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주의국의 비공식 식품경제
먹는 문제의 해결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과제이므로 식품경제 는 경제활동 전체의 기초가 된다. 전근대 농업사회에서는 식품경제가 압도적으로 높은 경제적 비중을 점하고 있었으며, 근대화 과정에서 도 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식품경제의 비중은 하락하였다.
하지만 도시화, 산업화 이후에도 식품경제는 여전히 중요했고 도시로 의 식품 공급과 분배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었다.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이 문제를 농업 집단화, 농산물의 국가 수매, 국영 상업망을 통한 유통‧분배로 해결하였다
.
즉 집단농업을 통해 국 가가 생산과정을 통제하고, 생산된 농산물도 국가가 통일적으로 수매 하여 일부만 농민에게 남기고 나머지는 도시 주민에게 배급하거나 또 는 국영 상업망을 통해 국정가격으로 판매하였다. 그러나 전통적 사회 주의 사회에서도 집단농장과 국가계획에 의한 공식 식품경제가 식품 경제의 전부를 차지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개인 또는 가족 단위의 사영 농업과 농산물 시장, 즉 비공식 식품경제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계획경제의 비효율성과 불완전성 때문에 공식 식품경제는 농민과 도시 주민의 먹거리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지 못하였다. 이 때문 에 농민들뿐만 아니라 일부 도시 주민들까지도 소규모 사경지에서 사 영 농업에 종사했으며, 일부는 자가소비하고 남는 것은 농산물 시장에 서 판매하였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소규모 사경지 경작을 합법 으로 인정하였지만, 농민들 중에는 법적으로 허용된 면적보다 훨씬 큰
규모의 사경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았다.
전통적 사회주의 경제에서도 비공식 식품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
소련의 경우 1974년에 농업에 투입된 총 노동시간 중 3분의1 (경제 전체에 투입된 총 노동시간의 10분의 1)이 사영 농업을 위한 것
이었다는 추정치가 있다. 또 사경지의 면적은 총 경작지의 3% 정도에 불과했지만 사경지에서의 농업생산은 농업 총생산의4분의 1
이상을 차지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103 집단농장의 공동 경작지에서는 주로 주식용 작물을 재배한 데 비해, 사경지에서는 대체로 부식용 농산물을 재배하였으며, 이에 따라 각종 부식용 식품 공급에서 사영 농업의 비중 은 매우 높았다. 도시 주민들도 부식용 먹거리 중 상당 부분은 국영상 점이 아닌 농산물 시장에서 구매하였다.중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사정은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였지만, 비공식 식품경제의 비중은 정치 풍향의 변화에 따라 큰 부침을 겪었다. 중국 에서는 1950년대 중후반에 농업이 집단화되었으며, 그 직후에 ‘대약진 운동(大躍進運動)’이라는 무리한 경제정책까지 실시함에 따라 대기근 이 발생하였다.
그러자 1960년대 초에 류샤오치(劉少奇)를 중심으로 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집단농장(인민공사)을 유지하면서도 생산 인센티브를 높이 기 위한 타협책을 실시하였다. 이 시기의 농업정책은 흔히
‘삼자일포
(三自一包)’라고 불린다. ‘삼자’란 ‘자류지(自留地)’, ‘자유시장’, ‘자부
영휴(自負盈虧)’를 가리킨다.104 자류지는 사경지라는 뜻이고, 자부영
103_Gregory Grossman, “The ʻSecond Economyʼ of the USSR,” pp. 25~26; Alec Nove, The Soviet Economic System (London: George Allen and Unwin, 1977), pp. 122~126.
