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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우발성과 존재의 의미 탐구

4. 우발성으로서의 세계인식과 탈권위적 서술자

4.1. 사건의 우발성과 존재의 의미 탐구

김동인은 1927년 「딸의 업을 이으려-어떤 婦人記者의 手記」(『朝 鮮文壇』 20, 1927.3)를 마지막으로 1929년 「太平行」(『文藝公論』

2, 1929.6;『中外日報』, 1930.5.30.~9.23)을 발표하기 전까지 2년 이 상의 기간 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한다. 사업의 실패와 아내와의 이혼 등 잇따른 가정 문제로 인해 창작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1929년 에 이르러 김동인은 ‘생활’을 위해서 신문연재소설에 매진하는 등 왕성 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또한 김동인은 문단 복귀와 동시에 「朝鮮近代小說考」(『朝鮮日 報』, 1929.7.28.~8.16.)를 발표하여 조선 근대 소설의 성립과 발전을 자신과 주변 지인들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이인직의 「鬼의 聲」을 조 선 근대 소설의 시초로, 자신을 비롯한 <창조> 동인들, 그리고 <백 조>, <영대>, <폐허>의 동인 등 192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작가들 과 그들의 관계를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함으로써 문학사에서 그들의 위 치를 정립한다. 문단의 외인(外人)이 되어서야 당대 문단을 조감(鳥瞰) 할 수 있게 된 그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기 문단의 규모와 수준을 어느 정도 객관적 시선으로 살필 수 있게 되었고, 그와 비교해 현재의 문단 (1920년대 말)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갖 게 되었다. 특히 그가 이 시기에 강력하게 의식하면서 동시에 비판하고 자 했던 작품군이 프로문학이다. 프로문학에 대한 김동인의 평은 상당 히 혹독한데, 조선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 문학의 수준이 떨어진 이유로 “프로 문학이 그 방해자 중 하나”110)이며, 현 문단은 이광수의

『무정』 수준에 머물러 거나 혹은 그보다 떨어진 상태라 말한다. 이러 한 평에 대해서는 연구자의 시각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그가 말하

110) 김동인, 「「無情」水準에서 再出發해야 한다」, 『朝鮮中央日報』, 1935.5.9.

고자 한 바, 요지는 문학을 이데올로기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광수가 「무정」을 통해 대중의 계몽과 각성을 꾀하던 것과 달리 이데올로기 문학은 하나의 정치적 아젠다를 문학의 장에 본격적으로 끌 어들였다는 점에서 인간의 영성을 억압하는 구조적 문제를 구체화한다.

김동인은 이러한 정치 구조에서 벗어나 다시 문학의 본령을 찾을 것을 촉구하였고, 그 시작점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 「배회」와 「벗기운 대 금업자」 등과 같은 작품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에서 인물은 단지 사회 와 대치되어 갈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편견, 심지어 사 회적 구조를 의심한다. 한편으로는 인물이 갖고 있는 본질적 성격과 인 물이 환경과 만남으로써 이어지는 결정론적 필연조차 전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우연에 의한 불연속적 사건 전개는 이미 이학영111)에 의해 ‘복잡성’

이라는 과학용어를 통해 분석된 바 있다. 이학영은 김동인의 작품들을 예측불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했으며, 이는 당대에 팽배하던 과학 주의적 담론에 대한 대항마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태평행」(『文藝公論』 2, 1929.6, 『中外日報』, 1930.5.30.~9.23) 의 ‘서편’에서 김동인이 보여준 나비의 소여행은 에드워드 로렌츠가 주 장한 ‘나비 효과’와 유사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 김동인 연구에 대한 새 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인물과 사건, 사건과 사건 간에 인과적 연속성이 배제되고, 우연에 의한 사건의 불연속적 전개와 인물 속성에 모순되는 행위들은 전형적인 이야기의 서사 구조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근대과학비판의 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야기의 전형성, 혹은 전 형적인 구조는 김동인의 작품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 및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까지 확장될 뿐만 아니라, 창조된 세계로서 서사가 갖 고 있는 구조적 한계 너머까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29년 「태평행」(『文藝公論』 2, 1929.6, 『中外日報』, 1930.5.30.~9.23)과 함께 문단에 복귀한 김동인은 그간 거부해왔던 신

111) 이학영, 「김동인 문학에 나타난 복잡성의 인식 연구」, 『한국현대문학연 구』 41, 2013.12, 265-493면.

문소설을 연재하고, 이와 함께 역사소설에 대한 관점을 달리 하는 등 장르의 벽을 허물고 문학의 외연을 크게 넓혀갔다. 김동인은 리얼리즘 과 정통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광염소나타」와 같이 예술을 범죄의 영 역까지 밀어붙이는 과감성을 보여주고, ‘똥’을 재료로 인간의 양식을 만 드는 공상과학적 소설을 발표하기까지 한다. 이 시기 김동인의 활동은 그가 가장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다양한 기법적, 형식적 실험을 시도하던 1920년대 초반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내용과 형식의 양 측 면에서 풍부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번 절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 된 이 시기 작품들을 ‘인과(因果)’와 ‘우발성(contingency)’이라는 키워 드를 통해, 이야기의 주제와 서사 구성의 차원에서 분석하도록 하겠다.

