으로 도시 현대화 사업이 진

행됨에 따라 사회주의식 현대화에 대한 주민의식이 또 다른 차원에

서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57) 반대로 지방 소도시와 농촌지

만을 드러낸 것으로 판단된다. 박영자, “체제 변동기 북한의 계층․세대지역 균열,”

최대석장인숙 공편, 󰡔북한의 시장화와 정치사회 균열󰡕 (서울: 선인, 2015), pp.

226~227.

54) 북한이탈주민 K 인터뷰(2018.7.24., 통일연구원).

55)양문수이은영윤철기, “개성공단에서의 남북한 접촉이 북한 근로자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남한 주민에 대한 북한 근로자의 태도 변화를 중심으로,” pp. 142~147.

56) 강동완․박정란, 󰡔사람과 사람: 김정은 시대 ‘북조선 인민’을 만나다󰡕, pp. 336~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