104_중국의 바이두(百度) 백과사전 <http://baike.baidu.com> ‘三自一包’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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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비교를 통해 본 북한 비공식 경제 (Ⅱ): 분야별 성장요인 123 휴는 이익과 손해를 스스로 책임진다는 뜻이다. ‘일포’는
‘포산도호
(包産到戶)’로서 ‘호별 생산 청부제’라는 뜻이다. ‘포산도호’는 공산당
지도부가 지시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시한 것이었으 며, 사실상 개인농 제도로 돌아간 것이었다. 즉 1960년대 초의 농업정 책은 농산물(특히 주식용 농산물)의 국가 수매와 국가 유통 제도는 유 지하되 집단농업은 상당히 약화시킨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105
그 결과 1960년대 중반에 사적인 농업생산은 농민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106 사경지는 총 경지면적의 6% 이내로 제한하 도록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10%를 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15%를 넘기도 했다. 그러나 마오쩌둥(毛澤東)은
1966년 ‘문화대혁명(文化 大革命)’을 발동하면서 농촌의 ‘자발적 자본주의 경향’을 비판하고 집
단주의 농업정책을 다시 강요하였다.107 사경지는 5% 이내로 제한했 고 농산물 시장에 대한 통제도 강화했으며 부식용 생산물에 대한 국가 수매도 확대하였다. 하지만 공식 식품경제가 불완전했으므로 비공식 식품경제를 아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였다.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사회주의 경제에서 비공식 식품경제 는 주로 부식용 식품의 공급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 및 정 책의 변화에 따라 비공식 식품경제가 확대될 때에는 주식용 농산물, 즉
105_‘삼자일포’는 1970년대 말 이후 실시된 농업개혁과 상당히 비슷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970년대 말 이후의 농업개혁은 국가 수매 제도의 변화와 수매가격 인상 등의 정책이 함께 실시되었고 삼자일포 같은 현상도 훨씬 더 널리 확산되었다 는 점에서 훨씬 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것이었다. 중국의 농산물 수매 제도 변화에 대해서는 Yuk-shing Cheng and Shu-ki Tsang, “The Changing Grain Marketing System in China,” China Quarterly, No. 140 (November 1994), pp.
1080~1104 참조.
106_Maurice Meisner, Maoʼs China and After: A History of the Peopleʼs Republic (New York: The Free Press, 1999), p. 263.
107_lbid., pp. 355~363.
곡물보다 부식용 농산물(축산물 포함)의 생산과 소비가 훨씬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1970년대 말 이후 중국의 농업개혁은 과거의 공식 식품경제가 해체되고 비공식 식품경제를 공식화한 것이었는데, 여기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108 요컨대 사회주의 시대의 집단 농업 체제에서는 과도하게 주식용 작물 재배를 강조하고 부식용 농산 물을 등한시했던 편향이 있었으며, 이런 편향은 시장지향적 농업개혁 에 따라 비로소 정정될 수 있었다.
(2) 저소득 개도국의 비공식 식품경제
저소득 개도국에서도 비공식 식품경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109 물론 오늘의 저소득 개도국들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으므로, 비공식 식품경제의 정의는 사회주의국의 경우와 같지 않다.
사회주의국의 경우 비공식 식품경제는 사영 농업
(사경지 경작 및 개인 축산 )
과 사영 농산물 시장을 의미했지만, 저소득 개도국에서는 공식 식품경 제나 비공식 식품경제나 모두 사경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저소득 개도국의 비공식 식품경제는 사영 식품경제 전체가 아니라 그 중에서도 비공식적인 경제주체들, 즉 미등록 기업들과 자영업자들 에 의한 식품의 생산, 가공, 유통 활동을 가리킨다. 제Ⅱ장에서 이미
108_Jikun Huang, Keijiro Otsuka, and Scott Rozelle, “Agriculture in China’s Development,” Loren Brandt and Thomas G. Rawski (eds.), China’s Great Economic Transforma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p. 479, Table 13.3 참조.