“자, 여기 어떤 상점이 있다 합시다. 그런데 마침 주인도 없고 사환도 없고 온통 비었을 적에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던 신사가- 그 신사는 재산도 있고 명망도 있는 점잖은 사람인데- 그 신사가 빈 상점을 들여다보고 혹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아요? 통 비었으니깐 도적놈이라도 넉넉히 들어갈 게다, 들어가서 훔치면 아무도 모를 테다, 집을 왜 이렇게 비워 둔담… 이런 생각 끝 에 혹은 그- 그 뭐랄까 그 돌발적 변태심리로써 조그만 물건 하나(변변치도 않고 욕심도 안 나는)를 집어서 주머니에 넣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 습니까?”

“글쎄요.”

“있습니다. 있어요.”112)

「광염소나타」는 점잖은 신사가 저지르는 사소한 절도에 대한 가정 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짧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재산도 있고 명망도 있는 점잖은 사람”으로, 물건을 훔칠 동기는 없지만, 우연 히 생긴 기회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가정이다. 음악 비평가 K가 주장한 이 ‘기회론’에 대해 사회교화자 모씨는 판단을 보류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이야기는 백성수 이야기의 강력한 인상으로 인해 작품 분석 에서 종종 간과되어 왔다. 그러나 김동인의 소설들에서 삽입된 토막 이

112) 김동인, 「광염소나타」(『中外日報』, 1929.1.1~12), 『김동인전집 2』, 조 선일보사, 1988, 33-34면.

야기들은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암시하거나 고정된 이야기의 틀을 제공 한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사의 절도’ 이야기 역 시 「광염 소나타」의 주요 이야기와 서사 흐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주제와의 관련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광염 소나타」는 특별한 인물의 천재성을 다룬다. 백성수는 아버지 로부터 “광포스런 야성”과 음악적 재능을 동시에 물려받는다. 이 유전 적 자질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야성이 발휘될 때에야 비로 소 음악적 재능이 발휘되어 함께 존재한다. 음악적 재능은 백성수를 위 대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한다. 그와 함께 발휘되는 야성 은 백성수를 도덕적 타락자, 범죄자로 만든다. 이야기의 분량이나 갈등 양상의 측면에서 강조되는 부분은 명백히 백성수의 타락과 천재성이다.

그러나 인용된 ‘신사의 절도’ 이야기는 오히려 광포성과 천재성이 발휘 되기 시작한 경위, 즉 시작점을 다루고 있다.

두 이야기가 공유하고 있는 서사의 구조는 ‘도덕적인 인물이 우연한 기회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 서사는 인물의 성격과 행 위의 속성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간극은 ‘우연’에 의해 봉 합된다.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의 백성수는 어진 어머니의 교육으로 “아 주 온량한 사람”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병든 어머니의 약값으로 돈 이 차차 줄게 된 백성수는 ‘우연한 기회’로 주인 없는 담배 가게를 발 견한다. 백성수는 자기도 모르게 담배 상자 위에 놓인 돈을 훔치게 되 고 얼마 가지 않아 붙잡혀 감옥으로 가게 된다. 감옥에서 나온 백성수 는 또 다시 ‘우연히’ 담배 가게를 발견하게 되고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 으로 방화를 저지른다.

「광염 소나타」에서 ‘우연’은 인물과 사건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의 역 할을 하는 동시에 기능적인 면에서 두 요소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

우연은 일상보다 비일상의 영역에서 나타나며, 합리적이지도, 필연적이 지도 않다. 인용문에서 사회교화자가 대답을 보류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점잖은 신사가 절도를 하는 행위는 일상과 상식의 영역에서 찾기 어렵다. 전형적인 이야기에서 ‘점잖다’는 속성이 부여된 인물은 상반되 는 속성의 행위를 하기 위해 다른 속성의 징조 단위로 이어질 행위를

암시하거나, 인물과 사건을 연결시켜주는 또 다른 사건을 삽입한다. 그 러나 K는 행위의 근거를 제공하는 대신 인물과 행위의 모순을 방치하 고 그 사이에 우연을 놓는다.

한편, 백성수의 과거에서 우연은 인물과 사건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요소의 인과 관계를 단절시키는 역할을 한 다. 백성수는 “아주 온량한 사람”으로 자라왔다는 성격이 부여되어 있 지만,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아버지의 성품이라는 유전적 자질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이는 이야기의 징조단위로 기능하여 백성수가 광포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또한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 돈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위독해진 어머니의 병은 이야기의 기능단위에서 백성수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사건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그러 나 두 요소를 이어주는 접속사처럼 삽입된 ‘우연’은 인물과 행위가 필 연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accident)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두 요소 사이의 인과성은 부정된다. 인과 성의 제거는 인물과 인물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건(event)의 유기적 연결을 파괴하고 각기 독립된 상태로 존재하도록 한다.

인과성이 제거된 사건의 성격은 더 이상 원인과 원리를 탐구할 수 없 는 사건의 우발성을 의미한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원인을 탐구하다보 면 궁극적으로 닿는 곳은 신(神)이다.113) 신의 영역은 인간의 지성으로 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비평가K는 백성수의 광 포함이 표출된 계기를 우연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때의 우연은 무지 의 영역이라기보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돌출된, 원인이 없는(혹은 설명 할 수 없는) 우발성에 가깝다.

인물과 사건의 인과적 연결을 제거하는 서사 형태는 「포플라」(『新 小說』, 1930.1, 원제 「아라삿버들」)와 「붉은 산」(「삼천리」 25, 1932.4)에서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사건 을 다루고 있지만 인물 속성의 변화 측면에서 대조되는 거울상을 보이 고 있기 때문에 함께 비교하며 분석할 때 그 의미가 두드러진다.

「포플라」의 중심인물인 최 서방은 타고난 성품이 바보스러울 정도

113) 이정우, 『개념-뿌리들』, 그린비, 2012, 56면 참고.