109_저소득 개도국의 비공식 식품경제에 대한 아래의 서술은 주로 FAO, Promises and Challenges of the Informal Food Sector in Developing Countries (Rome:
FAO, 2007)의 내용에 기초한 것이다. 이와 함께 O. Argenti, S. Francois, and H. Mouawad, “The Informal Food Sector: Municipal Policies for Operators,”
Food into Cities Collection, DT/43-99E (Rome: FAO, 2003)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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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비교를 통해 본 북한 비공식 경제 (Ⅱ): 분야별 성장요인 125 살펴본 것처럼, 개도국의 비공식 부문은 좁은 의미로는 도시 비공식 부 문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농촌의 소농들도 포함할 수 있다. 마 찬가지로 비공식 식품경제도 좁은 의미로는 도시의 비공식 식품경제 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농촌의 소농까지 포함할 수 있다. 개도 국의 경우와 사회주의국의 경우, 비공식 식품경제의 정의는 다르지만 실체적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어느 경우든 비공식 식품경제는 국가 의 공식 제도와 규제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소규모 생산자, 자영업자, 기업체들에 의한 각종 식품의 생산, 가공, 유통 활동을 가리킨다.
도시 비공식 식품 부문의 경제주체들은 다양하다. 먼저 소생산자들 이 있다. 각종 식품의 원천인 농수산물의 주요 생산자는 농어촌의 농 어민들이지만 개도국의 도시 및 그 근교에서도 소규모 농업에 종사하 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다음으로는 도소매업자들이 있는데, 전통시 장의 소상인 중에는 각종 농수산물과 가공식품 등 먹거리를 파는 사람 들이 아주 많다. 거리 음식(street food)을 파는 노점들과 소규모 식당 도 식품 공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농촌에서 도시로, 그리고 도시 내부에서 농수산물과 가공식품을 운반‧배달하는 운수업자들 중 에도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소규모의 비 공식 식품가공업체들도 있다.
개도국의 비공식 식품경제는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할 까? 유엔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FAO)가 2000년에 조사한 바 <표 Ⅴ-1>에 의하면,
개도국 주요 도시의 경제활동인구 중 비공식 식품경제 종사자의 비중 은 적어도 10% 이상이고 많게는 50%에 가깝다고 한다. 이는 도시 주 민에 대한 식품 공급과 유통에서 비공식 부문이 매우 큰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의미한다.표 Ⅴ-1 개도국 주요 도시의 비공식 식품경제 종사자 비중(2000년)
(단위: %) 경제활동인구
중 비공식 취업자 비중
경제활동인구 중 비공식
식품경제 취업자 비중
경제활동인구 중 비공식 취업자 비중
경제활동인구 중 비공식
식품경제 취업자 비중 라고스
(나이지리아) 80 48 과야킬
(에콰도르) 53 32
블랜타이어
(말라위) 50 20 랑가마티
(방글라데시) 79 18
프리타운
(시에라리온) 70 28 마나과
(니카라과) 52 14
자료: FAO Survey (May 2000), O. Argenti, S. Francois, and H. Mouawad, “The Informal Food Sector: Municipal Policies for Operators,” Food into Cities Collection, DT/43-99E (Rome: FAO, 2003), p. 22에서 재인용.
FAO가 후원한 또 하나의 연구에 의하면,
개도국 주요 도시 가운데서 식품 공급‧분배 중 비공식 부문 비중이 30~50%를 차지하는 도시 들이
30%
정도 되며 50~80%나 되는 도시들도 20%를 넘는다고 한 다.110 경제위기의 시기에는 이 비중이 더 올라가서 도시 식품 공급‧분 배 중 비공식 부문 비중이 30~50%를 차지하는 도시들이 35%를 넘 고, 50~80%나 되는 도시들은 25% 이상이 된다고 한다.비공식 식품경제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비공식 식품경제는 공식 부문의 좋은 일자리를 구할 능력이 부 족한 개도국의 가난한 시민들이 가장 쉽게 소득과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또한 비공식 식품경제가 활발한 덕분에 도시 주민 전체가 비교적 값싸고 효율적으로 다양한 식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
반면 비공식 식품경제는 법률과 제도 및 규제의 틀 바깥에 존재하기
110_Ph. Hugon and F. Kervarec, “Municipal Support Policies for the Informal Food Trade,” Food into Cities Collection, DT/45-01E (Rome: FAO, 2001), FAO, Ibid., p. 5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